몸의 소리 들을 나이 /배정순 8
1. 정기검진 받으러 가는 날이다. 생전 먹어본 적 없던 보약을 챙겨 먹어서일까. 열감이 일면서 마음이 가쁜 하다. 진료 결과야 보나 마나 좋으리라 여겼다. 한데 이게 웬일, 예상 밖의 소견이 나왔다. 근래 정상 범위를 넘어선 적이 없던 혈압이 안전 경계를 넘어 비상등을 깜빡거리고 있다.
2. 그간 혈압을 올릴 걱정거리라도 있었나. 없었다. 아니면 몸에 맞지 않는 음식이라도. 아니었다. 이유가 뭘까. 한 가지 걸리는 게 있다면 달포 전부터 먹기 시작한 홍삼이다. 하지만 그 약은 먹어 본 사람이면 다들 좋은 효과를 봐서 만인에게 검증받은 믿고 먹는 국민 건강 약제다. 그럴 리 없다.
3. 예상되는 상황은 의사가 혈압측정기를 내려놓으며, ‘그간 관리 잘하셨네요, 어디 불편 한데는 없죠?’ 였다. 한데, “병원 오는 길에 뛰어오셨어요. 혈압이 정상치를 넘어섰네요? 여태 좋았으니 이번 약은 전대로 처방하고 다음 결과 봐서 조절합시다.” 였다. 졸지에 뒤통수를 한 방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4. 나는 살아오면서 내 몸을 돌보기 위한 보약이라는 걸 먹어본 적이 없다. 더군다나 인삼 홍삼류의 약제는 멀리 헤 왔다. 열성 체질인 사람에겐 맞지 않다는 검증도 안 된 사실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인삼은 그렇다 쳐도 가공을 거친 홍삼은 높은 혈압은 낮게 하고 낮은 혈압을 끌어올려 체질과는 무관하다는 말을 들었지만, 인삼을 가공한다고 해서 홍삼으로 성분이 바뀐다는 걸 믿지 않았다. 본질은 같은 인삼인데 싶어서다. 홍삼이 비싸 안 먹을 구실을 그렇게 찾았는지도 모른다.
5. 한데 어쩔 수 없어 먹게 되었다 애초에 이 약은 내가 먹기 위해 산 약이 아니었다. 음식을 골고루 먹지 않는 남편 건강이 염려스러워 산 약이었다. 아무리 몸에 좋은 약도 장복하는 게 좋지 않다는 말을 들은 터라 조금 간격을 두고 먹는 게 좋겠다고 하자 남편이 내 말을 곡해해 돈이 아까워 그러는 줄로 착각, 아예 먹지 않겠다고 했다. 기껏 사 온 약을 먹지 않겠다고 하니 더는 권하지 않았다. 약간 오기가 발동 “싫으면 그만 두슈. 내가 먹지 뭐.”하고 그때부터 내가 먹기 시작했다.
6. 사실 나는 생활하면서 보약이 필요할 정도는 아니었다. 아직은 피로감이 느껴지지 않을뿐더러 식욕도 그런대로 괜찮았다. 한데 어쩌겠는가. 남편이 안 먹겠다고 하니 아까운 약 버릴 수는 없고, 원님 덕에 나팔이라도 불어야지. 그때부터 팔자에 없는 보약을 먹게 되었다. 간만에 내 몸을 대접하는 마음으로.
7. 생전 돌보지 않던 몸에 보약이 들어가니 몸도 놀랐을까. 열감이 일어나면서 그 약 하나로 온몸의 세포가 살아나는 느낌이었다. 그런 상태였으니 의외의 검진 결과에 당황할 수밖에. 그 열감은 내 몸이 거부하는 부작용일 수도 있었는데 보약 먹은 것에 경도되어 활력으로 받아들였다. 몸에 들어가는 것에 유난히 까탈스러운 남편이 아무 말없이 먹었던 걸 보면 역시 홍삼이 좋다는 얘기다.
8. 한데 나는 왜 이럴까. 답답했다. 말 못 하는 몸에 원인이 뭐냐 따져 물을 수도 없고. 집에 돌아와 복용하고 있던 약 이름을 인터넷에 올려 검색에 들어갔다. 혈압을 올리고 내리는 조절 기능이 있어 좋은데, 사람에 따라 맞지 않는 사람도 있다. 열이 많은 체질은 눈이 충혈되고 얼굴에 붉은 발진이 나타나기도 한다는 것이다. 내가 보약 먹은 것에 들떠 몰랐지 지금 내 몸에서 일어나는 반응과 딱 맞아떨어졌다.
9. 사실 원래 내 눈은 만성 결막염이 있어 바깥바람만 맞으면 충혈이 잘 되는 눈이다. 피부 또한 그리 매끄러운 편은 아니어서 가끔 뾰루지가 돋을 때도 있다. 공교롭게도 그때 얼굴에 뾰루지가 몇 개 돋아 약을 바르던 중이었다. 검진받기 전에는 피부의 위생 관리에서 원인을 찾았는데 보약이 뾰루지를 돋게 할 수도 있다는 말에 ‘아, 원인이 거기에 있었구나 싶었다.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로 생각하니 퍼즐이 딱 맞아떨어졌다. 몸이 이미 말을 걸어왔는데도 보약 먹은 것에 경도되어 제대로 듣지 않은 결과다.
10. 열 가지 독이 열 가지 약이 될 수 있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상황이나 사물을 다양한 시각에서 바라보고 그것을 적절히 활용함으로써 긍정의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말이지 싶다. 인생살이라고 다를까. 우리가 삶 속에서 시행착오를 겪는 것은 십에 팔 할은 덤벙거리다 본질을 놓친 결과이다. 곁다리만 볼 때 불거지는 현상이다. 나 또한 이번 사건은 감정의 휘둘림에 매몰, 마음의 진실을 듣지 않고 곁다리만 잡고 들뜬 결과로 보인다. 나이 들수록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