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 18년만에 칠레 와인의 대명사가 된 와이너리 ‘비냐 몬테스’

[와인초보]

최고급 와인 위해 하루에도 40종 넘는 포도로 실험

창업 18년만에 칠레 와인의 대명사가 된 와이너리 ‘비냐 몬테스’
친구 4명이 공동 창업…최상급 제품만 한정 생산
가파른 언덕에 심어진 포도로 빚어 순도높은 맛 내

산티아고·콜차구아밸리(칠레)=전병근 국제부 기자 bkjeon@chosun.com
입력 : 2007.07.13 0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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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냐 몬테스의 공동 창업주이자 와인 메이커인 아우렐리오 몬테스가 칠레 인근 콜차구아밸리 포도밭에서 말을 탄 채 포즈를 취했다. 그는 최고의 와인을 만들기 위해 하루에도 40종 이상의 포도를 가지고 이런저런 실험을 해본다. /비냐 몬테스 제공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수입와인 ‘몬테스알파’. 이 와인을 만드는 ‘비냐 몬테스’ 와이너리는 칠레 와인업계의 살아있는 신화로 통한다. 18년 전 4명의 파트너가 의기투합해 새 사업을 시작할 때만 해도 손에 쥔 자금은 6만2000달러에 불과한 벤처였다. 하지만 창업 18년만에 매출액은 연 3700만달러를 넘어섰다. 성취는 수량에 그치지 않는다. 이들의 선구적인 노력과 더불어 칠레산 와인은 그 앞에 ‘싸구려 수퍼마켓용’이란 말 대신 ‘고가 프리미엄’이란 수식어를 쓸 수 있게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남들이 자신들을 ‘미치광이(folly)’라고 부를 때 그 비난마저 신상품 와인의 이름으로 만들어 해외 시장에 보란 듯 내놓은 그들. ‘칠레산 프리미엄 와인’의 꿈을 현실로 바꿔놓은 몬테스의 비결은 어디에 있는지 직접 와이너리를 찾아가 성공담을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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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테스의 발전 경로를 살펴보는 것은 현대 와인 국가 칠레의 궤적을 따라가는 것과 같다. 그들은 새 지역을 개척하는 데 있어 늘 맨 앞에 있었고 언제나 야심 찬 향과 스타일로 새로운 길을 닦고 있었다.” (오즈 클라크·Clarke 영국 와인 평론가)

‘비냐 몬테스(Vina Montes)’는 칠레 와인업계의 살아있는 신화다. 그 이름이 국내에 퍼지기 시작한 것은 2001년. 이듬해 한·일 월드컵을 앞두고 조 추첨 행사에 쓰일 공식 와인에 ‘몬테스 알파 카베르네 소비뇽’이 선정되면서였다. 이어 2005년 부산 APEC 정상회담에서도 메인 와인으로 채택되면서 ‘몬테스’는 칠레 와인의 대명사로 자리 잡았다.

2000년과 2002년 미국 레스토랑들이 꼽은 ‘미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칠레 와인’도 바로 몬테스 알파였다. 그 까다롭다는 독일항공 루프트한자도 1등석에 몬테스 알파를 서비스한다. 창업 18년 만에 이뤄낸 성취 치고는 대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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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와인에 대한 열정과 비전으로 출발

첫 출발은 전형적인 벤처였다. 가진 거라곤 창업 파트너 4명의 열정과 비전이 전부. 와인 메이커인 아우렐리오 몬테스(Montes)와 마케팅 전문가인 더글러스 머레이(Murray), 금융 전문가인 알프레도 비다우레(Vidaurre), 와인 장비 엔지니어인 페드로 그란드(Grand)가 차례로 손을 잡았다. 한데 뭉치기 전까지는 각자 자기 분야에서 관록을 쌓아온 베테랑들이었다.

아우렐리오 몬테스는 1985년 세계 최대 와인 박람회인 ‘와인 엑스포(Vinexpo)’에서 금상을 받은 칠레 와인업계의 기대주. 미국에서 경영학을 공부한 머레이는 와인 명가 ‘비냐 산 페드로’에서 8년 만에 수출 실적을 ‘0’에서 연 30만 상자로 끌어올린 판매의 귀재였다. ‘산 페드로’에서 함께 일했던 두 사람은 칠레 와인의 살길은 ‘프리미엄 와인 생산과 해외 판로 개척’이라는 데 의기투합했다. “소비자들은 앞으로 점차 덜 마시는 대신 더 나은 것을 마실(not more but better) 것으로 내다봤지요.” 산티아고에서 만난 머레이씨는 “당시 시장의 흐름을 읽은 것이 적중했다”고 했다.

사업 모델도 당시 칠레 와인업계 주류와는 다른 방식을 택했다. 공장식 대량생산이 아닌 최상급의 한정된 물량만 생산해 대부분 수출하는 형태였다. 시카고대에서 경제학을 공부하고 정부 경제부처에서 일했던 알프레도는 종잣돈으로 1500만페소(당시 6만2000달러)를 내놓았고 프랑스에서 와인 제조 설비를 공부한 페드로는 자신의 와이너리 설비를 쓰게 했다.

한동안 회사는 주소도 전화도 따로 없었다. 네 사람 집의 거실이 회의실이자 사무실이었다. 자신들은 월급도 챙기지 않았다. 각자 별도의 일을 병행하며 생계를 유지했다.

당초 목표는 5년 내 5만 상자를 파는 것이었지만 반응은 일찍 찾아왔다. 첫해 7000상자에서 이듬해 2만, 3년 만에 9만 상자로 초고속 성장했다. 세계 유수 와인 잡지에서도 90점 이상의 호평이 이어졌다. 지금은 한해 매출이 50만 상자 이상에 액수로는 3700만 달러가 넘는다. 생산량의 95%는 78개국에 수출한다. 매출 규모로는 칠레에서도 중견 와이너리에 불과하지만 수출로 보면 다섯 손가락 안에 든다.

영국의 와인평론가인 휴 존슨(Johnson)은 몬테스의 성공담을 두고 이렇게 평한다. “그들의 이야기가 만일 꿈처럼 들린다면 시작이 정말 그랬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점차 현실이 되었다.” 몬테스의 꿈은 어떻게 현실이 되었을까. 그 답은 그들의 와이너리에서 찾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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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대한 ‘실험장’ 와이너리

칠레 수도 산티아고에서 남쪽으로 차로 2시간쯤 떨어진 콜차구아밸리(Colchagua Valley). 사방으로 펼쳐진 포도밭 중앙에 현대식 건물이 우뚝하다. 몬테스가 3년 전에 완공한 아팔타(Apalta) 와이너리다. 3층 높이의 현대식 건물은 땅에 반쯤 묻혀 있어 마치 방공호를 연상케 했다. 인공 건물의 웅장함보다는 주변 자연 지리와의 조화를 우선했다는 설계다. 와이너리 입구에는 인공 석호(潟湖·lagoon)도 있다. 흐르는 물길이 건물 안 정중앙에 자리 잡은 인공 샘까지 연결돼 있다. 안내를 맡은 카를로스 세라노(Serrano) 수출담당 이사의 입에서는 뜻밖에도 ‘펭슈이’(風水)라는 말이 나왔다. “우리는 자연 에너지의 조화로운 힘을 믿습니다.” 그는 “와이너리의 설계에도 중국의 풍수 전문가가 참여했다”고 소개했다.

포도밭 곳곳에는 간이 기상대가 설치돼 있었다. 같은 밭 내에서도 온도와 습도, 풍속 등의 차이를 세밀하게 가려내 각 지역에 맞게 포도를 재배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놀라운 것은 비탈진 언덕 일대를 수놓은 포도밭이었다. 가장 가파른 곳은 경사가 49도나 된다. 오르내리는 것은 물론 가만히 서 있기도 힘들 정도다. 하지만 이곳이 바로 몬테스가 자랑하는 프리미엄 포도의 산실이다. “척박한 땅일수록 포도의 열매는 순도가 높아지는 원리에 착안한 것”이라고 세라노씨는 설명했다.

개발 유지 비용은 평지보다 훨씬 더 든다. 한 사람은 상자를 들고 있고 다른 한 사람이 포도를 따는 식이다. 추수 작업도 2인이 1조가 되어야 가능하다. 인건비도 배 이상 들 수밖에 없다. “이곳을 개간해 고급 포도품종인 시라(Syrah)를 심으려 할 때는 다들 ‘미치광이’라고 했지요. 하지만 최상의 포도를 수확하는 데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여기서 난 포도로 만든 와인이 바로 ‘미치광이’란 뜻의 ‘폴리(Folley)’. 몬테스의 또 다른 인기 상품이다.

이렇듯 몬테스는 실험과 개척 정신으로 일관해 왔다. 와인 메이커인 아우렐리오 몬테스는 “와인 제조에 있어서 유행은 쓰레기다. 나는 유행 따르기를 싫어한다”고 대놓고 말한다. 그는 하루에도 40가지 이상의 포도를 가지고 이런저런 실험을 해본다.

포도가 무르익기 전에 실시하는 과감한 가지치기(green harvest)라든가, 포도알 크기를 줄여 즙의 성분을 좋게 하는 기법 등은 칠레에서 그가 처음 시도한 것들이다. 지금은 다른 와이너리들도 다 따라한다. 이곳에서는 추수도 밤 9시에서 새벽 5시까지 걸쳐서 한다. 와인의 알코올 농도를 낮추기 위해서다. 포도나무는 밤시간에 열매에 물을 공급한다는 점에 착안한 것이다. 와인 생산 과정에서도 인위적인 기계력보다 중력 같은 자연력을 이용한다. 펌프를 이용한 압력은 포도 조직이나 표면에 손상을 줄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지하 와인 저장고는 더 별났다. 마치 계단식 노천 강당 모양으로 꾸며 놓은 공간에 배가 불룩한 오크통이 반원형으로 줄지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방향은 모두 중앙 강단 쪽을 향해 있다. 어딘가에서 은은한 바로크 성가음악이 새나왔다. 마치 대형 강의실에 모인 학생들 혹은 예배당에 모인 신도들 같다.

몬테스의 성공은 학계에서도 모범 사례가 된 지 오래다. 미국 일리노이주 노스웨스턴대 경영대학원생들은 칠레 와인 산업의 대표 사례로 몬테스를 연구하기도 했다. 프랑스 보르도 경영대와 미 UC데이비스, 사우스오스트레일리아대 등이 공동으로 만든 ‘와인 MBA’ 과정은 2004년 초빙강사로 머레이와 아우렐리오 몬테스 두 사람을 선정하기도 했다.

몬테스는 파트너들 간의 정신적 교감을 각별히 여긴다. 이들의 브랜드만 봐도 동료애가 물씬 풍긴다. 원래 초창기 미국·영국을 겨냥해 내놓은 와인의 첫 이름은 ‘디스커버 와인’이었다. 그 뒤 ‘산(Monte)’을 연상시키는 단어이자 아우렐리오 몬테스의 성인 몬테스로 바꿨다.

현재 몬테스의 최고급 와인인 ‘몬테스 알파 M’은 머레이의 머릿글자에서 따온 것이다. 2005년 로제 와인으로 나온 ‘몬테스 체럽’ 라벨에 그려진 아기 천사 이름은 알프레도. 지금은 루게릭 병을 앓고 있는 동명의 창업 동료에 대한 헌사다.

머레이 이사의 명함에는 ‘공동창업자’란 직함 외에 ‘가디언 오브 스피릿’이란 직함이 하나 더 적혀 있었다. 인상좋은 그는 웃으면서 설명했다. “혹자는 술(spirit)의 수호신이라고 해석하는 사람도 있지요. 그게 아니라 창업 정신의 수호자란 말입니다. 조직이 커지고 직원 수가 늘더라도 창업 당시 와인에 대한 순수한 열정만큼은 순도를 잃지 않도록 하는 것이 저의 또다른 임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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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레의 프리미엄 와인들>

몬테스 알파 M·피니스 테라에·알마비바 등이 대표적

고형욱 와인평론가·쉐벵상 대표 kaoda1@yahoo.co.kr

남아메리카에서 와인을 생산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영화 ‘미션’에서처럼 유럽에서 건너온 선교사들과 이주자들은 고국에서 마시던 와인을 추억으로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척박한 대지를 개척하면서 포도나무를 심었다. 고향의 맛을 살리려는 노력은 1990년대로 접어들면서 경제적인 성공으로까지 연결됐다. 토착민보다는 지배 계층을 중심으로 포도원이 지속적으로 확장됐다. 그래서 현재까지도 남미 와이너리는 대부분 스페인과 이탈리아 같은 유럽계들이 소유하고 있다.

칠레에 본격적으로 포도원들이 설립된 것은 19세기의 일이다. 당시 유럽은 미국에서 건너온 진딧물 필록세라의 피해를 입고 포도밭들이 황폐화되고 있었다. 수도인 산티아고에서 정치가나 변호사 등으로 활동하던 유럽계 부르주아들과 지식인층은 유럽과 유사한 와인을 만들기 위해 양조 전문가들을 초빙해서 포도밭을 일구기 시작했다. 교통이 불편하던 시절이었으므로 산티아고에서 멀지 않은 마이포 밸리(Maipo Valley)가 와인 생산에는 적격이었다.

칠레는 태평양과 안데스로 둘러싸여 고립된 탓에 과거에 재배되던 포도 품종들이 고스란히 살아남을 수 있었다. 또한 배후에 안데스 산맥을 두고 전면에 남태평양이 있다는 지리적인 요건은 전형적인 배산임수(背山臨水) 지형으로 포도나무가 자라는 데 최적의 조건이 돼주기도 했다. 칠레 와인의 가장 큰 장점은 광활한 대지와 값싼 노동력을 바탕으로 한 가격 경쟁력이다.

칠레의 와이너리들은 크게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19세기부터 전통을 이어오고 있는 오래된 명가들, 외국에서 양조를 배우고 돌아와서 새로운 혁신을 이루어내고 있는 신흥 세력들, 그리고 유럽 선진 기술력과의 조인트 벤처로 만들어지는 와인들이다.

소설 ‘네루다의 우편배달부’에는 쿠시뇨 마쿨(Cusino Macul)을 마시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1856년 쿠시뇨 가문에 의해 설립된 쿠시뇨 마쿨은 칠레에서 한 가족에 의해 가장 오랫동안 운영되고 있는 포도원이다. 카베르네 소비뇽과 메를로를 블렌딩해서 만드는 피니스 테라에(Finis Terrae) 같은 와인으로 전통을 대변하고 있다. 같은 시기에 돈 프란시스코 운두라가(Don Francisco Undurraga)에 의해 설립된 운두라가나, 돈 멜초르에 의해 설립된 콘차 이 토로(Concha y Toro) 등은 칠레 와인 역사의 산증인들이다.

돈 멜초르는 셀러에 보관해둔 와인이 자꾸 없어지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꾀를 내 산티아고에 출장 간다고 얘기하고는 몰래 돌아와 와인 저장고 안에 몸을 숨기고 있었다. 밤이 되자 하인 중 하나가 안으로 들어와서 와인을 훔쳐가려 하고 있었다. 돈 멜초르는 기괴한 소리를 냈고 귀신이 나타났다고 놀란 하인은 높은 데서 떨어져 다친 채로 도망치고 말았다. 그때부터 카시에로 델 디아블로(Casillero del Diablo), 즉 ‘악마의 셀러’로 불렸으며, 같은 이름의 와인이 만들어지게 됐다.

1987년 설립된 몬테스는 신흥 세력을 대표한다. 설립자인 아우렐리오 몬테스는 기존의 와인들보다 더 훌륭하면서 비싸지 않은 와인을 생산하려는 목표를 지니고 있었다. 그때까지 국제 시장에 알려진 칠레 와인이란 싸구려라는 이미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몬테스는 그런 인식을 깨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생산 여건이 워낙 좋은 탓에 품질을 높여도 시장에서의 가격은 상대적으로 저렴한 편이었다. 몬테스 알파 시리즈는 그렇게 국제 시장에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았다. 몬테스는 지속적으로 와인의 고급화를 추구하고 있으며, M과 폴리(Folly) 같은 와인을 만들고 있다.

우수한 환경에 주목한 거물들은 칠레로 눈을 돌렸다. 보르도의 전통을 고수하면서 언제나 모험적인 시도를 해왔던 무통 로칠드는 1997년 콘차 이 토로와 손을 잡고 알마비바(Almaviva)를 생산하고 있다. ‘피가로의 결혼’에 등장하는 알마비바 백작의 이름을 붙이고, 칠레의 전통적인 문양으로 장식되어 있는 라벨은 두 나라의 서로 다른 문화가 하나의 와인으로 만나게 된 것을 상징하고 있다.

캘리포니아의 거인 로버트 몬다비는 에라추리츠(Errazuriz)와 함께 세냐(Sena)를 만들면서 시장을 확장했고, 이탈리아 최대의 와인 메이커 안티노리는 하라스 데 피르케(Haras de Pirque)와 함께 알비스(Albis)를 만들고 있다. 알비스는 ‘새벽’이라는 뜻이지만 벌써 칠레의 와인 산업에는 밝은 햇살이 내리쬐는 것 같다. 천혜의 자연 조건에 만족하지 않고 이처럼 선진 기술력과 꾸준히 교류하면서 끊임없이 보충되는 인재들, 그리고 풍부한 노동력 등이 칠레의 와인 업계를 활황으로 만들어주는 요인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