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군의 섬’ 진해 해양공원과 ‘연인의 섬’ 마산 저도
2005년 3월 개관한 해양공원은 진해구 명동 앞 우음지도(雩音之島)의 전체면적 8만 2,505㎡의 터에 있다. 해양관광·군항도시 명색에 걸맞게 ‘해전사체험관’, 한국전쟁 당시 실전 배치한 강원함(2,500t급)·옥천함(110t급)·고속정 강원함(110t급)이 전시된 ‘군함전시장’, 해양생물의 탄생과 진화과정, 다양한 어패류 전시실과 체험실에서 바다 속 생태계를 한눈에 감상할 수 있는 ‘해양생물테마파크’가 있다. 앞으로 민자를 유치해 에코빌리지 리조트, 번지 점프, 전자 게임장, 해양 체험장, 수족관, 향토음식점의 시설을 설치할 계획이란다.
마산 합포구 구산면 구복와 저도를 잇는 저도연륙교는 사랑의 연을 맺어 준다는 주홍빛 철교이다. 2001년에는 박신양과 이미연이 주연으로 출연했던 영화 [인디안 썸머]를 촬영했다. 또한 가수 거미의 뮤직비디오 ‘아직도’를 촬영했다. 다리는 사연을 품고 있다. 사랑하는 사람과 손을 잡고 다리를 건너면 사랑이 이뤄지고, 중간에 손을 놓으면 헤어지게 된단다. 또 다리 위에서 빨간 장미 100송이를 건네주며 프러포즈하면 사랑이 맺어진다고 연인들은 믿고 있다. 또한 사랑의 맹세증거로 자물쇠를 다리에 채워 놓고, 열쇠가 바다에 던져진 ‘사랑의 자물쇠’ 수백개가 주렁주렁 달렸다. 2004년 신 저도연륙교가 개통되면서 지금은 인도교로 남아 있다. 마산9경 중 하나로 꼽히는 새 다리는 괭이갈매기를 형상화했다.
민주선열 잠든 국립3·15민주묘지
1960년 3월15일 이승만 자유당 독재 정권이 장기집권 유지를 위해 부정선거를 획책하자 마산시민과 학생들이 항거해 시위를 일으켰다. 3·15 1차 의거에 이어, 4월11일 그동안 행방불명 되었던 김주열 군이 머리에 최루탄이 박힌 처참한 모습의 시체로 마산 중앙부두에서 떠오르자 격분한 시민들이 다시 2차 의거를 일으켜 싸웠다. 항쟁에서 12명이 사망하고 250여 명이 경찰이 쏜 총에 맞거나 체포 구금돼 고문을 당했다. 이러한 마산시민과 학생들의 의로운 투쟁은 전 국민의 분노와 함께 4·19혁명의 도화선이 되어, 4월26일 이승만 독재정권을 무너뜨리게 된다. 그 도도한 물결은 4·19혁명, 부마민주항쟁, 5·18민중항쟁, 6월민주항쟁에 이르기까지 한 시대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미래진행형으로 영원히 이어지고 있다. 3·15 민주선열의 희생정신의 뜻을 받들고자 1968년에 마산회원구 구암동 애기봉에 묘역을 조성하여 1969년에 3·15희생자 묘 13기를 이장했다. 2002년 8월 3·15성역공원은 3·15국립묘지로 승격되었고 2003년 3월 15일에 국립묘지 준공식이 있었다. 2010년 3·15 50주년을 맞아 국가기념일로 지정됐다.
벚꽃과 국화가 어우러진 야철(冶鐵)문화
봄을 알리는 벚꽃과 함께 시작되는 창원시 진해구 진해군항제는 1952년 4월13일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구국 얼을 추모하기 위해 탄생 됐다.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봄꽃축제이다. 진해구 관내에는 35만 그루의 벚나무가 도시를 연분홍빛으로 수놓는다. 벚꽃의 향연이 펼쳐지는 곳은 진해구 장복산 조각공원·안민도로·여좌천·진해내수면환경생태공원·경화역·해군사관학교·해군기지사령부가 대표적이다. 미국·프랑스·뉴질랜드·태국의 군악대와 대한민국 3군이 펼치는 의장대의 사열은 색다르다.
창원시 마산가고파국화축제는 대한민국 가을 대표 축제이다. 매년 10월~11월 국화축제가 개최되는 마산지역은 우리나라 국화 시배지이다. 국화 재배면적의 13%를 차지하고 연간 40만 달러의 외화를 획득하는 국화산업의 메카이다. 특히 2009년에는 한국기록원이 인증한 1315송이 다륜대작 ‘천향여심’이 세계 기네스에 등재했다. 2010년 관람객만 135만 명, 324억원의 경제효과를 거뒀다.
창원지역은 삼한시대 야철지(冶鐵址)로 유명한 변한(弁韓)의 역사적 전통이 있다. 변한의 혼과 지혜를 기려 가을엔 창원야철축제(昌原冶鐵祝祭)가 창원페스티발과 함께 열린다. 삼한시대 이후 창원 근로자들이 열심히 일해 첨단 IT제품까지 생산하는 철기 역사를 보여주는 퍼레이드가 열린다.
창원의 맛, 아구·복어·전어·미더덕 요리에 빠지다
아구(아귀) 요리는 마산이 원조이며 마산의 대표 먹을거리로 전국적으로 유명한 음식 중의 하나이다. 불과 50여 년 전만 해도 아구는 먹지 않았다. 괴물처럼 생기고 특별한 맛이 있는 생선이 아니었기에 그물에 걸리면 바다에 다시 던져 넣거나 거름으로 썼다고 한다. 아구찜의 유래는 오래전 마산합포구 오동동에 장어국을 팔던 혹부리 할머니가 어부들이 가져온 아구를 된장과 고추장, 마늘, 파 등을 섞어 쪘다고 한다. 북어찜의 요리법을 아구에 적용한 것이다. 할머니가 먹어보니 맛이 괜찮아 단골손님들에게 술안주로 권하기 시작하면서 아구찜이 탄생한 것이다. 아구찜이 요즘처럼 콩나물, 미나리 등 채소가 들어가기 시작한 것은 60년대 중반쯤인 것으로 짐작하고 있다. 그 후 혹부리 할머니는 돌아가시고 오동동에 아구찜 음식점들이 하나 둘 생겨나면서 지금은 전국의 유명 음식으로 자리 잡고 있다.
‘가을전어 굽는 냄새에 집 나간 며느리도 돌아온다’는 속담이 있다. 그만큼 가을 전어 맛이 뛰어나다는 이야기다. 전어라는 이름도 맛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전어는 사는 사람들이 돈을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전어(錢魚)라고 했다’고 조선후기 실학자 서유구는 자신의 저서 ‘임원경제지’에 기록했다. 가격을 묻지 않고 전어를 꼭 찾고 어부들도 돈 벌기 가장 좋은 생선으로 취급했기 때문에 돈 전(錢)자를 써서 이렇게 불렀다는 설이다. 가을 전어에는 몸에 좋은 불포화지방 성분이 다른 계절보다 최고 3배나 높아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더덕은 산에서 나는 더덕을 닮아 물에서 나는 더덕이라 해서 미더덕이란 이름이 붙었다. 미더덕은 향이 독특하고 오도독 씹히는 소리와 함께 입안으로 번지는 맛이 그윽하다. 미더덕을 넣고 끓이는 된장국은 골목 어귀에만 들어서도 코가 벌름거릴 정도로 미더덕의 향은 별나다. 그래서 미더덕이 들어가는 된장찌개의 맛을 잊지 못하는 이가 많다. 특히 미더덕찜은 향토 음식으로 유명하다. 마산 합포구 진동지방의 토속음식으로 이 곳에서는 예로부터 미더덕을 세시음식으로도 많이 이용해 왔다. 정월대보름과 2월 초하루, 그리고 풍어제를 지낼 때에는 미더덕으로 찜을 해먹고, 겨우내 움츠렸던 몸을 추슬렀는데 그 풍습은 지금까지 전해오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