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三流人生 원문보기 글쓴이: 醉月
장창(長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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原
척계광이 말하기를, 창의 길이는 1장 5척이며, 창자루는 주목(빽빽한 나무)이 제일 좋고, 합목(合木)으로는 가볍고 작고 연한 것이 그 다음이다. 찍어서 쪼개고자 하는 것이므로 아름다운 무늬, 기울어진 나무는 잘 부러지거나 잘 뚫린다.
대나무는 허리가 연하여 반드시 쓸 수가 없다. 특히 북방에서는 건조하여 대나무는 쓸수가 없다.
동남지방에서는 대와 나무 모두 좋다. 창을 만드는 장인(匠人)은 반드시 창을 쓰는 대의를 알아야하며, 만들려면 활시위를 당기는([맹자]에서 남에게 활쏘기를 가르치려면 반드시 뜻을 활시위를 당기는 것처럼 한다.)것같은 자세로 한다.
10일간 배우면 긍경(근육이 뭉쳐진곳, 즉 핵심. 장자의 [양생주기경(養生主技經)]의 긍경인지 미상하다)을 깨달아 익숙해진다. 뒷손 잡는데는 좀 굵어 손에 쥐어 가득 찰 것이 요구되며, 창부리를 따라 점점 가늘고 곧아지다가 머리에 와서 그친다. 허리부분이 굵으면 경강(硬强)하고, 허리가 가늘면 힘이 없다.가장 기피 할 것은 나무 ?이 굵고 허리가 경직된 것이다.
增
오늘날 우리나라에서 사용하는 것(정조 당시)에는 창 끝에 혈조(血槽)가 있다(창날에 홈이 파인 것을 혈조라 한다. 『전한서』『무예본기』주석에서 물이 흘러 가는 것을 조(漕)라 하였다). 창날 아래에 작은석반(錫盤:주석반)을 대고 창자루 위에 하얗고, 까맣고, 붉은 3층으로 서로 사이를두고 문장(文長)으로한다. 화식과 더불어 한가지로 준(창자루 밑의 구리)이 있다.
『무편(武編)』에 이르기를,
"창제에는 몇 가지가 있다. 나무자루 위에는 날이 있고,아래에는 준이 있다. 기병은 쌍구창, 단구창을 사용하고, 혹은 창자루 위에 고리를 붙이기도 한다. 보병은 바로 소목창(素木槍)이나 아경창(鴉頸槍)을 사용한다."
『병장기(兵仗紀)』에 이르기를,
"장창을 쓰는 법은 양씨(楊氏) 홀로 정통 하였다. 말하기를 배꽃이 변환을 헤아릴수 없이 하는 것처럼 그 길은 묘리를 터득한 자가 드물었다. 지금 세상에 알려진 것은 사가창, 마가창, 김가창, 장비신창, 오현신창, 괴돌창(拐突槍), 괴도창, 아미창, 월창, 지설창이 있다. 보병이 쓰기에 마땅한 것은 소목창, 약주창, 아경창, 태녕필창 등이 그런 류이다."
案
창(槍)자는 원래 나무류를 깍아서 다듬은 것이다.(날카로운 것. 『주역』[계사(繫辭)전]에 나무를 깍아 화살을 만든다).
초나라의 경절(耕切)의『이의실록(二儀實錄)』에 이르기를,"황제(黃帝)와 치우(蚩尤)가 싸울 때 곧 창이 있었다. 제갈량이 나무로 만들기 시작하여 그 길이가 1장 2척이고, 쇠로 머리를 하였다 (창 끝을 쇠나로 하였다)."
왕명학(王鳴鶴)이 이르기를,
"장창은 쓰는 법이 양씨(楊氏)로부터 비롯 되었는데, 이른바 이화창(梨花槍)이라 하여 천하에 모두 숭상하였다.
『송사(宋史)』[이전(李全:산동의 무서운 도적)전]에 이전의 아내양씨가 정연덕 등에게 말하기를 '20년간 이화창으로 천하에 적수가 없었다'라고 한 것은 대개 그 치고 찌르기를 잘 했다는 말이다."
왕사의(王思義)가 말하기를,
"이화창이란 배꽃[梨花] 한 통을 장창의 끝에 매달았다가 적과 맞닥뜨려 한발을 수 장(丈)이나 멀리 나가게 쏠 수 있다. 사람이 그 약에 손대면 즉사한다.
창은 곧 적을 찌르는 것임과 동시에제일의 화구(火具)이다. 송나라 이전이 일찍이 이를 이용하여 산동의 웅자(雄者:패자)가 되었다. 그러나 척계광이 말하는 모든 세법은 비록 이화창이 종주(宗主)가 되나 화구는 아니다.
『무편(武編)』에 말하기를, "창자루는 질려나무 가지가 제일이고, 뽕나무 가지가 그 다음이며, 단풍나무 가지가 또 다음이며, 나머지 나무는 쓸 수가 없다"고 하였다.
『왜한삼제도회(倭漢三制圖會)』에 이르기를,"무릇 창자루는 저목( 木:종가시나무)이 제일이고,비주(肥州) 천초(天草)에서 나는 것이 제일 좋다. 비파나무(枇杷木:사마상여의 [상림부(上林賦)]의 장즙(張楫)주에 비파목은 떡갈나무와 비슷한데, 잎이 넓고 살구나무와도 비슷하다)가 다음이고, 종려나무가 역시 그 다음이다."
『병장기(兵仗기(記)』에 당파는 주단목으로 자루를 한다.
『예기도식(禮記圖式)』에 말하기를, 호창(虎槍)자루는 백랍목(白蠟木)으로 한다.
案
질려는 흔히들 말하는 엄목(奄木)이 아닌가 한다. 즉『본초강목(本草綱目)』에서 말하는 총목이다.『진장기(陳藏器)』에 이르기를 "총목은 산골에서 나는데, 높이가 1장 남짓하고, 곧고 바르게 자라며, 가지가 없고 줄기에 가시가 있다. 산중 사람들이 꺽어가 꼭대기의 부드러운 부분을 먹는데, 이를 물두( 속칭 목두채, 드릅나무)라 한다."
『당운(唐韻: 당나라의 시가)에 이르기를, "총은 끝이 뾰쪽한 담(擔)이다.그 나무로 편담(扁擔)을 만들 수 있다(물건이둥글지 않은 것을 편[篇]이라 하고, 어깨에 메는 것을담[擔]이라 한다. 모나고 엷은 나무 양쪽 끝에 물건을 마치 추처럼 달아 어깨에 메고 그 가운데로 간다)"고 하였다. 자는 산뽕이다. 『주례동관(周禮冬官)』에 이르기를, 활을 만드는 사람은 여섯가지 재료를 판별 하여야 한다.
첫째는 산뽕이다. 초목상(草木狀)에 이르기를, 산뽕나무는산속 돌밭에서도 잘 자란다.
『본초강목(本草綱目)』에 이르기를, 산뽕나무는 총생(叢生:밀집하여 자람)을 좋아한다. 가지는 소직(疏直: 드물고 곧음)하고 ,잎은 두텁고 둥글며, 끝에 산초나무와 같은 열매가 있으며, 그 나무로 누렇고 붉은 색을 물들이는데, 이것을 자황이라 한다.
『농정전서(농정전서)』에 이르기를,
"산뽕나무는 굳고 단단한 껍질을 갖고 있으며,무늬는 세밀하다. 위에는 하얀점이 많고,가지에는 많은 가시가 있다. 잎은 뽕나무에 비하여 심히 적고 엷으며, 색상은 약간 황담색이며, 잎에는 줄거리가 있는데 모두 세 갈래이다."
단풍나무는 속칭 신목(神木)이라 하는데, 소송(蘇頌)이 말 하기를, "나무가 심히 높고 커서 흡사 백양(白楊)과 같다. 잎이 둥글고 갈라져서 삼각형을 이루며, 향기가 있다. 2월에 하얀 꽃이 핀다."
『설문해자(說文解字)』에 이르기를 "단풍나무는 잎이 두텁고, 가지는 약하며 잘 흔들린다." 이시진이 말하기를,
"단풍나무는 가지와 줄기가 쑥쑥 솟아 올라서 큰 것은 몇 아름이나 되고, 그 나무는 심히 견고하며, 붉은 것도 있고하얀것도 있다. 하얀 것은 윤이 나는데 그 열매는 공 모양이고 부드러운 가시가 있다."
종가시나무는 『산해경(山海經)』에 이르기를 "앞 산에 그 나무가 많은데, 종가시나무이다."라 했고, 이는 갈참나무와 비슷하다.( 긴 것은 1장쯤 되고, 잎은 작고 가는 이빨이 있으며, 번쩍이는 빛이 있으며,끈질긴 날이 있어서 겨울에도 마르지 않는다). 열매는 먹을 수 있다. 겨울이나 여름에 벤것을 집 기둥으로 쓰면 썩지 않는다."
『본초강목(本草綱目)』에 이르기를 "종가시나무는 골짜기마다 있다. 큰 것은 몇 아름이나 되고, 높이는 2~ 3장이나 된다. 잎은 길고 크며 밤나무잎과 같으나 끝이 두텁고 단란하다.
또 광택이 있으며 톱니가 매우 예리하고 겨울을 지내도 마르지 않는다. 3~ 4월에 하얀꽃이 피며 넓은 이삭이 달리는데, 밤꽃과 같다. [꽃은] 열매를 맺는데 크기는 떡갈나무 열매와 같다. 밖에는 작은 덤불이 있는데 서리가 온 후에 덤불이 갈라지면서 열매가 떨어진다. 열매는 둥글며 갈색이다. (화가들은 이 색깔을 회색 같다고 하는데 갈색이다.) 그리고 끝이 묘쪽하고 크기는 보리수 열매와 같다.(보리수는 무환자[無患者]류로 천태산에서난다.) 속씨는 살구씨만 하다. 씨를 날로 먹으면 쓰고 떫으며, ?아 먹으면 단맛을 띤다. 역시 갈아서 가루를 만들 수 있다. 속칭 이년목(二年木)이라는 것이 이것이다. 이것을 가서목(哥舒木)이라고도 한다. 이년목은 색깔이 하얗고 질기다.(靭 : 음은 '인'인데, 부드러우나 단단하다는 뜻이다.)
가서목은 색깔이 붉고 잘 부러진다. 이것을가서목이라고 이르는 것은 모두 중국 가서봉(哥舒棒)의 재료에서 기인된 것이지만, 이 나무를 쓰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 아니겠는가?
(『당서(唐書)』「가서한전(哥舒翰傳)」에 이르기를, 토번과 더불어 싸울 때 반단창으로 맞아 싸웠다)
현호(玄扈)선생 (명나라 문연각 대학사 서광계(徐光啓)의 별호)이 말하기를, "여자가 정절이 곧은 것을 오나라에서는 하대한다. 사철나무에서 납이 생산 되는 것을 모두 납수(蠟樹)라 하는데, 그런즉 중국에서 여자가 정절이 있는 것을 납수(蠟樹)라 칭한다. 이 나무를 속칭 서시목(鼠矢木)이라 한다. 그 열매는 익은 것과 같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백납이 진피에 많이 있다. " 진피(秦皮) 또한 나무의 성질이 견고하고 질겨, 여자가 정절이 곧은 것 보다 더하다. 도홍경(陶弘景)이 이르기를 "여자가 정절이 곧은 것과 진피는 표리를 이룬 즉, 백랍목은 우리나라의 진피로써 정의 할 수 있다.
장창(長槍)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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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처음에 태산압란세(태산으로 계란을 누르는 자세)를 취하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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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즉시 미인인침세(미인이 바늘을 익숙하게 다루는 듯한 빠른 자세)로 동작을 바꾸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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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그대로 철번간세(철창을 뒤집어 낙시대 드리우는 자세)를 취하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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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창을 빼어 사이빈복세(사이가 복종하는 자세)를 취하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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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문득 적수세(물방울을 떨어뜨리는 자세)를 취하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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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지남침세(동서남북을 가르키는 남침판의 침과 같은 자세)를 취하고 즉시 발을 계속하여 한걸음 앞으로 나가고 또 적수지남세로 계속하여 두걸음 앞으로 나아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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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갑자기 철우경지세(쇠로 만든 소-쟁기가 밭 가는 자세)를 취하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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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즉시 십면매복세(사방 팔방에 매복시켜 둔 복병의 자세)를 취하여 한번 찌른다. 적수지남침세로 한걸음 물러가고 또 적수지남침세로 한걸음 물러나서 제자리에 서라. 적수지남침세로 앞으로 한걸음 나가고 또 적수지남침세로 연이어 두걸음 앞으로 나가고 갑자기 철우경지세를 취하며 심면매복세로 한번 찔러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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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또 적수지남침세를 취하여 그대로 변란세(가장자리로부터 막는 자세)를 취하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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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급히 몸을 돌리고 창을 돌려 한걸음 물러가 백원타도세(흰 원숭이가 창을 끄는 자세)를 하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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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또 한걸음 물러서서 원위치에서 기룡세를 취하라. 또 적수지남침세를 취하여 한걸음 앞으로 나가고 갑자기 철우경지세를 취하여 십면매복세로 한번 찌르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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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그대로 적수지남침세를 취하여 철번간세로서 창을 점하고 태공조어세(강태공이 고기를 낚는 자세)를 취하고 마쳐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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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창후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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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처음 조천세(천자에게 조회하는 것과 같은 자세)를 취하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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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재빨리 창룡파미세(푸른 용이 꼬리를 흔드는 자세)를 취하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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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한걸음 앞으로 나가 복호세(호랑이가 엎드린 자세)를 취하고 또 한걸음 나아가 복호세를 짓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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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또 한걸음 앞으로 나가 퇴산색해세(한무더기 산으로 바다를 막는 자세)를 취하여 한번 찌르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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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한걸음 물러서서 포지금세(땅에 비단을 펴는 자세)를 취하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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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또 한걸음 물러나 피파세를 취하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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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한걸음 앞으로 나가 요자박요순세(새끼 새매가 메추리를 낚아 채는 자세)를 취하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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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또 한걸음 앞으로 나가 영묘촉서세(신령한 살팽이가 쥐를 잡는 자세)를 취하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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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또 한걸음 앞으로 나가 청룡헌조세(청룡이 발톱을 받드는 자세)를 취하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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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한걸음 뒤로 물러나 엄검세를 취하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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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또 한걸음 물러나서 츰홍문세(화락 홍문을 뛰어드는 자세)를 취하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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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한걸음 나아가 야차탐해세를 취하고 마친다. |
죽장창(竹長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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增
길이 20척(자), 멀시날 4촌, 근수(近手: 손잡이) 5척(자) 이상. 색칠한다.
속사시(續事始) 가로되 "제갈량이 고죽창(苦竹槍)을 만들었다"라 하였다.
『화양국지(華陽國志)』에 백엽죽은 가지 하나에 백개의 잎이 있는데, 이에 상한 사람은 반드시 죽는다.
고죽창의 길이는 2장 5척이다.
『명회전(明會典)』에 이르기를,
"홍치(弘治) 16년(1503)에 남방의 위소(衛所:방위초소)에 명령을 내려 죽장창을 모아서 나무가지로 만들도록 하였다."
『단연록(丹鉛錄)』에 이르기를,
"『주례(周禮)』주석에 수는 적죽(積竹:합죽) 팔고(여덟 모)로써 이것으로 병차를 만든다"고 하였고, 『설문(說文)』에 비(창자루)와 대를 합한 것(합죽)이다.
『모시(毛詩:시경)』에 죽비,『고공기(考工記)』에 여기(廬器)라 했다 (廬器는『고공기』주에 합죽 지팡이라 했다). 역사책의 극긍(棘矜:棘은 무기이며, 矜은 창의 자루)은 모두 합죽으로 해석한다.
『설문(說文)』의 주에 이르기를, "적죽(積竹)이란 대 조각의 한 부분을 깍아내고, 그 파란 부분만 합하여 다듬은 것으로, 지금의 적죽(積竹:합죽)이다."
案
지금 우리나라에서 연습하고 있는 죽창 자루로 전죽(全竹: 통대나무)을 사용하며 끝에 엷은 날을 붙여 쓰는데, 가볍고 공허해서 쓰임에 감당하지 못한다. 『단연록』에 인용한 바 합죽(積竹)은 이것이 비록 몽둥이 이거나 창자루 등속이지만, 역시 장창의 자루라는 충분한 증거가 된다. 단지 그 만드는 법은 보지 못했으나 대개 대나무를 쪼개어 모아서 아교로 댓살을 붙여 굳게 하고, 칠을 칠하면 그 편리함을 얻을 수 있다.
『명회전(明會典)』에 나무가지로 바꾸도록 하였다. 척계광 역시 일찍이 탄식하기를, 그 허리(창자루 중간)가 연한 즉 승리를 획득 할 수 있는 편리한 무기가 못된다고 하였다. 그래서 통대 창(全竹槍)보다 가볍고 공허해서 쓰임에 감당하지 못한다.
훈국에서 소장하고 있는 왜창 자루는 20척인데, 대개 합죽이다. 부드러우나 굳센 날이 심히 굳세고 날카롭다. 시험적으로 집기둥에 찔러 보았더니 조금만 힘을 들여도 깊이 들어가서 뽑기가 어려웠다. 허리(창자루 중간)를 잠깐 굽어 보았더니 곧바로 펴지는 탄력이 있었다.
죽장창(竹長槍)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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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처음에 태산압란세(태산으로 새알을 누르는 자세)를 취하고 두 손으로 창을 심고 흔들어 방아를 찧듯이 하며 크게 외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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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즉시 진왕점기세(진시왕이 기를 점검하는 자세)를 취하되 한번 들어 점(點)하기를 모두 세번 하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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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그대로 금룡파미세(금룡이 꼬리치는 자세)를 취하되 오른손으로는 앞을 잡고 왼손으로는 뒤를 잡아 왼쪽으로 세번 흔들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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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단풍무풍세(봉황이 바람결에 춤추는 자세)를 취하고 왼쪽으로 세번 흔들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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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또 한신마기세(한신이 깃발을 만지는 자세)를 취하되 두 손으로 창끝을 잡고 앞으로 한번 찌르고 좌우로 한번 흔들고 두손으로 높이 쳐들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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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그대로 백원타도세를 취하되 왼손을 낮추고 오른손을 높혀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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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창을 끌어 물러 섰다가 들어가면서 철번간세를 취하되 두손으로 창끝을 잡고 똑바로 들어 올렸다가 앞은 낮추고 뒤를 높히여서 금룡파미세를 단풍무풍세를 취하였다가 물러났다가 들어서면서 마친다. |
기창(旗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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增
창날 길이 9촌, 자루 길이 9척, 붉은 칠을 한다. 주석판 이하에서는 검은색·흰색 칠을 모두 5마디로 하고, 혹은 누런색이나 붉은색의 작은 기를 단다.
『엄주사부고( 州四部藁)』에 이르기를, "문황제(大明 成祖황제)의 어창(御槍: 임금님의 창)은 오문루(午門樓)의 포좌(座:어탑) 오른쪽에 두었는데, 창은 칠한 합죽으로 자루를 알고, 검은 정기를 달았는데, 약호(若號)중에 늘어뜨린 단 중에는 여러 가지 별들을 수놓았다. 창자루에는 칼자국이 세 군데나 있고, 화살 구멍이 다섯이나 있었지만, 기록에 의하면 문황(文皇)이라 칭했다. 그는 매번 대적을 만나면 문득 용감한 기병(驥騈)을 거느리고 중견으로 부딪쳐 들어가서(中堅:『후한서』「광무제전」에 '그 중견을 부딪쳐 들어가서...' 注에 중군장 지존이 기거하므로 견고하고 정예로써 스스로를 도우게 되어 있기 때문에 중견이라 한다.) 적 후방을 에워 싸고 깃발을 흔들면 군사들이 다투어 분전하니 적은 순식간에 크게 무너진다."
『고려사』「여복지(輿服志)」에 이르기를, "임금의 수레에 의장병으로 소기창대(小旗槍隊)의 장교(將校)가 2명이 연등한다(고려에는 팔관 연등회가 있다)." 기는 노부(의장병이다. 진·한 때부터 그 이름이 시작된다)은간 (작은 대나무) 작은 기창 이다.
案
문황의 창은 기병의 무기이다.『고려사』「여복지(輿服志)」에 실려있는 것은 의장용 무기이다. 기를 단 창을 인용한 것이기 때문에 사실이다. 무릇 군의 행렬(5열 종대이기 때문에 군오(軍伍)라 함)은 각각의 장수가 무기를 잡고 이어서 치고 받는 자세를 연습한즉 대저 깃대를 단 창대에 날을 붙인 것은 그 치고 찌르는 술(무예기법)을 전하려 하는 것이니 오히려 현명하지 않겠는가?
호미와 고무래(『회남자』주에는 흙덩이를 부수는 연장이다)도 병기가 된다. 이에 별도로 하나의 창으로 갖추어 그 자세를 익힌다.
기창 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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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처음 용약재연세를 취하고 왼손으로 창을 잡고 오른손은 오른편 옆구리를 끼고 바로 섰다가 오른쪽 주먹으로 앞을 치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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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급히 지극세를 취하여 오른손과 왼쪽다리로 높이 쳐들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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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그대로 야차탐해세를 취하고 왼쪽 겨드랑이에 창을 끼고 오른쪽 주먹으로 앞을 한번 치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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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그대로 중평세를 취하되 왼쪽 손과 왼쪽 다리에 힘을 주어서 한번 찌르고 또 중평세를 취하여 한번 찌르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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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그대로 진왕마기세를 하되 왼손과 왼쪽 다리로 밖에서 안쪽으로 한번 문지르고 또 한번 문지르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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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즉시 한신점기세를 취하고 왼손과 왼다리로 안쪽으로부터 바깥쪽으로 한번 점하고 즉시 중평세로써 한번 찌르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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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왼쪽과 오른쪽 손을 바꾸어 잡고 복호세를 취하되 왼손을 높이고 오른손을 낮추어 왼손과 오른쪽 다리에 힘을 주어 한번 찌르고 또 복호세를 취하여 한번 찌르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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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왼손과 오른손을 바꾸어 쥐고 퇴산색해세를 취하되 왼소과 왼쪽다리를 높이 쳐들고 한번 찔러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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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그대로 창을 쳐들고 왼쪽으로 돌아 바꾸어 쥐고 은교출해세를 취하고 오른손과 오른쪽 다리에 의지하고 창을 휘두르고 뒷쪽을 향해 바로 들어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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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그대로 중평세를 취하여 한번 찌르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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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또 복호세를 취하되 왼손과 오른손을 바꾸어 쥐고 오른손을 높이 쳐들고 왼손을 낮추고 오른손과 왼쪽 다리에 의지하여 한번 찌르고 또 복호세를 취하여 한번 찔러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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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즉시 왼쪽으로 한번 돌아서 바꾸어 잡고 오른손과 오른다리로 오른쪽을 향해 내밀면서 한번 찌르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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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즉시 오른쪽으로 한바퀴 돌아 바꾸어 잡고 왼손과 왼다리를 왼쪽으로 행해 내밀면서 한번 찌르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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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즉시 왼쪽으로 한번 돌아서 바꾸어 쥐고 오른손과 오른 다리로 뒤를 향해 한번 찌르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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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즉시 오른쪽으로 한번 돌아서 바꾸어 잡고 앞을 향해 한발 나가서 한걸음 뛰어 왼손과 왼다리로 한번 찌르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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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즉시 야차탐해세를 취하여 동작을 마친다. |
당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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原
척계광이 말하기를, 창 길이는 7척 6촌인데 무게는 5근이다. 자루끝 파를 합한 부리 부분이 대강 1촌인데, 끝부분에 이르기까지 점점 가늘어진다. 바른창끝(正鋒)과 곁가지를 합하여 창자루는 한 자루가 된다. 만일 가운데 창끝과 곁가지가 가지런하면 깊이 찌르기가 불가능해진다. 그러므로 가운데 창끝은 반드시 높이가 2촌이 되고, 또 양쪽 곁가지가 평평하면 화전(火箭:불화살)을 얹을 수 있다.
세 개의 창끝을 합하여 부리 부분에서 주석으로 양용수(兩龍首)를 합하여 만들 었다. 좌우의 부리는 모두 딱 벌린 입을 따라 나왔으므로 견고하고 날카롭기가 보통과 다르다. 요즈음 만든 것은 박약하여 왕왕 별도로 두가지를 만들어 그 가운데 구멍을 뚫어 정봉(正鋒:가운데 창끝)을 관통시켜 분해할 수 있고 합할 수 있게 한다. 만일 새로 만들면 마땅히 제2의 그림을 모형으로 해야 한다.
增
『병장기(兵仗記)』에 이르기를, 당파의 체제는 철파와 목파 두가지이다. 철파의 머리(꼭지)는 바른날에 가로로 이빨이 있는데 모두 철날이다. 목파는 쇠날에 가로로 나무인데, 위에 쇠이빨을 붙였다. 쇠거죽(鐵皮) 속에 못을 박았다. 당파의 유파는 다섯이다. 즉 웅우출진파(雄牛出陳), 산문칠매복파(山門七埋伏), 번왕도각파(番王倒角), 직행호파(直行虎), 초란근진파(稍??進).
모원의가 말하기를 "당파란 곧 교차하는 것이다(叉: 서로 교차하는 것을 지칭)"라 했다. 마차(馬叉)와 당파는 대동 소이하다.
案
『고공기(考工記)』에 창 자루는 6척 6촌이다. 갈라진 창은 상[常: 16척]이다.
정강성(鄭康成 : 한나라 정현[鄭玄]의 자이다. 고밀인으로 일찍이 마융[馬融]에게서 배웠다)이 말하기를, "비는 병(柄)이다. 8척은 심(尋)이고 심(尋)의 배는 상(常)이다."라 했다.
『주례정의(周禮訂義)』에 창(戈)·극(戟)은 모두 찌르는 병기이다. 과(戈)는 두날이고, 극(戟)은 세날이다. 또 야씨(冶氏 :『주례동관』에 쇠붙이를 다루는 공원을 야씨라 했다)는, 과(戈)의 넓이는 2촌인데, 그 안은 배로하고, 창 가지는 3배로하고, 원(援)은 4배로 한다.
내(內)라는 것은 창가지 아래 자루에 접하는 곳의 철통안에 나무자루가 들어간 것이다. 호(胡)는 곁가지가 나온 것이다. 원(援)은 자루로부터 막바로 위의 뾰쪽한 찌르는 꼭대기 날이다.
극(戟)의 넓이는 1촌 반이며, 내(內)는 3촌이고, 원(援)은 5촌이다. 원의 길이는 7촌 반이다. 내(內)의 길이와 함께 1척 2촌이다. 그런즉 과(戈)의 길이 날과 함께 7척 3촌 남짓이며, 당파의 길이는 7척 6촌이니, 이는 곧 창(戈)의 자루이며 극(戟)의 날을 합한 것이다.
당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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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처음에 조천세를 취하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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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종평세를 취하여 찌르고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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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진보세(앞으로 나가는 자세)를 취하여 중평세로써 한번 찌르고 또 한걸음 앞으로 나아가서 진보세를 지었다가 중평세로 한번 찌르고 또 한걸음 나아가 중평세로 한번 찌르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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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그대로 복호세를 취하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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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한발 앞으로 나아가 기룡세를 취하고 한걸음 앞으로 나아가 중평세를 하고 한번 찌르고 한걸음 물러가서 복호세를 취하였다가 중평세로 한번 찌르고 또 한걸음 물러서서 복호세를 취하여 중평세로 한번 찌르고 또 한걸음 물러서서 복호세를 하였다가 중평세로 한번 찌르고 그대로 복호세로 한발 앞으로 나갔다가 기룡세를 짓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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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발을 연이어서 앞으로 한걸음 나아가서 나창세(창을 끌어당기는 자세)를 취하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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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한발 앞으로 나가서 가창세(창을 시렁처럼 드는 동작)를 취하고 한발 앞으로 나아가 기룡세를 취하고 발을 연이어서 한걸음 앞으로 나가서 나창세를 취하고 한발 앞으로 나아가 가창세를 하고 그대로 복호세를 하여 한걸음 앞으로 나아가 중평세로 한번 찔러라. 한걸음 물러나 복호세를 하고 한번 찌르고 또 한걸음 물러나서 복호세를 하여 한번 찌르고 또 한걸음 물러가서 복호세를 하고 한번 찌르고 그대로 복호세를 하여서 오른쪽으로 향해 한걸음 옳겨 나아가 기룡세를 취하고 마친다. |
기창(騎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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增
『오례의(五禮儀)』에 이르기를, "창(槍)은 삭이다. 지금 사용하는 나무 자루의 길이는 10척이고 검거나 붉은색을 칠해 사용한다. 창끝 날[鋒]의 길이는 1척 5촌이다. 끝은 예리하고 양날이 있다. 아래에는 가리는 철[昌鐵]이 있고 둥글며 끝이 날카롭다."
『문헌비고(文獻備考)』에 이르기를, "숙종 32년 삼갑사(三甲射)를 파하고 기창교 전법으로 대체하도록 명하였다."
『경국대전(經國大典)』에 이르기를, "말을 몰아 나간 후 양손으로 창을 잡고 높이 들어 왼쪽 겨드랑이에 끼었다가 즉시 오른쪽 겨드랑이로 돌려낀다. 제1의 허수아비를 정면으로 찌르고, 왼쪽 겨드랑이에 끼고 제2의 허수아비에 다가가서 찌른다. 또 오른쪽 겨드랑이에 끼고 제3의 허수아비로 다가가서 찌른다. 찌르기를 마치고 몸을 뒤집어 왼쪽을 보고 창으로써 뒤쪽의 오른쪽을 가리키고, 역시 같은 방법으로 창을 끌고 출마한 곳으로 달려온다."고 하였다. 세 허수아비는 각기 25보씩 떨어져 있고, 창의 길이는 15척 5촌이다.
『산해경(山海經)』에 이르기를, "호수(虎首)의 산에 주나무가 많다."고 하였는데, 「거류편( 類篇)」에 이르기를, "주나무는 추워도 시들지 않는다."고 하였으며, 『광운(廣韻)』에 이르기를, "선고목(船 木)으로는 배의 삿대를 만들 수 있다."고 하였다.
단(檀)이란 속명으로 박달나무이다.
『진장기(陳臟器)』에 이르기를, "박달나무(檀)는 진피(秦皮)와 비슷하다. 나무살이 세밀하여 도끼자루로 쓸수 있다."고 하였다.
이시진(李時珍)이말하기를, "박달나무는 노랑색, 흰색 두가지가 있다. 잎은 모두 괴목(槐)과 같고, 껍질은 푸르고 윤택하며, 나무살이 세밀하고 번지르하며, 무겁고 견고하다. 모양은 가래나무와 느릅나무, 쥐엄나무와 아주 비슷하다(잎은 유자나무같고, 쌍쌍으로 대칭되어 있다).
그러므로 속된 말에 이르기를, "박달나무를 베려 했는데 잘 살피지 못해 쥐엄나무를 얻어왔다. 쥐엄나무는 오히려 얼룩말 나무를 얻을 수 있다. 얼룩말 나무는 가래나무와 느릅나무이다. 박달나무는 절구공이와 철추자루로 쓰기에 마땅하다"고 하였다.
양안상순(良安尙順)이 이르기를, "박달나무는 열매를 맺는데 연나무와 같다(이아익(爾雅翼)』에 이르기를 나무 높이는 1장 가량이고, 잎은 괴목 같은데 끝이 뾰쪽하다. 꽃이 피는데 붉은색, 자주색이다. 열매는 작은 방울 같은데 세속에서 는 고연나무라 한다). 열매는 작고 싹이 날 때 푸르고, 익으면 엷은 적색이며, 열매가 벌어지면 안에서 빨간 알갱이가 3~4개 있다. 잎은 가을이 되면 붉어진다." 백랍목(白蠟木)은 속칭 수청목(水淸木)이라 하는데 본래의 이름은 진피(秦皮)이다. 또한 상수리나무, 물푸레나무, 심나무, 석단나무가 있다. 요즈음 사람들이 가는가지로 태형에 쓰는 몽둥이가 이것이다. 이시진이 말하기를 "여자가 정절이 곧은것을 세속에서 납수자(蠟樹者)라 부른다." 납충 종자를 취해다가 가지위에 넣어두면 백랍이 조성된다.
案
『무편(武編)』에 이르기를, "위지경덕(慰遲敬德:慰遲庶字이다. 당 선양인[唐 楊人] 악국공)은 삭[장팔사모]을 잘 피하고, 또 능히 적의 삭을 빼앗아 도리어 찌를 수 있었다. 제왕(齊王) 원길(元吉: 당 고조의 아들) 역시 말타고 삭을 잘 썼다. 원길이 위지 경덕의 기예를 듣고 가볍게 여기어 친히 시험해 보고자 창날을 제거 하도록 하고 자루로 서로 찌르자고 명하였다. 위지 경덕은 칼날을 제거하지 말기를 청하였다. 위지 경덕의 삭은 쉽게 당적하여 창날을 물리쳤다. 그러나 원길은 어찌 할 수 없었다. 태종이 묻기를 '삭을 피하기와 빼앗는 것중 무엇이 어렵고 무엇이 더 쉬운가?' 이에 대답하기를 '삭을 빼앗기가 더 어렵습니다.' 이에 위지 경덕에게 명령하여 원길의 삭을 빼앗도록 하였다. 위지 경덕은 잠시 동안에 그 삭을 세 번이나 빼앗았다."
『설문』에 이르기를, "삭은 모(矛)다. 역시 삭으로도 만든다."
『마삭보(馬削譜)』에 이르기를, "마삭이 사용되기는 비록 오랜 것은 아니지만, 근래에 서로 전해져서 점차 기예를 이루었다. 애오라지 여가에 이 법을 다시 찬술하여 여러 학설을 역사적으로 고찰한 즉, 모(矛), 삭 모두 창의 부류이다."
기창(騎槍)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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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처음 말을 타고 나아갈 때 오른 손으로 고삐를 잡고 왼쪽 겨느랑이에 창을 끼고 신월상천세(초생달이 하늘에 떠오르는 자세)를 취하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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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오른손으로 앞을 잡고 왼손으로 뒤를 잡아서 이마보다 높이 쳐들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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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왼손과 오른손을 바꾸어 잡아 좌전일자세(왼쪽 앞을 한번 찌르는 자세)를 취하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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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왼손과 오른손을 바꾸어 잡아 우전일자세(오른쪽 앞을 한번 찌르는 자세)를 취하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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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왼손과 오른손을 바꾸어 잡고 좌후일자세(왼쪽 뒷편을 한번 찌르는 자세)를 취하고 왼손과 오른손을 바꾸어 잡아 우전일자세(오른편 앞을 한번 찌르는 자세)를 취하고 왼손과 오른손을 바꾸어 잡아 좌전일자세(왼쪽 앞편을 한번 찌르는 자세)를 취하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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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왼손과 오른손을 바꾸어 잡고 우후일자세(오른쪽 뒤를 한번 찌르는 자세)를 취하고 왼손과 오른손을 바꾸어 잡고 좌전일자세(왼쪽 앞을 한번 찌르는 자세)를 취하고 왼손과 오른손을 바꾸어 잡고 우전일자세(오른쪽 앞을 한번 찌르는 자세)를 취하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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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그대로 농창세(창을 가지고 노는 자세)를 취하여 오른편 안쪽으로 한번 휘두르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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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왼편 안쪽으로 한번 휘두른다. 이와 같이 하기를 수없이 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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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창교전(騎槍交戰) 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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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두사람이 말을 세우고 갑(甲)이 먼저 말을 풀어서 150보(步)정도 갔다가 되돌려 오면 을(乙)이 말을 달려서 서로 만나 창을 들어 한번 부딪치고 각각 오른편으로 스쳐 지나가면서 오른편을 한번 돌아 보고 바꾸어 제자리로 돌아가라. 다시 말을 달려 서로 부딪치고 하는데 이와같이 하기를 세번이나 거듭한다. 갑이 을을 쫓아서 서로 싸우다가 지는 사람은 잡히거나 혹은 묶이거나 혹은 말을 끼고몰아 제자리로 돌아간다. |
낭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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原
增
『병장기』에 이르되,
"낭선을 만드는 대나무는 마땅히 그 마디가 빽빽하고, 가지는 견고하고 날카로우며, 날카로운 날을 붙여서 힘쎈 사람을 선발하여 무기를 사용하는 법을 전수하도록 힘써야 하고, 무기를 여러개 겹쳐 만들면 안된다."
모원의(茅元儀)가 말하기를,
"낭선은 옛날에는 없었다. 척계광이 왜구와 물구덩이에서 싸우다가 그의 진영이 사방으로 흩어져 질려(마름쇠. 가시대 나무인데, 무릇 진을 설치할 때철질려를 땅에 깐다)와 거마목(拒馬木: 말이 지나가지 못하게 걸쳐 놓은 나무)을 설치 할 수 없었다. 그러므로 대나무 가지의 그 날카로운 날을 이용하면 완전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지금의 장수나 관리들은 어로죽(禦虜竹)으로 사용하고자 한다. 그러나 사막에 이르기까지 가지가 말라버리므로 호마가 달리는 것을 떨어 뜨리고자 하는데 어찌 소용이 있겠는가?"
『등단필구(登壇必究)』에 이르기를,
"낭선을 만드는 법은 모죽(毛竹: 매 마디마다 줄기가 난다)을 사용 하는데, 모죽은 길고 가지가 많은 왕대 같으며, 날카로운 끝을 쇠로 씌우면 작은 창과 같다. 양 곁에 길고[날카로운] 가시를 많이 남겨 두는데, 그 가시 매쌍을 불로 다리미질 하여 하나는 바르게, 하나는 갈고리질지게 한 후 잘 익은 동유(桐油:[부드러운 오동은 이른 봄에 고자화[鼓子花] 비슷한 담황색의 꽃을 피운다. 대통 같은 열매를 맺는데, 이것으로 기름을 짤 수 있다)에 적시고 창날에 독약을 바르면 가까이 범하기 어렵다."
案
『죽부지(竹附枝)』에 이르기를,
"낭선은 흔드는 까닭에 차(茶)가 끊는 동안에 그치므로 다선이라 한다. 척계광이 창안한 병기의 이름이다."
낭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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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처음에 중평세(中平勢)를 취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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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급히 발을 들어 갑하세(閘下勢:수문을 내리는 자세)를 취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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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연이어 가상세(架上勢:시렁에 오르는 자세)를 취하고 한번 찌르고 또 한번 찌르고 즉시 앞으로 한걸음 나가서 갑하세를 하였다가 가상세로 한번 찌르고 또 한발자욱 앞으로 나가 갑하세를 하였다가 가상세로써 한 번 찌르고 또 한번 찌른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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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한걸음 물러서서 요보퇴세(拗步堆勢:물러서면서 꺾어지게 걷는 자세)를 취하였다가 갑하세를 하고 가상세로서 한번 찌르고 또 요보퇴세로 한걸음 물러서서 갑하세를 하고 가상세로 한번 찌른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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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연이어 오른쪽을 향해 한걸음 돌아 구개세(駒開勢:갈구리를 펴는 자세)를 취하고 왼쪽을 향해 한걸음 돌아서 갑하세를 하고 가상세로 한번 찌르고 또 오른쪽을 향해 한걸음 돌아 구개세를 하고 왼쪽을 향해 한걸음 돌아 갑하세를 하고 가상세로 한번 찌르고 또 한번 찌르고 또 요보퇴세로 한걸음 물러나 갑하세를 하고 가상세로 한번 찌르고 또 요보퇴세로 한걸음 한걸음 물러나서 갑하세를 하고 가상세로 한번 찌르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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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한발을 끌며 한걸음 앞으로 나가 기룡세(騎龍勢)를 취했다가 마친다. |
쌍수도(雙手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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原
척계광이 말하기를,
"쌍수도는 날의 길이가 5척인데, 밑부분 구리로 싼 날[銅護刃]이 1척이며, 칼자루의 길이는 1척 5촌으로 전체의 길이는 6척 5촌이며, 무게는 2근 8량이다. 이는 왜구가 중국을 범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그들이 이 칼을 가지고 춤추듯이 뛰어, 섬광이 번듯이는 앞에 우리 병사는 탈기가 되어 버렸다. 왜구가 한번 뛰면 1장여밖에 있는 조우자가 양단이 되어 버린 것은 무기가 예리하고 두 손을 사용하여 힘이 지워지기 때문이다. 지금도 그들만이 전용으로 쓰고 있으니 막을 수가 없고, 오직 조총수만이 가히 겸할 수 있다. 적이 멀리 있으면 총을 쏘고, 가까이 있으면 칼을 쓴다."
案
본명은 장도이며, 지금 쌍수도라고 부르는 것은 쌍수를 사용하는 법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이 검제(劍制)(법)를 사용하지 않고 오직 요도로 대신 연습한다. 다만 이름만이 있을 뿐이다.
모원의(茅元儀)가 말하기를,
"장도는 왜놈들의 체계이다. 보병에게는 매우 날카로우나 옛날에는 갖추지 못했다. 그러나 『중화고금』의 주에 이르기를, "「한세전」에 고제(高帝)께서 백사(白蛇)를 베었는데, 칼 길이가 7척이었다."
『한서』「광천혜왕월(廣川惠王越: 한 경제의 아들)전」에 "손거(孫去)가 7척 5촌의 칼을 만들었다."
『후한서』「풍이전(풍이전)」에 "수레(車駕)가 하남에 이르러 전송할 때 7척되는 옥구검(玉具劍: 옥으로 장식한 칼)을 하사했다."
『도검록(刀劍錄)』에, "주나라 소왕(昭王)이 다섯 검을 주조하여 오악(五嶽)의 이름을 붙였다. 진악(鎭嶽)이라 이름한 것은 길이가 5척이고, 석계룡(石季龍: 오호 후조 석호의 자가 계룡이다)의 칼 길이는 5척이고, 모용수(慕容垂: 오호 후연)의 두 개의 칼의 길이는 7척이며 웅(雄: 수컷)하나 자(雌: 암컷) 하나이니, 장도의 내력이 오래 되었다."
쌍수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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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칼을 등에 지고 서서 왼손으로 칼자루를 잡고 급히 견적출검세를 취하고 한걸음 앞으로 나아가 칼을 머리 위로부터 한번 휘둘러 지검대적세를 취하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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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한발 앞으로 나가 향좌방적세를 취하고 또 한발 앞으로 나가 향우방적세를 취하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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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몸을 돌려 한걸음 뛰어나가 향상방적세를 취하고 몸을 돌려 한발 앞으로 나아가 향전격적세를 취하여 한번 치고 또 한걸음 앞으로 나아가 향전격적세로 오른쪽을 향해 한번 치고 또 한걸음 앞으로 나아가 향전격적세로 오른쪽을 향해 한번 쳐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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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몸을 돌려 초퇴방적세를 취하였다가 원위치로 물러났다가 몸을 돌려 앞으로 한걸음 나아가 진적살적세를 하여 한번 내리치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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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그대로 몸을 돌려 지검진좌세를 취하고 바로 식검사적세를 취하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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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다시 한걸음 물러나서 섬검퇴좌세를 취하고 일어나서 다시 한발 나아가서 진전살적세로써 한번 내리치고 또 한발 나아가 향상방적세를 하고 즉시 한발 앞으로 나아가 진적살적세를 하여 한번 치고 그대로 휘검향적세를 취하여 연속하여 세걸음 앞으로 나아가고 다시 한발 나아가서 진전살적세로 한번 내리치고 또 한발 나아가 향상방적세를 하고 한발 앞으로 나아가 진전살적세로 한번 내리치고 또 한걸음 앞으로 나아가 한번 찔러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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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몸을 돌려 칼을 세번 휘두르고 물러가서 재퇴방적세를 취하고 물러나서 제자리로 가라. 몸을 돌려서 한발 앞으로 나아가 향상방적세를 하고, 또 한발 앞으로 나아가 향전격적세를 하여 한번 내리치고 몸을 돌이켜 지검진좌세를 하였다가 식검사적세를 하고 몸을 돌려 앞으로 한발 나아가 왼손으로 앞을 향해 칼을 휘둘러 오른손으로 다시잡고 향좌방적세를 하고 한발 앞으로 나아가 향우방적세를 하고 몸을 앞으로 한걸음 나아가 향전격적세를 하여 한번 내리치고 또 한걸음 앞으로 나아가 향전격적세로 오른쪽을 향해 한번 내리치고 또 앞으로 한걸음 나아가 향전격적세로 오른쪽을 향해 한번 내리쳐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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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몸을 돌려 삼퇴방적세를 취하고 제자리로 돌아가라. 몸을 돌려 한발 앞으로 나아가고 향전격적세로 한번치고 또 한걸음 앞으로 나아가 한번 내리치고 몸을 돌려 지검진좌세를 하였다가 식검사적세를 하고 몸을 돌이켜 장검가용세를 취하였다가 마쳐라. |
예도(銳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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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거정세(擧鼎勢): 솥 드는 格이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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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점검세(點劍勢): 칼을 點하여 찌르는 것이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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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좌익세(左翼勢): 왼 나래를 치는 것이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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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표두세(豹頭勢): 표범의 머리를 치는 것이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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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탄복세(坦腹勢): 배를 헤치고 찌르는 것이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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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과우세(跨右勢): 오른편을 걸쳐치는 것이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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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료략세(僚掠勢): 도도아 ?는 格이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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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어거세(御車勢): 수레를 어거하는 格이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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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전기세(展旗勢): 깃발을 펴듯이 치는 것이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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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간수세(看守勢): 보고 지키어 치는 것이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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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은망세(銀망勢): 은 구렁이 格이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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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찬격세(鑽擊勢): 비비어 치는 것이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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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요격세(腰擊勢): 허리를 치는 것이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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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전시세(展翅勢): 나래를 펴듯이 치는 것이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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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우익세(右翼勢): 오른편 나래로 치는 것이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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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게격세(揭擊勢): 들어 치는 것이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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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좌협세(左夾勢): 왼편으로 끼는 것이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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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과좌세(跨左勢): 왼편으로 걸쳐치는 것이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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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흔격세(흔擊勢): 흔들어 치는 것이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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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역린세(逆鱗勢): 비늘을 거슬러 찌르는 것이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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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염시세(斂翅勢): 나래를 거두고 치는 것이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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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우협세(右夾勢): 오른편에 끼는 것이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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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봉두세(鳳頭勢): 봉의 머리를 씻는 것이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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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횡충세(橫衝勢): 가로질러 치는 것이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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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검-토유류(倭劍 土由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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增
모원의가 말하기를,
"일본도(日本刀)는 크고 작고, 길고 짧은 것이 일정하지 않다. 매 사람마다 하나의 장도(長刀)를 갖는데, 이를 패도(佩刀)라 한다. 그 칼 위에 하나의 소도(小刀)를 꽂고 편리하게 잡용(雜用)한다, 또 하나의 한 자 길이의 찌르는 칼(刺刀)은 해수도(解手刀)라고 하고, 한 자가 넘는것은 급발(急拔)이라 하는데, 역시 찌르는 칼류이다. 이 세가지를 몸에 지니고 필요에 따라 사용한다. 칼은 극히 강하고 날카로워서 중국이 미치지 못한다. 칼은 크고 작음을 막론하고 반드시 자루 위의 한 면에는 칼 이름을 새기고, 다른 한 면에는 자호(字號)를 새겨 고금의 현부(賢否:현명하고 현명하지 못함)를 판별한다. 창·검 역시 그러하다. 일본 상고도(上庫刀)는 산성군(山城君:관백. 도요도미) 전성시기 각 섬의 명장(名匠)들을 모두 불러 창고에 가두어 두고 세월을 한정하지 않고 그 공력과 기교를 다하여 만든 것을 상고도라 한다. 그중에서도 '영구(寧久)'라 하는 것이 제일 좋다."
案
삼대시대(중국의 하·은·주 시대를 말함)에 종, 솥, 창, 극 등 크고 작은 모든 기물에는 모두 이름을 표식하였다.(『사기』「효무기(孝 紀:효무제의 기록)」에 솥에 글자를 새겼으나 이름 표식이 없고, 주에 款은 刻이고, 識은 記라 했다. 양신(楊愼)이 말하기를, 글자가 튀어나와 모양이 양인 것을 款이라 하고, 글자가 들어가 음인 것을 識이라고 했다). 이 때문에 『예기(禮記)』의 월령에 이르기를, "물건에는 공인(工人)의 이름을 새긴다"고 했는데, 중국의 공인이나 장인은 지금도 준수한다. 왜인도 제조품에 역시 그렇지 않다고는 할 수 없다. 우리나라 『만무지(漫無誌)』에 기록되기를, "좋고 이지러짐을 판별하지 않고 그를 권장하고 징계하는 곳조차 없다. 육공(六工)을 장악한자(토공, 금공, 석공, 목공, 수공[獸工], 초공[草工])는 모두 바른 것을 함양하고 보좌하는 자로, 그 연대, 성명, 규격[尺寸], 근량을, 그 제조과정을 상고하여 그 방식을 구별하여 알게 된다."
일본 후조우원(後鳥羽院: 왜의 황호[여기에서 가짜라는 뜻은 그를 인정치 않기 때문])시대에 여러나라의 양공을 불러 대장간을 열었다. 여기에서 만들어진 것을 모두 영검(靈劍)이라 했는데, 여기에 종근국(宗近國), 뇌길광국(뇌吉光國), 우국(友國), 길국(吉國), 강국(綱國), 종정(宗正), 종정(宗貞), 수행평근(秀行平近), 충연방겸(忠延旁겸), 정국(定國)등의 이름이 새겨져 있는 것은 모두 명검이다. 따라서 모원의의 논의와 함께 아울러 적은즉 널리 참고 자료가 되게 함이다.
『왜지(倭志)』에 이르기를,
"왜적은 용감하고 어리석어서 생사 따위를 어찌 생각하지도 않고, 싸울 때마다 문득 피투성이가 되어 3척 검을 잡고 춤을 추면 앞에 막을 자가 없다" 하였다.
『왜한삼재도회(倭漢三才圖會)』에 이르기를,
"검술은 원의경(源義經: 호는 우약[牛若]. 상모주 사람으로 그의 부친 의조가 평청성과 싸워전사하였다. 의경은 후에 병법을 배워 그에 복수하였다)을 중흥조로 한다. 그는 젊은 시절에 평치의 난(平治之亂 : 평치는 왜황 토어문의 연호)을 피해 승정곡(僧正谷)에 이르러 이인(異人)을 만나 검술을 익혔는데, 이를 세칭 신도류(神道流)라 한다."
일향수애(日向守愛), 주리향(洲移香)이 일찍이 제호권현(일본인은 타묘[妥廟]의 신을 권현[權現]이라 한다)에게 자기의 업이 더욱 정진 되기를 빌었더니, 꿈에 원숭이 모양의 신이 나타나 세상에 이름이 높은 깊은 비밀을 가르쳐 주었는데, 이를 음류(陰流)라고 한다. 모원의의 『무비지』에 실려 있는 음류의 원숭이 뜀, 원숭이의 회전 등의 수법과 그림이 보인다.그 이름이 다른 나라에까지 울렸음을 알 수 있다.
그의 추종자 상천무장(上泉武藏), 수신강손(守信綱損)이 그 검법을 보완하여 신음류라 불렀는데, 세상에 크게 성행하였다. 후에 호전죽내(戶田竹內), 두군단석(頭軍丹石), 산과박전(山科朴田), 유생소야(柳生小野), 경중(鏡中) 등 제가(諸家)가 모두 이 두 유파에 근원을 두고, 여기에 새로운 뜻을 가미하여 한 유파를 만든 자도 많다. 또 파라는 것은 도검(刀劍)의 자루이다.
칼끝은 망봉(망鋒)이라 한다.『고공기(考工記)』에 이르기를, "검경(劍莖:칼줄기)은 사람이 잡는 칼콧등위이다. 지금은 상어 껍질을 많이 쓴다(鮫는 상어이다. 양안상순[良安尙順]이 말하기를 갈고리를 던진즉 성난 흑 상어가 일어나 팽창한다. 대나무 비와 같은 것으로 닦으면 하얀 구슬같은 것이 형성된다. 등에 큰 입자가 있는 것은 칼자루 장식으로 족히 좋다. 입자가 크고 작은 것을 겸비한 것이 값비싸다). 칼자루 나무를 마는 것은 실로 감는 것이다. 구자는 자휘(字彙)에 도검의 머리를 실로 감는다"라고 했다.
칼콧등은 칼의 코(劍鼻)이다. 『사기(史記)』주에 이르기를 칼입(劍口) 곁에 가로 튀어나온 것으로 금, 은, 동, 철, 진유(眞鍮)중 철로써 진실로 오래된 것이 더욱 좋다. 그 오래 된 것은 약간 붉은 색을 띤 미끄러운 흑색이다. 이 모두는 두들겨서 만들고 값싼 것은 지어 부어서 만든다. 뢰는 칼머리의 장식이다. 목관(目寬)은 칼머리 양면을 금과 철로 만들어 색상으로 장식한 것이다.
『광박물지(廣博物志)』에 이르기를,
"용이 아홉 아들을 낳았는데, 애차(용이 아홉 아들을 낳았는데 각기 이름이 있다. 애차는 아홉 아들 중에 하나이다)는 죽이기를 좋아하여 칼머리 짐승이 되었다"라 했는데, 이 모두는 목관(目寬)이 곧 애차의 표의(表儀)일 것이다. 절우(切羽)는 칼콧등의 겉과 속을 엷은 금으로 장식한 것으로 각 2매인데, 대절우(大切羽), 소절우(小切羽)라 한다. 경금심(脛金심), 제전도(際纏刀), 부령심은 흔들리지 않게 하고, 또 다리 정강이에 베를 감은 것과 같다. 그러므로 이렇게 상경, 하경, 이중으로 이름붙였다. 초(墅)는 칼집이다. 두터운 박목(朴木:팽나무).
『본초강목』에 이르기를, 높이는 3~4장, 직경은 1~2척, 잎은 떡갈나무와 같고 사철 시들지 않는다. 붉은 꽃이 피고 파란 열매를 맺으며, 껍질은 꼭 고기비늘 같은데 두텁다.(案 우리나라 남쪽섬에 혹 있다)을 이용하여 만든다. 가볍고 연하여 칼에 녹이 슬지 않게 한다. 여기에 검은 칠이나 붉은 칠을 한다. 섭박고초(접어서 두드리는 칼집)도 있다. 상어에도 몇 가지가 있다. 즉 하교(河鮫), 매화교(梅花鮫), 호표국악교(虎彪菊 鮫)등이다. 표는 칼끝의 구리이다. 지금은 금, 은, 동, 철 및 뿔 등을 많이 쓴다.
왜검-토유류(土由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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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칼을 감추어 오른편에 끼고 바로 섰다가 오른손 오른 다리로 버티고 왼편을 한번 치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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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곧바로 왼발을 들며 칼을 감추어 오른편에 끼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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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오른손과 왼다리로 버티고서 왼편을 한번 치고 나아가 앉으며 칼을 오른편 다리에 감추었다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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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오른손과 오른다리로 칼을 이고 앞을 치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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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오른편 다리를 들며 왼편에 감추고 오른편 손과 오른편 다리로 오른편을 밀치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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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오른손과 왼편 다리로 앞을 한번 쳐라. 칼을 감추고 바로 섰다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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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오른손과 오른 다리로 왼편을 한번 치고 나아가 앉으며 칼을 오른 다리에 감추고 한걸음 앞으로 나가고 또 적수지남세로 계속하여 두걸음 앞으로 나아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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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오른손과 오른 다리로 오른편을 한번 밀치고 또 오른손과 왼 다리로 왼편에 감추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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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또 오른손과 오른 다리로 오른편을 한번 밀치고 또 오른 손과 왼쪽 다리로 오른편에 감추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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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오른 손과 오른 다리로 왼편을 한번 치고 오른 손과 왼 다리로 앞을 한번 치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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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칼을 감추고 바로 섰다가 오른 손과 오른 다리로 펼치며 뛰어 한번 치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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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쭈그렸다가 뛰어 한번 치고 또 다시 펼쳐서 뛰며 한번 치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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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오른 손과 오른 다리로 칼을 이고 오른 손과 왼쪽 다리로 앞을 한번 치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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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오른 손과 오른 다리로 두번 두드리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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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오른 손과 오른 다리로 |
왜검-천유류(倭劍 千柳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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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칼을 감추고 바로 섰다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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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오른 손과 오른 다리로 왼편을 한번 치고 초도수세를 취하고 앞으로 나아가 앉으며 칼을 오른편 다리에 감추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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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오른 손과 오른 다리로 오른 편을 한번 밀치고 오른 손과 왼 다리로 앞을 한번 치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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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오른 손과 오른 다리로 칼을 이고 한번 뛰며 두번 얼러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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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오른 손과 오른 다리로 앞으로 한번 치고 왼손과 왼 다리로 칼날을 잡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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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왼쪽 밖으로 스쳐 왼손과 왼 다리로 한걸음 뛰어 칼을 누르고 일자(一字)로 나아가 앉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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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오른 손과 오른 다리로 칼을 이며 나아가 앉고 오른 손과 왼 다리로 앞을 한번 치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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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오른 손과 오른 다리로 나아가 앉고 오른 손과 왼 다리로 앞을 한번 쳐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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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칼을 감추고 바로 섰다가 왼 손과 왼 다리로 칼을 이고 나아가 앉으며 뒤를 돌아보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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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오른 손과 오른 다리로 앞을 한번 치고 또 다시 왼 손과 왼 다리로 칼을 이고 나아가 앉으며 뒤를 돌아보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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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오른 손과 오른 다리로 앞을 한번 치고 오른 손과 왼 다리로 오른편 아래에 감추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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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오른 손과 오른 다리로 칼을 이고 오른 손과 왼 다리로 앞을 한번 치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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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오른 손과 오른 다리로 칼을 이며 왼 손으로 오른편 팔을 잡고 오른 손과 왼 다리로 앞을 한번 치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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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칼을 감추고 바로 서서 왼 손을 뒤로 향하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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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오른 손과 오른 다리로 두번 두드리고 오른 손과 오른 다리로 오른편 아래에 감추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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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오른 손과 오른 다리로 칼을 이고 오른 손과 왼 다리로 앞을 한번 쳐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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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칼을 감추고 바로 서서 오른 손과 오른 다리로 왼편으로 한걸음 뛰어나가 앉으며 치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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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오른 손과 오른 다리로 칼을 이고 오른 손과 왼 다리로 앞을 한번 치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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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오른 손과 오른 다리로 오른편에 감추고 오른 손과 오른 다리로 유성처럼 나아가 왼쪽을 한번 치고 오른 손과 왼 다리로 앞을 한번 쳐라. |
왜검-운광류(倭劍 運光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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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처음에 천리세를 취하고 칼을 감추고 바로 섰다가 오른 손과 오른 다리로 과호세를 취하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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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두 손으로 앞을 한번 치고 오른 손과 왼 다리로 앞을 한번 치고 오른 손과 오른 다리로 앞을 한번 치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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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오른 손과 오른 다리로 앞으로 한번 뛰어 앞으로 한번 치고 즉시 속행세를 취하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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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또 과호세를 취하되 두 손으로 앞을 한번 치고 오른 손과 왼 다리로 앞을 한번 치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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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오른 손과 오른 다리로 앞을 한번 치고 오른 손과 오른 다리로 앞으로 한번 뛰면서 앞을 한번 치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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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오른 손과 오른 다리로 곧 산시우세를 취하되 또 과호세를 취하여 두 손으로 앞을 한번 치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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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오른 손과 왼 다리로 앞을 한번 치고 오른 손과 오른 다리로 앞을 한번 치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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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오른 손과 오른 다리로 앞으로 한번 뛰면서 앞을 한번 치고 오른손과 오른 다리로 즉시 수구심세를 취하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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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또 과호세를 취하여 두 손으로 앞을 한번 치고 오른 손과 왼 다리로 앞을 한번 치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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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오른 손과 오른 다리로 앞을 한번 치고 오른 손과 오른 다리로 앞으로 한번 뛰어서 앞을 한번 치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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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즉시 류사세를 취하고 또 과호세를 취하여 두손으로 앞을 한번 치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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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오른 손과 왼 다리로 앞을 한번 치고 오른 손과 오른 다리로 앞을 한번 치고 오른 손과 오른 다리로 앞으로 한번 뛰어서 앞을 한번 쳐라. |
왜검-류피류(倭劍 柳彼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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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칼을 드리우고 바로 섰다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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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오른 손과 오른 다리로 앞을 한번 찌르고 왼쪽 발을 내디디며 왼편으로 칼을 드리우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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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왼발을 물러서며 오른편으로 칼을 드리우고 오른 발을 물러나며 왼편으로 칼을 드리우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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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오른편 아래에 감추고 오른 손과 오른 다리로 칼을 이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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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오른 손과 오른 다리로 앞을 한번 치고 오른 손과 오른 다리로 오른편에 감추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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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오른 손과 오른 다리로 앞을 한번 찌르고, 왼 발을 내디디며 오른편으로 감추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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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오른 손과 오른 다리로 앞을 한번 찌르고 왼 발을 내디디며 왼편으로 칼을 드리우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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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왼발을 물리고 오른편으로 칼을 드리우고 오른 발을 물리고 왼편으로 칼을 드리우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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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오른편 아래에 감추고 오른 손, 오른 다리로 칼을 이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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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오른 손과 왼 다리로 앞을 한번 치고 마쳐라. |
교전(交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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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두 사람이 오른 손으로 칼을 지고 왼 손으로 왼 편에 끼었다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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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갑(甲)이 처음으로 견적출검세를 취하되 오른 손과 오른 다리로 앞을 한번 치고 칼을 들고 뛰어 나아가 또 한번 치고 몸을 돌려 뒤로 향하거던 을(乙)이 또 견적출검세를 취하되 칼을 들고 뛰어 나가 서로 한번 맞붙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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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몸을 돌려 바꾸어서 오른편에 칼을 감추고 선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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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갑이 들어 와서 한번 갈겨 치고 한번 들어 치고 또 한번 갈겨 치거던 을이 물러가며 한번 누르고 한번 맞붙고 또 한번 누르고 갑이 또 들어와 한번 갈겨 치고 한번 들어 치고 또 한번 갈겨 치거던 을이 물러 가며 한번 누르고 한번 맞붙고 또 한번 누르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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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갑과 을이 각각 왼편에 칼을 감추었다가 칼날로 안으로 한번 치고 밖으로 한번 치고 몸을 되돌려 바꾸어 서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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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칼을 드리워서 한번 치고 오른편 아래로 감추고 갑이 나아가 칼을 이며 높이 쳐들어 한번 치거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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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을이 한번 누르고 한번 맞붙고 또 왼편에 감추었다가 안으로 한번 치고 밖으로 한번 치고 몸을 되돌려서 바꾸어 서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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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칼을 드리워 한번 치고 왼편에 감추어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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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을이 나아가 한번 갈려 치고 한번 들어 치고 또 한번 갈겨 치거던 갑이 물러가며 한번 누르고 한번 맞붙고 또 한번 누르고 을이 또 나아가 한번 갈겨 치고 한번 들어 치고 또 한번 갈겨 치거던 갑이 물러가며 한번 누르고 한번 맞붙고 또 한번 누르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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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갑, 을이 각각 왼 편에 감추었다가 날로써 안으로 한번 치고 밖으로 한번 치고 몸을 되돌려 바꾸어 서며 칼을 드리워 한번 치고 오른편 아래에 감추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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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을이 나아가 칼을 이며 높이 들어 한번 치거든 갑이 한번 누르고 한번 마주 치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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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그대로 왼편에 감추었다가 날로써 안으로 한번 치고 밖으로 한번 치고 몸을 되돌려 바꾸어 서며 칼을 드리워 한번 치고 오른편 아래 감추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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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을이 칼을 들어 한번 치고 또 한번 치거던 갑이 들어가 칼을 이며 왼편으로 칼을 드리워 치고 오른편으로 칼을 드리워치고 또 왼편으로 칼을 드리워 치거든 을이 물러 나가며 왼 편으로 칼을 드리워 막고 오른 편으로 칼을 드리워 막고 또 왼편으로 칼을 드리워 막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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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갑을이 칼날을 들어 높이 치고 왼편으로 칼을 드리워 한번 치고 오른편 아래에 감추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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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갑이 칼을 들어 한번 치고 또 한번 치거든 을이 나아가 칼을 이고 왼편으로 칼을 드리워 치고 오른편으로 칼을 드리워 치고 또 왼편으로도 칼을 드리워치거든 갑이 물러가며 왼편으로 칼을 드리워 막고 오른편으로 칼을 드리워 막고 또 왼편으로 칼을 드리워 막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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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갑을이 칼날을 들어 높이 치고 왼편으로 칼을 드리워 한번 치고 오른편 아래에 감추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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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을이 한번 뛰며 한번 찌르고 한번 치거든 갑이 아래로 갈겨 치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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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앞으로 나아가 칼을 이며 왼편으로 칼을 드리워 치고 오른편으로 칼을 드리워 치고 또 왼편으로 칼을 드리워 치거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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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을이 물러가며 왼편으로 칼을 드리워막고 오른편으로 칼을 드리워 막고 또 왼편으로 칼을 드리워 막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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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갑을이 날을 들어 높이 치고 왼편으로 칼을 드리워 한번 치고 오른편 아래에 감추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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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갑이 한번 뛰며 한번 찌르고 한번 치거든 을이 아래로 갈겨 치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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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앞으로 나아가 칼을 이며 왼편으로 칼을 드리워치고 오른편으로 칼을 드리워 치고 또 왼편으로 칼을 드리워 치거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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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갑이 물러가며 왼편으로 칼을 드리워 막고 오른편으로 칼을 드리워 막고 또 왼편으로 칼을 드리워 막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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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갑을이 날을 높이 들어 치고 왼편으로 칼을 드리워 한번 치고 오른편에 칼을 감추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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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칼을 던지고 씨름하며 마쳐라. |
제독검(提督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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增
예도(銳刀)와 같은 즉 요도(腰刀)이다.
案
제독검 14세는 이여송법으로 전해지고 있다(이여송은 자가 자무[子茂]이며 철영위[鐵嶺衛] 사람이다. 영원백 성량[寧遠伯 成樑]의 아들이다. 벼슬은 태자(太子太保)이며 시호는 충열[忠烈]이다. 그의 5세조 영[英]은 본래 조선의 초산인으로 명나라에 내부한 사람이다). 신종조(神宗朝)에 제독으로 동쪽으로 온 사람(임진란 때 이 땅에 파견된 자)은 이여송(李如松), 유정(劉綎:자는 성오[省悟]이며 남창인이다. 도독 현[顯]의 아들로 벼슬은 총병[總兵]이다), 마귀(麻貴:대동 우위[大同右衛] 사람으로 벼슬은 우도독[右都督]이다, 동일원[童一元:宣府前衛]인으로 벼슬은 태자태보[太子太保]이다), 이승욱(李承勖:자는석용[錫庸]이고 처주위[處州衛]인이며, 벼슬은 총독[總督]이다), 진린(陳璘:자는 조작[朝爵]이고 옹워[翁源]인이며, 벼슬은 도독이다)등 여러 사림이고, 유정이 대도(大刀)로 천하에 이름을 떨쳤다.
『징비록(懲悲錄)』에 이르기를 "계사(癸巳)년 여름에 한성 묵사동에 병으로 누었더니 천장(天將:명나라에서 온 장수를 높여 부르는 말) 낙상지(駱尙志:여조[餘조]인. 좌참장[左參將]으로 조선에 왔다. 천 근을 능히 들므로 낙천근이라 블렀다)가 병들어 누워 있는 나를 찾아와서 말하기를, '조선은 아직도 미약한데 적은 아직도 국경 안에 있으니 명나라 원군이 돌아가기 전에 병법을 연마하여 가히 나라를 지키십시오' 하였다. 나는 즉시 장계를 올려서 금군(禁軍) 한사립(韓士立)으로 하여금 70여 인을 도모하여 낙상지에게 가서 가르쳐 주기를 청하였다. 이에 낙상지는 자신의 장하에서 장육삼(張六三) 등 10인을 뽑아 교사로 삼고, 창, 검, 낭선 등 기예를 연습하였은 즉 낙상지는 이제독의 휘하이므로 제독검이라는 명칭은 여기에서 나왔다."
중군 이원(李源:이여송의 5세손)아 말하기를 "제독이 이 땅에 있을 때 통진금씨(通津琴氏)의 딸을 시녀로 취하여 몸에 지니고 있던 칼을 주면서 떠날 때 말하기를, 아들을 낳으면 이름을 천근(天根)이라" 하였다. 과연 천근을 낳아서, 천근의 후손들이 거제에 많이 살고 있다.
영조(英祖)병인년(1766)에 통제사 이언상(李彦祥)이 천근의 현손 무춘(茂春)으로부터 그 칼을 얻고, 그 사유를 칼콧등에 새기고 칼자루 및 칼집을 장식하여 이제 그 칼을 제덕의 가문에 돌려 주었다. 그 칼의 길이는 3자 4치이고 칼콧등은 9치이며, 두 개의 구멍이 있다. 칼날의 너비는 1치 5푼이며, 윗 부분 베이는 곳은 1치 2푼이다. 칼등의 두께는 3푼 5리이며, 끝부분 베이는 곳은 1푼 5리이다.
칼날 면에 '張'자가 원호 안에 있는데, 해서에 양각이다. 위에 완연(뱀이 꿈틀거리는 모습)의 틈이 희미하게 있다. 지금도 녹슬지 않고 껄끄럽지 않다. 이것이 비록 격자지법(擊刺之法:실제 치고 찌르는 법)과 다르나. 이를 즐겨 제독검이라 부르는 까닭에 이를 취하여 그림을 그리고, 그 사유를 병행하여 기록하여 둔다.
제독검(提督劍)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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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처음에 대적출검세를 취하되 오른손으로 칼을 쥐고 왼손으로 왼편에 끼고 바로 섰다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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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오른손과 오른다리로 앞을 한번 치고 즉시 진전살적세를 취하되 오른손과 오른 다리로 한번 치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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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그대로 향우방적세를 취하되 오른손과 오른다리로 오른편으로 돌아 한번 치고 또 향좌방적세를 취하되 왼손과 왼다리로 왼편으로 돌아 한번 치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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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한걸음 나아가 한발 뛰어 향우격적세를 하고 또 향좌격적세를 하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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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그대로 휘검향적세를 하되 오른편으로 돌아 오른발을 들고 안으로 스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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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진전살적세를 하되 오른 손과 오른 다리로 한번 치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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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그대로 초퇴방적세를 취하되 왼편으로 세번 돌아와 물러서서 제자리에 이르러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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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오른손과 오른 다리로 왼편으로 돌아 한번 치고 향후격적세를 취하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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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오른편으로 몸을 되돌려 앞을 향하여 오른 손과 왼다리로 향우격적세를 취하고 왼손과 오른 다리로 향좌방적세를 취하고 또 향우방적세를 취하고 또 향좌방적세를 취하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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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그대로 진적살적세를 취하되 오른손과 오른 다리로 한걸음 나아가 앞을 한번 치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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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즉시 용약일자세를 취하되 오른손과 오른 다리로 앞을 향해 바로 찌르고 그대로 향좌격적세를 하되 오른손과 왼다리로 한걸음 뛰어 한번치고 그대로 휘검향적세를 하되 오른편으로 돌아 오른발을 들고 안으로 스쳐 그대로 진전살적세를 하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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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오른손과 오른다리로 한번 치고 또 재퇴방적세를 하되 뒤를 향해 오른편으로 세번 돌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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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물러서서 제자리로 와서 즉시 진전살적세를 하되 오른 손과 오른 다리로 한번 치고 한걸음 나아가 또 한번 치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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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즉시 식검사적세를 하되 오른편 칼로 왼편 팔에 씻고 그대로 허리 왼편에 씻고 즉시 장검고용세를 하되 왼손으로 칼을 지고 오른 주먹과 오른 다리로 앞을 한번 치고 마치라. |
본국검(本國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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增
예도와 같은 즉 요도(腰刀)이다.
『여지승람(여지승람)』에 이르기를, 황창(黃倡)은 신라인(新羅人)이다.
『이언』에 전하기를 7세에 백제에 들어가 거리에서 칼춤을 추는데 구경꾼이 담장을 이루었다. 백제왕이 그 소문을 듣고 불러 당에 올라 칼춤을 추도록 명하였다. 황창랑은 이로 인하여 왕을 찔렀다. 그리하여 백제인들이 그를 죽였고, 신라인들은 그를 애달프게 여겨 그의 얼굴을 상으로 가면을 만들어 칼춤을 추는 모양을 지금까지 전하게 하였다"라 하였다.
案
황창(黃倡)은 황창(黃昌)이라고도 하는데, 신라에서 제도화한 화랑(花郞)이다(신라의 군신은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는 것을 근심하였는데, 잘생긴 남자를 취하여 잘 꾸며서 화랑이라 이름하였다. 그 무리들이 구름처럼 모여 들었는데, 이로 인하여 그 사람 됨됨이가 간사하고 정직함을 알아서 가려 쓰게 되었다). 술랑(述郞), 영랑(永郞:『이언』에 전하기를 신라 술랑, 남랑[南郞], 영랑, 안상[安詳]은 통천의 총석에서 놀며 즐겼다고 함) 등의 부류이다. 그러므로 황창랑이다.
화랑도의 무리는 일찍이 수천인이 서로 충성과 신의를 권하고 이에 힘쓴다. 또 신라는 왜국에 이웃하였은 즉 그 칼춤 추는 기기들이 반드시 서로 전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이제 황창랑으로 인하여 본국검의 기원[綠起]이 밝혀졌는데, 만일 모원의(茅元儀)에 이르러 이처럼 조선에서 검보를 얻어서역의 『등운』과 비교한즉, 이것은 조선이 스스로 본국검의 검보를 창안한 것이다.
또한 일본의 『상서』와 비교한즉 이는 조선이 중국의 검보를 전한 것이다. 물론 그 창안한 것과 그 전한 것이 지금부터 모원의 재세 시까지 백수십년이 지났은즉, 서로 주고 받는 자가 누구이며, 또 어떻게 된 것인지 조금도 확인할 수 없다.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이 어찌하여 스스로 전수하고 자습하지 않고, 반드시 모원의의 『무비지(武備志)』에 기대어서 전습하는지 역시 알 수 없는 일이다. 전에 이미 모원의에게 가탁하여 말하고, 이제 또다시 아래에서 논리를 편다.
본국검도(本國劍圖)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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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처음에 지검대적세를 취하되 두 손으로 칼자루를 잡고 왼쪽 어깨에 의지고 바로 선다.(初作 持劒對賊勢 雙手 執柄 倚左肩正立)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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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오른편으로 한번돌아 오른발을 들고 안으로 스친다.(右一廻 擧右足 內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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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그대로 진전격적세를 취하되 오른손과 오른다리로 앞을 한번 친다.(仍 作 進前擊賊勢 右手右脚 前一擊)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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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금계독립세를 취하되 왼편으로 돌아 칼을 들고 왼쪽다리를 들고 뒤를 돌아본다.(又作 金鷄獨立勢 左廻 擧劒擧左脚 後顧)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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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왼편으로 돌아 후일격세를 하고 오른손과 오른다리로 한번 친다.(左一廻 作 後一擊勢 右手右脚 一擊.)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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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금계독립세를 하되 왼편으로 돌아 칼을 들어 앞을 돌아보고(又 作 金鷄獨立勢 左廻 擧劒擧左脚 前顧) 왼편으로 한번돌아 진전격적세를 하되 오른손 오른다리로 한번 치고(左一廻 作 進前擊賊勢 右手右脚 一擊) 즉시 좌우로 감아 왼손과 왼다리로 한번 찌른다. (旋 作 左右纏 左手左脚 一刺)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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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그대로 맹호은림세를 하되 오른편으로 두번 돌고(仍 作 猛虎隱林勢 右二廻) 왼편으로 돌아서 안자세를 한다.(左廻 作 雁字勢)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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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오른편으로 행하여 좌우로 감아 오른손과 왼다리로 한번 찌른다.(向右 左右纏 右手左脚 一刺)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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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그대로 직부송서세를 하되 오른편으로 한번돌아 오른손과 다리로 왼편을 한번 찌른다.(仍 作 直符送書勢 右一廻 右手左脚 左一刺)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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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발초심사세를 하되 왼쪽으로 돌아 앞을 향하고 오른손과 오른다리로 한번치고 한발앞으로 나아가며 한걸음 뛴다.(左廻向前 作 撥艸尋蛇勢 右手右脚 一打 進一足 跳一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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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표두압정세를 하되 좌우로 감아 오른손과 오른다리로 한번 찌른다.(作 豹頭壓頂勢 左右纏 右手右脚 前一刺)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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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그대로 오른편으로 돌아 뒤로 들어와 조천세를 하되 두손으로 칼을 이마높이 들고 오른편으로 돌아 앞으로 나아가 뒤를 향한다.(仍 右廻後入 作 朝天勢 兩手頂劒高擧 右廻 進前向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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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좌협수두세를 하고 그대로 향우방적세를 하되 왼발을 들고 바깥으로 스쳐(作 左挾獸頭勢 仍 作 向右防賊勢 擧左足 外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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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즉시 후일격세를 하되 오른손과 오른다리로 한번치고 오른편으로 돌아 앞을 향한다.(卽 作 後一擊勢 右手右脚 一擊 右廻向前)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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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전기세를 하되 오른발을 들고 안으로 스쳐 그대로 作 展旗勢 擧右足 內掠 진전살적세를 하고 오른손과 오른다리로 한번 치고 그대로(仍 作 進前殺賊勢 右手右脚 一打) 금계독립세를 하되 칼을 높이들고 왼다리를 들어 뒤를 돌아본다.(仍 作 金鷄獨立勢 高擧劒 擧左脚 後顧)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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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그대로 들어와 왼편으로 돌아 좌요격세를 하되 왼다리를 들고 왼편 칼로 왼편의 목을 씻는다.(仍 入左廻 作 左腰擊勢 擧左脚 左劒 洗左項)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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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즉시 오른편으로 돌아 우요격세를 하되 오른 다리를 들고 우검으로 오른편 목을 씻는다.(卽 右廻 作 右腰擊勢 擧右脚 右劒 洗右項)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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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즉시 오른편으로 돌아 후일자세를 하되 오른손과 왼다리로 한번 찌른다.(卽 右廻 作 後一刺勢 右手左脚 一刺.)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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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왼편으로 돌아 앞을 향해 장교분수세를 하되 오른손과 오른다리로 한번친다.(左廻向前 作 長蛟噴水勢 右手右脚 一打)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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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그대로 백원출동세를 하되 오른손과 오른다리를 든다.(仍 作 白猿出洞勢 擧右手右脚)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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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우찬격세를 하되 오른손과 오른다리로 오른편을 비비어 찌르고(作 右鑽擊勢 右手右脚 右鑽刺) 오른편으로 돌아 용약일자세를 취하되 오른손과 왼다리로 한번 찌른다.(右廻 作 勇躍一刺勢 右手右脚 一刺)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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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왼편을 돌아 뒤를 향하여 후일격세를 하되 오른손과 오른다리로 한번치고(左廻向後 作 後一擊勢 右手右脚 一打) 그대로 후일자세를 하되 좌우로 감아 오른손과 왼다리로 한번 찌른다.(仍 作 後一刺勢 左右纏 右手左脚 一刺)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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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그대로 오른편으로 돌아 앞을 향하여 향우방적세를 하고 왼발을 들고 바깥으로 스쳐(仍 右廻向前 作 向右防賊勢 擧左足 外掠) 즉시 향전살적세를 하되 오른 손과 오른 다리로 앞을 두번 친다.(卽 作 向前殺賊勢 右手右脚 前二打)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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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그대로 시우상전세를 하되 오른손과 오른다리로 한번 찌르고 마친다.(仍 作 시牛相戰勢 右手右脚 一刺 畢)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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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국검 연구
본국검법은 다음과 같이 총 24가지의 자세로 연결되어 있다.
가. 勢
구분 |
기본자세 |
擊 法 |
刺 法 |
자세명 |
금계독립 (3) |
발초심사 (1) |
시우상전 (1) |
계 |
9자세 (12) |
7자세 (12) |
8자세 (9) |
나. 擊法/刺法/步法
擊 法 |
刺 法 | ||
步 法 |
자세명 |
步 法 |
자세명 |
우수우각 |
발초심사 |
우수우각 |
시우상전 |
우수좌각 |
안자 | ||
좌수우각 |
일자 |
이러한 다양한 방향과 격자지법으로 구성 본국검법은 실제로 가장 실전적인 검의 길을 바탕으로 한다. 본국검의 복원 부분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이 방향의 문제이다. 즉 좌회(7회)와 좌일회(2회) 그리고 우회(7회)와 우일회(2회)/우이회(1회) 그러나 전반적으로 방향의 문제를 살펴볼때 그 차이는 없는 것으로 보는 것이 좋을듯 하다. 즉, "廻"는 전부 회전으로 해석되며 그 복원 부분에 있어서 실제적 검리를 바탕으로 움직이는 것이 좋을듯 하다. 보법의 문제이 있어서 좌각/우각 및 우수/좌수의 문제는 손의 바뀜으로 설명하여야 하며, 좌요격, 우요격 부분에 있어서 나타나는 좌검, 우검의 문제는 칼의 한손 사용법으로 한다.
쌍검(雙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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增
칼날길이 2자5치, 칼자루 길이 5치 5푼, 무게 8냥(반근).
『예기도식(禮器圖式)』에 이르기를, "녹영(綠營: 직예 각성의 한[漢] 군영은 녹기[綠祺]를 쓴다)의 쌍칼은 좌우에 쌍으로 간직한다. 전체 길이는 2자 1치 1푼인데 칼날의 길이는 1자 6치이다. 넓이는 1치이고, 구멍은 반원이다(구멍을 방언에서는 교라 한다. 구멍에 끼우는 것은 곧 창날의 아랫 입이다). 두께는 2푼이다. 아울러 칼집에 넣으면 칼자루 길이 4치 9푼이며, 목질에 붉은 실을 감으며, 끝은 철로 만든 집게이다(『정자통(正字通)』에 이르기를 무릇 기기는 양 머리를 교합하는데, 철편을 사용하여 잡아맨다. 혹은 각진 곳을 철편으로 양 머리를 매서 고정하는 것을 모두 집게라 한다)."
『무편(무편)』에 이르기를, "송(宋) 태종은 용사 수백인을 선발하여 칼춤을 가르쳐서, 모두 칼을 공중에 던져 몸을 솟구쳐 좌우양손으로 받았다. 북융(거란)과 접하여 거란의 사신을 맞아 편전에서 연회할 때 검사(劍士)들이 웃옷을 벗고 북소리가 요란한 중에 칼을 휘둘러 뛰고 던지며, 서릿발같은 칼날을 잇달아 부딪쳐 공중 가득히 춤추듯이 나는 모습을 보여 주니, 거란 사자가 보고 두려운 기색을 띠었다. 성을 순시할 때마다 무예를 뽐내 칼춤을 추며 앞을 인도케 하니, 적들이 성을 타고 앉아 바라보고 간담이 떨어졌다고 한다."
『원사(元史)』 「왕영전(王英傳)」에, 왕영(자는 방걸[邦傑]. 익도[益都]인으로 거주천호[ 州千戶]였다)이 쌍칼을 잘 써서 도왕(刀王)이라 호칭했다."
『병략찬문(兵略纂聞)』에 이르기를, "유현(劉顯 : 남창인으로 벼슬이 도독에 이르렀고, 임진왜란때 이 땅에 온 대도 유정의 아버지이다)은 투구와 갑옷도 입지 않고, 적을 만나면 두칼을 뽑아들고 뛰어 오르며 넘고, 재빠르고 민첩하게 춤을 추는 것이 마치 칼이 나는 것 같아서 칼날만 보이고 유공은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案
도검(刀劍)이라는 기기는 몸을 호위하는 것인데, 설령 옛사람일지라도 반드시 법술(法術)이 있었다. 이는 마치 후세에 검보나 결가가 있는 것과 같다. 이리하여 노구천(魯句踐: 전국시대 한단 사람으로 형가[荊軻]와 교유하였다)이 형경(荊卿: 형가를 높인말)의 검술에 소홀함을 탄식하였다. 주·진(周秦)이후 고증할 바가 없다. 그러나 『가어(家語)』에 이르기를, "자로가 융복을 입고 공자께 보이고, 칼을 뽑아 춤을 추며 말하기를 '옛날 군자는 칼로 스스로 호위하였습니다' 하였다."
『사기(史記)』에 이르기를, "항우가 패공(沛公)을 만날 때 항장(項莊)과 항백(項伯)이 칼을 뽑아 춤을 추기 시작하였다"고 하였다. 무릇 칼을 들고 춤을 추는 것은 마치 방패와 도끼를 들고 춤을 춘즉 격자지술(치고 찌르는 실제의 무술동작)에 맡기어 무비를 예비하는 것이다.(『예기(禮記)』에 붉은 방패와 옥도끼로 면류관 쓰고 춤을 추는 것을 대무[大武]라 했다). 지금에 이르러 칼춤을 춘다면 마땅히 쌍칼을 쓰지 방패와 도끼를 쓰지 않는 것은 그것이 길고 무겁기 때문이다.
『춘추번로(春秋繁露)』에 이르기를, "칼(劍)에는 좌청룡상(左靑龍象)이 있고, 도(刀)에는 우백호상(右白虎象)이 있다."『열사전(烈士傳)』에 이르기를, "간장(干將: 검공이다)이 진(晉)나라 임금을 위하여 검을 만들었는데, 검에는 자웅(雌雄)이 있다 하였다." 이를 인용하면 쌍칼이 된다.
쌍검(雙劍)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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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처음에 지검대적세(持劍對賊勢)를 하되 오른 편 칼을 오른 어깨에 지고 왼편 칼을 이마 위에 들고 섰다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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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즉시 견적출검세(見賊出劍勢)를 하되 오른 손과 왼 다리고 한 걸음 뛰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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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비진격적세(飛進擊賊勢)를 하되 오른 손과 오른다리로 한번 치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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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그대로 초퇴방적세(初退防賊勢)를 하되 오른편 칼을 왼쪽 겨드랑이에 끼고 오른 편으로 세번 돌아 물러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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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즉시 향우방적세(向右防賊勢)를 하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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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그대로 향좌방적세(向左防賊勢)를 하고 오른 편으로 돌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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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휘검향적세(揮劍向賊勢)를 하되 좌우를 씻고 앞으로 나아가 그대로 향우방적세를 하고 향좌방적세를 하고 오른편으로 돌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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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진전살적세(進前殺賊勢)를 하되 왼쪽 칼을 오른편 겨드랑이에 끼고 오른 손과 오른 다리로 앞을 한번 쳐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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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왼 편으로 한번 돌아 뒤를 돌아 보고 즉시 오화전신세(五花纏身勢)를 취하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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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제자리로 들어와 향후격적세(向後擊賊勢)를 하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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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몸을 돌려 앞을 향하여 지조염익세(摯鳥殮翼勢)를 하되 오른 편 칼을 왼쪽 겨드랑이에 끼고 왼쪽 칼을 오른 쪽 겨드랑이에 끼고 한 번 소리치며 오른편으로 돌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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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그대로 장검수광세(藏劍收光勢)를 하되 왼쪽 칼을 오른편 겨드랑이에 끼고 오른 쪽 칼로 오른발을 쳐들고 안으로 스쳐 한걸음 뛰어 좌우로 씻어 오른 발을 들어 왼쪽손과 왼쪽 다리로 앞을 한번 찌르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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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그대로 항장기무세(項莊起舞勢)를 하되 왼쪽 칼로 오른편을 한번 씻어 대문을 만들었다가 마쳐라. |
마상쌍검(馬上雙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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增
보쌍검(步雙劍)과 같은 즉 요도(腰刀)이다. 모원의(茅元儀)가 말하기를, "단도와 수도(手刀: 칼날이 넓으면 칼끝의 등이 휘었고, 칼자루 끝에 작은 고리가 있어서 세속에서 이른바 박도[朴刀]라고 한다)와 대략 같다. 말 위에서 실용할 수 있다.『영귀지(靈鬼志)』에 이르기를, "하간왕 우(河間王 우: 진[晉]나라 종실)가 관중에서 이미 패하였으나 진안(陳案)이라는 급사가 있었다. 그는 항상 붉은 말을 타고 양손에 칼을 들고 있었는데, 그 길이가 모두 7척이었고, 말을 몰아 칼을 휘두르면 향하는 곳마다 적이 쓰러졌다"고 하였다.
진안(陳案)이 마상에서 능히 7척 길이의 두 칼을 사용한 것은 이것이 비록 보통 사람을 넘는 용기이지만, 항구적으로 편리하게 사용될 기술은 아니다.
마상쌍검(馬上雙劍)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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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처음에 항우도강세(項羽渡江勢)를 하되 오른손으로 고삐를 잡고 왼손에 두 칼을 잡되 하나는 세우고 하나는 끼고 말을 타고 가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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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손책정강동세(孫策定江東勢)를 하되 오른손으로 즉시 낀 칼로 왼편을 향하여 펼쳐 열고 오른손은 앞을 정하고 왼손은 뒤 를 정하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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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그대로 한고조환패상세(漢高祖還覇上勢)를 하되 왼쪽 칼을 오른편에 끼고 오른편 칼은 뒤를 향해 적을 치는 자세를 하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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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운장도패수세(雲長渡覇水勢)를 하되 오른쪽 칼을 왼쪽에 끼고 왼편 칼은 뒤를 향해 적을 치는 자세를 하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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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비전요두세(飛電繞斗勢)를 하되 왼쪽칼은 오른편으로 휘둘러 몸을 방어하고 오른편 칼은 왼편으로 휘둘러 몸을 방어하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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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그대로 앞을 향해 한번 쳐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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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벽력휘부세(霹靂揮斧勢)를 하되 오른 칼로 왼편을 휘둘러 몸을 방어하고 왼쪽 칼로 오른편으로 휘둘러 몸을 방어하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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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그대로 앞을 향해 한번 쳐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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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왼쪽을 돌아보고 몸을 방어하고 오른편 칼로 왼편으로 휘두르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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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오른편을 돌아보고 몸을 방어하고 왼쪽 칼을 오른편으로 휘두르기를 세번 하고 항우도강세로써 마치되 만일 말을 돌리면 한고환패상세를 하고 또 운장도패수세를 하되 정수없이 하여 항우도강세로써 마쳐라. |
월도(月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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增
칼자루 길이 6자 4치, 칼날 길이 2자 8치, 합한 무게 3근 14냥, 곁가지 날에 '이'를 끼운다(깃털로 단 장식이다. 『위략(魏略)』에 이르기를 유비는 성품이 좋아서 '이'를 스스로 손으로 묶었다고 한다. 소꼬리 를 지금은 속칭 상모라 한다)황동(黃銅)으로 장식한 자루에 붉은 칠을 하고, 철준(쇠로 만든 창 고달)를 단다.
『예기도식(禮記圖式)』에 이르기를, "왕충(王充)의 『논형(論衡)』에서 마땅히 도검(刀劍)의 언월구(偃月鉤)와 본조의 녹영 언월도를 비유할 수 있다"고 하였다.
전체 길이는 7자이고, 날 길이는 2자 4치 5푼이며, 위가 도톰하고, 뒤로 쳐다 보면서 가지 날이 되고, 칼입을 용 입으로 물고 있다. 높이는 1치 5푼이고 구멍 철판으로 하며, 두께가 2푼이다. 자루의 길이는 4자 2치 8푼이며, 둘레는 5치 2푼으로, 목질에 붉은 옻칠을 하고 끝에는 철준(鐵 )을 단다. 그 철준의 길이는 4치이다.
『병장기(兵仗記)』에 이르기를, "큰칼은 무기로 쓰는 날 끝으로 가히 끊고 해칠 수 있다. 말을 베일 수 있어서 일명 감도라고도 하는데, 칼 길이는 7자, 날 길이는 3자, 자루의 길이는 4자이고, 밑에는 쇠끌을 사용했다. 기병, 보병, 수병, 육군 모두 사용할 수 있다. 모양이 눈썹 끝 같이 생긴 것을 미첨도(眉尖刀)라고 한다. 봉의 부리 같은 모양을 봉취도(鳳嘴刀)라고 하며, 누운달 모양 같은 것을 언월도(偃月刀), 머리에 이른 것을 계도(屆刀), 면이 모난 것을 방도(方刀)라 한다. 다시 유구도(有鉤刀), 수도(手刀), 거도(鋸刀), 도도(掉刀), 태평도(太平刀), 정로도(定虜刀), 조천도(朝天刀), 개천도(開天刀), 개진도(開陳刀), 획진도(劃陣刀), 편도(偏刀), 단도(單刀) 등은 각기 그를 사용하는 사람의 기예의 등급에 따른 것이다."
모원의가 이르기를, "언월도는 연습 할 때 그 웅실함을 보여주는 것이지, 진에서는 사용할 수 없다"고 하였다.
월도(月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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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왼손으로 자루를 잡고 오른 손은 오른편에 끼고 칼을 세워 바로서서 처음에 용약재연세를 하되 오른 주먹으로 앞을 한번 치고(左手持柄 右手右挾 竪刀正立 初作 龍躍在淵勢 右拳 前一打)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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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즉시 신월상천세를 하되 앞으로 나아가 오른주먹으로 앞을 한번 치고 한걸음 뛰어 뒤를 돌아보고(旋作 新月上天勢 前進以右拳 前一打 跳一步 後顧)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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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그대로 맹호장조세를 하여 오른편으로 세번돌아 물러나 제자리에 이르러(仍作 猛虎張爪勢 右三廻 退地原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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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그대로 지조염익세를 하여 앞을 향하라.(仍作 지鳥斂翼勢 向前)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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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금용전신세를 하되 칼을 들어 왼편으로 휘둘러 나가서(作 金龍纏身勢 擧刀 左揮出)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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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오관참장세를 하되 오른편을 향해 돌려치고 쓸어서 왼편을 한번치고 오른편을 향해 돌려치고 쓸어서 왼편을 한번치고(作 五關斬將勢 向右廻擊 掃左一擊 向右廻擊 掃左一擊)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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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앞을 향해 오른편으로 한번 돌아 오른발을 들고 안으로 스쳐(向前 右一轉 擧右足 內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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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향전격적세로 앞을 한번 치고(以 向前擊賊勢 前打)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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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그대로 용광사우두세를 하되 왼편으로 세번 끌어 돌아서 제자리로 물러나서(仍作 龍光射牛斗勢 左三曳廻 退地原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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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창룡귀동세를 하고 뒤를 향해 한번 치고 몸을 둘러 앞을 향하여(作 蒼龍歸洞勢 向後一擊 轉身向前)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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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월야참선세를 하되 오른손과 오른다리로 두번 쫓고(作 月夜斬蟬勢 以右手左脚 再叩)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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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그대로 뒤를 향하여 칼을 들어 상골분익세가 되어 앞을 향하여(仍 向後擧刀 爲 霜?奮翼勢 向前)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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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분정주공번신세를 하고 앞으로 나아가(作 奔霆走空飜身勢 前進)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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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개마참량세를 하여 오른손과 오른다리로 한번 찌르고 진적살적세를 하되 오른발을 들고 밖으로 스쳐 좌우로 씻고 한번치고 오른다리를 들어 한걸음 물러와서 그대로 용광사우두세를 하되 왼편으로 두번돌아 물러나서 제자리로 가라.(作 介馬斬良勢 以右手右脚 一刺 旋作 進前殺賊勢 擧右足 外掠 左右洗一擊 擧右脚 退一步 仍作 龍光射牛斗勢 左二廻 退至原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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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앞을 향하여 검안슬상세를 하고 오른손 및 왼쪽 무릎을 들어 한번 소리치며 한걸음 뛰어 앞으로 나아가(向前作 劍按膝上勢 擧右手及左膝 一喝 跳一步前進)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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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장교출해세를 하여 왼편으로 한번치고 왼손과 왼다리로 한번 치고 한걸음 뛰어 뒤를 돌아보고 그대로 맹호장조세를 하되 오른편으로 한번 돌아(作 長蛟出海勢 左一擊 左手左脚 一打 跳一步 後顧 仍作 猛虎張爪勢 右一廻)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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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장검수광세를 하고 오른편에 칼을 끼고 왼 주먹으로 앞을 한번 치고 그대로 향전살적세를 하되 앞으로 한번 치고(作 藏劍收光勢 右挾刀 左拳 前一打 仍作 向前殺賊勢 一打)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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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수검고용세를 하고 마쳐라.(作 竪劍賈甬勢 畢) |
마상월도(馬上月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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增
보월도(步月刀)와 같다.
『삼재도회(三才圖會)』에 이르기를, "칼을 쓰는데는 왜인들 만큼 묘리를 터득한 사람이 없다. 그런데 그 도법(刀法: 칼 쓰는 법)에는 몇가지 기예가 있다. 수가 높고 파하는 법을 알면 방어에는 무난하다. 오직 관운장의 언월도는 도세(칼의 위력)가 원래 크며, 그 36도법은 『병장기(兵仗記)』에 기록 되어 있어서 모르는 이가 없다. 칼 종류 중 이것으로써 제일로 삼는다. 특히 마상월도는 길어야 한다. 모름지기 앞으로는 말머리를 넘어야 하고, 뒤로는 말 꼬리를 지나야 하기 때문이다."
『도검록(刀劍錄)』에 이르기를, "관우는 유비를 소중히 여겨 신명을 아끼지 않았다. 스스로 도산(都山: 즉 무도산인데 면죽현에 있다)의 철을 채취하여 두 개의 칼을 만들어 새기기를 만인(萬人)과 공패(公敗)라 했다. 공은 애석하게도 물속에 던져버리고 말았다고 한다."
『명사(明史)』, 「유정전」에 이르기를, "빈철(페르시아산. 단단하고 날카롭기가 쇠나 옥을 자를 수 있다)을 사용하여 120근 짜리 칼을 만들었는데, 말 위에서 나는 것처럼 빙빙 돌렸는데, 천하가 유대도(劉大刀)라 칭했다."
案
언월(偃月: 누운 달이란 뜻), 미첨(眉尖: 눈썹끝 모양) 두 가지 칼은 모두 칼날이 넓고, 자루는 길고 그 사용법은 같다. 그러므로 『무경(武經)』에서는 언월도를 칼 중 제일로 삼는다.
도요도미 히데요시는 미첨도를 사랑하여 항상 그 좌우에 배열하였다(현재 일본에서는 '나기나다'라 하여 봉 위에 칼을 붙여 사용하는 도구를 여성들이 주로 수련하고 있다). 그러나 모원의는 언월도를 실전 진에서는 사용할 수 없다 하였고, 상순(尙順)은 논하기를 미첨도와 야도는 사용하기 힘들다 하였는데, 또한 혹시 옛날과 지금의 사용법이 때에 따라 달랐지 않았을까? 임진왜란때 관운장의 영령이 나타나서 평양성을 탈환하였다(만력 계사 정월에 제독 이여송이 평양성을 격파하였다). 도산전투(도산은 울산에 있는데 만력 정유재란 때 경리 양호가 도산을 공략하였다)에서도 관운장의 신위가 분기하여 왜인들의 묘기를 쓸어 버린 것은, 관운장이 저승에서 우리 동방을 도와줘서 우리나라가 면면하게 계승되는 복을 받은 것이다.
동방원정군(명나라의 원군 장병)은 사당을 짓고 영혼을 안정시켰다. 신종황제가 돈을 내려 비용을 분담하였다(무술년에 유격 진인[陣寅], 경리 양호[楊鎬]가 비용을 원조하여 숭례문 밖에 사당을 세웠다. 선조대왕께서 행차하였고, 제장수들이 참배하면서 이르기를 '동국[조선]을 구한 신의 도움'이라 하였다. 경자년에 황제가 4천금을 만세덕[萬世德]에게 보내어 홍인문밖에 사당을 짓도록 명하였다. 동방원정군은 모두 말하기를 평양성의 승첩, 도산의 싸움에서 세길로 왜군을 구축한 것은 관운장의 현령이 문득 나타나 도와주었다. 이에 편액의 명칭을 중국 조정에 청한즉 황제의 칙명으로 '현령소덕관 공지묘'을 세우도록 하였다).
아아 그 거룩함이여! 무릇 왜인들의 칼쓰는 솜씨로도 언월도의 휘두름 아래서는 피할 곳이 없었기에 그를 일컬어 검 중 제일 이라는 것은 헛말이 아니다. 애석한지고, 36법이 전해지지 않음이여!
마상월도(馬上月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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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처음에 신월상천세(新月上天勢)를 하되 왼손을 왼편에 끼고 말을 몰고 나가되 오른손으로 앞을 잡고 왼손으로 뒤를 잡아 이마위로 높이 들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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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그대로 백호포휴세(白虎哺烋勢)를 하여 오른편 겨드랑이에 칼을 감추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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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즉시 추산어풍세(秋山御風勢)를 하되 오른편을 돌아보며 한번 휘두르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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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도로 청룡등약세(靑龍騰躍勢)를 하여 오른손을 아래에 감추고 그대로 칼을 세워 높이 들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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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또 춘강소운세(春江掃雲勢)를 하되 왼편을 돌아보며 한번 휘두르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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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또 추산어풍세(秋山御風勢)를 하고 오른편을 돌아보며 한번 휘두르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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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또 청룡등약세를 하여 앞을 향하여 한번 치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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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왼편을 돌아보며 한번 휘두르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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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오른편을 돌아보고 휘두르기를 세번 하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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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자전수광세(紫電收光勢)를 하되 오른손으로 오른편 겨드랑이에 칼을 감추고 마치되 만일 말을 돌리면 백호포휴세로서 그대로 추산어풍세와 춘강소운세를 정수없이 하고 자전수광세로써 마쳐라. |
협도(挾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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增
지금 사용하는 협도의 자루 길이는 7자, 칼날의 길이는 3자, 무게는 4근이다.
칼자루에 붉은 칠을 한다. 칼등에 이를 낀다.
案
구보(舊譜:『무예제보』,『무예신보』)에 그려진 협도는 끝날 등이 비스듬히 휘었는데, 『무비지』에 그려진 계도(屆刀), 필도(筆刀)와 지금의 협도를 비교하면 같지 않다. 그러므로 지금 쓰여지는 것으로 바꾸어 그렸고, 나란히 병행하여 『무비지』의 미첨도와 왜인들의 장도(長刀)를 그린 것은 대동소이 하기 때문이다.
모원의(茅元儀)가 말하기를, "일본도에는 몇 가지가 있다. 크고 자루가 긴 것은 파도(擺導: 擺라는 것은 연다, 퉁긴다는 뜻이다. 장도[長刀]는 전투에 임하여 앞을 열며 전진하는 것이다)로 쓰인다. 이것을 일컬어 선도(先導)라 하는데, 그는 피조(皮條: 가죽실 끈)로 칼집을 엮어 어깨에 맨다.
혹은 손에 쥐고 뒤를 따르는데 소용되므로 대제(大制)라 이른다.
『왜한삼재도회』에 이르기를, "『무비지』에서 말하는 선도대제(先導大制)는 세속에서 말하기를 야도(野刀)라 한다.
근세에는 사용하지 않는데, 자루의 길이는 3~4자이다. 『삼재도회(三才圖會)』에서 말하는 이른바 미첨도와 이것은 비슷하다. 일본의 이름에서 뽑은 것으로 장도(長刀)가 있고, 무체도가 있다(『일본기(日本記)』에 이르기를, 무를 숭상하여 칼 이름을 초체라 했다). 평상국(平相國: 왜의 추장 평수길(平秀吉)에 이르러 오로지 미첨도에 혹하여 늘 이 칼을 좌우에 놓아두었다."
案
왜인들 역시 소도(小刀)라 칭하는 것을 일러 협도라 하는 것은 우리나라의 협도와 명실이 같지 않다.
협도(挾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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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칼을 세우고 바로 서서 오른손에 자루를 잡고 왼손은 왼편에 꼈다가 처음으로 용약재연세를 하여 한번 뛰어 왼 주먹으로써 앞을 치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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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즉시 중평세를 하되 오른손과 오른 다리로 한번 찌르고 또 한 발 나아가 중형세로 한번 찌르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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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또 오룡 파미세를 하되 왼편으로 끝을 휘둘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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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오른손과 오른다리로써 오화전신세를 하고 즉시 중평세를 하여 한번 찌르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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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즉시 용광사우두세를 하되 왼편으로 끌어 물러와 한번 돌아 중평세로 한번 찌르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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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즉시 오른손과 오른다리로써 우반월세를 하고, 또 용광사우두세를 하되 왼편으로 끌어 세번 돌아 제자리로 물러와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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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창룡귀동세를 하되 오른손과 오른 다리로 왼편으로 돌아 뒤를 한번 치고 그대로 왼편으로 돌아 앞을 한번 치고 중평세를 하여 한번 찌르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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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즉시 단봉전시세를 하되 왼편으로 끝을 휘두르고 오른편으로 칼날을 휘둘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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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왼쪽과 오른쪽을 바꾸어 잡아 왼손과 왼다리로 오화전신세를 하고 그대로 중평세를 하고 한번 찌르고 또 단봉전신세를 하되 오른 편으로 끝을 휘두르고 오화전신세를 하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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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또 중평세로 한번 찌르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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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그대로 용광사우두세를 하고 오른 편으로 끌어 물러와 한번 돌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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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왼손과 왼다리로 좌반월세를 하고 또 용광사우두세를 하고 오른편으로 끌어 두번 돌아와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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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즉시 은룡출해세를 하되 왼손과 왼다리로 흔들며 한번 찌르고 또 용광사우두세를 하되 오른편으로 한번 돌아 제자리로 가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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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그대로 오운조정세를 하되 왼손과 왼 다리로 칼을 들어 앞을 향하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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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왼편과 오른편을 바꾸어 잡아 오른손과 오른 다리로 왼편으로 돌아 왼편을 한번 치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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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왼편과 오른편을 바꾸어 잡아서 왼손과 왼다리로 오른편으로 돌아 오른편으로 한번 치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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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왼편과 오른편을 바꾸어 잡아 오른손과 오른다리로 왼편으로 돌아 앞으로 한번 치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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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그대로 오른손과 오른다리로 수검고용세를 하고 마쳐라. |
등패(藤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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原
척계광이 말하기를, "늙은 등나무(『본초습유(本草拾遺)』에 이르기를 성등[省藤]은 남방 심산에서 나고, 껍질은 붉으며, 크기는 손가락만 하며, 물건을 묶을 만하다. 『제민요술(濟民要術)』에 이르기를 과등을 둘레가 몇 치되고 무게가 대나무만 하여, 가히 대나무 껍질에 대체하여 선박을 묶거나 자리를 만든다) 손가락만한 것을 사용하여 골등(骨藤)으로 하고, 대나무 껍질을 촘촘히 감아 중심이 밖으로 튀어나오고 안을 비우면 모든 화살이 들어와도 손이나 팔에 이르지 못한다. 둘레는 처마처럼 높이 솟아나서 화살이 이르러도 매끄러져 새거나 사람에 미치지 않는다. 안에는 등나무로 상하 두 개의 고리를 만들어 잡을 수 있도록 하였다. 각 병사마다 하나의 요도와 하나의 방패를 잡고, 칼을 손과 팔에 싣고 한 손으로 표창을 잡아 던지면 상대는 반드시 [칼을 빼어들고] 급히 응한다. 방패를 따라 뚫고 들어가게 하려면 반드시 낭선으로 하여야 한다. 만일 낭선이 없으면 긴 무기로 하여야 한다."
또 말하기를, "북방에는 등나무가 없어서 버드나무에 가죽을 대서 대신한다. 호마가 빨리 달리고 또 회갑(투구와 갑옷)이 있으므로 반드시 표창을 사용하지 않아도 된다."
案
지금의 등패는 직경이 3자 7치로, 앉으면 은신하기 부족하여 조금 넓혀 중국식과 같이 하는 것이 마땅하다. 또한 지금의 등패는 잡는 곳을 부드러운 뽕나무로 하여 중국식과는 다르다.
增
모원의가 말하기를, "근세에 조선인이 방패로써 조총을 막는데, 타당한 방법이다"라 하였다.
『병장기(兵仗記)』에 이르기를, "등패는 무게가 가볍고 단단하여 비와 습기를 두려워 할 것이 없고, 보병에게는 간편하다"고 하였다.
『천공개물(天工開物)』에 이르기를, "간과(干戈: 창과 방패)라는 이름은 가장 오래된 것으로, 방패와 창이 서로 연관되어 이름을 얻은 것이다. 대개 오른손으로 단도를 잡은 즉 왼손으로 방패를 잡느다. 세속에서 방패라는 것은 이것을 말한다"고 하였다.
『염곡자록』에 이르되, "방배는 팽배(彭排: 彭은 방이다. 이는 방배는 적을 막고 공격하는데 있다)인데, 보졸용은 우륵배(牛肋排: 소 겨드랑이 뼈), 마군(기병)은 주칠배(朱漆排)를 사용한다."
척계광이 말하기를, "요도는 칼 길이가 3자 2치이고 무게는 1근 10량이다. 칼 자루의 길이는 3자이고, 칼날은 순강(純鋼)을 쓴다. 칼자루는 짧아야 하고 모양은 굽어야 한다. 여러 가지 완전패(宛轉牌: 작고 둥근패)에는 거리끼지 않는다"고 하였다. 또한 말하기를, "표창 머리는 크고 길이는 5치이며, 무게는 4냥, 머리 직경 6푼, 길이 7자, 끝 직경 2 ~3푼, 주목(단단한 나무)이나 대나무 모두 된다. 철봉(鐵鋒: 쇠끝)은 무겁고 커야 한다. 자루의 앞이 무겁고 뒤가 가벼워야 한다."
案
『습유기(拾遺記)』에는 포희가 방패를 만들었다 하고, 『사기(史記)』에는 황제(黃帝)가 간과(干戈)를 만들 었다고 했으며, 『우서(虞書)』에는 양쪽 계단에서 간우(干羽: 깃으로된 방패)로 춤을 추었다고 하였다. 『시경(詩經)』「소융(小戎:兵車)」편에 용순지합(龍盾之合)의 집(集)은 '순간(盾干)으로 전한다. 몽고족이 유원(有苑)을 정벌할 때 중간(中干)으로 정벌 했다고 전한다.
정강성(鄭康成)이 말하기를, "몽(蒙)은 크다는 뜻이다. 또한 노(방패)를 만들었다고 하는데, 육도삼략(六韜三略)』의 「무익(武翼)」편에 '대로'라는 구절이 있다. 노는 큰 방패이다."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서 "적사미가 큰 수레를 만들어서 껍데기를 입혀 노(방패)로 하였다"고 하였다. 또한 말하기를 "부소(扶蘇)는 『주례(周禮)』「하관(夏官)」에 번순주(藩盾注)를 설했는데, 지금의 부소용어(扶蘇龍魚)와 같다"고 하였다.
『하도(河圖)』에 이르기를, "방패란 이름은 스스로 막는 것이다. 좌사(左思: 자는 태중[太中]이며 진[晉]나라 임치인으로 관직은 비서랑이다)의 부(賦)에, 집에는 학슬(鶴膝)이 있고, 집집마다 서거주(犀渠注)가 있다 했는데, 거(渠)는 순(楯: 방패)이다."
모원의가 말하기를, "『무경(武經)』에 실려 있는 방패는 두 가지이다. 첫째는 보병용인데 길고, 또 하나는 기마용인데 둥글다. 근세 남방에서는 대개 둥근 방패를 쓰는데, 이 둥근 방패는 등패를 가리키는 말이다. 그러므로 붉은 등갑이다"라 했다.
『도설(圖設)』에 이르기를, "붉은 등나무 50근을 석조(石槽)에 넣고 물에 담그어 보름만에 꺼내서 3일 말리고, 다시 석조에 넣어 물을 부어 이렇게 담그기를 1년간 하다가 햇볕에 바짝 말린다. 말려서 만드는 방식은 짜서 뚫고 모두 20번을 쪼개어 그 겉에 오동나무 기름을 바르면 그 껍데기는 가볍고 견고하여 능히 화살과 칼날을 막아낸다. 또한 삿갓을 만들기도 하고, 적과 대진하는 투구를 만들기도 한다. 또한 부드러운 등나무로 둥근 방패를 짜서 만들기도 한다. 가운데가 볼록 나오고 가장자리가 일어나는 것은 이것 때문이다."
『송사(宋史)』「곽자(郭諮: 평주인으로 벼슬은 전중승[展中丞]이었다)전」에는 "곽자가 교묘한 생각이 있어서 스스로 무기를 만들었다. 조칙으로 각루(刻漏), 원순(圓楯), 독원노(獨轅弩), 생피갑(生皮甲) 등을 만들어 오게 하여 상감께서 칭찬 하였다. 이는 반드시 곽자가 창안하여 만든 보병용 둥근 방패이다. 대개 병용 둥근 방패는 옛날에 역시 이러한 법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옥해(玉海)』에 이르기를, "함평(咸平) 2년(999) 광첩군(廣捷軍)에 오지휘(五指揮)를 설치하였다. 황제께서 먼저 남방에서는 표창과 방패로 병기를 삼는다는 것을 들으시고 유사에게 명하여 만들도록 하였다"고 하였다.
『병장기(兵仗記)』에 이르기를, "송 태종(太宗)께서 남방에서는 표창과 방패로 병기를 한다는 말을 듣고 광덕군(廣德軍)에게 연습 하도록 명하였다. 표창을 사용하는 것은 이것이 처음이다"고 하였다. 남방을 이야기 하였고, 둥근방패를 이야기 하였은즉, 이는 반드시 등패법이 이미 송나라 초에 있었다는 것을 말한다.
『무편(武編)』에 이르기를, "북적(北狄)을 제압하려면 먼저 그 기마법을 제압하여야 하고, 동이족을 제압하려면 먼저 선박법을 제압하여야 하고, 남만을 제압하려 하면 먼저 그 표창과 방패법을 제압해야 한다"고 한즉, 방패가 만(蠻)으로부터 나왔음을 알게 한다.
협도(挾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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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처음에 기수세 를 취하고 칼로써 머리 위를 쫓아 한번 휘두르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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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즉시 약보세 를 취하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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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그대로 칼로써 패를 쫓아 한번 휘둘러 저평세 를 하고 일어서서 금계반두세 를 하고 그대로 칼로써 패를 쫓아 한번 휘두르고 한걸음 나아가서 저평세 를 취하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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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일어서서 약보세를 취하고 칼로써 패를 쫓아 한번 휘두르고 한걸음 나아가 저평세를 취하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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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일어서서 몸을 뒤집어 곤패세를 취하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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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칼로써 패를 쫓아한번 휘둘러 한걸음 나아가 저평세를 취하고 일어서서 선인지로세를 하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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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뛰어 한걸음 물러가서 매복세를 하고 또 한걸음 물러가서 매복세를 취하고 일어서서 몸을 뒤집어 곤패세를 취하고 또 칼로써 방패를 쫓아 한번 휘두르고 한걸음 물러 가서 매복세를 취하고 일어서서 선인지로세를 취하고 한걸음 물러 가서 매복세을 취하고 일어서서 몸을 뒤집에 곤패세를 취하고 또 칼로써 패를 쫓아 한번 휘두르고 한걸음 물러나서 매복세를 취하고 일어서서 약보세를 취하고 한발을 들고 한발을 둘러 칼을 휘두르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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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오른 편으로 향하여 한걸음 옮겨 사행세를 하고 마쳐라 |
권법(拳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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增
척계광이 말하기를, "권법은 흡사 전투기술로서의 예비가 없는 것처럼 보이나 사실은 수족을 활동시키고 지체의 힘쓰는 법을 익히기 위한 무예의 초보이다"라 했다.
모원의가 말하기를, 점 찍고 획 긋는 법을 안 연후에 8법(『서원(書苑)』에 이르기를 왕일[王逸]의「소서편공[小書扁工]」 에 '永'자를 써보면 8법의 서체를 능히 통할 수 있고, 모든 글자는 永자의 8획으로 이루어졌다)을 가르치고, 말 안장에 의지할 줄 아는 이후에 말달리는 것을 가르칠 수 있다. 권법도 마찬가지이다"라고 하였다.
『무편(武編)』에 이르기를, "권법에 세(勢)가 있다는 것은 변화하기 때문이다. 횡, 사, 측, 면, 기, 립, 주, 복 모두 장호(牆戶)가 있어서 가히 지킬 수 있고 가히 공격할 수 있다. 그러므로 세(勢)라 한다. 권법에는 정해진 세가 있는데, 실용에는 정해진 세가 없다. 당하여 임기로 그를 활용한다. 변화에는 정해진 세가 없으나 실용에서 실세(失勢)하면 안된다"라고 하였다.
案
『시경(詩經)』「소아(小雅)」편에 무권무용직위난계(無拳無勇職爲亂階: 주먹힘이 없으면 용기도 없고, 직책을 맡아도 위계 질서가 없다)의 주(注)에 권(拳)은 힘(力)이라 했다.「이아(爾雅)」편에 호랑이를 맨손으로 친다. 큰내를 맨발로 건넌다. 『춘추좌씨전』에 진후(晉候: 진문공 중이)가 꿈에 초자(楚子: 성왕 군[ ])를 때렸다는 것은 권박(拳搏: 주먹으로 치는 것)이다. 또한 『변한서(卞漢書)』「애제기(哀帝紀)」에 아뢸 때 활쏘는 법과 무희(武?)를 관람하였다. 주(注)에 수박은(手搏)은 힘을 겨루는 것이므로 무희(武?: 무예놀이)가 된다.
「감연수(甘延壽: 자는 군항. 한나라 북지인[北地人]으로 의성후[義成候])전」에 손바닥 치는 시합을 기문(期門)이라 하는데(『한서(漢書)』「백관표」에 기문은 병사를 수송하는 업무를 장악한다. 「서도부(西都賦)」주에 따르면 무제와 북지의 양가 자재들이 제전문[諸殿門: 여러 궁전의 문]에서 기약을 했기 때문에 기문[期門]이라 한다), 힘을 헤아리는 행사를 즐겼다. 그 주에 변(弁)은 수박이다.
당·송 이래 그 술법에는 두가지가 있다. 그 하나는 외가(外家)라 하고, 또 하나는 내가(內家)라 한다. 외가는 소림이 성하다(소림사는 등봉현 소실산에 있는데, 『일지록(日知錄)』에 이르기를 당나라 초기에 사승[寺僧] 13인이 왕세충을 토벌한 공이 있었다. 이 소림병[小林兵]이 가정[嘉靖]때 기병한 바가 있어서 소림승 월공[月空]이 도독만표[都督萬表]를 제수받아 왜구를 방어할 것을 격문으로 썼고, 송강전[松江戰]에서 전사 하였다).
내가(內家)인즉 장송계(張松溪)가 정통 하였다. 장송계를 계승한 것은 바로 사손(師孫) 13로(老)이다. 그리고 그 법의 기원은 송나라의 장삼봉(張三峯)이다. 장삼봉은 무당(武當: 당나라 균주[均州]의 속현으로 송나라 시대에는 무당군에 속하였다)의 단사(丹士: 연단지사. 즉 도사)로 홀로 적 백명을 죽였다. 그리하여 드디어 절기(絶技)로서 세상에 유명 해졌다. 장삼봉으로 말미암아 이후 명나라 가정(嘉靖)때 사명(四明: 영파부에 있는 산 이름)에 전해 졌는데, 장송계가 가장 정통한 것이다.
『영파부지(寧波府志)』에 이르기를, "소림법은 사람을 치고 솟구치며 뛰고 분기하여 뛰어 넘는 것을 위주로 하는데, 혹 실전되어 소홀함이 있다. 그러므로 왕왕 사람들이 복원을 꾀하는 바가 있다. 이에 대해 장송계의 법은 적을 방어하는 것을 위주로 한다. 따라서 곤액(困厄)을 당하지 않으면 술법을 발휘하지 않는다. 발휘하면 반드시 기량을 다한 바 되어 피함을 꾀할 틈이 없게 된다. 그러므로 내가의 기술은 [사람을 치는 것보다] 더욱 좋다. 사람을 치는데는 반드시 그 혈이 있는데, 훈혈(暈穴: 벙어리가 되는 혈), 사혈(死穴: 죽는 혈) 등이다. 그 혈에 따라서 가볍게 또는 무겁게 치면 혹 죽기도 하고 혹은 현기증을 일으켜 기절 하기도 하며, 혹은 벙어리가 되기도 하는데, 털 끝 만큼도 차이가 없다. 더욱이 신비로운 것은 경(敬), 긴(緊), 경(徑), 근(勤), 절(切) 다섯 비결을 입실제자(入室弟子)가 아니면 서로 전하지 않는다. 대개 이 다섯은 보통으로는 사용되지 않으나 신비하게 쓰여지는 것은 마치 병가의 인(仁), 신(信), 지(智), 용(勇), 엄(嚴)과도 같다할 것이다."
『내가권법(內家拳法)』에 이르기를, "외가로부터 소림에 이르면 그 술법이 더욱 정교해진다. 장삼봉은 이미 소림권에 정통하였는데, 다시 따르고 뒤집어 이를 이름하여 내가라 하는데, 그 한 두가지만 터득하여도 소림권을 이기기에 충분하다.
왕정남(王征南)선생이 단사남(單思南)을 따라 배워, 홀로 그 나머지 전부를 터득한 속에 그를 헤아려 배우고, 그 요체인즉 수련에 있다. 수련이 이미 성숙해지면 돌아볼 필요없이 주위 사정을 헤아려 손을 펴서 종횡 전후로 응하여 모두 긍계(肯 : 가장 중요로운 곳)에 합당해진다. 그 수련법은 연수자(鍊手者) 35에 연보자(鍊步者) 18이 있는데, 총섭(總攝)하여 육로(六路)와 십단금(十段錦: 무릇 가결에 十이란 숫자가 되는 것을 총칭하여 십단금이라 한다)중 각기 가결(歌訣: 요체를 노래로 만든것)이 있다."
案
중국의 24창, 32권은 기회에 따라 백번 변한다. 비록 혹 몇가지 자세가 서로 연결되어 반드시 자세를 이루지 못할지라도 자세는 서로 승계하여 연결과 맥락이 마치 『주역』의 서괘(序卦)처럼 끊이지 않는다. 그러므로 모원의는 조선의 검세를 역시 세법(洗法), 자법(刺法), 격법(擊法)으로 구분하여 논하였고, 이미 우리나라의 예도는 이미 모원의의 논설에 실려 있다. 이에 속보(俗譜)로써 복습한다. 즉 전법으로서 말한다면 척계광의 보(戚譜)에는 반드시 두 상대가 있다. 두 상대란 갑이 탐마세(探馬勢)를 지으면 을은 요단편세(拗單鞭勢)를 짓고, 갑이 칠성권세를 지으면 을은 기룡세(騎龍勢)를 취한다는 것 등과 같이 모두 공수자연지세이며, 오늘의 법칙이 모두 모세를 짓고 다시 모세(某勢)를 지어 처음부터 끝까지 모여서 일통(一通)을 이룬다.
이미 본의를 잃었다가 또한 항차 갑을이 같이 한 자세를 취하여 마치 그림자가 그 형상을 따라 상박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안시측신세(雁翅側身勢)와 구류세(丘劉勢) 등 몇 자세에 지나지 않아서 끝나버린다. 두 상대가 메고 새로치고 변화하여 이로부터 거의 유희처럼 차례로 행해진지 이미 오래되었으므로 이로 인하여 구보(舊譜: 『무예제보』『무예신보』)가 되었다. 그러나 식자는 당연히 열가지 자세를 잃어버렸음을 스스로 알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이책(『무예도보통지』)에는 그 비결을 증입한다.
권법(拳法)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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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두 사람이 각각 왼손과 오른손으로 허리를 끼고 쌍으로 섰다가 처음에는 탐마세를 하되 오른손으로 왼편의 어깨를 쳐서 벗기고 즉시 요란주세를 하되 오른 손으로 오른편 어깨를 쳐서 벗기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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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앞으로 나아가서 현각허이세를 하되 오른 발로 오른손을 차고 왼 발로 왼손을 차고 오른발로 오른 손을 차고 즉시 순란주세를 하되 왼편으로 한번 돌아 왼손으로 오른 발을 한번 치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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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그대로 칠성권세를 하되 좌우편으로 씻어 고사평세를 하되 오른 손과 왼다리로 앞을 한번 찌르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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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즉시 도삽세를 하되 왼손과 오른 손을 높이 들어 뒤를 돌아보며 몸을 돌려 뒤를 향하여 일삽보세를 하되 오른 손을 오른편 겨드랑이에 끼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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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그대로 요단편세를 하되 한걸음 뛰어 오른 손으로 우둔(오른편 볼기)을 차고 그대로 복호세를 하되 나아가 앉으며 오른편으로 돌아 일어서며 또 현각어이세를 취하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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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그대로 하삽세를 하되 왼편으로 한번 돌며 오른손과 왼발을 한번 치고 즉시 당두포세를 하되 왼손으로 앞을 막고 오른 손으로 이마를 가리우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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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그대로 기고세를 하되 좌우편을 씻고 또 중사평세를 하되 오른 손과 왼 다리로 뒤를 한번 찌르고 그대로 도삽세를 하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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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앞을 돌아 보고 몸을 되돌려 도기룡세를 하되 왼손과 오른 손을 열어 버리고 요단편세를 하여 앞으로 나아가 그대로 매복세를 하되 일자로 나아가 앉고 일어서며 현각허이세를 하고 그대로 하삽세와 당두포세를 하고 또 기고세와 고사평세와 도삽세를 하고 즉시 일삽보세와 요단편세를 하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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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즉시 오화전신세를 하되 오른 손과 오른 다리로 오른 편으로 돌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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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두 사람이 마주 서서 안시측신세와 과호세를 하되 두 손을 개합하여 좌우로 서로 찾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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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갑이 현각허이세를 하되 왼편으로 차고 오른 편으로 차고 몰아 쫓아 앞으로 나가거던 을이 구유세를 하되 왼 손과 오른 손으로 막아 물러나고 안시측신세와 과호세를 하여 서로 돌아 서라. 을이 즉시 현각허이세를 하여 나가거던 갑이 또 구유세를 하여 물러나고 두사람이 즉시 안시측신세와 과호세로 서로 돌아서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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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갑이 나아가 복호세를 하거던 을이 금난세를 하여 뛰어 넘어 즉시 복호세를 하고 갑이 또 금나세를 하여 뛰어 넘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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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두 사람이 즉시 포가세를 하되 왼손과 오른 손으로 오른 편 발등을 치고 또 점주세를 하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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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갑이 오른 손으로 을의 왼편 어깨를 잡거던 을이 오른 손으로서 갑의 오른편 겨드랑이 아래를 쫓아 갑의 목을 꼬아서 갑의 왼편어깨를 잡고 각각 등뒤로써 왼 손을 걸어 당기고 갑이 을을 업고 빗겨 들어 거꾸어 던지거던 을이 물레돌듯하여 얼풋 땅에 내려서고 을이 또 갑을 업어 전법과 같이 하여 마쳐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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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增)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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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나찰의출문가자변하세로 사뿐히 걸어 단편으로 적을 상대하여 담력이 없을 것 같으면 먼저 공중을 향하여 눈에 보이는 곳부터 손을 놀린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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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우물난간이 사면에 평평하듯 곧게 나아가 정강이를 짜르고 무릎을 찰 자세로 물이 산을 뚫고 한 개의 깔뀌의 어긋난 모양을 바르는 듯한 동작을 취하면 장군도 달아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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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지당세는 개정법이다. 다른 사람은 나가기 어려우나 나는 앞을 향해 나가기는 좋아져서 무릎을 차고 쑥 뻗으며 얼굴을 들고 급히 돌아서 맨손을 짧게 젓힌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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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신권을 얼굴 가까이 대었다가 아래로 꽂아 내리면서 앞으로 걸어서 불꽃이 중심으로 모이듯 만남을 교묘히하여 즉시 잡고 도사렸다가 손을 들어 사정없이 동작으로 옮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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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참새가 땅에 내리고 용이 땅에 내려와 용트림하는 방법으로 앞으로 쳐들었다가 뒤로 물러나서 맨주먹으로 상대가 물러서면 나는 비록 쓰러지더라도 충격을 보완하여 다만 휴식을 취하며 연장하라. |
곤방(棍棒)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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原
척계광이 말하기를 "길이는 7척, 무게는 3근 8냥, 날 길이 2치의 중봉(中鋒)이 있다. 한 면에 기배(起背)가 있고, 한 면에 혈조(血槽)가 있어서 정교하게 갈아 무게는 다량이다. 이 기법중에는 모두 한번 치고 한번 찌르는 것[一打一刺]이 있는데, 날이 없다면 어떻게 찌르겠는가? 이제 작은 날을 붙이나 다만 날이 길면 방두(棒頭)가 힘이 없어 다른 사람의 곤방을 누를수 없게 된다. 단지 2치 길이의 오리 주둥이와 같은 모양이면 가하다. 때리면 날카로운 곤방의 이점을 살리고, 찌르면 날카로운 날이 되어 양자가 서로 보완한다. 남방에서는 곤(棍)이라하고, 북방에서는 백방(白棒)이라 한다."
增
『병장기(兵仗記)』에 이르기를, "곤방제(棍棒制)에 여섯가지가 있다. 모두 단단하고 무거운 나무를 취한다. 길이가 4 ~5자이고, 그 윗부분을 쇠로 감싼 것을 가려봉(訶藜棒)이라 한다. 머리 부분에 날카로운 칼날을 붙이고 아래에 쌍갈고리를 거꾸로 매단 것을 구봉(鉤棒)이라 하고, 칼날이 없이 갈고리를 철조(鐵?)로 하는 것을 조자방 이라한다. 이리 이빨처럼 위에 걷은 침을 단 것을 낭아봉이라 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고르게 굵은 것을 저봉(杵棒: 절구공이)이라 하고, 보리타작하는 도리깨같은 것을 철련협봉(鐵鍊夾棒)이라 한다."
案
『시경(詩經)』「위풍(衛風)」에 "남편이 몽둥이를 잡으니(伯也執 )"라는 구절이 있는데, 전(傳)에는 수를 1장 2자에 칼날이 없는 것이라 했고, 『설문해자』에 수는 장(杖: 막대)으로 사람을 베는 것이다.
『도서집성기계부총론』에 이르기를 "수라는 것은 몽둥이를 짧게 한것이다. 이는 마치 지금 세속에서의 이른바 나무몽둥이를 말한다. 그러나 옛날 자료에 의하면 이 무기를 비치하여 마족(馬足: 말다리)을 쳤으므로 역시 짧게 하지는 않았다. 송나라 사람들은 마차도를 사용하였다"(『송사』「악비전(岳飛傳)」에 이르기를, 올출[兀朮] 세사람이 연합하여 괴자마비계[拐子馬飛戒]라 이름하여 보병이 마차도를 쳐다보지 않고 말다리를 찍는다고 함).
『맹자』에 "정을 만들도록 할 수 있다"에서 그 주(注)에 "정은 장(杖)이다"라고 하였다. 전한의 제후 왕표(王表)는 중화에서 분기하여 백정을 들었다고 하였는데, 고금주(古今注)에 이르기를 한왕조에 집금오(執金吾: 한조 「백관표(百官表)」에 집금오는 안사고주, 금오[金吾]는 새 이름이고 상서롭지 못하다하여 피하였다)가 있는데, 금오(金吾) 역시 봉(棒: 몽둥이)이다.
군수(郡守) 도위(都尉)류가 나무로써 오(吾: 몽둥이)를 삼았다고 한다. 그런즉 수라고 하는 것, 정이라고 하는 것, 오(吾)라고 하는 것 등 모두가 봉(棒)이다. 또한 배와 같다.
강태공의『육도삼략』의 방수철배라는 것은 무게가 12근, 자루의 길이가 5자로 일명 천배라고 한다.
모원의가 말하기를, "봉이나 곤은 한가지이다. 봉(棒)에는 수(殊: 끊는 것)가 있다. 지금의 곤은 옛날의 한봉, 백봉(白棒)이다. 모두 옛날에는 쇠로써 머리를 하였으나, 척계광이 칼날을 붙이기 시작하였다."
案
임진왜란때 일시에 삼국의 정예가 모였다. 중국의 장창, 무리나라의 편전(片箭), 왜국의 조총은 이로부터 천하에 유명해 지기 시작하였다. 세상에 전하기를 장창은 무예중의 왕이요, 곤(棍) 역시 무예중의 으뜸이라 한다. 이는 곤이 창의 반단(半段)이고, 척계광이 오리주둥이를 붙이기 시작한즉 창과 곤이 서로 표리를 이루어 여러 무기의 용신이나 수족의 자세는 모두 곤방법 이외에서 나온 것이 없다. 그러므로 모원의도 모든 무예의 기본을 곤방법으로 삼는다. 그리고 곤방법의 으뜸은 소림이다. 소림에 대한 설은 정종유(程宗猷: 명나라 신도인이다)의 종법을 밝힘보다 상세한 것이 없다.
정종유는 속언에 이르기를 "천번 내려 치는 것이 한번 찌르는 것만 못하다"는 말이 있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소림곤은 3푼(3할)은 곤법이고, 7푼은 창법으로 창을 겸하고 곤방을 연대하는 이와같은 소림곤이 곤법중 백미(白眉: 『삼국지』의 마량의 자는 계상[季常]이다. 다섯 형제가 함께 각자의 재주가 있었는데 향리에서 전하는 말에 마씨 다섯 형제중 백미[白眉]가 제일 났다 했다. 마량은 눈썹이 백모였다)이다.
이제 종법을 밝힌 6로보(六路譜)를 해독한 것은 이로써 병법을 논하는 자의 거울로 할 것을 기대 하였음이다.
곤방(棍棒)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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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두 사람이 몽둥이를 잡고 마주 서서 편신중난세를 하고 각각 한발 나아가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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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갑이 몽둥이를 들어 을의 몽둥이를 부딪쳐서 대당세를 하고 을이 또 몽둥이로써 갑의 몽둥이를 부딪쳐 대당세를 취하고 갑이 또 몽둥이로써 을의 몽둥이를 부딪쳐 대당세를 취하고 을이 또 몽둥이로써 갑의 몽둥이를 부딪쳐 대당세를 취하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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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그대로 몽둥이로써 갑의 몽둥이를 갈겨 대전세를 하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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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즉시 몽둥이로써 갑의 몽둥이를 쳐서 대조세를 취하고 한걸음 나아가 가슴을 한번 찌르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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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을이 몸을 돌려 뒤를 향하여 몽둥이로써 갑의 몽둥이를 퉁겨 쳐서 적수세를 하고 한걸음 물러가서 몸을 돌려 한발 나아가 대당세로써 갑의 몽둥이를 부딪치고 갑이 또 대당세로써 을의 몽둥이를 부딪고 갑자기 대전세로써 을의 몽둥이를 갈기고 대조세로써 을의몽둥이를 치고 한걸음 나아가 가슴을 한번 찔르라. 갑이 몸을 돌려 그 이하 한번 찌르는데 까지의 동작은 을의 법과 같다. 을은 또 몸을 돌려 그 이하 한번 찌르는 데 까지는 위와 같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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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갑이 몸을 돌려 뒤를 향하며 적수세로써 을의 몽둥이를 퉁기고 한발 물러 가서 그대로 몸을 돌려 한발 나아가 몽둥이를 들어 을의 머리 위를 향해 치고 나가며 을은 한발 나아가 선인봉반세를 하여 당하고 또 을을 치면 역시 선인봉반세로써 당하고 갑자기 대전세로써 왼편을 향하여 갑의 몽둥이를 갈기고 재빨리 대조세로써 갑의 몽둥이를 치고 한걸음 나아가서 가슴을 한번 찌르라. 을이 몸을 돌려 이하 한번 찌르기까지는 위와 같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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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갑이 몸을 돌려 뒤를 향하여 적수세로써 을의 몽둥이를 퉁기고 한걸음 물러 났다가 그대로 몸을 돌려 한발 나아가 앞을 향해 몽둥이를 이르켜서 제미살세를 하고 그대로 몽둥이로써 아래를 향하여 치며 간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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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을은 갑자기 도두세를 취하고 당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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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그대로 한발 나아가 하천세를 하여 갑의 몽둥이를 들치고 즉시 대조세로써 갑의 몽둥이를 치고 한발 나아가 가슴을 한번 찔러라. 을이 몸을 돌려서 그 이하 한번 찌르기 까지는 위와 같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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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두사람이 모두 몸을 뒤집어 몽둥이를 휘둘러 섬요전세를 하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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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그대로 하접세를 하고 갑은 하접세로써 을의 몽둥이를 들치고 즉시 대조세로써 을의 몽둥이를 치고 한발 나아가 가슴을 한번 찔러라. 두 사람이 함께 몸을 뒤집으며 몽둥이를 휘둘러 하접세를 하고 을이 하천세로써 갑의 몽둥이를 들치고 즉시 대조세로써 갑의 몽둥이를 치고 한발 나아가 가슴을 한번 찔러라. 두 사람이 함께 몸을 뒤집고 하접세를 하고 갑이 을을 들치고 그 이하 한번 찌르기까지 위와 같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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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을이 한발 물러서서 직부송서세를 하며 갑이 몽둥이를 쥐고 몸을 돌려 앞을 향해 서로 막으며 물러나면 을이 재빨리 따라가거든 또한 따라가며 또 치고 세걸음 물러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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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갑이 갑자기 몸을 되돌려 앞으로 한걸음 나아가 주마회두세를 하고 또 한걸음 나아가 대전세로써 을의 몽둥이를 갈기고 즉시 대조세로써 을의 몽둥이를 치고 한걸음 나아가 가슴을 찔러라. 갑이 한발 물러나서 편신중난세를 취하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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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두 사람 함께 한발 나아가 상제세를 하고 마쳐라. |
편곤(鞭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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增
지금 사용하는 편(鞭)의 길이는 8자 9치이고, 자편(子鞭)은 2자 2치 5푼이며, 곤의 길이는 10자 2치 5푼이다. 모두 단단한 나무에 붉은 칠을 한다.
案
속칭 철연가(鐵連枷)를 편곤이라 하는데, 곤의 머리에 2자 되는 나무를 끼워서 편에 끈이 달린 것처럼 한다. 그러므로 편곤이라 하는데, 그러나 이제 이 도보의 보편곤(步鞭棍)에는 편과 곤이 둘인데, 마상편곤에 이르면 다만 한가지 무기일 뿐으로 더 말할 나위가 없다. 그러나 잠시 여러 서적들을 널리 고구하여 명품으로 판단해 보면 곤(棍)은 봉(棒)이다. 속명의 주장(朱杖: 붉은몽둥이), 『예기도식』에 실려 있는 연가, 『무비지』소재 백봉(白棒)은 지금사용하는 편곤과 비교하면 훨씬 견장(堅壯)하므로 함께 그림으로 제시한다.
『예기도식』에 이르기를, "『통전』「위공수성편(衛公守城篇)」에서 말하는 연가는 벼를 두들기는 도리깨 모양과 같은데, 담장 밖에서 성 위의 적을 치는데 사용한다."
우리나라에서 정하여 사용하는 나무 규격은 좌우 양손에 쥐는 봉장 1자 5치 5푼이고 가의 길이는 7치 5푼, 둘레는 모두 2치 5푼이다. 모두 황유(黃油)를 바른다. 양끝의 집게는 철수(鐵首: 쇠머리)로 각각 고리를 붙이고, 쇠줄을 연결한다.
案
중국에서 칭하기를 한군(漢軍) 연가봉은, 『옥편』에 이르기를 연가는 곡식을 두들기는 기구라 했다.『육서(六書)』에서는 그러므로 지금 사람들의 쇠사슬류가 서로 연결된 것들이다.
편곤(鞭棍)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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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두 사람이 나란히 서서 각각 왼손으로 하나는 채찍, 하나는 몽둥이로 처음에 용약재연세를 하고 오른 주먹으로 앞을 한번 쳐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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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그대로 상골분익세를 하되 갑이 오른 손으로 채찍을 들고 뛰어 나아가 몸을 돌려 뒤를 향하거든 을이 오른손으로 몽둥이를 들고 뛰어 나아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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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편신중안세를 하되 각각 채찍과 몽둥이로써 위를 한번 갈기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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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즉시 한번 뛰어 바꾸어 서며 갑이 먼저 월야참선세를 하되 오른손으로 채찍을 들어 두어번 쫓거던 을이 창연조정세를 하되 몽둥이로써 높이 들어 막아 가리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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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그대로 대당세를 하되 왼편 밖으로 두번 쫓아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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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또 오른편 안으로 대당세를 하되 오른편 안으로 한번 치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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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또 대당세를 하되 채찍은 오른편 바깥으로 한번 치거던 몽둥이는 왼편안으로 한번 치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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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또 왼편 안으로 대당세를 하되 왼편안으로 한번 치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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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또 왼편밖으로 대당세를 하되 왼편 밖으로 한번 치고 갑이 오른편으로 한번 돌라서 채찍으로 하접세를 하여 한번 치거던 을이 몽둥이로써 서로 접하고 그대로 왼편안으로 대당세를 하고 또 오른편 안으로 대당세를 하고 또 대당세를 하되 채찍은 오른편 밖으로 한번치고 몽둥이는 왼편안으로 한번치고 또 왼편안으로 대당세를 하고 또 왼편밖으로 대당세를 하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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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갑이 오른편으로 한번 돌아 채찍으로써 하접세를 하여 한번 치거던 을이 몽둥이로써 서로 접하고 또 왼편안으로 대당세를 하고 또 오른편안으로 대당세를 하고 또 대당세를 하되 채찍으로 오른편밖을 한번 치거던 몽둥이로 왼편안으로 한번치고 또 왼편안으로 대당세를 하고 또 왼편밖으로 대당세를 하고 갑이 오른편을 한번 돌아 채찍으로써 하접세를 하여 한번치고 을이 몽둥이로써 러로 접하고 마친다. |
마상편곤(馬上鞭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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增
지금 사용하고 있는 편장(鞭長)은 6자 5치이고 자편(子鞭)은 1자 6치이다. 합죽의 속 껍질을 힘줄로 하고, 혹은 붉은 색이나 검은 색칠을 한다.
모원의가 말하기를 "철련협봉(鐵 夾棒)은 본래 서융(西戎)으로부터 출발한 것으로 마상에서 사용되어 한나라의 보병과 대적하였는데, 그 모양이 농가의 타맥하는 도리깨와 같았는데, 쇠로 장식하여 위에서부터 아래로 내려치는 것이 편리하였다. 그러므로 한나라 군사중에서 잘 쓰는자는 서융인들보다 교묘하였다."
『남풍잡기(南豊雜記)』에 이르기를, "적청(狄靑: 자는 한신[漢臣]. 송나라 서하인으로 벼슬은 추밀사에 이르렀다)이 농지고(송 광남의 도적이었다)를 정벌할 때 야밤중에 곤륜관(광주에 있다)을 넘어 기병 2천명을 적 후방으로 보내 표창과 방패로 무장한 마군의 돌격을 받아 모두 머무를 수 없었는데, 마상철련가로 치니 드디어 모두 쓰러졌다."
『속대전(續大典)』에 이르기를, "편추(鞭芻: 채찍과 허수아비법)는 출마 후 오른쪽으로 채찍을 잡고 뒤를 향하여 쳐들고, 또 양손으로 앞을 향하여 쳐들고, 인하여 좌우를 향하여 한번씩 각각 휘둘러 매번 한번씩친 후 문득 좌우로 한번씩 휘두른다. 여섯 개의 허수아비는 서로 28보씩 거리를 두고 좌우로는 서로 마로(馬路)로부터 3보씩 거리를 둔다."
案
채찍과 허수아비법은 이것이 비록 무과의 시험과목이지만 역시 들어치는 자세를 있기에 기록하여 둔다.
案
지금의 마상연가봉은 보연가봉과 비교하여 조금 짧으며, 연결 고리는 보병용이면 하나이고, 기병용은 세개이다.
모두 봉머리 및 가(도리깨)의 양끝은 철엽(鐵葉)으로 집게를 만들고, 오직 마상연가봉만이 가의 하단을 철엽으로 대고쇠못을 두루 쳐놓아서 꼭지가 뾰족뾰족 튀어나와 있다.(矗: 음은 '촉'이며, 솟아오른 모양이 높이 솟은 것).『예기도식(禮記圖式)』에 실려 있는 것은 여섯고리가 서로 이어져 있고, 『무비지』에 실려 있는 것은 가가 네모지고 쇠고리가 연이어져 길이가 가와 같다.
가의 길이가 봉(棒)의 3분의2로 줄어든 지금 사용하는 것은 연환(쇠고리)이 너무 짧아 전력을 다할 수 없다. 일찍이 들으니 병자호란 때 금군이 고양대로에서 적을 방어하는데 일격에 ?이지 않는자가 없었다. 이는 대개 연환이 너무 짧은 것 뿐만이 아니라 그 자루가 약하기 때문이다. 마땅히 그 체제를 바르게 하고, 그 자루의 둘레는 차이가 있게 하고, 큰고리 여섯 연결고리의 가는 네모난 도리깨 철엽에 꼭지 같은 못을 친 즉,여러가지 장점이 모여서 공격 무기로써 최상이될 것이다.
마상편곤(馬上鞭棍)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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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처음에 상골분익세를 하되 왼손으로 고삐를 잡고 오른손으로 몽둥이를 잡고 높이 쳐들며 말을 타고 나가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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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청룡등약세를 하되 두 손을 이마를 지나도록 높이 쳐들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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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춘강소운세를 하되 왼편으로 돌아보고 한번 휘둘러서 몸을 막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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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백호포휴세를 하되 두손으로 이마를 지나도록 높이 쳐들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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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추산어풍세를 하되 오른편으로 돌아보고 한번 휘둘러 몸을 막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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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벽력휘부세를 하여 왼편으로 향해 한번 치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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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그대로 왼편으로 돌아부고 몸을 막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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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비전요두세를 하여 오른편으로 향해 한번치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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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그대로 오른편을 돌아 보고 몸을 막고 마친다. |
격구(擊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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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구(擊毬)
옛날 무희의 하나. 공치기·장(丈)치기·봉구(棒球)·봉희라고도 한다. 중국에서 전래된 놀이로서 당(唐)과 송(宋)에서는 타구(打球)라는 명칭을 썼다. 한국에서 격구가 언제 시작되었는지는 확실히 알 수 없으나 구정(毬庭)이라는 이름이 918년(고려 태조 1)의 사실 기록에 있는 것으로 보아 삼국시대부터 이미 시작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러나 격구가 유행하기 시작한 것은 고려 의종(毅宗) 때부터이며, 그 후 차차 국가적 오락이 되어 특히 단오절에는 궁정행사의 중심이 되었다.
이런 활발한 풍조가 조선 전기까지 계승되다가 잠시 중단 상태에 있었으나, 1425년(세종 7) 3월 구장(毬場)을 훈련원(訓練院)에 두어 병마조교(兵馬調敎)에 명하여 다시 일으켰다. 효종 때에 이르러 소멸 단계로 들어갔으나, 조선 중엽까지 무과 시험과목의 하나였고, 정조 때에는 이십사반무예(二十四般武藝)의 하나로 정하였다. 경기방법은 기마(騎馬) 혹은 보행(步行)의 2가지가 있는데, 먼저 선수들이 각기 공채를 가지고 구정(毬庭)의 중앙에 세운 구문(毬門)의 양쪽에 대기하고 섰다가 기녀(妓女)가 가무를 하며 구(毬)를 들고 나와 중간 지점에 던지면 동서 양편의 선수들이 규칙대로 공채로 공을 쳐서 구문(毬門)을 통과시키는 것인데 많이 통과시키는 쪽이 이기게 된다.
기록에 의하면 고려·조선시대의 구장은 전전(殿前)에 설치되었으며 선수들은 경기가 끝나면 어전에 나가 재배(再拜)하고 상을 받았다고 한다.
보격구(步擊毬)
도보로 걸어다니면서 행하는 격구. 말을 타고 행하는 격구방식을 간편화하여 도보로 걸어가며 공을 쳐서 정해진 구멍에 들어가게 하는 공치기 경기이다. 고려시대에 말을 타고 행한 격구의 방식이 조선시대에 와서 말을 타지 않고 걸어서 행하는 놀이로 변형되었는데, 이 보격구를 《조선왕조실록》에 타구(打毬) 또는 봉희(捧戱)라고 기록하였으며, 후세에 와서는 장구(杖球)·장치기 혹은 얼레공이라고 하였다. 《태종실록》에 의하면 태종 때에는 어린이들의 놀이로 행할 만큼 보격구가 일반화되었음을 알 수 있다. 《세종실록》과 《세조실록》 기록에 보격구를 행하는 방법이 기록되어 있다. 공을 치는 방법은 여러 명 혹은 십여 명이나 수십 명이 편을 나누어 승부를 겨룬다. 공을 치는 막대기의 모양은 숟가락과 같고 크기는 손바닥만한데, 물소가죽을 사용하며 두꺼운 대나무를 합하여서 자루를 만든다. 공의 크기는 달걀만하며 마노(碼노) 또는 나무로 만든다. 땅을 주발모양과 같이 파서 공을 들여보내는 구멍을 만드는데 이를 와아(窩兒)라고 한다. 공을 치는 사람은 서서 치기도 하고 무릎을 꿇고 치기도 하는데 공이 와아에 들어가면 점수를 얻게 된다. 1번 쳐서 구멍에 들어가면 산가지 2개를 얻고 1번 쳐서 들어가지 못하고 공이 멈추어 있는 곳에서 2~3번 쳐서 들어가면 산가지 1개를 얻는다. 이와 같이 여러 가지 조목으로 된 경기규칙이 정해져 있어서 이에 따라 보격구를 행하였다. 상류층에서는 점차 이 경기를 행하지 않게 되어 임진왜란 이후 없어지게 되었으나 항간의 서민들이 놀이로서 행하여 명맥이 유지되어 왔다. 근래에 전국민속경연대회에 참가한 얼레공치기 민속경기도 이 보격구를 재생시킨 것이다.
구(毬)
옛 민속놀이인 격구(擊毬)나 타구(打毬)에 쓰인 공. 채구(彩毬)라고도 한다. 격구에 쓰이는 것은 바가지처럼 된 두 쪽의 나무를 맞붙인 것이며, 둘레는 약 26㎝이고, 겉에 붉은 칠을 하였다. 타구에 쓰이는 것은 나무나 마노(瑪瑙)로 만들었으며, 크기는 달걀 만하다.
구문(毬門)
격구(擊毬)를 할 때에 공이 나가는 문. 문의 형태와 같은 것을 만들어 세우고 문의 위쪽에 둥근 창을 만들어 그 속으로 공을 나가게 한다. 격구는 옛날 젊은 무관들과 상류층 청년들이 연마하던 무예의 일종으로 말을 타고 달리면서 장(杖)으로 공을 치는 것으로, 공치기 장(杖)치기 방구(棒球)라고 칭한다. 후에는 말을 타지 않고 하는 것도 있었다. 조선 말기에 이르러서는 격구의 기술이 부족하여 구문을 세우지 않고 구문의 표시만 해 놓고 그 속으로 공을 쳐서 내보내면 되도록 하였다.
구장(毬杖)
격구(擊毬)에 쓰는 공채. 월장(月杖)·장(杖)이라고도 한다. 자루 길이 70.5㎝에 나비 6.6㎝되는 장시(杖匙)를 가로 붙였고, 전체 길이 76.5㎝이다. 전체에 오색칠을 했고 끝부분이 손바닥처럼 퍼진 장대이다. 이것으로 공을 쳐서 상대방 문에 설치한 구멍에 집어 넣는다.
구장(毬場)
옛날 격구놀이를 하기 위하여 만들어 놓았던 넓고 큰 마당. 직사각형의 마당에서 행한다. 고려시대에는 격구 또는 타구가 성해서 궁정의 광장을 대개 구장이라고 하였다. 크기는 확실하지 않으나 정조(正祖) 때 만든 《무예도보통지(武藝圖譜通志)》에 의하면 출마표(出馬標)에서 공 있는 치구표(置毬標)까지 50보(步), 치구표 즉 치구장에서 구문(毬門)까지 200보로서, 전체 길이는 250보로 되어 있고 구문의 길이는 5보로 되어 있다.
도돌방울
고려·조선시대의 놀이인 격구(擊毬) 동작의 하나. 도령(桃鈴)·지피(持彼)라고도 한다. 경기자들이 말을 타고 나아가 장(杖)을 말의 귀와 가지런히 하는 귀견줌, 장을 말의 가슴에 곧게 맞대는 할흉(割胸)과, 몸을 기울여 장으로 말의 꼬리에 겨누는 치니매기를 한다. 그 다음 말을 달려 치구표(置毬標)에 이르러 장의 안쪽으로 공을 빗당겨서 높이 일으키는 배지(排至)를 한 뒤에 장의 바깥쪽으로 공을 돌려 밀어 당기는 동작이다.
격구(擊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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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처음에 말을 기(旗)아래 내몰아 지팡이로 비스듬히 발목에 두어 발귀가까이 두는 것을 비이라고 하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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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지팡이로써 말의 가슴에다 댐을 활흉이라 하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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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몸울 기울여 우러러 보고 누워 지팡이로써 말꼬리에 비김을 방미라하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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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달려서 구가 흩어진 곳에 이르러 지팡이 안편으로 비스듬히 구를 당기여 높이 일어나게 함을 이르기를 배지라 하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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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지팡이 바깥 편으로써 구를 밀어 당기어 던짐을 지피라 하고 또 도돌방울이라고도 하니 그대로 비이로써 왼편으로 돌아 또 활흉하고 두번째 방미하고 다시 구를 던진곳에서 이르러 다시 구를 당김을 이르러 구울방울이라 하고 이같이 하기를 세번하고 이에 달리고 쳐서 격구를 행하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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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세번돌기를 비록 마치나 지세가 오목하게 빠져 구를 행할 곳이 못되면 혹 네번 혹 다섯번 돌아도 또한 해롭지 않다. 구를 행하는 처음에 방종하지 아니하고 비이(比耳)로써 혹 두번 혹 세번하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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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비이한 후에 손을 들었다가 놓고 치며 손을 높이 흘리고 아래로 드리워 양양함을 수양수라 하는데 수양수는 정한 수가 없으니 구문에 나가는 것을 한도로 삼어라. 공을 던진 후에 헛 수양수를 하고 또 방미를 하고 또 비스듬히 구를 끌어 들여서 수양수로써 홍문을 향하여 전져 바로 들어 오거던 그대로 구를 쫓아 문으로 나가 헛 수양수로 구를 둘러 세번돌아 한번 구를 끌어내어 도로 홍문으로 들어와 도청막을 지나면 북이 울린다. 그대로 비이로써 달려 말이 나오던 곳으로 돌아 와서 마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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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혹 비이할때 수양수를 미처 구하지 못하여 구가 이미 문에 나갔거던 구문안에서 헛 수양수를 하고 또 구문밖에서 역시 헛 수양수를 하고 혹 구가 구문 앞에 이르러 그치고자 하거던 다시 치고 구문으로 나감이 또한 해롭지 아니하다. |
마상재(馬上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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增
제1세(第一勢): 달리는 말위에 서거나 삼혈총을 쏜다
제2세(第二勢): 좌우로 말을 뛰어 넘는 것으로 속칭 좌우칠보(左右七步)라 한다.
제3세(第三勢): 말위에서 도립(倒立: 거꾸로 서기)한다.
제4세(第四勢): 가로 누워 말위에서 거짓 죽은체 한다.
제5세(第五勢): 좌우의 등자뒤에 몸을 숨긴다(속칭 장니리[障泥裏]라 한다).
제6세(第六勢): 세로 누워 말 꼬리를 베고 눕는데, 혹은 좌우로 몸을 감추거나 좌우로 넘나드는 것을 구분하여 여덟가지 세(八勢)로 하기도 한다.
이상의 기법은 단마(單馬)를 사용하여 하기도 하고, 쌍마(雙馬)를 사용하여 하기도 한다.
案
『업중기』에 석호는 재주 부리는 사람의 옷을 입고 원숭이 모양을 짓고 말 위를 달리는데, 혹은 말 옆구리에 있기도 하고, 혹은 말 머리에 있기도 하고, 혹은 말 꼬리에 있기도 하여 달리는 것 같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원숭이 말타기라 하였다. 이는 즉 마상재의 시작이라고 알려 졌다.
『소편금중(小編禁中)』에는 단오절에 용주표기(龍舟驃騎)지희 라는 놀이가 있는데, 표기(驃騎)하는 자라는 것은 한 사람이 말을 타고 앞서가고, 뒷 사람이 말을 타고 뒤따라 가되, 각자 말 위에서 기교를 부려보며 대개 말타는 것을 연습하는 것인데, 이는 실제는 몽고의 제도이다. 그러한즉 명나라나 조선조에서도 이러한 기교가 역시 있었지만, 원나라에서 이르기를, 단오절은 고려의 격구와 서로 부합한다. 이탁(李濯: 명나라 사람)의 안사람의「마기부(馬伎賦: 말 재간 부리는 노래)」에 요지금안지상(발돗음하여 금 안장에 오르는 것)하여 번개처럼 달려가는 모습이 심히 아름답다(『한서』「사마상여전」에 화목하여 포용하고 조용하며, 우아로움이 실히 아름다운 것을 주석에서 도미[都美]라 했다). 몸을 옥등 곁에 맡기고 질풍처럼 속여 달린 즉 그 체제를 이미 가히 생각할 수 있다.
오늘 중국에서 통칭 입마기(立馬技)라 부르는 것중 안장에 올라 등을 돌리는 것이나, 북처럼 왔다갔다 하는 것은 초마(超馬: 말넘기)류이다.
순풍기(順風旗: 순풍에 깃발 날리기)라는 것은 가로눕는 류이다. 방거상(紡車上)이나 투운환(套雲環)이라는 것은 등자 뒤에 몸을 숨기는 류이다.
목가(木架: 나무 시렁)를 설치하고 여러 가지 자세를 익숙하게 연습하는 것을 잔가( 架: 안장 없이 말타는 것)라 하는데, 그러나 그것이 사서(역사책)에서 산견되는 것은 역시 『좌전』에 진나라 군사 승차를 뛰어넘어 타는 것으로부터 상고할 수 있을 것이다. 가거(駕車: 수레를 부리는 것)는 반드시 말로써 하는 것인즉, 넘어 타는 초마(超馬: 말을 뛰어 넘는 것)류이다.
『사기』에 이광(李廣)이 흉노에 잡히어 두 말 사이에 묶여 있었는데, 이광이 거짓 죽은체 하였다는 것은 두 말에 가로 누웠다는 것이다. 장형(張衡: 자는 평자. 한나라 남양인으로 벼슬은 상서에 이름)의 「서경부」에 장대로 도려(都慮)를 찾는다고 하였다(이선[李善]의 주에 도려국 사람은 몸이 가벼워 줄타기를 잘한다). 부현(傅玄: 자는 휴혁. 진 이양인으로 벼슬은 상서에 이름)의 「서도부(西都賦)」에는 도려인은 발이 빠르고 홀연히 발뒤꿈치로 매달렸다가 넘어졌다 한다.
『사물원시(事物原始)』에 도려는 이내 놀이기예의 이름이라는 것은, 모미 가볍고 줄타기를 잘하며, 발뒤꿈치를 들고배를 돌리는 것의 이름이다. 지금 안장 뒤에 몸을 감추는 것을 할 때 흔괴지세라는 것이 있다.
『교방기(敎坊記)』에 한무제 때 한 어린이가 번근두(蒜筋斗: 주자의 시에 다만 조그마한게 허공에서 근두[筋斗]를 때려서 귀신을 생각하고, 백년신을 반드시 걸머진다)에 절묘하여 능히 장대를 타고 도립하여 역행연도(逆行連倒)라 불렀다. 즉 옛날의 지행(발돋아 걷기. 『회남자』에 지행하고 부리로 숨쉰다 함)은 자라 종류이다.
진나라 함강(335~ 342) 연간에 시랑(侍郞) 고진(顧臻)이 말하기를, 발로는 하늘을 밟고 머리로는 땅을 밟으니, 천지의 순서에 반하고 인륜의 도리를 크게 손상하는 것이 도립(倒立)이다.
『당서』에 배민(裴旻: 벼슬이 용화군사임)이 혜(『북사』에 본래 고막혜라고 불렀으나 동부 우문씨의 별종이다)에 포위되어 말 위에 서서 칼춤을 추었는데, 사방에서 모여든 화살을 모두 칼로 막아 동강냈다.
『징비록(懲毖錄)』에 내금위의 조웅이 용감하여 능히 말위에 서서 달리면서 적을 죽일수 있었는데, 즉 지금의 1세이다.
명나라 왕발(자는 맹단이고 무석인이며, 벼슬은 중서사인에 이르렀다)이 단오에 기사(騎射: 말타고 활쏘기), 격구, 시연(侍嚥: 연회)을 보고 시를 지어 "어지러이 오고 가는데 더욱 빨라 말위에 있는 것을 보면 어느새 말의 배에 숨어 있다." 즉 지금의 제5세로, 소위 등리장신( 裏藏身: 안장 뒤에 몸을 감춘다)이며, 제6세는 세로 누운 것과 비슷하다. 격구의 방미(防尾)는 대개 옛날의 치마시예통(馳馬試藝通)에서는 희마(戱馬)라 한다. 그러므로 『진서』에 환현(桓玄: 자는 경조로 온[溫]의 아들이다. 반역으로 주살됨)이 은중감(殷仲堪: 진군인[陣郡人]. 벼슬이 광주자사로 환현에서 해를 입었다)에게 청사 앞에서 말놀이를 했는데, 창으로 은중감과 비겼다.
『수서(隋書)』「심광(沈光: 자는 총지[總持]요 오흥인으로 벼슬이 절충낭장에 이름)전」에, 심광은 용감하고 재빨라서 희마를 잘해 천하제일이고, 육비선(肉飛仙)이라는 칭호를 얻었다. 또한 팽성(서주 진나라의 팽성현으로, 항우가 여기에 도읍하였다)에는 항우의 희마대( 馬臺)가 있은즉, 지금의 마기(馬伎)라는 것을 비록 희마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마상재(馬上才)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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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처음에 말을 몰고 나올 때 손에 삼혈총(三穴銃)을 가지고 말을 달리며 말위에 서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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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그대로 안장에 의지하여 오른 편으로 말을 뛰어 넘되 배에 부딪치지 않고 발이 잠깐 땅에 닿느니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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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또 왼편으로 말을 뛰어넘되 혹은 세번 혹은 네번 정한 수가 없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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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즉시 거꾸로 서되 머리를 말목 왼편으로 의지하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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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급히 말을 돌려 몸을 뒤집어 가로 누워 거짓 죽는 체 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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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우등이장신을 하되 손으로 모래와 흙을 움켜쥐고 어지러이 던지며 발등을 걸고 거꾸로 끌려간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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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좌등이장신을 하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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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다시 안장을 끼고 등을 뒤집어 말꼬리를 베고 마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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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혹 쌍마를 쓰되 연속하여 얽매여 달리니 모든 세는 한가지이다. |
출처: 三流人生 원문보기 글쓴이: 醉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