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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MARTIN JEHNICHEN / COURTESY OF REFORMATIONSJUBILÄUM 2017 |
청년 루터에게는 떨어버리기 힘든 두려움이 있었다. 자신은 하나님의 은총 밖으로 던져졌으며, 이것이 자신의 탓이라는 공포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이다. 루터는 자신을 하나님의 사랑에서 쫓겨난 난민에 비유했다. 그는 이렇게 썼다. “내 죄가 밤낮으로 나를 짓눌렀다.”
훗날 그는 이렇게 탄식하기도 했다.
“우리가 오직 은혜로 죄를 용서 받고 하나님과 더불어 평화를 누리를 누린다고 우리 마음에 확신을 가진다는 것이 가장 어려운 일이다.”
1517년 10월 31일, 비텐베르크 성 교회 문에 95개조를 붙인 뒤에 루터는 실제로 자기 나라에서 쫓겨난 난민이 되었다. 로마가톨릭 지도자들은 루터의 목숨을 노렸고, 그는 피신해야 했다.
그리고 500년이 지났다. 그런데 독일의 아이콘이 된 개혁자 루터가 오늘 독일이 직면한 문제에 놀라울 정도로 적실한 해답을 제시한다. 수많은 독일인들이 루터에게 친근함을 느끼고 있다. 그리고 그들 가운데 많은 이들에게, 루터는 곧 독일이 난민을 환대해야 하는 이유이다.
“루터는 참 따뜻한 사람이었습니다.”
독일의 유력 일간지 〈한델스블라트〉의 베테랑 기자이자 현재 베를린 대학교에서 가르치고 있는 마르쿠스 지너는 말했다. “루터가 투쟁했기 때문에, 지금 투쟁하고 있는 우리는 그와 일체감을 느끼고 그를 매우 친근하게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끊임없이 하나님의 은혜를 추구한 루터는 신학과 성경과 아우구스티누스를 연구했다. 그리고 그는 은혜의 그리스도를 만났다. 그는 이 은혜를 사람들에게 전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었다.
그래서 95개조를 쓸 때, 루터를 움직인 것은 단순하고 민주적인 이와 같은 몇 가지 생각들이었다: 하나님의 은혜는 모든 신자들에게 유효하다; 모든 사람들이 믿음을 통해 그 은혜에 똑같이 값없이 접근할 수 있다. 루터는 분에 넘치는 은혜를 통한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하는 그리스도인이라면 곤경에 빠진 사람들을 도와야 한다고 확신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의 선행이 하나님께는 필요하지 않지만, 우리 이웃에게는 필요합니다.”
독일인들은 루터와 환대openness에 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독일은 2015년도부터 지금까지 140만의 난민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작년 한 해만 해도, 약 100만 명의 이주민—대부분 중동 출신—이 독일에 들어왔다. 그 뒤로 터키가 국경을 강화하면서 연간 20만 명까지 수가 줄었지만,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은 많은 독일인은 루터의 비전을 난민들에게 안전한 피난처를 지속적으로 제공해야 한다는 요청으로 해석하고 있다.
루터의 유산 이어가기
복음에 대한 헌신은 루터의 신학 발전에서 핵심이었다. 성경을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루터의 강조는 오늘의 독일 프로테스탄트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예를 들어, 마태복음 25:35은 H. C. 볼커 파이글 같은 독일인들에게는 삶의 원동력이다. 그는 독일의회 사목이자 초로의 나이를 무색케 하는 지칠 줄 모르는 베를린 시민이다. 그는 독일 및 유럽연합의 EKD(2300만 신자가 속해 있는 독일 개신교회) 대사로 일했고, 앙겔라 메르켈 총리와 데즈먼드 투투 남아공 주교 같은 이들을 친구로 두고 있다. 그는 베를리너 돔 교회—보통 “대성당”이라 불린다. 베를린에서 가장 큰 교회로 매일 1500명이 방문한다—위원회의 3년 임기 위원장직을 최근에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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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글은 마태복음 25장은 루터가 모든 사람들이 배우기를 바랐던 매우 중요한 교훈이자 독일을 비롯한 모든 곳에서 이주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반드시 적용해야 할 말씀이라고 확신한다. 그는 어느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루터가 우리에게 마태복음의 이 구절을 일깨웁니다. ‘나는 나그네였고, 너희가 나를 영접하였다.’ 따라서 우리는 이 메시지를 난민을 환대하는 데 적용해야 합니다. 루터는 오늘 독일에 살아있습니다. 그는 우리 민주주의의 아버지였습니다. 그는 우리 모두는 저마다 자유인이며 오로지 하나님의 의지에만 복종할 뿐이라고, 그리고 이것은 모든 사람들에게 똑같이 해당한다고 확신했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 사실 때문에,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섬겨야 합니다.”
파이글은 또한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독일로 찾아든 난민들에게 “마마 메르켈”이 되었을 때 그녀에게서 루터의 정신을 보았다. “바로 여기서 그녀의 기독교적 배경을 볼 수 있습니다.” 파이글은 힘주어 말했다. “메르켈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사람들이 고난을 겪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자유 사회입니다. 우리는 도울 것입니다.’ 인간의 존엄성은 신성합니다. 박해를 당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우리가 그들을 맞아들여야 합니다. 이것이 독일인다운 생각입니다.”
파이글은 메르켈이 문호를 활짝 열었기 때문에 표준비자요구조건 같은 것은 “완전히 없어졌다”고 설명했다. “그녀가 한 것은 전적으로 불법이었습니다. 그러나 처음부터 우리 교회는 그녀에게 그렇게 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메르켈의 자세를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보수주의 비평가들은 난민 심사가 약하다고 우려한다. 메르켈이 이끄는 기독교민주연합(CDU)의 다선 의원인 에리카 스타인바흐는 지난 1월에 메르켈 총리의 개방적인 이민 정책에 항의하면서 CDU를 탈당했다.
그러나 “의원들의 다수는 기독교적 가치를 따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정부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렇다. 우리에게는 종교적 가치가 필요하다.’” 파이글은 의회 사목으로 재직하던 시절에 직접 목격했던 일들을 들어가면서 말했다. 교회와 국가의 분리가 독일의 정책 원리이지만, 독일 정부는 종교개혁 기념행사에 재정지원을 하고 있다. “종교의 자유가 독일의 자유 민주주의 원칙과 조화를 이루는 한, 독일은 종교의 자유를 지지합니다.”
조명 받는 종교개혁
파이글은 종교개혁 기념행사들에 대한 언론 보도들 덕분에 독일인들이 기독교적 가치와 책임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고 확신한다. 그는 언론에서 다루는 “많은 이야기들이 우리 독일 사회에서 루터가 한 역할에 관한 것”이라며 고무되어 있다.
AP 베를린 특파원 데이비드 라이징은 2015년에 최고조에 이르렀던 독일의 이주민 논쟁이 지금은 상당히 누그러졌다고 말했다. 독일 방송사 〈도이체 벨레〉가 지난 4월에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메르켈 총리는 9월 총선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었다. 반면에 이민에 반대하는 극우 정당 AfD(독일을 위한 대안)에 대한 지지는 약 10퍼센트로 떨어졌다. [9월 24일 실시한 독일 총선에서 현 총리 앙겔라 메르켈이 이끄는 기민-기사당 연합(CDU-CSU)은 33.0%, 사회민주당(SPD)은 20.5%를 각각 획득했다. 독일을 위한 대안(AfD)은 12.6%의 지지율로 제3당에 올랐다—CTK]
그러나 중동 난민들에게 망명을 허가하는 것이 위험하다는 인식도 여전히 남아있다. 독일 공영방송 ZDF 텔레비전이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독일인의 절반 이상은 독일이 급속한 난민 유입을 제대로 다룰 수 있을지 의심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약 57퍼센트의 응답자들은 이주민 수에 상한선을 긋는다고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여론조사 결과가 어떻게 나왔든, 파이글에게는 루터는 교회가 난민들에게 피난처를 제공하는 것에 찬성했다는 사실이 더 중요하다. 그는 루터가 피난처와 보호를 구하는 사람들에 대한 교회의 책임에 관하여 쓴 1517년의 논문(95개조보다 앞서 쓴 것이다), De his qui ad ecclesias confugiunt, “교회에 온 사람들”을 가리켰다.
“난민들이 곧 추방당할 처지에 놓였을 경우에 교회는 그들에게 피난처가 되어 주어야 합니다.” 독일 세이브더칠드런과 협력하여 난민 어린이들을 돌보고 있는 데지레 베버는 말했다. “난민들에게 피난처가 되어 준 교회들이 우리가 알고 있는 것만 해도 321건이나 됩니다. 난민 수로는 총 539명입니다.”
바로 이런 맥락에서 베를리너 돔 교회도 난민들을 돕는 일에 깊이 관여하고 있다. 이 교회는 이것을 루터의 명령이라 여긴다. 이 교회는 난민 45명 이상을 수용할 수 있는 칸막이 형 숙소를 교회 부지에 세웠다. 독일 정부가 안전이 우려된다고 문제를 제기한 다음에는 같은 액수의 기금을 들여 더욱 안전한 난민 센터를 세웠다.
비텐베르크의 세계 종교개혁 전시관에 있는 "자유의 문"의 하나인 "세계화와 하나의 세계 일치"를 위한 문에 있는 "빛의 예배당." "베를리너 돔"이라는 이름으로 유명한 이 교회는 베를린에서 가장 큰 교회이며 베를린에서 난민 구호 활동에 깊이 관여하고 있다. |
종교개혁 500주년,
난민에 초점을 맞추다
종교개혁 500주년 축하 행사는 루터가 설교했고 95개조를 게시한 도시 비텐베르크에서 이번 여름 절정에 이르렀다. ‘종교개혁 2017 추진 위원회’ 위원장 게르하르트 로버스는 이번 축제가 난민을 중심에 두었다는 점에서 자부심을 느낀다.
“난민은 종교개혁을 기념하는 모든 곳에서 중심 주제입니다.” 로버스는 말했다. 행사들마다 매일 난민을 주제로 한 토론회를 열었고, 정의와 인권과 평화 등 난민을 중심 테마로 하는 비텐베르크 전시회가 매주 이어졌다.
5월부터 9월까지 1000년 고도 비텐베르크 전역에서 이어진 이 전시회에는 개막 주간에만 10만 명이 찾았다. 이 전시회의 방점을 찍은 것은 비텐베르크 시내 7곳에 세운 “자유의 문” 건축물이었다. 그 가운데 한 곳인 “백조 연못”에는 특히 난민 보트 조형물들이 세워졌다.
방문객들이 절망의 상황들을 상징하는 수면 위에 떠 있는 뼈대가 앙상한 나무 보트들을 보면서 백조 연못 주변을 산책한다. 표지판을 따라 이동하면서 그들은 불의와 폭력이 가득한 세상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질문한다.
‘세계화와 하나의 세계 일치’Globalization and One-World Unity라는 이름이 붙은 또 하나의 문에는 반투명 재질로 만들어진 A자형 채플이 있다. 이 교회의 건축적 비유는 빛의 교회Church of Light이다. 이 전시는 루돌프 벤츠가 관장하는데, 비텐베르크의 심리치료사인 그는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치료 및 재활 중인 약물 중독자들과 알코올 중독자들—을 상담하고 있다. 그는 지금 일어나고 있는 사람들의 이동을 “난민 위기”로 규정하는 것에 이의를 제기한다.
“무슨 위기죠? 왜 이것을 위기라 하죠?” 벤츠는 말했다.
“유일한 위기는 나이 든 사람들은 거부하고 젊은 사람들만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그들 모두가 필요합니다. 독일은 항상 아웃사이더들의 나라였습니다. [2차 세계대전] 전후에 우리는 400만이나 되는 난민들을 들이지 않았나요? 아무도 너무 조급하고 너무 많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벤츠는 자신의 EKD 교회가 지원한 전시회를 돕고 싶은 마음에 루터 500주년 행사에 자원봉사자로 참여했다. “우리의 ‘빛의 교회’는 그리스도의 빛과 만인에 대한 그리스도의 열린 마음을 상징합니다.” 벤츠는 말했다.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나에게 오라.’ 그는 차별하지 않으셨습니다. 우리 교회가 앉아서 명상하는 곳에 머문다면, 전혀 쓸모없는 곳이 되고 말 것입니다.”
이민자들의 나라
독일은 이민자들의 나라이다. 이 나라는 단일민족이기를 거부한다. 스테판 킨베르거 목사는 이러한 사실을 강조하는 것을 좋아한다. 미국에서 자랐지만 독일인 부모를 둔 킨베르거 목사는 베를린에 있는 미국인 교회에서 목회한다. 이 교회는 루터신학과 개혁신학 모두를 수용하는 유서 깊은 국제 교회이다.
“우리는 이민자들의 교회입니다.” 그가 말했다. “독일은 이민자들이 없다면 존재하지 못할 겁니다.” 그는 한 여성이 그에게 했던 말을 회상한다. 그녀는 이민자들을 지지하지만 “그들[무슬림들]은 나쁜 부류의 이민자들”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녀에게 독일에는 이미 상당히 많은 무슬림이 있다—최근 통계 수치로는 470만 명—는 사실과 무슬림은 독일에서 새로운 사람들이 아니라는 점을 일깨워주었다.
“독일에 이런 신화가 존재합니다.” 킨베르거 목사는 말을 이었다. “본질적으로 ‘독일적인’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신화 말입니다. 이것은 못된 생각입니다. 독일은 상당히 오래 전부터 여러 민족이 뒤섞여 있는 가방이었습니다.” 국제 컨설팅 그룹 A. T. 커니의 2015년 보고서를 보면, 난민 수를 줄일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받아들인 난민 수보다 두 배 더 늘려야 현재의 인구와 경제 엔진을 앞으로 수십 년 동안 건강하게 유지할 수 있다.
이 미국인 교회에는 일부 난민들도 예배에 참석한다. 킨베르거는 이라크를 탈출한 한 여성과 그녀의 딸 이야기를 꺼냈다. “그녀는 기독교에 열려 있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 싶어 합니다. 그녀는 영어로 대화가 가능합니다. 그래서 그녀는 여기에 왔습니다. 우리 교회는 항상 난민에게 열려 있고 환대하고 있습니다. 또한, 우리 교회에서 최근에 이집트 출신이 기독교로 개종했습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에는 더 많이 배우고 싶어 하는 난민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아랍어를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 미국인 교회는 난민을 위한 모금 행사를 연다. 그리고 이 교회 교인들은 난민 수용 센터에서 자원봉사를 해 오고 있다. 그들의 파트너는 대부분 시리아인들이다.
이 교회는 또한 난민들을 돕는 음식 나눔 네트워크인 베를린 테이블Berlin Table의 240개 배식 센터 가운데 하나이다. 이 교회 한 곳에서만 100명이 넘는 사람들에게 음식을 제공하고 있는데, 대부분이 난민이다.
“저는 이 교회와 이 교회에서 하는 난민 옹호활동에 늘 감명을 받습니다.” 킨베르거가 말했다. “이 교회는 항상 피난처를 찾는 사람들과 이민자들과 함께 일해 왔습니다.”
킨베르거는 종교개혁에 대한 독일의 국가적 조명 덕분에 난민을 위한 사역이 힘을 받고 있다고 말한다. “이것이 모든 것들에, 특히 이민자들에 대한 태도에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그가 말했다. “세상에 대한 이러한 열린 마음은 개신교의 더 진보적이고, 외부지향적인 정신을 반영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종교개혁이라는 테마의 자연스러운 결과입니다.”
종교개혁에 대한 국가적 관심은 또한 복음전도라는 목적에도 기여한다. 난민들을 돕는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이라는 점은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이주민들에게 그리스도인들이 그들이 생각했던 그런 “사악한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많은 독일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값없이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루터의 메시지가 결국에는 이주민들을 환대하는 문화—독일에서 그리고 전 세계에서—가 승리할 것이라는 커다란 희망이 된다.
“루터의 종교개혁은 이제 세계 교회가 되었습니다.” 킨베르거는 말했다. “스스로를 루터를 따르는 사람이라 부르는 이들이 세계 곳곳에 존재합니다.” CT
짐 윌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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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종교개혁이란 말 조차 모르는 이곳 많은 사역자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