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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기념일
하나 마쯔리(Hana Matsuri 꽃축제), 일본 석가탄신일, 로마의 날
2. 역사와 사건
217년 - 로마 황제 카라칼라가 자신의 경호대장에게 암살되고 후임 마크리누스가 뒤를 잇다.
632년 Charibert II왕이 아들과 함께 암살당하다.
1093년 - Walkelin에 의해 새로운 윈체스터 대성당이 완성되다.
1139년 - Roger II 파문당하다.
1271년 - 시리아에서 술탄 바이바스가 Krak des Chevaliers를 정복
1378년 - 교황 우르바노 6세 교황으로 추대됨
1742년 - 조지 프리드릭 핸델의 오라토리오 《메시아》가 초연되다.
1866년 - 오스트리아 제국을 상대로 이탈리아와 프러시아 동맹.
1804년 나폴레옹이 프랑스 황제로 즉위하여 프랑스 제국 성립을 선포하자, 이에 대항하여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인 프란츠 2세는 오스트리아 대공국을 중심으로 신성 로마 제국 영역 안의 자신의 영지뿐만 아니라 바깥에 있는 영지까지 포함한 지역을 오스트리아 제국으로 승격시킨다. 프란츠 2세는 신성 로마 제국의 제위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오스트리아 제국의 프란츠 1세로 즉위한다. 1805년 오스트리아를 포함한 제3차 대프랑스 동맹을 대파한 나폴레옹은 신성 로마 제국 내 대부분의 소국을 복속시켜 라인동맹을 만들었다. 이에 따라 황제는 1806년 신성 로마 제국을 해체하는데, 이 때문에 그는 독일 역사상 최초이자 마지막인 이중황제(Doppellkaiser)가 된다.
1809년 프랑스와의 전쟁에서 패배하여 수도 빈까지 점령당한 오스트리아는 나폴레옹에 굴복하여, 1810년에는 프란츠 1세의 딸인 마리 루이즈가 나폴레옹과 혼인하게 된다. 그러나 1813년 오스트리아는 다시 프랑스와 싸워 라이프치히 전투에서 프랑스를 결정적으로 패배시키고 프랑스군을 독일 지역에서 몰아냈다. 1814년 파리를 점령하였고, 나폴레옹의 제국은 붕괴된다.
오스트리아 제국은 1814년부터 1815년까지 열린 빈 회의를 이끌며 롬바르디아, 티롤, 달마티아, 베네치아 등의 영토를 회복했을 뿐 아니라, 독일 내 여러 군소 국가들의 맹주이자 유럽 최강대국으로서의 지위를 다시 확인했다.
민족주의의 소용돌이[편집]
오스트리아 제국은 나폴레옹에 대항한 전쟁에서 결국 승리했지만, 프랑스 혁명의 유산으로서 전 유럽으로 확산된 자유주의와 민족주의를 막을 수 없었다.
나폴레옹 몰락 이후 오스트리아의 메테르니히는 빈 체제를 주도하며 보수적 구체제로의 복원을 시도하였고, 1820년대 이후 각종 자유주의, 민족주의 사상을 철저히 탄압하였다.
그러나 단순히 합스부르크 왕가가 소유한 영토의 집합에 불과했던 다민족국가 오스트리아의 결속력은 약했고, 제국 내에서 자유주의와 민족주의가 퍼지면서 여러 민족들의 독립운동이 격화되자 오스트리아 제국은 내부적으로 혼란한 상황에 놓인다.
1848년 프랑스에서 2월 혁명이 일어나 루이 필리프의 제정이 전복되자, 그 여파로 오스트리아에서도 자유주의 운동이 일어났다. 3월부터 빈을 포함한 대도시에서 황제의 무능함과 보수적 정치체제에 반발하여 소요 사태가 발생했고, 그 결과 수상 메테르니히가 실각하고 황제 페르디난트 1세도 퇴위한다. 새로운 황제로 페르디난트 1세의 조카인 프란츠 요제프 1세가 즉위하게 된다.
외부적으로도 민족주의의 확산은 이탈리아와 독일의 통일 운동을 자극함으로써, 오스트리아의 영향력을 감소시켰다.
프랑스의 지원을 받는 사르데냐 왕국과의 싸움에서 패배하여 이탈리아 지역에서의 기존 지배력을 잃은데 이어, 독일의 맹주 자리를 놓고 1866년 벌인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에서도 패배한다. 이는 신성 로마 제국 이후 독일의 중심 국가로서의 역할을 했던 오스트리아가 독일 제국의 범위에서 배제되는 결과를 가져온다. 뿐만 아니라, 독일 통일 과정에서 프로이센과 이탈리아가 동맹을 맺으면서 오스트리아 제국은 베네치아를 포함한 북부 이탈리아 지역을 이탈리아에게 상실하게 된다.
이중제국으로의 전환[편집]
민족주의의 바람이 제국 전역을 휩쓸면서 각 민족의 분리 요구는 거세졌고, 다민족 국가인 제국의 붕괴를 막기 위해서는 정치체제의 변화가 필요했다. 이탈리아와 독일 지역에서 축출된 후 동쪽 지역의 발전을 모색했던 오스트리아 제국은 헝가리인들과 타협을 하게 됐다.
헝가리인들은 1840년부터 자치를 요구하며 혁명을 일으켰다. 한때 러시아가 헝가리인들의 반란을 진압한 바 있었으나 오히려 헝가리인의 단결만 낳았다.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 패배 후인 1867년 5월 29일, 프란츠 요제프 1세는 헝가리의 귀족들과 타협하여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정치[편집]
이 문단은 아직 미완성입니다. 여러분의 지식으로 알차게 문서를 완성해 갑시다.
전제군주제를 채택했으나, 이중제국으로 전환하면서 입헌군주제로 바뀌게 된다.
역대 황제[편집]
1804년 - 1835년 프란츠 1세 (1768-1835)
1835년 - 1848년 페르디난트 1세 (1793-1875)
1848년 - 1916년 프란츠 요제프 1세 (1830-1916) 1867년부터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황제
국가[편집]
<nowiki />이 부분의 본문은 황제 찬가입니다.
국가는 하이든이 프란츠 황제에게 헌상한 "하느님, 프란츠 황제를 지켜 주소서"이다. 여기서 프란츠는 신성 로마 제국의 프란츠 2세, 다시 말해 오스트리아 제국의 초대 황제인 프란츠 1세를 가리킨다.
가사는 1835년, 1836년, 1848년, 1853년에 개정되었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국가는 1853년 당시의 가사를 사용했다.
문화[편집]
1804년부터 1867년까지의 기간은 나폴레옹 이후 근대 유럽 세계가 형성되던 격변의 시기였지만, 문화적으로 찬란한 유산을 남긴 시기이기도 하다. 오스트리아 제국도 예외가 아니었다.
이 시기 빈에서는 슈베르트와 체르니와 같은 작곡가가 활동 중이었고, 독일의 베토벤 역시 빈으로 옮겨와서 죽을 때까지 이곳에서 작품활동을 하였다. 요한 슈트라우스 1세, 요한 슈트라우스 2세도 이 시기 오스트리아 제국 출신이며, 헝가리의 피아니스트 프란츠 리스트 역시 오스트리아 제국에서 활동했다.
문학에서는 프란츠 그릴파르처가 이 시기의 대표적 극작가이다.
한편 오스트리아 제국의 수도사 그레고어 멘델은 멘델의 유전법칙을 발견했으며, 크리스티안 도플러는 도플러 효과를 발견했다.
종교[편집]
로마 가톨릭이 국교였다.
1804년 나폴레옹이 프랑스 황제로 즉위하여 프랑스 제국 성립을 선포하자, 이에 대항하여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인 프란츠 2세는 오스트리아 대공국1805년 오스트리아를 포함한 제3차 대프랑스 동맹을 대파한 나폴레옹은 신성 로마 제국 내 대부분의 소국을 복속시켜 라인동맹1806년 1809년 프랑스와의 전쟁에서 패배하여 수도 빈까지 점령당한 오스트리아는 나폴레옹에 굴복하여, 1810년에는 프란츠 1세의 딸인 마리 루이즈1813년 오스트리아는 다시 프랑스와 싸워 라이프치히 전투1814년 파리 오스트리아 제국은 1814년부터 1815년까지 열린 빈 회의를 이끌며 롬바르디아, 티롤, 달마티아, 베네치아 민족주의의 소용돌이[편집]오스트리아 제국은 나폴레옹에 대항한 전쟁에서 결국 승리했지만, 프랑스 혁명 나폴레옹 몰락 이후 오스트리아의 메테르니히는 빈 체제를 주도하며 보수적 구체제로의 복원을 시도하였고, 1820년대 그러나 단순히 합스부르크 왕가 1848년 프랑스에서 2월 혁명이 일어나 루이 필리프메테르니히가 실각하고 황제 페르디난트 1세프란츠 요제프 1세 외부적으로도 민족주의의 확산은 이탈리아와 독일의 통일 운동을 자극함으로써, 오스트리아의 영향력을 감소시켰다. 프랑스의 지원을 받는 사르데냐 왕국과의 싸움에서 패배하여 이탈리아 지역에서의 기존 지배력을 잃은데 이어, 독일의 맹주 자리를 놓고 1866년 벌인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 이중제국으로의 전환[편집]민족주의의 바람이 제국 전역을 휩쓸면서 각 민족의 분리 요구는 거세졌고, 다민족 국가인 제국의 붕괴를 막기 위해서는 정치체제의 변화가 필요했다. 이탈리아와 독일 지역에서 축출된 후 동쪽 지역의 발전을 모색했던 오스트리아 제국은 헝가리인들과 타협을 하게 됐다.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 패배 후인 1867년 5월 29일, 프란츠 요제프 1세는 헝가리의 귀족들과 타협하여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정치[편집]이 문단은 아직 미완성입니다. 여러분의 지식으로 알차게 문서를 완성해 전제군주제를 채택했으나, 이중제국으로 전환하면서 입헌군주제 역대 황제[편집]국가[편집]이 부분의 본문은 황제 찬가 국가는 하이든프란츠 2세, 다시 말해 오스트리아 제국의 초대 황제인 프란츠 1세 가사는 1835년, 1836년, 1848년, 1853년에 개정되었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문화[편집]1804년부터 1867년까지의 기간은 나폴레옹 이후 근대 유럽 세계가 형성되던 격변의 시기였지만, 문화적으로 찬란한 유산을 남긴 시기이기도 하다. 오스트리아 제국도 예외가 아니었다. 이 시기 빈에서는 슈베르트와 체르니와 같은 작곡가가 활동 중이었고, 독일의 베토벤요한 슈트라우스 1세, 요한 슈트라우스 2세도 이 시기 오스트리아 제국 출신이며, 헝가리의 피아니스트 프란츠 리스트 문학에서는 프란츠 그릴파르처 한편 오스트리아 제국의 수도사 그레고어 멘델은 멘델의 유전법칙을 발견했으며, 크리스티안 도플러는 도플러 효과 종교[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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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4년 - 영프 협정이 체결되다.
1911년 - 천주교 대구대목구 설정/네덜란드의 물리학자 Heike Kamerlingh Onnes가 초전도성을 발견다.
1970년 - 와우아파트 붕괴 참사가 발생하다.
1982년 - 서울 서대문구에서 지하철 3호선 공사장이 붕괴되는 사고가 발생하여 10명이 사망하였다.
1993년 - 마케도니아 공화국이 유엔에 가입하다
2008년 - 대한민국 국방부는 2002년 6월에 발생한 서해 교전의 공식 명칭을 제2연평해전으로 변경한다고 발표했다./ 대한민국 삼성건설이 건설하는 아랍에미리트에 있는 부르즈 칼리파가 630m로 착공 38개월 만에 세계 최고 인공 구조물 기록을 갱신하다./ 국제올림픽위원회 집행위원회 회의에서 2012년 하계 올림픽부터 국외 성화봉송의 폐지 문제를 논의할 예정이라고 AP 통신이 보도했다./ 삼성 특검 : 삼성 특검은 김인주 삼성그룹 전략기획실 사장이 삼성 에버랜드 전환사채 저가 배정 사건에 개입한 정황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3. 태어난 사람
1512년 - 스코틀랜드의 국왕 제임스 5세
1605년 - 스페인의 국왕 펠리페 4세.
1655년 - 신성 로마 제국 사령관 바덴 변경백 루트비히 빌헬름.
1818년 - 덴마크의 국왕 크리스티안 9세.
1832년 - 독일의 군인 알프레트 폰 발더제.
1847년 -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기업인 카를 비트겐슈타인.
1859년 - 독일의 철학자 에드문트 후설.
1861년 -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정치인 손병희.
1870년 - 미국의 사격 선수 존 페인.
1875년 - 벨기에의 국왕 알베르 1세.
1882년 - 일제강점기의 관료 유진혁.
1889년 - 잉글랜드의 지휘자 에이드리언 볼트.
1892년 - 미국의 배우 메리 픽퍼드.
1896년 - 대한민국의 정치인 허정.
1898년 - 한국의 원예육종학자 우장춘.
1905년 - 노르웨이의 스피드 스케이트 겸 사이클 선수 베른트 에벤센.
1908년 - 북한의 음악가 이면상.
1911년 - 미국의 화학자 멜빈 캘빈.
1912년 - 노르웨이의 피겨 스케이팅 선수 소냐 헤니.
1918년 - 미국의 대통령 부인 베티 포드.
1919년 - 대한민국의 정치인 정희택. 짐바브웨의 정치인 이언 스미스.
1926년 - 독일의 신학자 위르겐 몰트만.
1931년 - 북아일랜드의 가수 패디 벨.
1938년 - 가나의 외교관, 제7대 UN 사무총장 코피 아난.
1941년 - 영국의 패션 디자이너 비비안 웨스트우드.
1945년 - 대한민국의 배우 장용.
1946년 - 대한민국의 정치인, 전 외교통상부 장관 유명환.
1947년 - 프랑스의 기업인, 세계무역기구 사무총장 파스칼 라미.
1951년 - 대한민국의 법조인, 전 법무부장관 이귀남. 일본의 배우 모모이 가오리.
아이슬란드의 정치인 게이르 호르데.
1955년 - 대한민국의 전 야구 선수 김바위. 조지아의 전 축구 선수, 현 축구 감독 알렉산드르 치바제.
1955년 - 대한민국의 기초단체장 최명희.
1960년 - 미국의 배우 존 슈나이더.
1966년 - 미국의 배우 로빈 라이트 펜.
1969년 - 대한민국의 배우 정호빈.
1970년 - 대한민국의 전 축구 선수 김병지.
1971년 - 대한민국의 현 야구 감독, 전 야구 코치, 전 야구 선수 조원우.
1974년 - 대한민국의 기업인 박지훈.
1976년 - 대한민국의 가수 고유진.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임재철.
1979년 -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김은중. 토고의 축구 선수 모하메드 카데르.
1981년 - 대한민국의 거미.
1983년 - 네덜란드의 축구 선수 엣손 브라프헤이트. 대한민국의 가수, 배우 제이.
1984년 -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김영빈. 대한민국의 피겨 스케이트 선수 신예지. 대한민구의 농구 선수 한정원.
1985년 - 대한민국의 배우 기은세. 대한민국의 가수 김상미. 대한민국의 정치인 손수조.
1986년 - 베네수엘라의 야구 선수 펠릭스 에르난데스. 러시아의 축구 선수 이고리 아킨페예프. 일본의 배우 사와지리 에리카.
1987년 -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정의도. 네덜란드의 축구 선수 로이스톤 드렌테.
1988년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김명성.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김성준.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장필준.
1989년 - 일본의 가수 다카하시 히토미.
1990년 - 대한민국의 가수 샤이니의 멤버 종현.
1991년 - 일본의 아이돌 그룹 AKB48의 멤버 다카하시 미나미.
1992년 - 미국의 배우 쉘비 영(Shelby Young)
4. 사망
217년 - 로마 제국 21대 황제 카라칼라.
1364년 - 프랑스 발루아 왕가의 군주 장 2세.
1492년 - 이탈리아의 정치가, 시인 로렌초 데 메디치.
1748년 - 청나라의 황후 효현순황후.
1801년 - 조선 후기의 학자, 천주교 순교자 정약종.
1835년 - 독일의 언어학자 빌헬름 폰 훔볼트.
1848년 - 이탈리아의 작곡가 가에타노 도니제티.
1881년 - 청나라의 황후 효정현황후.
1897년 - 독일의 정치가 하인리히 폰 슈테판.
1919년 - 헝가리의 물리학자 외트뵈시 로란드.
1925년 - 일제강점기의 실업인 홍충현.
1931년 - 스웨덴의 시인 에리크 악셀 카를펠트.
1943년 - 이스라엘의 언론인 이타마르 벤 아비.
1946년 - 중국 공산당 지도자 보구.
1949년 - 대한민국의 정치인 이병국
1949년 - 독일의 군인 빌헬름 아담.
1950년 - 러시아의 무용수 바슬라프 니진스키.
1970년 - 룩셈부르크 여대공 부군 부르봉파르마의 펠릭스.
1973년 - 스페인의 화가 파블로 피카소.
1976년 - 신성 로마 제국의 황후 오스트리아의 클라우디아 펠리치타스.
1980년 - 대한민국의 정치인 김재황.
1981년 - 미국의 군인 오마 브래들리.
1986년 - 일본의 연예인 오카다 유키코.
1989년 - 대한민국의 연극인, 정치인 이해랑.
2000년 - 미국의 배우 클레어 트레버.
2007년 - 대한민국의 배우, 성우 이도련.
2013년 - 영국의 총리, 마거릿 대처
2013년 - 대한민국의 사진작가 보리
2014년 - 미국의 프로레슬러 얼티미트 워리어
출처: https://oldconan.tistory.com/37757?category=558354 [올드코난 (Old Conan) 세상사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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