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aum
  • |
  • 카페
  • |
  • 테이블
  • |
  • 메일
  • |
 
카페정보
카페 프로필 이미지
5670 아름다운 주마등
카페 가입하기
 
 
 
카페 게시글
불 교 空(공)의 뜻, 윤회론, 중음신, 육도 윤회, 극고/극락, 중음신은 유아론, 마음은 연기 현상
강교수 추천 2 조회 111 26.03.24 06:41 댓글 14
게시글 본문내용
 
다음검색
댓글
  • 26.03.24 06:57

    첫댓글

  • 작성자 26.03.24 08:21

    죽어서 다음 생으로 가는 나는 있다? 없다? 이중표 교수의 니까야로 읽는 금강경(9)
    https://youtu.be/Oaf_llaN5yY

  • 작성자 26.03.24 09:52

    윤회가 있다, 없다, 윤회하는 주체가 있다, 없다를 따지지 말고 현생을 잘 살아라는 것이 부처님 말씀입니다.
    현재 윤회가 없으면 과거/미래도 윤회가 없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부처님과 이중표 교수의 말이고...
    본인이 존경하는 강교수는 이렇게 말하죠.
    "지금, 현재, 미래에 살지 못하는 개체는 사멸할 확률이 커진다. 현재에만 사는 것은 극히 위험한 일이다. 인간은 동시에 현재와 미래에 살아야 하며, 때로는 동시에 과거, 현재, 미래 삼세에 살아야 한다. "

  • 작성자 26.03.24 12:34

    반야심경의 色卽是空, 空卽是色에 있는 空에 대해서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諸比丘! 眼生時無有來處, 滅時無有去處. 如是眼, 不實而生, 生已盡滅, 有業報而無作者, 此陰滅已, 異陰相續, 除俗數法. 耳・鼻・舌・身・意亦如是說, 除俗數法."
    비구들이여, 보는 나(眼)는 나타날 때 오는 곳이 없고, 사라질 때 가는 곳이 없다오. 이와 같이 보는 나(眼)는 부실(不實)하게 나타나며, 나타나면 흔적 없이 사라져서 업보(業報)는 있으나 작자(作者)는 없다, 이것이 사라진 뒤에는, 다른 온(陰)이 이어질 뿐이지, 어떤 고정된 자아가 옮겨 가는 것은 아니다. 다만 세간의 통속적 명칭에 의거해서 말할 뿐이다. 귀・코・혀・몸・의(意)에 대해서도 모두 마찬가지이며, 이것 역시 세속의 이름을 따라 그렇게 말하는 것일 뿐이다.”

  • 작성자 26.03.24 12:37

    ChatGPT의 한문 문장 설명입니다.
    此陰(차음): “이 음(陰)”
    여기서는 어떤 실체적 자아가 아니라, 오온(五蘊)적 현상 덩어리, 또는 감각기관에 관련된 조건적 집합을 말합니다.
    滅已(멸이): 멸하고 나서
    異陰相續(이음상속): 다른 음이 이어진다, 즉 완전히 같은 것도 아니고 완전히 끊긴 것도 아닌 조건적 연속
    除俗數法: 직역하면 세속의 수(數)・명목(名目)・관습적(慣習的) 표현을 제외하면 뜻으로, 세간의 편의적 이름을 빼고 엄밀히 말하면 입니다.
    여기서 俗數法(속수법)은 보통 “세속의 이름 붙임”, “관습적 언어”, “편의상 하는 말” 정도로 이해하시면 됩니다. 그래서 이 문장은 결국 이렇게 말합니다. 눈이 있다, 귀가 있다, 내가 본다, 내가 듣는다고 말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세속의 편의적 표현일 뿐이고, 엄밀히 말하면 순간순간 조건 따라 생멸하는 온(蘊=陰=무더기, 집합)의 상속만 있을 뿐, 그 뒤에 따로 “변치 않는 ‘나’나 ‘작자’가 있는 것은 아니다”라는 뜻입니다.

  • 작성자 26.03.24 13:07

    이 경에서는 ‘업보(業報-업에 따라 받는 결과)는 있으나, 행위자(作者)는 없다(有業報而無作者)’라는 것이, 空의 제일의적(第一義的=근본적, 궁극적)인 의미(意味=뜻)라고 이야기한다.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만지고, 생각하며 살아가는 우리의 삶을 통찰해 보면 보고 듣는 業報만 있을 뿐, 보고 듣는 行爲者로서의 自我는 없다는 것을, 즉 自我의 공성(空性)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空은 ‘自我의 없음’을 의미함과 동시에 ‘業報의 있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것은 불교의 無我說(무아설)이 곧 불교의 업설(業說)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불교의 空과 無我는 이와 같이 自我는 없고 業報만 있음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서 불교의 無我와 空은 業報를 의미한다.
    (출처 : 이중표 교수 지음. 니까야로 보는 반야심경)

  • 작성자 26.03.24 15:14

    한쪽에 앉은 바라문 청년 쑤바 또데야뿟따가 세존께 말씀드렸습니다. “고따마 존자여, 사람들 가운데는 잘난 사람과 못난 사람이 있는데 그 원인은 무엇이고, 그 조건은 무엇입니까? 고따마 존자여, 사람들 가운데는 수명이 짧은 사람도 있고, 장수하는 사람도 있으며, 병이 많은 사람도 있고, 병이 없는 사람도 있으며, 추한 사람도 있고, 예쁜 사람도 있으며, 힘이 없는 사람도 있고, 큰 힘을 가진 사람도 있으며, 재산이 없는 사람도 있고, 많은 재산을 가진 사람도 있으며, 천한 가문의 사람도 있고, 귀한 가문의 사람도 있으며, 어리석은 사람도 있고, 현명한 사람도 있습니다. 고따마 존자여, 이와 같이 사람들 가운데는 잘난 사람과 못난 사람이 있는데 그 원인은 무엇이고, 그 조건은 무엇입니까?

  • 작성자 26.03.24 15:15

    바라문 청년이여, 어떤 여자나 남자는 생명에 대하여 자비심 없이 손에 피를 묻히고 잔인하게 살생을 일삼는다오. 그 업으로 인하여, 그와 같은 행동을 했기 때문에, 그와 같이 실행했기 때문에, 그는 몸이 무너져 죽은 후에 험난하고, 고통스러운 지옥과 같은 악취(惡趣-나쁜 곳)에 태어난다오. 만약에 몸이 무너져 죽은 후에 험난하고, 고통스러운 지옥과 같은 악취에 태어나지 않고 인간으로 돌아온다면, 어느 곳에 태어나더라도 수명이 짧다오. 바라문 청년이여, 생명에 대하여 자비심 없이 손에 피를 묻히고 잔인하게 살생을 일삼는 것이 짧은 수명으로 가는 길이라오. 바라문 청년이여, 어떤 여자나 남자는 살생을 하지 않고, 살생을 삼가고, 몽둥이와 칼을 내려놓고, 자비롭게 모든 생명을 애민(哀愍)하며 사는 것이 장수로 가는 길이라오.

  • 작성자 26.03.24 15:16

    바라문 청년이여, 어떤 여자나 남자는 사문이나 바라문을 찾아가서 ‘존자여, 무엇이 善(선)이고, 무엇이 不善(불선)입니까? 어떤 것이 비난받을 일이고, 어떤 것이 비난받지 않을 일입니까? 어떤 게 해야 할 일이고, 어떤 것이 해서는 안 될 일입니까? 나에게 오랫동안 불이익과 괴로움을 가져오는 것은 무엇이고, 나에게 오랫동안 이익과 행복을 가져오는 것은 무엇이고, 나에게 오랫동안 이익과 행복을 가져오는 것은 무엇입니까?’라고 묻지 않는다오. 그 업(業)으로 인하여, 그와 같은 행동을 했기 때문에, 그와 같이 실행했기 때문에, 그는 몸이 무너져 죽은 후에 험난하고, 고통스러운, 지옥과 같은 악취(惡趣)에 태어난다오. 만약에 몸이 무너져 죽은 후에 험난하고, 고통스러운, 지옥과 같은 악취에 태어나지 않고 인간으로 돌아온다면, 어느 곳에 태어나더라도 어리석다오.

  • 작성자 26.03.24 15:16

    바라문 청년이여, 사문이나 바라문을 찾아가서 ‘존자여,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불선입니까? 어떤 게 비난받을 일이고, 어떤 게 비난받지 않을 일입니까? 어떤 게 해야 할 일이고, 어떤 게 해서는 안 될 일입니까? 나에게 오랫동안 불이익과 괴로움을 가져오는 건 무엇이고, 나에게 오랫동안 이익과 행복을 가져오는 것은 무엇입니까’라고 묻지 않는 것이 어리석게 되는 길이라오.

  • 작성자 26.03.24 15:17

    바라문 청년이여, 어떤 여자나 남자는 사문이나 바라문을 찾아가서 ‘존자여,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불선입니까? 어떤 게 비난받을 일이고, 어떤 것이 비난받지 않을 일입니까? 어떤 게 해야 할 일이고, 어떤 게 해서는 안 될 일입니까? 나에게 오랫동안 불이익과 괴로움을 가져오는 것은 무엇이고, 나에게 오랫동안 이익과 행복을 가져오는 것은 무엇입니까?’라고 묻는다오. 그 업(業)으로 인하여, 그와 같은 행동을 했기 때문에, 그와 같이 실행했기 때문에, 그는 몸이 무너져 죽은 후에 행복한 천상에 태어난다오. 만약에 몸이 무너져 죽은 후에 행복한 천상에 태어나지 않고 인간으로 돌아온다면 어느 곳에 태어나더라도 현명하다오. 바라문 청년이여, 사문이나 바라문을 찾아가서 ‘존자여,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불선입니까? 어떤 것이 비난받을 일이고, 어떤 것이 비난받지 않을 일입니까? 나에게 오랫동안 불이익과 괴로움을 가져오는 것은 무엇이고, 나에게 오랫동안 이익과 행복을 가져오는 건 무엇입니까?’라고 묻는 게 현명하게 되는 길이라오.

  • 작성자 26.03.24 15:36

    바라문 청년이여, 이처럼 짧은 수명으로 가는 길을 가면 수명이 짧게 되고, 긴 수명으로 가는 길을 가면 장수하게 되고, 많은 병으로 가는 길을 가면 병이 많게 되고, 무병으로 가는 길을 가면 무병하게 되고, 추한 모습으로 가는 길을 가면 추한 모습이 되고, 사랑스러운 모습으로 가는 길을 가면 사랑스러운 모습이 되고, 무력하게 되는 길을 가면 무력하게 되고, 세력을 갖게 되는 길을 가면 세력을 갖게 되고, 가난하게 되는 길을 가면 가난하게 되고, 부유하게 되는 길을 가면 부유하게 되고, 천한 가문에 태어나는 길을 가면 천한 가문에 태어나고, 귀한 가문에 태어나는 길을 가면 귀한 가문에 태어나고, 어리석게 되는 길을 각면 어리석게 되고, 현명하게 되는 길을 가면 현명하게 된다오.
    바라문 청년이여, 이와 같이 중생은 업(業)의 소유자(所有者)이며, 업(業)의 상속자(相續者)이며, 업(業)을 모태(母胎)로 하며, 업(業)의 친척(親戚)이며, 업(業)에 의지(依支)한다오. 업(業)이 중생(衆生)을 이와 같이 잘난 사람과 못난 사람으로 나눈다오.

  • 작성자 26.03.24 15:35

    부처님께서는 스스로를 업(業)을 이야기하는 사람이라고 칭하셨다. 중생은 업의 소유자이며, 업의 상속자이며, 업을 모태로 하며, 업의 친척이며, 업에 의지하며, 업이 중생을 잘난 사람과 못난 사람으로 나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불교는 한마디로 말해서 업설(業說)을 가르치는 종교이다. 그런데 이러한 업설이 무아설(無我說)이나 연기설(緣起說)과 모순(矛盾)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이것은 불교의 업설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다. 無我說은 ‘行爲者로서의 自我는 없고 오직 業報만 있을 뿐’이라는 業說의 다른 표현일 뿐이다.

  • 작성자 26.03.24 15:36

    이와 같이 공이 ‘업보만 있음’을 의미한다면, “舍利子, 色不異空, 空不異色, 色卽是空, 空卽是色, 受想行識, 亦復如是”는 다음과 같은 의미를 지닌다. 샤리뿌뜨라여! 형색(形色)을 지닌 몸(色)은 자아(自我)로서의 행위자(行爲者)가 아니라 삶의 결과로 나타난 업보(業報)이고, 그와 같은 업보가 실로 형색을 지닌 몸이다. 그러므로 형색을 지닌 몸은 삶의 결과인 업보와 다르지 않고, 업보는 형색을 지닌 몸과 다르지 않다. (그러므로) 형색을 지닌 몸은 업보이고, 업보가 형색을 지닌 몸이다. 느끼는 마음(受), 생각하는 마음(想), 조작하는 마음(行), 분별하는 마음(識)도 실로 이와 같다.
    『般若心經』에서는 이런 의미에서 ‘色卽是空, 空卽是色’이라고 말하고 있다. 만약 몸이 내가 아니라고 해서 몸을 없애고, 느낌, 생각, 의지, 의식이 내가 아니라고 해서 이들을 없애버리면 남는 것은 허무(虛無)일 뿐이다. 문제는 몸이나 느낌 등의 실상(實相 )을 알지 못하고 이들을 잘못 보고 있는 데 있다. 오온(五蘊)의 실상을 알고 보면, 오온이 곧 그대로 참나(眞我)인 것이다.
    이상 출처 : 이중표 교수 지음. 니까야로 보는 반야심경

최신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