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5 편
의와 화평이 서로 입맞추었으며
요절: 10절
내용 관찰
85편은 세 부분으로 나누어집니다. 1-3은 과거에 입은 은혜를 진술합니다. "주의 땅에 은혜를 베푸사 야곱의 포로 된 자들이 돌아오게 하셨으며"(1) 죄악을 사하시고 덮으셨나이다(2) "주의 진노를 돌이키셨나이다"(3) 함과 같이 포로에서 돌아오게 해주신 은혜입니다.
둘째 부분(4-7)은 현재의 고난에서도 구원되기를 간구하고 있습니다. "주의 분노를 거두소서"( 4) "영원히 노하시며 대대에 진노하시겠나이까"(5)하고 호소합니다. ”주의 인자하심을 우리에게 보이시며 주의 구원을 우리에게 주소서"(7)하고 포로에서 귀환한 후에 직면한 어려움에서도 구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선지서를 보면 한결같이 남은 자들이 포로에서 귀환하게 될 것을 말씀하면서 번영과 많은 축복들을 약속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귀환한 후의 상황은 선지자들이 예언한 복보다는 많은 어려움에 직면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복원되는 재건 성전은 솔로몬의 성전에 비해서 너무나 초라하셨으며 그나마 주변의 극심한 반대에 부딪혀 16년 동안이나 중단되었으며 백성들은 나태한 가운데 또다시 세속화되어 가고 있었습니다. "우리들 다시 살려달라”(6)고 간구합니다.
셋째 부분(8-13)은 미래에 성취될 예언적인 말씀입니다. 85편의 중심점은 여기에 있습니다.
구속사의 맥락에서 성경을 볼 때에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구속받은 것이 영원한 구속이 아니듯이 바벨론의 포로로부터 귀환하게 된 것이 성령이 말씀하고 있는 궁극적인 구원은 아니었던 것입니다. 만일 그렇다면 그리스도의 대속적인 죽음은 무의미한 것이 됩니다.
시편 기자는 "내가 하나님 여호와께서 하실 말씀을 들으리니"(8)함과 같이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되었는데 그것은 화평의 말씀이었습니다(8하). 즉 선지자들을 통하여 주신 언약이 메시야가 오실 때에 성취될 것임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본문 8절에 "화평을 말씀하실 것이라"했는데 에스겔 37:24에 보면 "내 종 다윗이 그들의 왕이 되리니 그들에게 다 한 목자가 있을 것이라 하고 메시야에 대한 예언을 하시면서 "내가 그들과 화평의 언약을 세우리니"(겔37:26)하고 이 언약이 그때 이루어질 것을 말씀합니다. 이에 시편 기지는 "진실로 그의 구원이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 가까우니 영광이 우리 땅에 머무르리이다"(9) 하고 "진실로" 그렇게 될 것을 믿습니다 하고 감격해 합니다. 이 말씀이 85편의 핵심입니다.
"영광이 우리 땅에 거하리이다”는 표현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마1:23)는 임마누엘을 의미합니다. 요 1:14에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하고 말씀합니다. 이보다 더 경이롭고 영광스러운 일은 달리 없습니다. 이것이 영광이 우리 땅에 거하리이다의 의미입니다. 학개 2:9에서도 재건되는 성전의 초라함에 낙심하고 있는 백성들에게 ”이 전(殿)의 나중 영광이 이전(前) 영광보다 크리라"고 위로하고 있는데 이는 참 성전으로 오실 예수그리스도의 영광이 솔로몬 성전의 영광보다 클 것을 가리키는 말씀입니다.
예언적인 말씀인 8-13절에는 "화평”(8,10), "구원"(9), " 영광”(9), ”의"(10,11,13)라는 복음적인 단어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메시야가 오시게 되면은 “긍휼과 진리가 같이 만나고 의와 화평이 서로 입맞추었으며"(10)하신 만남과 연합(입맞춤)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하여집니까.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말미암아 중간에 막힌 담이 제거되었기 때문입니다.
죄는 분리시키나 화목 제물이 되신 그리스도는 만남과 교제의 회복을 가져다 주셨습니다. 이것이 8절에서 말씀하신 "화평”이었던 것입니다.
화평의 언약은 그리스도의 초림으로 성취되었으나 그 완성은 그리스도의 재림 때에 이루어질 것입니다.
묵상해 봅시다.
과거에 은혜 베푸심이 무엇입니까?
현재의 간구가 무엇입니까?
미래에 주어질 영광이 무엇입니까?
적용: 구원 얻은 형제에게도 현재 많은 문제가 그대로 남아 있을 것입니다. 고난 너머로 미래에 주어질 영광을 바라보십시오.
암송: 인애와 진리가 같이 만나고 의와 화평이 서로 입맞추었으며(10)
제 86 편
은총의 표징
요절: 17절
내용 관찰
86편은 곤고한 한 영혼이(1) 하나님 앞에 나아가 단독자로서 기도와 간구(6)를 올리고 있는 내용입니다. 86편은 기도의 모범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간절함과 순전함을 담고 있습니다. 얼마나 "주 하나님 여호와"를 구하고 있는가를 보십시오(주=33번 언급). 얼마나 간절하며 얼마나 진실 된지를 보십시오. 얼마나 하나님을 높이고 있는가를 주목하십시오.
86편은 자고로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린“ 그리스도의 모형적인 기도로 인식되어 왔습니다. 기도의 절정은 "영원토록 주의 이름에 영화를 돌리오리니"(12)라는 말씀입니다. 9절에서도 "주의 이름에 영화를 돌리리이다"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최우위에 두고 있습니다. 이는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요17:4)하신 말씀을 연상케 합니다. 이어서 ”이는 내게 향하신 주의 인자하심이 크사 내 영혼을 깊은 스올에서 건지셨음이니이다"(13)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은 신약에 의해서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한 예언으로 인정되고 있는 "내 영혼을 스올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지 않게 하실 것임이니이다"(161:10)와 결부시켜 생각할 때에 이는 명백한 부활에 대한 증거로 받아 드려질 수가 있습니다. 16편이나 86편 이 모두 다윗의 시임을 감안할 때에 더욱 그러합니다. 그렇다면 결론에서 "은총의 표적을 내게 보이소서 그러면 나를 미워하는 그들이 보고 부끄러워하오리니"(17)한 ‘표적'은 무엇을 뜻하는 것이겠습니까. "교만한 자가 일어나 나를 치고 강포한 자의 무리가 내 혼을 찾았사오며 자기 앞에 주를 두지 아니하였나이다"한 그 교만하고 강포한 자들이 보고 부끄러워할 그 '표적'이 무엇을 가리킴으로 보아야만 하겠습니까. 그것은 어떤 표적보다도 그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셨음을 증거하는 표징인 부활을 가리킴이 분명합니다.
주님께서도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요나의 표적밖에는 보여줄 표적이 없느니라"(마16:4)고 주님의 부활이 최종적인 표적임을 말씀하셨습니다. 사도바울도 아덴에서 행한 설교를 통해서 "이에 저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증거를 주셨음이니라”(행17:31)고 이것이 최고의 표적임을 증거 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이야말로 대적자들을 치명적으로 부끄럽게 만든 ‘표적'이었던 것입니다. 로마서 1:4에서도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으니"합니다. 부활하심으로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이셨음을 입증하는 표적이었다는 말씀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86편의 간구는 ‘영혼'에 대한 간구가 핵심을 이루고 있습니다. "내 영혼을 보존하소서"(2) 합니다. "내 영혼이 주를 우러러보오니 주여 내 영혼을 기쁘게 하소서"(4) 합니다. "내 영혼을 깊은 스올에서 건지셨음이니이다”(13)고 말씀합니다. 대적자들이 내 혼을 찾고 있다고(14) 말씀합니다. 또한 본문은 하나님의 선하신 성품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주는 선하사 사죄하기를 즐거워하시며 주께 부르짖는 자에게 인자함이 후하심이니이다“(5) 합니다. "주는 긍휼히 여기시며 은혜를 베푸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자와 진실이 풍성하신 하나님이시오니"하고 증거합니다. 예수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은 선하신 하나님은 영화를 받으시고 원수들은 부끄러움을 당한 사건이었던 것입니다(17).
묵상해 봅시다.
86편의 중심적인 기도가 무엇입니까?
은총의 표적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표적으로 인하여 하나님과 대적자들이 받게 된 것은 무엇입니까?
적용: 86편은 개인적인 기도입니다. 본문을 통해서 기도의 모범을 삼으십시오. 형제의 기도에 최우위에 두고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암송: 은총의 표적을 내게 보이소서(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