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여름휴가는 결혼 17년 만에 처음 가보는 휴가다운 휴가였다. 결혼 후, 16년 동안 병환의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던 터라 휴가는 꿈도 꾸지 못했다. 차를 타고 드라이브를 가거나 펜션 등 어머니를 모시고 갈 수 있는 곳만 갔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부터 유행했던 캠핑을 가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캠핑은 인류의 역사와 함께한다. 수렵과 채집으로 생을 유지해야 했던 인류는 정착 생활이 될 때까지는 삶 자체가 캠핑이었다. 생계를 위한 필수 수단이었던 캠핑은 1901년에야 레저로 의미가 바뀌게 되었다. 문명이 발달하고 사회가 복잡해질수록 사람들은 자연으로 돌아가 야생 생활에서 휴식을 통해 힘을 얻고자 하는 욕구가 강해졌다.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자연과 가까이하는 캠핑에서 평안과 자유를 느끼게 되는 것 같다. 최근엔 오토캠핑장, 글램핑장, 캠핑장처럼 꾸민 식당, 차박 등 보다 더 편리한 방법으로 캠핑의 낭만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2010년, 한없이 어릴 것만 같던 아이들은 15살과 13살이 되었다. 캠핑하러 가자는 말에 들떠서 기본적인 캠핑 장비를 구입하는 모니터 너머를 기웃거렸다. 처음 가보는 가족 캠핑에 우리도 들떠 있었다. 숯불을 피워 놓고 음악을 들으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지글거리는 삼겹살과 구운 감자도 맛있겠지. 운이 좋다면 밤하늘의 반짝이는 별을 보며 텐트 속에서도 잠들지 못하겠지. 이런 상상의 나래를 펴며 캠핑 준비를 했다.
드디어 출발하는 날, 현관에는 이삿짐을 방불케 하는 짐들로 가득했다. 당시 LPG 중형 승용차가 전부였던 우리는 캠핑 장비와 3박 4일 동안 먹을거리와 생필품, 여벌 옷 등을 차에 실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많은 짐들이 어떻게 다 들어갔는지 상상이 안 된다. 조수석의 내 발치에도, 뒷자리에 아이들이 앉은 틈에도 짐들이 꽉꽉 찼다.
여행 목적지를 지리산으로 정해 남원 쪽 뱀사골 달궁계곡으로 갔다. 휴가철이라 텐트 칠 자리를 겨우 마련했다. 물놀이하는 사람들의 즐거운 비명을 들으며 차에서 짐을 내리기 시작했다. 텐트를 처음 쳐보니 서툴러서 짐 내리고 텐트 치는 데 한 시간이 더 걸렸다. 헤매는 모습이 안타까웠던지 주위에서 한두 마디씩 거들었다. 아이들과 남편은 한차례의 물놀이로 더운 땀을 식히고 돌아왔다. 꾸물거리던 날씨가 비로 변해 물놀이는 한차례로 끝났다.
화덕에 불을 피워 저녁 먹을 준비를 했다. 빨간 숯불 위에서 고기와 소시지가 지글거렸다. 캠핑 온 사람들이 많아 다닥다닥 텐트를 쳤기 때문에 옆 사람들의 이야기와 먹는 모습이 보였고, 밤늦은 시간까지 떠들고 노는 소리도 캠핑장 분위기가 그러려니 했다. 사그라지는 숯불처럼 아이들은 잠에 빠졌고, 부슬부슬 비는 내리고, 밤은 깊어 갔다. 계곡에 물이 불어나 쿵쿵거리는 물소리가 빗소리와 함께 무섭게 들렸다.
두 번째 날은 반대편 구례 쪽의 피아골로 향했다. 거기도 텐트족들이 많기는 마찬가지였다. 피아골 캠핑장은 달궁계곡보다는 더 정비가 되어 있는 듯했다. 평상 하나를 배분받아 또다시 텐트를 펼치는 작업이 시작되었다. 두 번째 작업이라도 쉽지는 않았다. 텐트를 설치하랴, 화덕을 설치하랴, 먹을 것과 짐들을 정리하며 지쳐갔다. 어제의 불편한 잠이 급하게 피곤을 몰고 왔다.
그래도 아이들은 신나서 계곡에서 물놀이를 하고 싶어 했다. 피아골의 맑고 깨끗한 물줄기와 싱그러운 계곡에서 나이도 잊은 채 아이들과 놀았다. 지리산의 품에서는 해도 더 맑은 것 같았다. 그렇게 두 번째 밤이 찾아왔다. 화덕에 불을 붙이고 고기를 굽고, 감자를 포일에 싸서 숯불 속에 넣어 두었다가 맛나게 먹었다.
늘 직장 일로 바쁘게만 살던 남편도 아이들과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웠다. 먹을 것 차려 놓고 교훈적인 이야기를 펼치는 남편의 버릇을 아이들이 넉넉하게 웃음으로 받아 내며 밤이 깊어 갔다.
셋째 날은 마땅히 텐트를 칠 곳이 없어서 차를 타고 지리산 둘레를 돌다가 섬진강 강둑에 텐트 칠 자리를 정했다. 차에서 조금 떨어진 곳이라 낑낑대며 또 짐을 날라 텐트를 쳤다. 고운 모래사장을 맨발로 걷고 강에서 물놀이하며 시간을 보냈다. 강물을 바라보며 먹는 라면은 최고의 맛이었다. 밤하늘은 반짝이는 별들의 놀이터여서 동심에 젖기도 했다.
캠핑장에서 우리는 밤마다 돌아가신 어머니 이야기를 했다. 어머니도 함께 오셨으면 참 좋았겠다는 말들을 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다섯 명이 한 가족이었는데 어딘가 빈 것 같고, 우리 부부는 물론, 아이들도 할머니 생각에 기대했던 여행이 생각만큼 즐겁지 않았다.
여행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그 많은 짐들을 다시 집안으로 들였다. 텐트랑 그릇들을 씻고 말리면서 생각했다. 다시는 캠핑 같은 것은 가고 싶지 않다고, 그렇지만 캠핑의 매력은 가끔씩 우리를 부추겨서 차를 큰 차로 바꾸고, 텐트도 더 큰 것으로 바꾸고 몇 차례 더 캠핑하러 갔지만, 결코 여기저기 이동하지 않고 한자리에서 보냈다. 캠핑은 장비 발이라는 말이 있듯이, 많게 보였던 장비들을 어렵게 캠핑장에 가져가 펼쳐 놓으면 부끄럽기 짝이 없어 장비도 하나씩 늘어갔다.
지금은 큰아이가 독립해서 세 가족만 어디를 간다는 게 이상하다. 더군다나 캠핑은 너무 힘들다. 그 여행을 이야기할 때면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텐트 치고 개키고, 짐 나르고 그 생각밖에 안 나요."
아이들이 커가면서 여러 해 동안 캠핑은 잊혔지만, 첫 번째 캠핑의 기억은 잊히지 않는다. 그래도 캠핑은 좋다.
* 사진은 검색한 이미지입니다. 감사합니다.
첫댓글 캠핑의 추억 잘 읽었어요.
단란한 가족여행이기에 더 좋을 것 같은데 수고로움이 따른건 어쩔 수 없지요.
이제 세월이 훌쩍 지났으니 조금 편안하고 쉽게 사는 것도 필요하답니다.
자기 몸도 아낄줄 아는 지혜를 발휘할 때 아닌가요?
마음은 그런데 마음대로 되지 않아서 걱정입니다. 눈앞에 쌓여 있는 일들이요...
캠핑의 낭만이 부럽지만, 이제는 힘들어서 엄두를 못내고 있습니다.
캠핑도 호불호가 있지만, 마니아 층이 있더라구요. 감사합니다.
멋져요!!
캄핑장에는 모두가 기쁨으로 가득하지요!!
가족이 함께 움직이는 것이 사랑이지요!!
아무래도 엄마들은 즐거움 보다는 힘듦이 더 많이 차지하는 것 같습니다. 아이들이 자라서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당장은 바쁜 일상때문에 캠핑은 생각도 못하고 있습니다. 추억 삼아서 적어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유년의 추억 한자락 아이들에게 오래도록 남았을 것 같습니다
고생했던 것이 지나고나면 오래도록 기억속에 머물더군요
사진과 함께 글속의 정경을 그려봅니다
고생한 것이 더 오래 기억에 남는다는 말씀이 정말 맞는 것 같습니다. 힘들게 다녀왔던 캠핑이 기억에는 더 남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힘들었다는 생각보다는 '그런 일이 있었지. 그때가 좋았지'라고 생각하게 된다는 것이 아이러니 입니다. 정다운 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