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 '은의 루트' 마무리
인야는 대성당 광장의 한쪽 구석(늘 가던 그 자리)으로 갔다.
배낭을 내려놓고 신발도 벗은 뒤, 자신만의 도착 세레머니를 시작했다.
그렇지만 무엇부터 해야 할지 잠깐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멍한 기분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문득 떠올랐다.
이 마지막 은의 루트 길을 시작하던 첫날, 살라망까 외곽 마을에서 자신을 초대했던 그 가족(그들이 부탁했었다. 무사히 이 길을 마치고 산티아고 성당에 도착하면, 자신들을 위해 기도해달라고. 그리고 바르셀로나의 누리아도 전화 통화 중에 웃으면서, 자기를 위해 기도해달라고 했었고......)
최소한 그러고는 싶었다. 인야는 그들을 떠올리며 기도를 올렸다.
두 손을 모아 기도를 했다는 게 아닌, 그들이 믿는 신을 향해... 마음 속으로만, 그들에게 축복을 내려달라고 빌었던 것이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자신을 위해 기도한 건 없었다. 어차피 신을 믿지 않는 사람이니까.
그런 뒤 배낭과 지팡이, 신발까지(여기까지 자신을 데려다준 모든 물건들)에 고마움을 표하며... 사진을 찍어두는 행위도 했다.
이로써 '은의 루트' 천km를 세 번에 걸쳐, 결국... 끝낸 셈이었다.
다른 사람들처럼 형식적인 종이 한 장인 인증서를 받지 않았다고 해서, 이 길을 끝낸 의미가 줄어드는 건 아닐 것이었다. 이런저런 어려움을 견뎌내고, 마침내 그 끝을 보았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충분한 가치가 있을 테니까.
그런데 인야는 무덤덤했다.
후련함이 마음 밑바닥에 깔려 있는 건 분명했지만, 그것도 잠시...
'이 많은 사람들 틈에서, 나는 무엇을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밀려왔다.
지금 이 순간은 긴 길의 끝이면서 동시에, 정작 이번 여정의 진짜 목적인 '산티아고 가는 길' 프랑스 코스를 거꾸로 걷는 여정의 시작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 심란함 때문에, 인야는 은의 루트를 끝낸 홀가분함에서 오히려 멀어져 있었는지도 몰랐다.
'여길 떠나면서야 뭔가 감정이 살아날 듯한데. 그렇다면 지금 바로 떠나버릴까?'
그런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적어도 하룻밤은 여기서 자야 할 것이었다.
남은 천km에 이르는 산티아고 가는 길(아라곤·프랑스 코스 포함)을 위한 준비도 필요했던 것이다.
날씨가 갑자기 쌀쌀하게 느껴졌다.
정신없이 걷느라 자신이 반팔 차림인 것도 몰랐는데, 주변 사람들은 다들 긴팔을 입고 있었다.
9월도 하순, 가을이었던 것이다.
'어쨌거나 지금 바로 떠날 순 없어. 빨래도 해야 하고... 돈도 찾아야 하고 정리할 것도 있으니...... 일단은 알베르게를 찾아가서 숙소를 정해놓고, 조금 여유를 찾기로 하자.'
이렇게 인야는 이베리아반도의 남쪽에서 북서쪽으로 이어지는 천km의 길을 끝냈다.
한꺼번에 걸은 것이 아니라, 겨울 까미노 끝부터 까미노를 걸을 때마다... 그 일부씩을 나눠, 세 번에 걸쳐 마무리한 것이었다. 말하자면 까미노의 자투리 시간을 이용해 걸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니 이 길에 대해 특별한 결론을 내리는 것도 이상한 일이었다.
굳이 이 길에서만 느꼈던 독특한 무언가를 찾을 필요는 없었고, '은의 루트'든 '까미노'든... 인야에겐, 그게 그것이었다.
다만 스페인 안쪽의 길이고, 목적지가 산티아고였을 뿐... 세 번에 나눠 길을 걸으면서, 그때마다 세월의 변화에 따라 느낌도 조금씩 달라... 통일감 없이 다소 산만한 인상이 남은 것도 사실이었다.
게다가 정확히는 '은의 루트'를 완주한 것도 아니었다.
그 길은 남부 '세비야(Sevilla)'에서 '아스투리아스(Asturias)' 지방의 '히혼(Gijon)'까지로, 그 자체로 천km가 넘는 길이었다. 인야는 다만, '겨울길'의 프랑스 코스에서 만난 '마리 루스(Mari Luz)'가 이 길을 걸어보라고(더 힘도 들지만 자연 그대로인 길이라며) 권했던 것에서 시작해... 세 번에 걸쳐 그 일부씩을 걸었을 뿐이다.
굳이 '은의 루트 완주' 자체를 목표로 삼은 적은 없었다. 그저 걷다 보니 끝을 보고 싶었고, 그 끝이란 것도 막연히 '산티아고에 도착하는 것'이었지, '은의 루트'니 '금의 루트'니 하는... 구체적인 목표 같은 건 없었다.
'은의 루트'는 까미노에 비해 덜 알려진 만큼, 걷는 사람이 적어... 오히려 그만큼 사람들과의 유대감과 정을 나눌 수 있는 장점도 있었다. 북쪽과는 다른 풍광과 기후로 더 힘들 때도 있었지만, 그만큼 덜 개발된 자연스러움과 시골 특유의 순수한 인정도 느낄 수 있었고.
(첫 번째 길에서는 일주일을 걸으며 단 한 사람을 만났을 뿐인데, 이번 세 번째 길에서는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있었고... 매번 걸을 때마다 사람이 늘어나는 것도 느낄 수 있었다.)
인야는 이 길을 걸었다고 딱히 자랑하거나 선전할 생각마저 없었다.
다만 이번까지 네 번에 걸쳐 산티아고 가는 길을 걸으며, 원 없이 방랑의 길을 걸어봤다는 데는 만족했다.
이번엔 반복이 아니라, 처음부터 끝까지 처음 걷는 길이었기에... 호기심이 더 일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걷는 동안 몇 번이고 생고생을 사서 한다는 푸념도 했고, 다 부질없는 짓이라며 포기할 생각도 했었지만... 다 끝내놓고 보니, 안 걸었던 것보다는 훨씬 나았다는 기분만은 부정할 수 없었다.
이 길을 다시 걸을 것인지는 장담할 수 없지만(그럴 계획은 없다), 적어도 걷지 않았던 것보다는 나을 것이었다.
그거면 됐다.
지금도 인야는 산티아고 가는 길 천km 가을 길을 거꾸로 한 번 걸으려 하고 있으니, 더 깊이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산티아고에 도착한 뒤에도, 인야의 마음 한구석엔 뭔가 개운치 않은 여운과 아쉬움이 남았다.
그래서 잠시 혼자만의 시간을 갖기로 했다.
광장에서 가장 후미진 조용한 자리에 앉으니, 마음이 편해졌다.
'이제, 어떻게 할까?'
결정을 내려야 했다. 지금 바로 프랑스 쪽으로 떠날 것인가, 아니면 오늘 밤은 산티아고 알베르게에서 잘 것인가.
이번이 벌써 네 번째로 이 광장에 서는 것이라 특별한 감동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그냥 바로 떠나고 싶지도 않았다. 뭔가 준비를 해야 할 것도 있었지만, 오늘 저녁 만큼은 어딘가 식당에 가서 맛있는 음식과 비노도 한잔 하며 나름의 축하를 하고도 싶었던 것이다.
아무리 다음 날 이곳을 떠난다 해도, 은의 루트를 끝낸 의미까지 등한시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니까, 최소한의 마음 정리는 해두고 싶었던 것이다.
남들은 다들 저마다의 방식으로 자축하고 있는데, 자신만 유난 떨 것도 없었으니까.
'그렇다면 어서 알베르게에 가서 자리를 잡아놓고, 글 정리도 하고 빨래도 하자. 그래야 남은 시간을 여유 있게 즐길 수 있을 테니......'
그렇게 결정을 내리고도 인야는 한 시간 정도 대성당 앞 광장에 더 앉아 있었다.
혹시 T일행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해서였다. 오늘로 그들과의 여정도 끝이니, 최소한 작별 인사 정도는 나누고 헤어져야 할 테니까.
그러나 그들은 끝내 눈에 띄지 않았다.
알베르게가 만원이 될까 조바심이 난 인야는 결국 그들에 대한 미련을 버릴 수밖에 없었다.
1시 반경 알베르게에 도착한 인야는 짐을 풀고 빨래를 널었다.
그 방에는 이미 한 한국인 처자가 먼저 와 있었는데, 은의 루트 500km에서는 단 한 명의 한국인도 만나지 못했던 인야였는데, 산티아고에 도착한 바로 그날 프랑스 코스를 끝낸 한국 처자를 만난 것이었다.
마지막 번호로 방의 끝자리에 들어갔던 것이 공교롭게도 그 만남으로 이어졌던 것으로, 그날 밤 인야는 그 처자와 한 식당에 가서 '까미노의 마지막 밤'을 즐겼다.
여기서 인야는 '은의 루트'를 마감하기로 한다. 은의 루트도 결국 산티아고가 종착역이었으니, 산티아고에 도착해 그날 밤 묵을 알베르게를 정하는 것으로 이 여정의 매듭은 지어진 셈이었다. 그날 저녁부터의 이야기는 '산티아고 가는 길 프랑스 코스, 거꾸로 걷는 여정'으로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