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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리 알고 떠나는 대마도 여행 ◉
1. 대마도는 한국의 거제와 비슷한 작은 섬이므로 편의시설이 많이 부족한 면이 있을 수 있습니다.
약간 불편하시더라도 미리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2. 대마도는 일본의 땅이므로 출국 당일 여권은 꼭 지참하셔야 합니다.
3. 현지의 기후는 한국과 비슷하므로 계절에 맞는 간편한 복장으로 준비하시면 무방하며
우천에 대비한 접이 우산, 비옷 정도는 준비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한국의 부산과 날씨가 같습니다)
4. 대마도 음식물 반입은 육류(통조림 등)반입이 금지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밀봉한 병, 팩 처리 식료품, 반찬류(김치, 상추, 마늘 고추 등)휴대 통관이 가능합니다.
과일과 채소류(흙 제거된)는 간단한 검역이 필요하므로 참고 부탁드립니다.
5. 면세품 구입 후 출국날짜와 출국장소를 알려주시면 됩니다.
(부산 국제터미널 씨플라워호 출국장 내 면세품 물품 인도장),
출국 시 찾아가셔야 합니다.
6. 입국 시 면세 제한량은 담배 1 보루, 양주 1병 입니다.
(일본 입국 시 팩소주 1인당 4~5개 정도 가능)
7. 불의의 사고나 환자발생시 즉각 가이드나 회사로 연락바랍니다.
8. 대마도에는 국제전화가 없으므로 공중전화에 10엔 투입 후 00539-82-1을 누른 후
0을 누르면 한국교환원이 나오며 콜렉트 콜로 통화하실 수 있습니다.
(국제 여객터미널 2층에 로밍센타가 있으므로 로밍 하실분은 출국 전 하시면 됩니다.)
9. 대마도에서는 지역의 특수성 때문에 환전 및 신용카드가 결재되는 곳이 거의 없으므로
출국 전에 미리 엔화로 환전을 해 두실 필요가 있습니다.
(단, 대마도 내 면세점에서는 원, 달러, 신용카드사용이 가능합니다.
현지 극히 일부에서도 신용카드 사용 가능한 곳도 있습니다.)
(국제 여객 터미널 2층 부산은행에서 환전 가능합니다.)
10. 일본은 전압을 100볼트를 사용하며, 우리나라는 200볼트이므로 착오 없으시기를 바랍니다.
헤어드라이기 등 일본으로 가지고 가서 사용하시려면 100볼트/200볼트 겸용이어야 하며,
콘센트는 철물점에서 구입하셔서 준비 하셔야 합니다.
12. 천재지변으로 인한 선박결항시 운행재개까지의 체재숙식은 손님께서 부담하심을 원칙
으로 합니다. (해외여행 표준약관 10조 4항 의거)
13. 기타 밑반찬, 김치,초고추장, 커피 등을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 기타 행사는 GUIDE 안내를 따라주시기 바랍니다.
[ 대마도 안내 ]
ㅇ 위치 : 동경 129º, 북위 34º
일본 후쿠오카(福岡)까지는 138km이지만 부산까지는 49.5km의 거리에 있어
맑은 날은 쓰시마의 서해안에서 한국의 산과 거리를 볼 수 있다.
ㅇ 면적 : 708.66㎢
니이가타현의 사도가시마(佐渡島)와 가고시마현의 아마미오시마(奄美大島)에
이어 일본에서 3번째로 큰 섬으로, 나가사키현 전체 면적의 17.3%를 차지하고 있다.
울릉도의 10배, 거제도의 2배 면적에 해당한다.
ㅇ 지형
남북 약 82km, 동서 18km로 가늘고 긴 모양의 섬으로 북쪽으로 한국의 부산과
남쪽으로는 이키, 규슈(九州)와 면해 있다.
복잡한 리아스식 해안으로 그 연장길이가 915km에 달한다.
섬 면적의 89%가 산림지형으로 가파르고 울창한 산림이 해안까지 이어져있다.
본섬 외에 107개의 섬이 있으며 그중 5개 섬이 유인도이다.
본 섬은 두 개의 섬으로 나눠져있고, 이는 다리(만제키바시)로 연결되어 있다.
ㅇ 기후
바다에 둘러싸여 쓰시마난류의 영향을 받아 온난하고 강우량이 많은 해양성기후입니다.
봄에는 아시아 대륙의 계절풍으로 인해 황사가 불어옵니다.
이 시기는 추운 날과 따뜻한 날이 교차하는 삼한사온의 시기이기도 합니다.
약 한 달간의 장마 기간도 있지만, 여름은 비교적 시원하게 지낼 수 있습니다.
가을은 때때로 오는 태풍으로 강우량이 많은 편이지만 10월부터는 청명한 날이 이어집니다.
겨울은 대륙에서 불어오는 강한 계절풍으로 인해 본격적인 쌀쌀한 추위가 찾아오지만
눈이 쌓이는 일은 없습니다.
ㅇ 대마도 현황 이모저모
1) 시현황 ① 주소 : 일본국 나가사키현 대마시(日本國 長崎縣 對馬市:2004/3/1).
② 시의원수 :25명(임기4년)
③ 해외사무소 : 대마도 부산사무소(051-254-9205)
④ 경찰서 : 2개
⑤ 소방서(지소+분소) : 101개소
⑥ 사법기관 : 검찰지청 : 1개소, 법원지원 1개소
2) 대마도와의 거리
이즈하라 ↔후쿠오카 = 123km, 상대마도 ↔ 한국 거제도 : 49.5km.
이즈하라 ↔ 부산= 103km, 이즈하라 ↔ 동경 = 964km
3) 대마도 면적 : 약 709㎢, 도로 총길이 : 1,100km(1941년경 전쟁준비완료)
- 제주도의 40%, 거제도의 1.7배, 울릉도+독도의1 0배
4) 지 형 : ① 남 북 ↔ 82km. 동서 ↔ 18km로 세장형(細長形).
② 국도(國道)는 382번 도로이고, 길이는 91km.
③ 해안선 : 915km (제주도: 약 420km)
5) 섬 : 110개 (본섬 3개 + 부속섬 107개)
6) 유인도 : 8개 (본섬 3개 + 부속 섬5개)
7) 운 하 : 2곳 → 만관교(万關橋) ․ 대선월(大船越) => 섬을 3 개로 나눔.
8) 인 구 : 34,921명(2011.7.31. 현재), 가구수 : 15,000여 가구.
9) 마 을 : 125개 자연 마을로 구성.
10) 학 교 : ① 초등-27 ② 중학-19 ③고등-3
11) 하 천 : 45개
12) 터 널 : 52개
13) 항 구 : 11개 : 국제항구 2곳
14) 어 항 : 53개 (어선:6300여척)
15) 온 천 : 4곳 (①타마노유 ②아시유 ③호타루노유 ④나기사노유)
16) 발전소 : 4개 (① 화력- 3개소 ② 풍력단지 -1곳 풍력기 2기)
17) 사 찰 : 39개 (일본 전국 - 약10,000개)
18) 신 사 : 29개 (전국:약20만개)
19) 포대적 : 31개
20) 한국불상 : 133체
21) 노령인구 : 35% (65세 이상) 22)가임인구:4%
23) 식품공장 : 1,208개
24) 종합병원 : 3개․ 일반진료소 32개 그중 치과 19개소
25) 산 업 : ① 관광 및 관광관련 제조업 54% ② 어업 21% ③ 농업 0.8%
④ 임업 ⑤광업 등으로 구성
26) 경제수목 : 1억2천7백8십9만1천1백2십3만4천5백6십7명→일본인구4년치 쌀 값
① 히노키(편백나무:檜:일명 노송나무) ② 스기목(杉:삼나무)
③くぬぎ(참나무: 대주(對州) 숯이 유명)
27) 어 종 : 오징어(いか), 전복(鰒:あわび), 아까다이, 구로다이, 히라스
28) 한국어학습 : 3곳 ① 대마고등학교 한국어과(2003년 ~ 현재까지)
② 대마시청 관광진흥과(150여명) ③상대마정(상대마지소)
29) 민속 자료관 : 7개 (현립1개+6개)
30) 1922년→대마도에 처음으로 자동차 운행(이즈하라:嚴原 ↔ 게치:鷄雉)
★우리나라최초 자동차 등장은 1903년이고, 그것을 이용한사람은 고종황제였다.
31) 노선버스회사 1개 ․ 관광버스회사: 4개 ․ 택시회사: 13개
32) 자동차번호판 : ① 노랑색 → 660cc이하 경차 ② 흰 색 →자가용과 렌트카
③ 초록색 → 영업용 ④ 검은색→경차 영업용
33) 연간한국관광객 : 7만5천여 명 / 대마도 1년 예산 : 300억엔(円
34) 호텔 및 여관 : 27개. 민숙:60개: 총87곳 = 1일 2,000명 숙박가능.
35) 시 조(市鳥) : 고려 꿩(コライキジ)
36) 고구마 : 대마도 말(차용어)
37) 間引キ(마비키) :식량부족으로 아이(女)를 솎아내는 제도(대마도엔 최근세까지 존재)
38) 한국인투자 : ① 대마도 대아호텔 ② 빅마마 낚시민숙 등 6곳
39) 한국식매장문화 : ① 석관식 (대장군고분 조일산고분 네소고분등)
② 일본 매장문화 :옹관식(굴장(屈葬)과 발치(拔齒)식)
③ 대마도가 한반도생활권내 예속(隸屬)되었었던 증거
40) 대마도 1인당소득 : 26,000 달러($) → (2009년현재--대마시청확인)
41) 대마도에 한국인이 구입한 토지(땅) : 48,690㎡(14,728평)
42) 일본인이 가지고 있는 한국의 토지(땅): 1,931만㎡(5,841,275평)
43) 대마도 민단연락처 : 0920-86-2040
44) 대마도 교포 : 민단+임시거주인= 총계69명(민단:50명+임시거주19명:2010년말현재)
45) 1999년7월14일~2010년7월13일 -탐방 총외국인수=357,272명
46) 1999년7월14일~ 2010년 대마도탐방 한국인수=354,821명
48) 한국관련축제:①아리랑마쯔리(8월첫주-土.日요일)②친구음악제(8월 마지막주-日요일)
③국경마라톤in 쓰시마 (7월 첫주-日요일)
49) 부산 동래 온천장을 상업적으로 최초로 이용한 사람은: 대마도인 도요타(豊田)
50) 서기1912년 : 대마도에 처음으로 전등 불이 들어옴 (島入)
:1887년2월10일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경복궁에 전등불이 켜짐
■ 조선통신사비
대마도 이즈하라에 들어서면 400여년 전 조선통신사의 기착지임을 나타내는
표지판이 곳곳에 눈에 띈다.
나가사끼 현립 역사자료관으로 들어가기 전 왼편에는 '조선통신사비'가 세워져 있다.
임진왜란 후 대마도는 국교회복을 위해 최선을 다했는데(그 길만이 대마도가 살 길이었으므로),
그 결과 도쿠가와 막부 260년간(1697~1811) 12차례에 걸쳐 통신사들이 일본을 방문했다고 한다.
초창기의 통신사는 막부 장군의 장군직 계승 등을 축하하기 위한 사절단의 임무였으나
차츰 국서교환 등의 임무가 주어지는 등, 외교적 활동을 넓혀갔다고 한다.
통신사 일행은 대개 300~500명 정도의 인원이었으며, 조선의 앞선 문화로 인해
당시 일본인들에게는 하나의 문화적 충격을 가져다주었다 한다.
당시 통신사 행사는 대단히 중요한 행사였다고 한다.
한번 사절단이 왔다 가기 위하여, 대마도 도주는 그 앞뒤 3년간을 오로지
이 일에만 매달려 있어야 했다고 한다.
이러한 통신사의 방문을 통하여 일본은 학문과 예술의 발전을 가져왔고,
조공무역을 통한 흑자 무역을 꾀하였다.
'조선통신사비'는 조선통신사 제도를 통한 조·일양국의 우호관계를
21세기 한일관계의 지향점으로 삼고자 하는 의도로 세워진 비라고 한다.
400∼500명으로 구성된 조선통신사 일행의 화려한 행렬을 담은
길이 16.58m짜리 두루마리 그림이 이즈하라 대마역사민속자료관에 보관되어 있다.
이즈하라 시내를 가로지르는 하천 다리 난간에 조선통신사의 행렬을 묘사한 그림이 새겨져 있다.
또한 사찰과 관공서에는 조선통신사가 묵었다는 표석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이즈하라에서는 해마다 8월의 첫째 토·일요일에
조선통신사 행렬을 재현하는 아리랑마쓰리가 벌어진다.
■ 고려문
고려문은 원래 대마도 도주가 머물던 사지끼바라 성에 있던 것으로
이는 이즈하라의 성문으로 에도시대(도쿠가와 막부 집권기)에
일본을 방문한 조선통신사의 행렬을 맞이하기 위해 만든 문이다.
고려문이란 이름은 일본에서는 에도시대에 일본을 방문한
통신사 행렬을 맞이하기 위해서 만들어졌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는 아마 고려가 대마도를 지배할 때 세워졌고
그 명칭을 고려문이라고 했을 것이라는 추측이다.
현재 이곳에 있는 고려문은 1987년태풍으로 훼손된 것을
1989년에 현재의 대마 역사민속 자료관 앞에 복원한 것이다.
■ 최익현 순국비(슈젠지,修善寺)
구한말 대유학자이자 구국항일투쟁의 상징인 최익현은 쓰시마에 유배되어 순국하였다.
쓰시마에서 감금 3년형을 받게 된 최익현은 1906년 8월 28일 아침 이즈하라로 호송되어 왔다.
2년형을 받은 임병찬과 함께 하치만구신사(八幡宮 神社) 남쪽에 위치한 제사전습소에 수
용되었는데, 쓰시마경비대 수용소가 완성되기 전 3개월간 이곳에 구류되었다.
임병찬의 ‘대마도일기’에 의하면 12월 4일 발병의 기록이 보이며 경비대에서는
사람을 붙여 간호하였으나 1907년 1월 1일 생을 마감하였다.
장례는 백제의 비구니가 지었다고 전해지는 슈젠지에서 치뤄졌으며 유해는 부산으로 이송되었다.
백제의 스님이 건너와 창건하였다고 전해지는 수선사는 정토종의 사찰로
통일신라시대의 금동불상이 봉안되어 있다.
황수영씨가 쓴 비문은 '면암 최익현선생이 1907년 1월1일 대마도 경비대 억류지에서
사망하여 상여가 본국으로 운구될 때 이 절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선생의 흔적이 사라질까 두려워 이 비를 세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선생의 넋을 기리고자 1986년 한일 양국의 유지들이 힘을 모아 슈젠지에 비를 세웠다.
■ 덕혜옹주 결혼봉축기념비
조선왕조 26대 고종의 왕녀 덕혜옹주는 1931년 5월 대마도 번주
소 타케유키(宗 武志)백작과 결혼하였다.
이 비는 두 사람의 결혼을 축하하는 뜻으로 대마도에 거주하는 한국인들에 의해 건립되었다.
두 사람 사이에는 딸 正惠가 있었으며 1955년 이혼 후 1961년에 귀국한 덕혜옹주는
1989년 창덕궁 낙선재에서 별세하였다. 현 기념비는 2001년 11월에 복원된 것이다.
■ 방화벽(防火壁)
일본과 대마도의 주택문화는 목조건물이고 다다미이기 때문에,
불이 나면 이웃집으로 쉽게 옮겨, 진화가 쉽지 않다.
1732년과 1734년 그리고 1759년에 걸쳐 3번이나 큰 화재가 발생하여 이즈하라 전체를 태웠다.
1841년 대마 32대 도주 종의장 때 이즈하라에 방화벽을 구축 했다.
밑바탕 5자(尺), 높이 13자(尺)로 된 돌담을 축성하고 글은『
天保 十五 甲辰 消防 爲 火切 築之 る 一丈 三尺 根幅 五尺,』으로서
만약 불이 나더라도 불이 돌담장을 넘지 못하니까
피해가 한 블록 만 발생할 수 있다. 아주 과학적이라고 볼 수 있다.
그 뒤 에디슨이 전기를 발명한 후 모두 철거하였는데 이곳 대마도는 먼 도서 지방이다 보니
미처 철거하지 못한 돌담이 남아 현지정 건축문화재가 되었다.
■ 아유모도시 자연공원(은어가 돌아오는 자연공원)
세강은 쓰시마에서 제일 높은 산인 야타테야마와 다테라야마에 둘러싸인
우치야마 분지에서 발원하고 있다.
이 세강 유역을 포함한 다테라야마 원시림의 산기슭 약 26ha가
아유모도시 자연공원으로 정비되어 있다.
산속 깊은 곳까지 수량이 풍부하여 은어가 많이 거슬러 올라 오는 것으로 유명하나,
세강의 거친 물살로 인해 상류인 우치야마 지역까지는 올라오지 못한다.
공원 입구의 주차장에는 이시야네(돌지붕) 휴게소가 마련되어 있으며
세강 위에 걸쳐 있는 구름다리에서 강을 내려다 보면 계곡 전체가
천연의 화강암으로 둘러싸인 웅대한 경관을 감상할 수 있다.
표고 144m의 높이에 마련되어 있는 만남의 광장을 중심으로
세강의 사면에 스포츠 슬라이더, 잔디썰매장, 퍼팅골프장, 캠프장,
삼림욕장 등이 산책로로 연결되어 있다.
■ 만제키바시(萬關橋)
1900년 일본해군이 함대의 통로로써 인공적으로 굴삭한 해협에 다리를 세웠으며
이는 현재 둘로 나뉘어진 대마도를 이어주는 교통의 요지가 되었다.
만조시의 조류는 여러 겹의 소용돌이를 만들어 다리 위에서 바라보는 경관은
보는 이로 하여금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오우후나코시(大船越) 철교를 지나 2.5km를 가면 무지개 모양의 다리를 만나게 된다.
이 다리가 만제끼 대교다. 길이 210m의 철교인 이 다리는 보기에는 아주 아담하다.
대마도를 찾은 관광객들이라면 누구나 할 것 없이 이 다리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게 된다.
하지만 이 다리 아래에는 만제끼 운하(万關戶)가 흐르고 있다.
이 운하의 개통으로 인해 섬은 두 개로, 즉 상대마, 하대마로 나뉘게 된다.
이 운하의 역사적 의미를 따져본다면 실로 어마어마한 사실이 드러난다.
세계사의 전환점이라고 해도 결코 과장이 아니다.
그것은 바로 이 운하로 말미암아 20세기 초 한반도와 동북아를 중심으로
힘의 균형이 이동되었기 때문이다.
일본은 러일전쟁의 와중에서 이 운하를 일본 해군의 전략적 거점으로
십분 활용하여 당시 세계최강으로 꼽히던 러시아의 발틱함대를 쓰시마 해전에서 괴멸시켰다.
결과는 발틱함대 전함 38척 중 35척 격침 또는 파괴, 3척 나포. 4,800명 사망.
이에 견주어 일본 해군의 피해는 고작 3척 침몰, 전사 117명에 불과했다.
일본은 이 전쟁의 승리로 동북아의 주도권을 쥐게 되었고,
러시아는 짜르왕조의 몰락에 이르는 동시에 볼세비키 공산혁명의 시발점을 제공했던 것이다.
이로써 일본은 팽창 일로의 길을 가게 되어 한국을 병합하고
대륙으로 나아가 태평양전쟁을 일으키게 된다.
지금 이곳에는 오렌지빛 아치 교량(길이 250m/1995년 재가설)이 여행객들의 눈길을 끌고 있다.
이 작은 운하가 세계사의 비극의 전환점을 만들었다는 사실을 아는 지 모르는 지....
■ 아소만
육지의 침강에 의해 생성된 전형적인 리아스식 해안으로
대한해협 쪽으로 입을 벌리고 있는 모양이다.
굴곡미는 쓰시마 자연경관의 백미이며 수많은 무인도와 잔잔한 만곡 수면에 비친
섬들의 모습은 일본 최고로 일컬어질 정도의 절경이다.
바닷물은 너무나 맑고 깨끗하여 바닥까지 보인다.
고대로부터 조선과 중국 대륙으로 출항하는 배들은 아소만으로 모여들었다.
그리고 바람이 잦아들기를 기다렸다고 한다.
계절풍이 강해지면 며칠간 순풍을 기다리며 배에 머물러야 했다.
일본의 대표적인 고대 시가집 만요슈(万葉集,630~760년대)에도
쓰시마의 지명이 들어간 시가 42수가 있으며 그 중 아소만을 읊은 시는 18수에 달한다.
에보시타케전망대(烏帽子岳展望所)와 가미자카전망대(上見坂公園)에서
아소만의 무수한 만곡을 천천히 조망할 수 있으며,
유람선과 씨카약을 이용하면 아소만을 직접 체험할 수 있다.
■ 에보시타케(烏帽子岳)전망대
상대마 일대 관광의 일미라 불릴 수 있는 곳이다.
에보시타케 전망대는 아소만을 360°로 둘러볼 수 있는 유일한 전망대로서,
카미쓰시마와 토요따마의 경계 부근에 있는 곳이다.
일본 최고의 리아스식 해안(톱날처럼 들쭉날쭉한 해안선을 이룬 해안)의 절경을
감상할 수 있는 곳으로, 깎아지른 듯한 산과 푸른 바다가 절묘하게 펼쳐진
익곡의 조화는 그야말로 최고의 비경이다. 대한해협 너머로 한국의 산들도 볼 수 있다.
■ 와타즈미신사(和多都美神社)
토요타마마찌(豊玉町)의 상징인 이 신사는 일본 건국신화의 주역인 하늘신
'히고호호데미(彦火火出見)'와 용왕의 딸 '토요타마히메(豊玉姬)'를 제사지내는
해궁(海宮)으로 바다 신을 모신 신사로는 가장 오래된 신사이다.
본전 정면의 바다 속에 서 있는 토리이(신사 문)는 만조 시
2m정도 바다 속으로 가라앉아 파도가 잔잔한 아소만과 어우러져 신화의 세계를 연상케 한다.
신사 뒤로 돌아가면 '토요타마히메(豊玉姬)'의 무덤으로 알려진
석관묘가 외롭게 서 있고 주위엔 울창한 숲과 산책로가 잘 정비되어있다.
와따즈미신사의 본전 정면으로 아소만 바다속에 서있는 토리이를 직선으로 연결하여 보면
한국의 경주 또는 김해(가야)지역 방향을 가리키고 있으며,
이곳은 가야의 김수로왕의 자손이 대마도로 건너와 세웠다는 설과
장보고 장군의 소가(小家)였다는 설 등이 전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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