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그랜드파이널스 경기가 마롱의 우승으로 끝이 났습니다.
2020년은 코로나 상황으로 인해 국제 경기들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이번 경기에 대한 관심은 어느 해보다도 높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하리모토 선수를 꺾고 4강에 오른 장우진 선수의 선전도 돋보이지만, 이제는 체력적인 한계가 아닌가 생각했던 마롱이 갈수록 날카로와지는 판젠동 선수를 이기고 우승을 차지함으로써 많은 팬들에게 기쁨을 주었습니다.
경기를 지켜보면서 현대 탁구가 가는 방향과 그에 따른 용품업계의 대응에 대해서 생각해 봤습니다.
제가 유심히 봤던 경기는 장우진 선수와 하리모토 선수의 경기, 그리고 마롱 선수와 판젠동 선수의 결승 경기였습니다.
장우진 선수와 하리모토 선수의 경기는 장우진 선수의 짧은 리시브가 대단히 돋보였던 경기였습니다.
거의 모든 공을 전진 압박으로 해결하려고 하는 하리모토 선수에게 선제를 주지 않기 위한 매우 짧은 송구들은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마롱선수의 경기는 치키타와 강력한 백핸드로 승부하는 판젠동 선수에게 뒤로 물러나지 않고 압박하며 백핸드로 대응하는 모습에서 마롱 선수가 약해지기 보다는 오히려 더 강해졌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저는 현대적인 탁구의 출발은 판젠동 선수로부터 시작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일화가 하나 있는데요, 제가 후원하던 선수들이 있던 한 고등학교 팀에 방문했을 때였습니다.
그때 그 학교 지도자가 선수들에게 도전해야 할 과제들을 메모해서 책상 위에 두었는데, 그 내용 중 하나를 보고 선수들이 웃으면서 선생님이 이런 것도 하라고 한다고 했던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포핸드쪽으로 가서 백핸드로 드라이브를 상대방의 포핸드쪽으로 하는 기술이었습니다.
그 당시만 하더라도 포핸드로 오는 공은 포핸드로 치는 것이 정석이지, 굳이 백쪽을 다 비우고 포핸드로 이동해서 백핸드로 리시브를 한다는 것이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그 기술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면서 현대적인 압박 탁구를 하는 선수가 출현했죠.
바로 판젠동 선수였습니다.
치키타 기술은 그 당시만 하더라도 상당히 실험적인 기술로 보였고, 지금처럼 경기 중 상당수 리시브를 처리할 수 있는 범용적인 기술로 여겨지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판젠동 선수는 탁구대 앞에 바짝 붙어 치키타로 모든 리시브를 선제 공격으로 연결하는 형태의 스타일을 선보였고, 매우 어린 나이에 왕자의 자리를 위협하는 놀라운 선수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뒤를 이은 것이 하리모토 선수입니다.
하리모토 선수는 백핸드 치키타 뿐만 아니라 모든 공을 넷트 근처에서 공격적으로 처리하는 스타일을 선보였고, 결국 현대 탁구는 강한 전방 압박에 몰입해야 한다는 인식을 광범위하게 확산시켰습니다.
이번 대회에서 마롱 선수가 우승한 것은 그런 압박을 견뎌내는데 기존의 스타일로 견뎌내려고 하는 것이 아니고, 똑같이 전방 압박으로 대응한 점이 큰 역할을 했다고 생각됩니다.
마롱 선수가 롤모델로 여기면서 배웠던 탁구는 아마도 왕리친 선수의 정석적 탁구였을 것입니다.
그의 2010년도 경기를 보더라도 치키타 기술은 등장하지 않고 강한 포핸드와 폭넓은 풋워크, 화려한 랠리가 돋보입니다.
당시만 하더라도 아직 공이 변경되기 전이니 랠리에서 밀리지 않는 것과 뒤에서 걷어 올려도 회전이 살아가는 형태의 라켓이 중요했습니다.
7겹 합판 라켓들이 대세를 이루던 시절이죠.
그러나 치키타 기술이 2구 공격에 대거 사용되는 현 시점에서는 랠리시 힘과 회전보다도 숏플레이에 대한 관심이 더욱 더 높아졌습니다.
또한 장우진 선수와 하리모토 선수의 경기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상대방의 치키타 공격이나 전방에서의 강한 드라이브 공격을 피하기 위한 짧은 반구 능력도 매우 중요해 졌습니다.
즉 현대적인 탁구는 이렇게 정의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1. 넷트 근처에서 드라이브 공격을 할 수 있는 치키타 기술이 중요해 졌고 활용도가 매우 높아졌다.
2. 뒤로 물러나서 강한 드라이브 공격을 하는 비율이 줄어들고 (강한 드라이브 공격을 위해서 공을 잡는 타이밍을 늦추는 일이 줄어들고) 탁구대에 바짝 붙어 선제를 잡는 전방 압박이 중요해졌다.
3. 상대방의 넷트 근처에서부터 출발하는 치키타를 포함한 드라이브 공격을 피하기 위한 짧은 송구 능력이 중요해 졌다.
이 세 가지 측면을 고려할 때 현재 선수들이 선호하는 용품들이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 그리고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용품 업체들이 용품 개발을 이어갈지를 예측할 수 있습니다.
우선 물러나서 큰 스윙으로 걸 때 강한 회전과 힘을 줄 수 있는 라켓들보다는 짧은 숏게임에서 정확한 컨트롤을 할 수 있으면서, 작고 빠른 동작에서도 큰 회전력과 스피드를 낼 수 있는 형태로 선수들의 용품 선택이 변화되고 있습니다.
또 선수들의 러버 선택에 있어서 DHS의 허리케인 시리즈가 크게 늘고 있습니다.
점착성을 가진 러버로서 DHS의 허리케인 러버는 대상 플레이에서 매우 짧게 반구되는 특성이 있습니다.
힘을 빼고 타구하면 공이 짧게 떨어집니다.
그러나 회전에 있어서 약하지 않습니다.
짧으면서도 임팩트만 살아 있다면 매우 강한 하회전이 가능하기 때문에 선수들에게 있어 중국 러버 선호도가 늘 수 밖에 없습니다.
특히 최근에는 백핸드 러버까지 중국 러버로 선택하는 경우가 늘고 있는데, 이 부분은 대상 플레이에서의 활용도가 큰 원인이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치키타 기술에서 볼 수 있듯이 짧으면서 빠른 스윙시에 충분히 채 줄 수 있는 표면 능력이 중요해 지고 있습니다.
즉 탑시트와 러버 표면의 전체적인 반응을 통해 강한 공을 만들어 내는 것이 과거의 큰 스윙 경기에서 중요했다고 하면, 지금은 아주 짧은 순간에 공을 충분히 끌어올릴 수 있는 탑시트의 반응성이 매우 중요해 졌으며, 그런 의미에서 작은 임팩트에서도 공을 튕겨 내는 저경도 러버보다는 고경도 러버들이 더 인기를 누리고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조금 아쉬운 부분도 있습니다.
과거 탁구는 선수들마다 특정한 캐릭터를 보여 주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칼을 휘두르는 듯 시원시원하면서 정석적 드라이브를 보여 주는 왕리친 선수,
중국 탁구의 실험 경과를 보여 주는 중펜의 마린, 왕하오 선수,
꾀돌이 유남규, 한방의 김택수, 발빠른 유승민, 칼잡이 수비수 주세혁 등 선수를 떠올리면 스타일이 떠올랐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그런 특유의 스타일들이 사라지고 모든 선수들이 전방 압박에 의한 강한 드라이브 공격을 목표로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매칭하면서 보는 경기의 매력이 적어졌죠.
그렇지만 결국 탁구는 스포츠이고, 스포츠는 승부를 겨루는 것을 요체로 합니다.
그러므로 선수들이 이기기 위해서 자신에게 가장 유리한 스타일을 취하는 것은 경기가 고도화 될 수록 더 많이 진행될 것입니다.
현대 탁구는 어떻게 보면 탁구가 스스로 그 정점에 이르렀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전통적으로 한국 탁구는 포핸드, 백핸드 전환 기술을 중심으로 한 펜홀더 탁구에 기반을 두어 왔고, 그런 만큼 올라운드적이면서도 앞뒤로 거리를 재면서 돌아설 타이밍을 만드는 풋워크가 기본적인 기술로 명맥을 유지해 왔습니다.
이제 그 전통을 뒤로 하고, 판젠동과 하이모토의 전방 압박을 배워야 하며, 그것에 충실히 대응해서 우승을 이룬 마롱 선수의 모습을 벤치마킹 해야 합니다.
한국 탁구의 선전을 기원합니다.
첫댓글 선수들마다의 특정한 캐릭터들이 많이 없어진점도 아쉽지만, 선수들 사용 라켓 및 러버들도 더더욱 특정부류의 제품들로 모아지다보니 용품을 좋아하는 동호인 입장에서 아쉬운 부분도 있습니다.
마롱이나 판젠동이 용품방황을 좀 해줘야할텐데요 ^^;
좋은 분석글 잘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이번에도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런 현대탁구 스타일이 흥행과 저변확대 관점에서는 전체적인 탁구스포츠역사상 후퇴행보로 이어지지 않을까 염려스럽습니다.
랠리가 오래되어 보는 탁구의 흥미를 이끌어 낼것이라는 기대감을 가지고 공을 크게 만든것은 ITTF의 최악의 패착이었습니다. 그 결과 판젠동과 하리모토 같은 전진탁구괴물을 만들어 냈구요.
모든 선수들이 그 괴물을 이길려고 더욱더 다닥다닥 붙어서 천편일률적인 탁구를 추구하고, 이제는 다양하고 개성있는 탁구선수는 예선경기에서나 볼 수 있게 되었네요.
그나마 슈신이나 마롱같은 화려한 플레이의 선수들이 최정상자리를 유지한다는게 다행입니다. 세계1위 판젠동 팬보다 그둘의 팬층이 두터운 이유도 재밌는 경기를 보려는 팬들이 많다는 증거이기도 하구요.
공 크기 뿐만 아니라 재질또한 전진탁구만이 살아남는 추세로 가는데... 이러다 라지볼 수준까지 갈지도 모르겠네요.
물론 ITTF의도는 좋았지만 결과가 이렇게 될줄은 몰랐기에 시도 자체를 비난 할 의도는 없습니다. 단, 랠리부재와 관객유도 흥행실패를 감지했을때 빠른 수습을 못한점은 아쉬움이 남네요.
@세모래 공감합니다. 영상 세편을 봐도 예전 게임이 더 재밌죠.
ittf가 중국탁구를 견제할거였으면 공 크기 키우는거보다 테이블 크기를 늘렸으면 어땠을까 합니다 그랬으면 힘좋은 유럽선수들이 더 유리했을테고 2구 선제도 그다지 위협적이지 않았을거 같은데요
사실 공 변경은 항공기 내 인화물질 반입 금지가 시초였어요. 셀룰로이드 재질은 인화성이 강한데, 그것이 문제가 되기 시작한 겁니다.
탁구경기가 예전보다 재미가 떨어졌어요.. 앞으료 또 변화가 일어나겠죠?
백핸드로 점착러버로 이동하는군요!!
하여튼 끈적이는게 문제네요~~~
좋은글 감사합니다~^^
저는 그냥 우와 잘한다 감탄하면서 재밌게 보기만 하는데, 이렇게 분석한 글을 보니 아~나는 탁구를 참 모르는구나~ 깨닫습니다.ㅎ
이런 글 자꾸 읽다보면 조금씩 나아지겠지요? 그리고 좀 모르면 또 뭐 어때요? 재밌게 보고 즐겁게 치면 되는거죠~^^
정성들여 쓰신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예, 저는 이런 일이 직업이니까요~^^
공 재질 변한게 모든 걸 다 바꿔논거 같습니다. 폴리볼로 바뀌고 재미는 망한 것 같습니다. 회전없는 공치니깐 다 똑같이 앞에서만 쳐서 재미도 없습니다.
ㅜㅜ
중국탁구 대단~~~~~~~히 재미없다.ㅋㅋ.
특히 판젠동은 대단함과 재미없음의 정점을 찍었네요.ㅜㅜ.
제가 우리나라 조승민, 안재현, 조대성 젊은 선수들의 선전을 기대하는 이유는 그들의 플레이가 틀에박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
그나저나 이번에 장우진 선수는 참 대단했습니다.
특히 짧은볼 스톱은 소속팀 코치인 오상은의 선수시절을 보는 듯했습니다.!!
예, 이번 경기에서 이런 점이 더 많이 보이더군요.
잘읽고 배웁니다!~장우진선수 딱 한끝 그 한끝이 아쉬운 그리고 한번은 해주길 항상 바라면서 보내요^^;;;
요약하면... 앞에서 먼저 선제 공격을하여서 랠리를 리드하는 선수가 성적을 내는 듯하고...글내용처럼 공격적인 전방 압박탁구..가 되세가 되니..중국러버가 대세이고....용품도 mxp나 mxs나 고경도러버들만이 속도.회전이 나오는..탁구로.가고..탁구선수도 마르깽이보다 몸.특히 근력.. 하체가 좋은 중국선수들(갠적으로 한국 선수들은 너무 마름.장우진빼고.)... 판젠동이나 첸멍 쑨잉사 등등이 대세고.......속도에 맞추어 ...몸도 근력을 키우고...하여서...이런시대변화를 받아들이고 준비를 해 나가야겠네요....읽어보니 글이 참 멋진글이네요....탁구인으로서 참..이런글은 너무 좋네요
감사합니다 😊
시대가 시대지만, 유남규, 김택수 선수같은 세계정상급 일펜선수가 나오면 좋겠습니다.
모두가 아니라고 할 때 해내는 선수 어디 없나요?
어떤 스포츠등 다양성이 남아있을때 인기가 오래가는것 같고요.. 모두 같은 스타일의 탁구를 한다면 재미가 떨어질수 밖에 없죠...
공이 바뀐게 이런 결과를 나으리라고는 생각치 못했겠지만... 지금이라도 다양성을 찾을수 있는 변화가 있었으면 합니다.
펜홀더도 강한 쇼트 전진 드라이브나 또 다른 기술로 정상 선수가 나오겠죠
펜홀더, 수비 전형 선수들, 숏팜플 공격 전형 등이 과거에 비해 성적 내기 어려워 졌네요. 생활체육도 그래 보이구요.
좀 다른 이야기지만,,초전진탁구라는 흐름에 아직 우리나라는 아직 완전히 따라가지는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나마 일본은 하리모토, 이토미마 같은 선수가 있는데,,우리나라도 장우진같은 재능있는 선수를 판젠둥같은 중국선수들과 연습시키는 방법이 좋을 것 같네요,,만약 일정기간 합숙훈련 같은게 가능하다면 말이죠,,정 안되면 하리모토와도 매일 연습하게 하면 서로 발전되고 좋을 것 같습니다. 판젠둥과 마롱 연습장면보니까,,전진에서 드라이브걸고, 백핸드로 카운트 리턴, 좌우 랜덤으로 주면서 한 사람은 강한공격, 한 사람은 3분의 2정도의 힘으로 카우트 리턴으로 계속 연결 연습을 하더라고요,,훈련방식도 좀 배웠으면 합니다.
보는입장에서 탁구가 재미가 없어졌죠
백싸움만 하고 있으니
우리야 탁구를 즐기며 보지만
일반시청자들이 이런탁구를 좋아할진
모르겠습니다
메이져 스포츠로 가기 위해서는 좀 더 역동적이며 스토리가 있어야 되는데
그렇지 않아도 자잘한 플레이들에서
그나마 있던 풋워크와 포핸드 드라이브도 줄어드니
일반분들이 보면 쟤들 서서 백싸움만하는데
저게 탁구냐 ? 할거 같습니다
맨날 중국이 이기니 스토리도 없고요
그냥 매니악한 스포츠로 점점더 굳어갑니다
판젠동이 이겼던 경기는 뭐얐지.. ..
치키타하면 장지커 아닌가요?
장지커도 포핸드쪽에 가서 백으로 리시브 많이하던데 판젠동보다 장지커가 나이가 훨씬 많으니 장지커가 먼저 아닐까요? 정확한 나이차는 모르지만 5살 이상 났던거 같은데요
예, 그렇죠.
제 글은 치키타 등 전진 압박으로 탁구판을 바꾼 두 사람을 꼽는다면 판젠동과 하리모토라는 얘기입니다.
치키타 기술은 장지커 시기에도 있었지만 모든 리시브를 치키타로 하겠다는 전술적 변화는 판젠동이 시작한 것 아닌가 합니다.
@Oscar 아 그런가요?
판젠동 쉬신이 힘들어하는 변강쇠스타일이라 안좋아했는데 실력만큼 대단한 선수인가보네요.
@왕하오마린쉬신 실제로 만나보면 잘 생겼고 젠틀합니다. 슈신은 떡대도 크고 상남자 스타일이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