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 세상을 심판하러 왔다. 보지 못하는 이들은
보고,보는 이들은 눈먼 자가 되게 하려는 것이다."
(요한9,39)
(정동 프란치스코 회관 성당 2017/03/11정오)
하느님의 관점에서,부활은 성부께서 성자를 죽음의 올가미에서
해방시키신 완전하고 완결된 행위다.그러나 교회와 세상 역사의
불완전한 관점에서 보면 그사건은 여전히'끝나지 않은 혁명'이다.
그것은 우리의 부족한 신앙과죄와 닫힌 마음이라는 딱딱한 땅에
물길을 내며 흐르다가,우리 삶의 사건들을 통해 여기저기서 솟구쳐
나오는 지하수와도 같다.마리아 막달레나가 자신의 이름을 부르시는
그분의 소리를 들었을 때,바오로가 다마스쿠스로 가는 길에서'사울아,
사울아,왜 나를 박해하느냐?라는 물음을 들었을 때,아우구스티누스
성인이 정원에서"집어라 읽어라!"(Tolle,lege)라는 노랫소리를 들었을
때,이 순간들은 단순히 부활 후 사건들이 아니라 그사건들 안에 부활의
힘과 실재가 있었다.그들이 부활을 아직 끝나지 않은 살아있는 사건으로
체험할 수 있도록,부활은 거기에서도 일어났다.우리도 부활 안에서 그분과
결합되어야 한다.(로마6,5참조)
(하느님을 기다리는 시간/토마시 할리크 180쪽에서 발췌)
노년기의 지혜로운 삶
누리던 권력을 잃은 노인은 비참하다."비참할 때 행복한 시절을
회상하는 것보다 더 큰 고통은 없다." 이 말은 단테의 '신곡'에
나오는 구절이다.'남자에게'에서 오늘을 사는 노인들에게 이런
충고를 한다."자기 나이를 잊지 말것,억지로 젊은 척하지 말것,
사랑을 하되 자신의 나이에 맞는 사랑을 할 것,"김성식 교수가
추레한 노인 명사들에게 보낸 경고는 새삼 새겨들어야 할 충고가
아닐 수 없다."세상을 다 산 사람에게 노욕이 생겨 만년을 망치는
실례를 수 없이 본다.세월이 차면 생명도 가기 마련이고 생명이
다하면 돈도 명예도 필요 없겠건만 왜 노욕 때문에 추하게 늙어
가고 있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큰소리치고 세상을 놀라게 했던
명사들이 다 늙어서도 자기 의사대로 행동하지 못하고 돈 따라
노구를 이끌고 다니는 것을 보면 실로 민망스러울 정도다."
(본문에서 발췌)
(청계천광교부근 2017/03/22오후)
가끔씩 나는 옷섶에 손을 넣어본다
심장이 뛰고 있는 지
마치 우편함 속으로 손을 밀어 넣을 때
약간의 금속성 차가움 다음에 찾아오는 홍조처럼
팔딱거리는 먼 발자국 소리
봄이 언제 단번에 달려오던가
보여줄듯 말듯 앵도라져 몇 번 뒷걸음 친 후에
그만큼 애꿎게 한 사내를 불 지르지 않던가
가끔씩 나는 심장 속에 손을 넣어본다
새 싹이 돋았는지
무슨 꽃이라도 몇 송이 묶어볼 요량으로 더듬어 보다가
불량한 짓거리 들킬 때처럼
화들짝 꼬집어보는 봄날의 꿈
이미 가고 없는지
다시 오기는 하는지
(가끔씩/나호열)
(북한 산 향로봉 아래 2017/03/25오전)
"한국에서 남자가 나이 50을 넘으면 평등해진다는 말이 있습니다.
볼품없는 체형으로 변한다는 말입니다.어깨에 오십견이 오는 것처럼
마음의 근육도 뭉치고 기분도 자주 상합니다.감정의 소통에 대해 경험
하고 배울 기회가 별로 없어서 나이 들수록 가족들로부터 소외되어가지요.
사소한 일에 복수를 결심합니다.정서적 고립감과 사회관계의 외로움이
늘어나지만 이를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촉각이 무뎌져 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기껏해야 인터넷글에 감동받았다며 꼭두새벽부터 카톡을 보내와 잠을 깨우거나
갑자기 악기 배우기에 빠진 나머지 자기가 배운 악기 소리를 들어보라는 사람들도
있습니다.한두 번도 아니고 한두 사람이 아니어서 듣는 처지로서는 여간 고역이
아닙니다. 모두 외롭다는 증거 입니다."
(성공한 남자의 역설,지독한 외로움/한겨레)
(북한산 탕춘대성 2017/03/25오전)
그래, 땅끝까지 가거라.
홀로, 두 발로, 꾹꾹 지문 찍듯이 걸어, 땅의 끝까지 가거라, 가보아라
척추를 곧추 세우고, 그래 갈 때는, 갈 데까지 가는 것이다. 가보는 것이다.
이마 위, 붉은 해 개의치 말아라. 검은 그림자 길어져도 뒤돌아보지 말아라.
길은 언제나 앞 아니면 뒤이거늘, 왼편이나 오른편은 염두에 두지 말아라.
마을 어귀, 등꽃 라일락꽃 향기가 뒷덜미를 낚아 채더라도, 가거라
자운영, 자운영꽃들이 발목에 자욱하더라도, 저녁연기 뒷산 허리에 잠겨있더라도
낮달이 짐짓 무심한 듯 떠 있더라도, 물안개 피어오르더라도, 멈추지 말거라.
시간은 언제자 너의 시간, 시간과 시간 사이에서 너를 놓치지 말거라.
그래, 그리하여, 걷고 있는 것이냐, 걸어서 가고 있는 것이냐.
길이, 저문 길이 네 몸속으로 들어갔다 이내 등뒤로 폴려나가느냐
풍경과 네 몸 사이에 이제 아무것도 없느냐, 없어서 네가 길이 되었느냐.
너는 네가 되었느냐, 네 몸이 너를 알아보더냐.
지문이 닳아서, 발의 지문이 닳아서, 이제 발자국이 남지 않겠구나.
길이 너를 밀쳐내지 않겠구나, 몸의 속도가 무엇인지 알겠구나,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지 손에 잡히겠구나
같이 출렁거리면 너도 출렁거리고, 길이 아득하면 너도 아득해지겠구나.
앞서가던 기억이 어느새 함께 걷겠구나. 그래, 설움이나 외로움을 한 두 마디 관념으로
압축했겠구나.
압축해서 길가에 버렸겠구나, 버려도 개운했겠구나. 버려서 가뿐했겠구나.
좋은 것보다 나쁘지 않은 것이 더 좋다는 것을 이제 알겠느냐.
전에도 말했지만, 모든 길, 땅 위의 모든 길은 물에서 끝난다.
모든 길은 물가에서 자진하거니와, 너는 땅 위에서, 길 위에서 아직 무엇이 그리 무거운 것이냐.
길 위에서 걸으면서 애달픈 것들, 안쓰러운 것들, 안타까운 것들 어리석은 것들,
어쩌지 못한 것들의 이름을 다시 지어 보거라.
그것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다시 명명할 수 있다면, 너는 드디어 너의 주인이다.
그래, 바다가 보이느냐
땅의 끝이 가까워졌느냐. 길이 좁아지느냐, 땅 다소곳해지더냐. 크게 숨을 들이마셨는냐.
땅끝에 홀로, 우뚝 섰느냐. 근육은 팽행한 것이냐. 정신은 휜칠한 것이냐.
그리하여, 바다의 끝이 보이느냐. 경계가 선명하게 보이느냐.
그렇다면 돌아보지 말거라, 거기가 땅끝이라며 끝내, 돌아서지 말아라.
끝끝내 바다와 맞서거라. 마주하거라.
바다, 눈 둘 데 없는 저녁 바다 거기, 섬 같은, 불빛 같은,
인광 같은, 부표 같은, 잊을 수 없는 이름 같은, 물새 소리 같은, 흐린 냄새 같은 한 점이 보이느냐.
보인다면, 거기에 젖은 눈, 시린 눈, 시력과 시야를 꽂아 두거라, 꽃아두고 있거라.
거기 한점 소실점에서 눈물이 솟느냐, 눈물은 마르느냐
그래 거기가 땅끝이라면
그리하여 시린 눈, 젖은 눈이 다 말라서, 한 점 소실점이 화악, 온통 바다로, 어둠으로 변하더냐.
은하수가 우당탕탕 쏟아지더냐. 대륙붕의 아랫배가 불끈 일어서더냐
바다의 끝과 처음 만나는 땅의 끝이 예리하게 떨리더냐. 거기에서 너의 끝이 바다의 맨 끝과 흔쾌히 손을 잡더냐.
왈칵 눈물이 솟구치더냐. 쏟아지더냐. 온몸이 뜨겁고 온몸이 환해지더냐.
너는 이윽고 돌아서는 것인데, 이윽고 땅의 끝에서 돌아서는 것인데
그래, 거기가 땅의 맨 처음, 땅의 시작이다.
땅끝은 바다의 끝이다. 땅끝은 물끝이다.
땅끝은 땅의 시작이다.
땅끝이 땅의 시작이다.
(땅끝이 땅의 시작이다/이문재)
"사랑이 끝난 곳에서도
사랑으로 남아 있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사랑이 되어
한없이 봄길을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봄길/정호승)
이제는,
내 삶에 주인 되시길 바랍니다!
늘 행복하세요!
첫댓글 " 사랑이 끝난 곳에서도 사랑으로 남아 있는 사람이 있다 "
"그리스도인은 새로운 의무를 강요하는 사람이 아니라
기쁨을 나누는 사람,
아름다운 전망을 보여 주는 사람,
그리고 풍요로운 잔치에 다른 사람을 초대하는 사람입니다.
교회가 성장하는 것은 개종 강요가 아니라 매력 때문 입니다. "(복음의 기쁨,14항- 프란치스코 교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