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하반기부터 당장 재벌사내유보금 환수운동을 위한 대중적 투쟁을 조직해야 한다는 주문도 나왔다. 이미 야당과 시민단체 등에서 법인세 인상 방식, 초과이익공유제 시행 등의 재벌 개혁을 요구하고 있고, 노동, 사회진영도 반자본 투쟁에 나설 채비를 갖추고 있어 재벌 독점 이윤을 둘러싼 싸움이 본격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지난 13년간 재벌 사내유보금 기하급수적 증가
“비정규직, 근로빈곤층, 실업자 양산 등 가계소득 빼앗아간 돈”
노동자계급정당추진위원회(추진위)는 12일 오후 7시, 민주노총 15층 교육원에서 ‘재벌 사내유보금 환수운동 토론회’를 개최했다. 발제를 맡은 김태연 추진위 정책교육위원장은 “30대 재벌의 사내유보금 710조 원은 노동자 서민의 주머니에서 나온 것”이라며 “이를 환수해 시급한 4대 민생, 공공과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금년 3월 말 기준, 30대 재벌 기업의 사내유보금 총액은 710조 3002억 원에 달한다. 이는 올해 정부예산 375조 원의 약 두 배에 달하는 금액이다. 재벌 대기업이 사내유보금을 본격적으로 쌓아두기 시작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약 13년 전부터다. 김태연 위원장은 “IMF외환위기를 계기로 2002년 사내유보금에 대한 세금이 폐지되면서 재벌 대기업의 사내유보금이 급증하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지난 1991년 정부는 기업의 적정유보 초과 사내유보금에 대해 25% 과세제도를 도입했지만 94년 과세율을 15%로 낮췄고, 2002년에는 결국 이 제도를 폐지했다. 결국 2001년 4.6%였던 전체기업 사내유보금은 2010년 24%까지 치솟았다.
사내유보금 과세제도가 폐지된 시기부터 기업소득과 가계소득의 격차가 확대됐다. 2014년 말 한국의 가계부채는 1089조 원으로 늘어났고, 덩달아 전체 기업의 사내유보금도 1000조 원까지 쌓였다. 김 위원장은 “그동안 850만 명의 비정규직과 400만 근로빈곤층을 양산해 임금을 착취했고, 400만 명의 실질실업자를 방치해 한 푼의 임금도 주지 않았다. 1900만 전체 노동자 중 930만 명이 월수입 200만 원 미만의 저임금”이라며 “자본가들은 2000년 이후 새로운 투자에 의한 부를 창출하지도 않았다. 그들의 곳간에 쌓아온 사내유보금 1000조 원은 노동자 서민의 가계소득을 빼앗아 간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그는 만약 2002년 사내유보금 과세제도가 폐지되지 않았다면 현재의 사내유보금의 상당부분은 이미 세금으로 냈어야 할 금액이라고 주장했다. 91년 사내유보금 과세제도를 도입할 경우, 30대재벌 사내유보금 710조 원 중 50조 원이 세금으로 환수됐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사내유보금이 천문학적으로 늘어나면서, 새정치민주연합 이인영 의원도 적정유보 초과소득에 대해 15%의 세율을 적용하는 법인세 신설안을 들고 나온 바 있다. 이를 적용할 경우 1년에 2조 원 정도의 증세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이렇게 될 경우 현재 710조 원에 달하는 사내유보금 환수를 위해서는 350년 이상이 걸린다. 김태연 위원장은 현재의 과세제도로는 13년간 누적된 사내유보금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만큼, ‘환수’라는 특단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그는 사내유보금을 환수해 최저임금, 비정규직, 청년실업, 공공의료체계 구축 등의 시급한 4대 민생, 공공 과제 해결에 투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약 157조 원이면 △최저임금 1만 원 적용(4년간 120조 원) △300인 이상 기업 간접고용 비정규직 87만 명 정규직화(10조 4400억 원) △45만 청년실업 해소(3년간 16조 원) △의료공공성 강화를 위한 기반확충(9조 5000억 원) 등이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김 위원장은 “‘환수’라는 용어에 논란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재벌 환수는 한국사회에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이야기해온 낯설지 않은 용어”라며 “1994년 재벌부실자금 환수운동과 1998년 부실재벌 환수운동, 2014년 재벌부당수익 환수특별법 등 한국사회에서 재벌문제 해결을 위해 ‘환수’ 방식이 제도 정치권 내외를 막론하고 제출돼 왔다”고 설명했다.
재벌사내유보금 환수를 비롯한 다양한 사회화 방법 나올까
토론자로 참여한 제갈현숙 민주노총 정책연구원장은 “결국 자본의 사적소유구조에 대한 근본적인 변화가 어떻게 가능할 지에 대한 많은 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제갈현숙 원장은 “총, 대선에서 복지국가와 재정 문제가 대두되면, 자본과 정부는 피지배계급 주체를 분화시킨다. 정규직 과세를 들고 나와 이를 반대하면 이기적인 조직노동자로 치부한다. 자본의 이윤독식과 관련해 노동자와 피지배계급의 운동적 루트가 막혀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어서 “정규직 노동자가 돈을 더 내 우리끼리 나누자는 것은 순진한 발상이다. 좀 더 계급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안진걸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은 사내유보금 환수 등을 비롯해 다양한 재벌의 독점이익의 사회화 방식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현재 시민단체에서도 재벌 대기업 사업을 중소상공인에 이양하는 방식, 초과이익공유제 시행 등을 요구하고 있다. 사내유보금 회수든 법인세 도입이든 초과이익공유제 시행이든 여러 방식으로 재벌의 독점이익을 사회화하는 방식이 필요하다”며 “최근 롯데재벌 사태를 계기로 재벌의 독점적 이익을 나눠가지자는 대중적 운동의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라 내다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사내유보금이 기업 자기자본의 거의 대부분인 만큼 실질적인 환수는 가능치 않으며, 재벌 소유 지분의 사회화나 기존 순환출자구조 해소 등의 다른 방안을 찾아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민주사회를위한 변호사모임의 권영국 변호사는 박하순 민주노총 정책연구원의 글을 인용해 사내유보금 환수 운동에 대한 의문을 제기했다. 재벌기업의 사내유보금을 환수하면, 회사는 자본금과 부채만 남아 기업 경영이 불가능해진다는 것이다. 100조 가량의 재벌 소유지분을 사회화하는 방안도 있지만 지분 확보의 실현가능성이 낮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권 변호사는 “기업의 범죄수익 환수조차 만만치 않은 상황에서 단지 부당하다는 이유로 사내유보금을 환수한다는 것이 헌법적 정당성을 획득할 수 있는가의 문제도 따른다”며 “재벌의 독과점적 시장지배력 해소가 발등에 떨어진 불인만큼, 우선 기존 순환출자구조를 끊어버리는 일부터 시작해야 하지 않나”고 주장했다.
반면 송명관 참세상연구소(준) 연구위원은 “현금성 자산을 환수하는 건 괜찮고, 투자된 실물자산은 전혀 건드리면 안 되는 것인지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볼 필요가 있다”며 “현재 기업들이 더 이상의 생산단위의 기능을 원활하게 수행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인식을 바꿀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송 연구위원은 “기업이 생산단위의 역할을 하지 못한다면, 생산기반을 환수해 다른 주체가 다른 방식으로 생산을 해야 한다”며 “재벌사내유보금 환수의 목표는 재벌들의 이윤을 재배분하는 것에만 있지 않다. 생산과 재생산을 어떻게 새롭게 재조직할 것인가에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