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풍지맥 3차(판사동산구간) 2010년 3월 30일
구간 ; 진원제-큰재-귀바위(삼성산,627m)-이척산성(토성)-사라치(밤재24국도)-호남고속도로 및 1번국도(못재육교)-철마봉(293m)-광주시계-판사동산(342.9m)-임곡동 가정리
16km. 7시간, 맥사랑,

진원제위 사방댐 옆으로 오르는 대원,
철탑이 보이는 안부가 큰재이며 약 2km정도된다.
선두인 김수인 간사님과 신산경표 저자이신 박성태님과 유명산꾼이신 소내암으로 보인다.

사방사업으로 깨끗해진 계곡

귀바위봉으로 오르는 나무계단.

뒤돌아본 불태산 능선,
병풍지맥이 용트림하는 느낌이다.

맥사랑의 고참선배님이신 문정남님(왼쪽)과 김한수님(지도 들고 계신분)께서
삼성산 이암정의 유래를 읽고 계신다.
耳岩亭
귀바위가 위치한 산의 옛지명이 대동여지도에 삼성산으로 기재되어 있으며
귀바위의 한자인 耳岩을 붙여 삼성산 이암정이라 부른다.

귀바위봉 남쪽 전망대에서 본 바위봉과 진원면의 논경지들.

행복이란 크고 작은것이 없다, 오로지 느끼기에 차이가 날 뿐이다.
소나무 사이에 있는 이 전망대겸 정자는 아무 쓸모가 없다.
한마디로 무용지물, 헛돈만 쓴 결과이다.

폐전차를 왜 이렇게 방치하고 있을까!
보기도 흉한데......

이곳 절개지 우측으로 내려오다 미끄러져 크게 다칠뻔 했던곳이다.
해빙기 조심해야 한다면서 순간 깜빡 했던 모양이다.
다행이 결과가 좋아 괜 찮았지만 안전산행 명심해야한다.
우측으로 내려오면 될것을 표지기 따라 오다 그랬다.
199.4봉 납작삼각점과 정상은 무덤이었다.

밤실재 직전 종주하다 이렇게 한자리에 앉아보기는 처음 이란다.
대부분 양식(빵)과 떡식이고 나처럼 밥식하는 사람은 몇 안되었다,
나이가 든다는것은 산에 오르는것과 같다했다,
오르면 오를수록 숨은 차지만 시야는 넓어지는것이니까!

밤재(시라치)
직전 무덤에서 식사하고 1시 23분 출발한다,
새로입은 옷이 고가빠져 억망이 되어 버렸다,
아까워 하니 집사람이 산에 가지말고 돈벌어 오란다,

비포장 전차길을 두번이나 통과한 후 나타난 포장길,
길을건너 가시밭길 돌고돌아 다시 내려오니 조금전 지났던곳과 50여m 거리
20여분이나 돌아 내려 오다니 황당한 순간이다.
전차의 소음이 지축을 흔드는 소리다,

호남고속도로를 통과하는 1번국도의 못재육교,

철마봉을 지나 만나는 넓은 헬기장,
대부분 323봉인 큰 월선봉을 다녀온다.

죽림동과 덕성리를 잇는 지도에 없는 도로.
절개지 왼쪽으로 내려야 다음과 연결이 쉽다.

광주시와 무등산이 모두 보이는 벌목지역.
새로 편백나무 조림작업을 하고 있는 현장,
이렇게 광주지역이 넓은줄 몰랐다.
光州로 하지말고 廣州로 하지!

제법 오똑한 판사동산,

광주의 유명산꾼 백계남씨의 정상안내 표지판

정상의 산불감시 무인시스템.

서쪽인 우측으로 멋져 보이는 발옥산(269m)
오락가락 하던 3월의 날씨도 이제는 갈 길을 정했을 것이다.
내일 모래면 4월인데 아직도 날씨만은 종잡을 수 가없다.
봄을 시샘하는 추위가 예년에 없이 오래 이어졌기에 그럴 것이다.
남도에선 이미 매화와 산수유등 꽃소식이 올라 온지 오래고 벚꽃도 피기 시작했다는 소식도 들려오고 있는 이때 해군 함정의 침몰소식에 가슴 아파하는 국민의 애잔함이 한시바삐 구조되어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길 기대하며 강 건너 불구경 하는 식으로 지켜보고만 있어야하는 나 자신의 무력함도 탓해 보지만 어쩔 수 없는 일 이었다.
3월 하순까지도 철모르는 눈이 내리기도 했지만 역시나 세월한테는 아무도 이길 수 없는 모양이다.
오늘의 날씨는 진짜 봄 날씨이고 산길을 조금 걷자 이내 땀이 흐르고 지난주에 보지 못 했던 작은 꽃들이 우리를 반겨주고 있었다,
약간 추울 때가 오히려 등산하기는 더 좋았는데......,
오늘은 18명의 대원이 참여했다.
지난번 하산 하였던 진원제위에 차가 닿자마자 온다간다 말 한마디 없이 나름대로 큰재를 향해 오른다.
지도에 명시되지 않은 삼성산 이암정이란 정자가 있는 627봉을 지나며 지난번 지나왔던 불태산 능선을 다시 한 번 돌아본다.
이척산성은 이름과는 걸맞지 않게 쉽게 지나칠 수 있는 토성으로 보잘것없는 성터였다.
내리막이 급경사다.
199,4봉에서는 우측절개지로 내려서야 한다,
지금부터 전차훈련장이다, 전차바퀴자국이 어지럽게 나있는 비포장 길이 있고 그 절개지가 아주 높으며 나는 왼쪽 표지기를 따라가다 절개지에서 미끄러져 큰일 날 뻔하기도 했다.
약간의 타박상은 있어도 다행이다,
그동안 장성군과 담양군계를 따르던 지맥은 기갑부대 탱크 훈련장이라 일반인 출입금지로 인해 산길이 묵어 가시밭길 이었으며 지맥 길 본래의 맛을 톡톡히 보는 험한 길이었으나 광주시계로 들어오면서 길도 좋아지고 시계도 있어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았다.
그러나 인접한 훈련장으로 인한 등산객 출입이 적어 애써 만든 많은 시설물(정자 및 쉼터 의자)이 방치되고 있어 보고 지나기가 좀 그랬다.
저런 시설물 하나하나가 전부 나랏돈일 텐데......,
훈련장을 통과하는데 혹시나 제지를 당할까봐 조심조심 통과했다, 여러 대의 전차가 지날 때는 지축을 흔드는 그런 느낌의 소리다,
구역 내의 지맥은 지독한 가시밭길이며 길이라곤 아주 희미한 흔적뿐이고 지맥 하는 사람 외는 지나갔을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더욱 그랬을 것이다.
이런 때 일수록 가끔 동료 간에도 이런 질문을 주고받기도 한다.
무슨 목적으로 이 험한 산길을 가려고 하느냐 하며 서로 말없이 웃기도 하지만 한마디로 정답 내리긴 어렵지만 백두대간에서부터 정맥 지맥을 찾아본다는 것은 모든 산계의 연속적인 지리적 일체감을 갖게 하며 유역을 가르는 분수계로서 국토공간의 이모저모를 접할 때 국토사랑의 자긍심도 키우게 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 개념을 잘 모르는 사람에게 시원히 알려드릴 수 없는 어리석음이 나를 지배할 땐 정말 내가 미워지기도 한다.
물론 이에 대한 답이 모두에게 공감을 줄 수 있는 공통적일수가 없기에 맞는 답을 기대할 순 없었지만 등산은 평생 내가 같이 해야 할 동반자이자 친구이며 삶의 모든 것이기 때문에 산을 찾는 것이고 아울러 우리민족 고유의 전통적인 지리적 인식체계만은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만약 산을 가까이 할 수 없게 된다면 이미 죽은 목숨이나 같을 것이니 내 힘으로 갈수 있는데 까지는 쉬지 않고 따라볼 생각이다.
산악인의 선서처럼 오로지 오르는 사람 자신이 자신과의 약속이며 자신과 함께 세계를 향한 행진이 있을 따름이라고...........,
산행은 언제나 쉬운 것이 없다,
오늘도 쉽게 마쳐지리라 믿었던 산길은 너무 험했고 낮은 산이지만 자주 오르내리는 숨 가품이 따뜻한 봄 날씨와 함께 모든 체력을 앗아가기도 했다.
7시간정도의 산행으로 이번구간을 마친 대원은 임곡리 임곡식당에서 추어탕과 보신탕으로 저녁을 하면서 오늘도 무사한 산행에 건배를 했다.
이자리를 빌어 길잡이 역활을 잘해준 광주한올산악회와 따라가기 신공식씨. 익산 백두산악회, 백계남씨에게도 감사하다는 말 남기면서......
아름다운강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