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① 동예의 위치가 연제지간(燕齊之間)이란 연나라와 제나라 사이에 있다는 의미이니
연나라 도성(서울)과 제나라 도성(서울) 중간 지역이라는 의미다
② 동예(東濊)는 후한서 동이열전과 삼국지 위서동이전의 예(濊)인데
우리나라 대학교수들이 동예(東濊, 동이족의 예)라고 했다
■ 동예(東濊)인 예(濊,薉)의 위치는 강원도 강릉지역(강원도 북부 ~ 함경도 남부지역)이 아니라
제나라와 연나라 사이인 연제지간(燕齊之間)이다(사마천 사기 평준서와 한서 식화지 내용)
1) 후한서 동이열전에 따르면 예(濊)의 임금 남여가 항복해서 창해군(蒼海郡)을 설치했는데 수년후에 폐지했다고 한다
2) 한서 무제기에도 동이예(東夷薉=동예)의 임금 남여가 항복해서 창해군을 설치했다고 한다
3) 사마천 사기 평준서와 한서 식화지에 따르면
동예(東濊, 예濊, 예薉)의 위치는 창해군을 설치한 연나라와 제나라 사이인 연제지간(燕齊之間)이다
4) 연나라는 북경지역에 있었고, 제나라는 산동성 제남시 지역에 있었다면,
연제지간(燕齊之間)인 연나라와 제나라 사이란 북경과 제남시 중간 지역이니
동예(東濊, 예濊,薉)의 위치는 하북성 동부 지역인 창주시(滄州市)로 확정할 수 있다.
※주) 연나라와 제나라 사이는 연나라 도성 계(薊)와 제나라 도성 임치(臨淄) 중간 지역이라는 의미다
☞ 『 후한서(後漢書) 동이열전(東夷列傳) 「예(濊, 동예東濊)」 』
한무제 원삭 원년(B.C.128)에 예(濊)의 임금(君) 남여(南閭)등이 우거를 배반하고 28만구(萬口)를 이끌고,
요동군에 귀속하였으므로, 한무제는 그 지역으로 창해군(蒼海郡)을 만들었으나, 수년 후에 곧 폐지하였다.
[원문] 元朔元年(B.C.128), 武帝年也. 濊君南閭 畔右渠, 率二十八萬口詣遼東內屬, 武帝以其地爲蒼海郡, 數年乃罷.
☞ 『 한서(漢書) 卷六 「무제기(武帝紀) 第六」 』
원삭元朔 원년(BC 128) 동이(東夷) 예(薉)의 임금(君) 남려(南閭) 등 구(口) 28만 명이 항복하자
창해군(蒼海郡)을 설치했다.
[원문] 元朔元年(B.C.128) 東夷薉君南閭等口二十八萬人降, 爲蒼海郡.
☞ 『 사마천 사기(史記) 卷三十 「평준서(平準書) 」 』
팽오가(彭吳賈) (위만)조선을 멸하고자 하여 창해군(滄海郡)을 설치하니
연제지간(燕齊之間, 연나라와 제나라 사이)가 쓰러질듯 소란스러웠다.
[원문] 彭吳賈滅朝鮮, 置滄海之郡, 則燕齊之閒靡然發動.
☞ 『 한서(漢書) 卷二十四下 「식화지( 食貨志 ) 」』
팽오가(彭吳賈) 예맥(=예=동예)과 (위만)조선 간 (도로를) 둛으려고, 창해군을 설치하니,
연제지간(燕齊之間, 연나라와 제나라 사이)가 쓰러질듯 소란스러웠다.
(한무제 시절에 조선은 위만조선만 있었기에 예맥과 조선으로 해석해야 한다)
[원문] 彭吳穿 穢貊·朝鮮, 置滄海郡, 則燕·齊之間靡然發動.
■ 한서 무제기에 따르면 동예(東薉, 예薉)는 진시황의 진나라 시대에는 예맥조선(穢貉朝鮮)이었고,
진시황 본기에 따르면 예맥조선(穢貉朝鮮)의 위치는 진나라의 동쪽 경계이니 하북성 동부 지역이었다
1) 한서 무제기에서 동예(東夷薉, 동이예)에 대해
진작 왈, 예(薉)는 옛 글자 예(穢)라고 했고 , 복건 왈 예(薉)는 예맥(穢貊)이라고 했다
2) 진시황의 진나라 시대(BC 221∼BC 206)에는 위만조선(BC 194~ BC 108)이 없었다
따라서
진시황 본기에서 진나라 동쪽경계는 예맥조선과 해(海, 큰강이나 호수)라고 했다
동예(東薉, 예薉)는 진시황 본기에 나오는 진나라 동쪽 경계인 예맥조선(穢貉朝鮮)이다.
3) 진시황 본기에 따르면
진나라 동쪽경계는 예맥조선과 해(海, 큰강이나 호수)라고 했으며,
진나라 북쪽 경계는 연(燕)나라고 산해관에 있는 만리장성이니
만리장성인 산해관 남쪽인 발해만과 황해의 중국 동부 해안 서쪽지역이 진나라 동쪽 경계일 수 밖에 없다
따라서
당나라 학자 장수절이 진나라(섬서성 함양) 동북지역에 (예맥)조선국이 있다는 주석을 달았으니
진나라 동쪽 경계인 (예맥)조선은 중국 하북성 동부지역인 발해만 서부지역일 수 밖에 없으니
하북성 동부지역인 천진시 남쪽의 창주시(滄州市)가 예맥조선(穢貉朝鮮)이 있었던 지역이다
☞ 『 한서(漢書) 卷六 「무제기(武帝紀) 第六」 』
원삭元朔 원년(BC 128) 동이(東夷) 예(薉)의 임금(君) 남려(南閭) 등 구(口) 28만 명이 항복하자
창해군(蒼海郡)을 설치했다.
【예(薉)의 주석에서】, 진작이 말하길 예(薉)자는 옛 글자 예(穢)다.
복건이 말하길, 예(薉)는 예맥(穢貊)인데... 진한의 북쪽에 있고, 고구려.옥저의 남쪽에 있고, 동쪽은 대해에 닿았다
[원문] 元朔元年(B.C.128) 東夷薉君南閭等口二十八萬人降, 爲蒼海郡.
【주석: 薉】 晉灼曰 :「薉, 古穢字.」 , 服虔曰 :「穢貊在辰韓之北, 高句麗·沃沮之南, 東窮于大海.」
☞ 『 사마천 사기(史記) 卷六 「진시황본기(秦始皇本紀) 第六 」 』
진시황 26년(BC 221) 진나라 영토는 북쪽으로는 서부 황하를 시작점으로 하여
음산과 나란히 (섬서성 북쪽에) 요새를 쌓아 요동(遼東)에까지 이르렀고,
동쪽으로는 해(海,큰강이나 큰 호수 )와 (예맥)조선(朝鮮)에 이르렀다
【장수절의 정의】 동쪽의 조선은 동북 방향(하북성 중부 동쪽 지역)의 (예맥)조선국이다
[원문] (秦始皇) 二十六年(B.C.221) 地, 北據河爲塞並陰山, 至遼東. 東至海曁朝鮮. 【正義】 東北朝鮮國.
첫댓글 일방적인 주장만 있다.
하나도 제대로 증명한 것이 없다.
이런 허황한 글을 방치하면 안 된다. 왜 아무도 반박하지 않지
동예가 강원도 강룽지역이라는 주장는 조선 후기 유학자인 한백겸의 동국지리지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동예가 강원도 강릉지역이라고 표현된 고대 중국 역사서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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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단대령의 동쪽♥인 삼국지 위서동이전과 후한서 동이열전의 영동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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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관령 동쪽인 영동으로 오해한 조선 후기 유학자들의 주장이니(한치윤의 해동역사 내용)
강원도 강릉지역에는 동예(예=예맥)가 없었습니다
반박하시련면 중국 고대사서나 문헌 내용으로 반박하시면 토론 환영합니다
(동예의 위치가 연제지간이라는 내용에 대해 반박이 불가능할 것이기에
말장난으로 반박하지는 않을 것으로 믿어 보겠습니다)
수구리님의 학구적 열정에 너무 감사드립니다.
동예의 위치가 연제지간이라는 것을 동이열전, 평준서,
식화지, 무제기의 역서를 근거로 인용하셨음에 감복하였습니다.
명쾌하게도 동예는 북경과 제남 사이의 창해군,
곧 창해시라고 밝혀주셨습니다.
진시황본기 진나라 경계에 하북성 동부 지역의
동예는 예맥조선이다.
무릅을 칩니다. 대감동입니다.
일련의 고대역사 탐구열에 성원을 보냅니다.
시원한 역사서 자료 소명에 깊은 감사를 표합니다.
진실에 접근하는 역사소명 대작업을 응원합니다.
많이 읽고 배우겠습니다.
고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