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5.22.~26 (제천, 청풍 여행)
첫날 오후 2시쯤 제천 톨게이트를 빠져나와 처음 들린 곳이 제천시청이었다. 관광과에 들려 제전 여행지에 대하여 여직원에게 미안하리만큼 묻고 또 물어보고 책자와 지도를 얻어 나왔다. 그러나 그녀를 항시 맑은 미소를 잃지 않고 아는 만큼 잘 말해 주었다. 제천에 대한 첫인상이 좋았다. 여행이 기쁠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1층 휴게실에서 지도를 펼쳐놓고 세밀하게 봤다. 꼭 가봐야 할 곳을 순차적으로 체크하고, 메모하고, 그곳에 대한 상세한 정보를 수집 정리했다. 첫날은 시내관광을 하기로 했다. 제일 먼저 찾은 곳은 언제나 그 지방 재래시장이다. 풋풋한 정을 먼저 느껴보고 싶어서다. 제천엔 중앙시장과 동문전통시장이 있다. 그곳으로 가서 보니 여기도 역시 대형 마트와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다른 데와 같이 잘 정비되고 정리되었다. 말끔하게 단장된 것은 좋지만 예 서정적인 맛이 그립다. 양쪽으로 분리된 시장을 둘러보며 상인들의 얼굴 표정과 물건을 사라온 사람들의 표정을 읽는 것이 나는 좋았다. 촌스럽지 않지만 그래도 서민스러운 것이 좋기 때문이다. 배에서 쪼로록 시장기가 돌았다. 그도 그럴 것이지 시간이 벌써 오후 3시를 넘기고 있었으니. 내 배에 무심한 생각이 들었다. 수염이 열자라도 배를 채워야 양반, 여행도 배가 차야 시야가 넓어진다. 마침 사람들이 많이 몰려있어 무슨 집인가 하고 달려가 비집고 보니 어묵과 떡볶이 집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끓는 통에서 꼬치를 집어 먹길래 나도 연달아 세 개를 먹어치웠다. 얼마냐고 물었더니 네 개에 천원이라고 한다. 한 개를 더 먹고 천원을 주었다. 천원으로 끼니를 때운 셈이다. 재래시장 아니 전통시장은 이런 맛이 있어 좋다. 주변을 좀 더 구경하고 나서 저녁이 되어 물어물어 유로피아사우나가 있다는 것을 수소문해 알아냈다. 그날은 그곳에서 하루를 묵었다.
여행 둘째 날, 간단히 샤워를 마친 후 아침 공기를 가르며 자전거 페달을 저어서 의림지를 찾았다. 지금도 환영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다. 제방에서 바라본 의림지는 신선이 그려 놓은 한 폭의 선경일 뿐이다. 입이 떡 벌어진다는 말은 이런 곳에서 비유된다. 호변에는 영호정 그리고 경호루가 노송 사이에서 운치를 더해 주고 있었고 아침부터 산은 수정같이 맑은 호에 내려와 어깨를 살포시 드리우고 있었다. 나는 눈으로 걸었다. 그 시간에 몸은 없었던 것이다. 정자에 올라 좌선을 틀고 마음을 호수에 던졌다. 솔잎 사이를 지나온 바람은 솔향을 머금고 내 가슴으로 들어와 앉는다. 잔잔한 호수위에 폐부의 기운을 던지다. “고요함” 이내 내 가슴에 파문이 인다. “자연의 위대함이여” 나는 그대에게 너무 많은 것을 얻었노라. 앞으로도.
사람들이 드문드문 호수주변을 시계바늘처럼 돌고 돈다. 아침 운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그 사람들이 부럽게 느꼈다. 이런 천연의 환경에서 사는 그들은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하다 “내소사 노승의 말씀이 생각났다. 여기 살면 거기가 좋은 것처럼 생각되고, 거기 살면 여기가 좋은 것처럼 느끼는 것이여” 하시던 말씀. 미소가 살짝 스쳐 지나갔다. 자전거를 끌고 천천히 두 바퀴를 돌았다.
동리 사람이 제2 의림지와 피재 고개쪽으로 가면 수목이 우거진 수목원이 있다고 하여 그곳으로 발길을 돌렸다. 의림지에서 제2의림지 사이를 연결해주는 솔밭도 눈동자 속에 각인 되어 지금도 걸려 있다. 용두산 삼림욕장도 거닐어보고 숲탐방 물안이골도 들어가 보았다. 피재까지는 가지 않고 내려와 오후에 박달재를 가려고 잠시 휴식을 취했다.
11시 반 경에 박달재를 향해 달렸다. 자동차로 약 23km에 30여분 결린다고 네비가 자세히 예쁜 목소리로 안내를 한다. 급할 것이 없는 지금, 천천히 옛 박달재 굽이진 길을 찾아 가장 늦은 속도로 서서히 차를 몰고 올라갔다. 박달재란 현판을 달고 거창하게 버티고 서있는, 절의 일주문 같은 곳을 통과해 굽이굽이 올라가니 울고 넘는 박달재 정상이 보인다. 주차장에 차를 받치고 정상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마을이 까마득하게 보이지도 않고 시원한 바람만이 나뭇잎을 밟으며 연실 오르고 있었다. 아이스크림보다 더 시원한 바람, 사탕보다도 더 향기로운 바람이 폐부로 들어올 때마다 혈압은 아래로 내려가고 눈의 시력은 올라간다.
제천시 봉양읍과 백운면을 갈라놓은 험한 산이 박달재라고 설명되어 있었다. 박달재 안내문을 읽어보면 참 재미있는 전설이 나온다. 우리나라 옛 사람들은 전설을 좋아해, 사연이 있을 만한 곳이면 꼭 이런 설을 붙여 놓아 가슴을 찡하게도 하고, 슬퍼서 눈물을 자아내기도 하고, 해학적이어서 웃음을 참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천성적으로 청아한 마음을 지니 백성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박달재 손두부 집에서 점심을 먹고 왼편에 근래에 세워놓은 듯한 정자에 올라 역시 좌선을 틀고 먼 아래를 내려다보니 옛 사람들이 이곳을 지나기 위해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봇짐을 메고 넘어가기도 하고, 선비들이 둘 셋 모여 한양에 가기 위해 올라와 쉬었다 넘어가기도 하고, 시집가기 위한 처자가 박달재 하늘 위 낭군을 그리며 올라오기도…….
이날 경은사도 가고, 리솜포레스트도 가고, 백운면 시골길도 둘러봤다.
제천에서 또 하룻밤을 보내고 아침에 일찍 청풍으로가 오전에 문화재단지를 구경하였다. 예전에 와 봤었지만 망월루에 올라 청풍호를 내려다보지는 못했다. 제일먼저 그곳으로 오르기 위해 이정표를 쫓아 발길을 옮겼다. 발길을 옮길 때마다 사뭇 달라 보이는 정경이 눈을 사로잡아 끈다. 저 멀리 짙푸른 숲속에 숨겨져 있는 망월루는 한 마리의 새가 숨어 있는 것같이 보였다. 망월루에 올라 내려다보니 청풍명월이란 깊은 뜻을 헤아릴 수 있었다. 때 마침 아무도 없어서 좌선을 틀고 산과 호를 눈에 넣으며 명상에 잠기었다. 호를 보며 내가 선경이 되고 선경이 나라 생각을 하니 이 정자가 내 도반으로 착각이 든다. 조금 있으니 상춘객들이 우루루 몰려와 도떼기시장 같아 슬며시 내려와 주변 소나무 숲으로 이어진 둘레길을 돌아보며 아름다운 산수와 한 몸을 이뤘다. 오후 1시 반 유람선을 타고 기암절벽이 평풍을 치고 있는 옥순봉 구담봉을 지나 장회나루를 다녀왔다.
청풍에서 하루를 민박을 하고 다음 날 아침 차를 몰고 호반을 따라 가장 아름답다는 옥순봉을 찾았다. 청풍대교를 지나 오른 쪽으로 휘몰아치듯 굽이진 호반줄기를 따라 내려다가보면 옥순대교가 나온다. 아치형으로 세워진 다리는 빨간색으로 두 개가 연이어 있었다. 다리를 건너 오른쪽으로 돌아가다 보면 등산로 입구가 나온다. 그다지 높지 않은 옥순봉은 구담봉과 같이 어우러져있다. 옥순봉 정상에 올라 옥빛을 풀어놓은 호반을 내려다보면 탄성이 절로 나온다. 어찌 이 풍광을 말로 표현 하겠는가, 그저 멍하니 바라다 볼 수밖에, 관망하기 좋은 자리를 잡아 한참을 바라다보았다. 나는 산이 되고, 물이 되고 어느 순간엔 바람도 된다.
여행 중 마지막 코스인, 청풍단지를 구름 위에서 품에 안은 듯 내려다보고 있는 정방사에 올랐다. (이 절은 부처님을 모신 대웅전이 아니라, 원통보전 (圓通寶殿) 관세음보살을 봉안한 사찰의 전각.) 12폭 평풍이 반보다 조금 더 펼쳐진 거대한 절벽에 웅크리고 있는, 절이라기보다는 암자 같이 자그마한 고찰이다. 안내책자에 이 절에 오르면 맨 먼저 해우소에 들려보라는 글을 읽었다. 나는 절에 오르자마자 궁금증에 서둘러 얼른 해우소로 내달렸다. 문 확 열고 들어가 좌변기에 앉아 앞을 보니, 16호만한 창을 통해 그려진, 쑥물을 뿌려 놓은 듯한 산과, 옥색 비단을 깔아 놓은 강이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그 그림의 제목은 “변기 안에 휴지를 버리지 마세요.”였다. 만약 그때 용변이 마려웠다면 변기에 앉으려는 순간 바지에다 자연 방사 해고야 말았을 것이다.
절 앞에는 거대한 노송은 세월을 이고 삶의 굴곡진 번뇌를 말해주듯이 휘어지고, 눕고, 기울어지고, 그래도 하늘을 우러러 푸르르름 놓지 않는 것을 보니 이 세상이 좋긴 좋은 가보구나 라고 중얼거려봤다. 노송은 산을 덮을 만한 그늘을 만들어 주고, 지나가는 바람을 살짝 잡아당기니 풍경이 운다. 고요한 산사에 질서가 없는 오선을 타는 소리를 가만히 듣고 있으면 어찌 삼매에 빠지지 않을 손가. 정신을 차리고 나무 사이로 보이는 풍광은 그야말로 선경이라 불려 저야 만 한다. 나는 아주 작은, 엉덩이만 살짝 붙일 수 있는 툇마루에 앉아 한참을 생각할 겨를도 없이 명상에 빠져 들었다. 침묵만이 모든 말이었다. 뭐라고 표현 하려하거나 말을 만들려고 하는 것이 얼마나 무지한 것이고, 잘못된 것인가. 30여분쯤 그렇게 있었다. 잡념이 거의 다였지만. 올라오는 길에 아직은 울지 않고 있는 종각에가 종을 몇 초 바라보다가 모퉁이에, 이 산 정상(조가리봉 562m)으로 올라가는 길이 살짝 보였다. 현재 시간이 얼마인지 확인도 하지 않고 무조건 길에 끌려 산행을 했는데, 아니 바로 위가 정상인줄 알았는데, 여러개의 봉오리 돌고 돌아 올라가고 내려오고 또 절별을 기어 올라가고 나서야 정상이 하늘이란 푸른 스크린을 배경으로 그려졌다.
이름도 모르는 새소리가 들려오고. 바람이 나뭇잎을 뒤집을 때마다 불경소리가 들렸다. 인기척은 멀리서도 들리지도 않았다. 사방을 둘러보니 옆 큰 암반 중간쯤에 수령이 꽤나 되어 보이는, 나보다도 훨씬 주름의 고랑이 깊은, 분제 모양의 소나무가 척박한 삶의 족함을 보여주고 있었다. 밑동은 장딴지만큼 굵었지만 몇 가닥의 새끼손가락만큼 가는 줄기엔 잎은 이루 헤아릴 수 있을 만큼 있었다. 산다는 것은 꼭 가진 것이 풍요로워야 만이 아름답지만은 안다는 것을 나무는 나에게 가르쳐 주고 있었다. (요즘 같은 가뭄에…….) 새는 날아가고 나뭇잎들이 슬슬 검어지기 시작했다. 서쪽 산에 해는 앵두 입술만큼 내밀고, 동쪽은 먹구름이 산을 덮치듯 검게 물들고 있었다. 번뜩 내려가야겠다는 생각이 뇌리를 때렸다. 몸보다 마음이 앞선다. 서둘러 몇 걸음 옮겼는데 겨서 올라왔던 낭떠러지가 등골을 오싹 잡는다. 살짝 위에서 내려다봤을 때 갑자기 무엇인가 해일처럼 덮쳐 왔다. 그것은 두려움, 무서움, 현기증. 나의 가슴은 한없이 작아지고 한기가 느끼고 사시나무처럼 떨려왔다. 한 발짝도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 정신의 분별력을 산산이 흩어져 새처럼 날아갔다.
그 순간 “이게 뭐지” “ 이 두려움은 어디서 온 게지” “이 무서움도” 의심이 생겼다. 순간 깊은 심호흡을 하며 “ 도대체 그것이 뭐였을까” 고된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때였다. 한 순간에 그것들은 아침 안개가 태양에 녹아 내리 듯 사라지는 것이었다. 나는 편안한 마음으로 무사히 하산을 하였다.
“ 이번 여행에 있어서 가장 큰 소득이었다.”
그 다음 날이었다. 아직 어제의 여행에 취한 향기가 채 가시지도 아침, 나는 제천 유로피아사우나에서 자고 일어나 가볍게 샤워를 하고, 옷을 주섬주섬 입으며 오늘의 여행 기대감에 콧노래로 사우나의 문을 박차고 나왔다. 아침을 해결하러 근처에 있는 콩나물 해장국 집으로 갔다. 3.800원 우선 값이 저렴한 것이 맘에 들었고, 아침이니 콩나물해장국이니 속편히 끼니를 때울 수 있어서 좋았다. 맛있게 한 그릇 후딱 먹고 카운터에 가서 계산을 하려고 지갑을 꺼내 열어보니 현금이 없다. 어제만 해도 있었는데, 귀신 곡할 일이다. 밤새 내가 잠에 취해 있을 때 도둑에 손 탄 것이다. 훔쳐간 것이다. 순간 처음 있는 일이라 당황했다. 이제껏 수차례 여행을 다녀 봤지만 난생 이런 일은 처음이었다. 순간 번개처럼 집사람이 핸드폰, 시계, 지갑을 조심하라는 주위를 받은 것이 전광석처럼 지나갔다. 카드며 다른 것은 모두 그대로 있는데 현금만 쏙 빼간 것이다. 허탈한 마음으로, 분개한 마음으로, 음식 값을 카드로 계산을 하고 사우나로 곧바로 달려가 카운터 주인에게 가서 따지듯 설명을 했으나 그는 찾을 방법이 없다고 나에게 차근차근 설명을 하였다. 실내에는 인권침해로 CCTV를 설치 할 수 없다고 했다. 나는 인정을 하고 할 수 없지 하며 그곳을 나왔다. 한 20여만 원을 잃어버렸다. 여비를 아끼려고 먹을 것도 제대로 못 먹고, 잠도 모텔이나 민박에서 자지 않고 사우나에서 잤는데. 하지만 나에겐 큰 경험이다. 식상했던 마음은 금방 평상심으로 돌아왔다. 보관상 나의 불찰이고, 집착해봐야 나만 괴로운 것, 이것도 어제 산에서 얻은 지혜 덕에 곳 바로 웃으며 은행에 가서 현금을 쓸 만큼만 뽑았다. 앞으로 이런 곳에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으니 그만하면 싼 수업료 아니겠는가.
이번 여행에서 돌아오는 길에 가슴이 흐뭇함을 느꼈다. 이루 다 글로 표현할 수 없이 많은 것을 보고 느꼈다. 4박 5일 동안 내가 어떻게 살아야할 것인가에 대해서 다짐도 했다. 자연과 대화를 나누는 법도 익혔고, 자연이 무엇인가 말하는 것도 듣고, 그리고 한 없이 아래로 내려야 한다는 것을, 그리고 또한 침묵을 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
2017.305.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