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것을 두고 과학적이라는 생각이 들기는 어렵습니다. 물론 편리함과 거리가 멀어 보입니다. 그런데 지은 지 100년이 넘는 오래된 한옥을 잘 살펴보면 놀라운 과학적 요소을 찾을 수 있습니다. 고택 속에 ‘비행기의 원리’가 숨어 있고, 빛의 반사를 이용한 흔적도 있습니다. 이제부터 고택 속에 숨어 있는 과학을 하나씩 알려드리겠습니다.
한옥에서 찾을 수 있는 첫번째 과학은 바람을 이용하는 방법입니다. 우리나라의 여름에는 남동풍이, 겨울에는 북서풍이 부는데요. 우리 조상들은 여름에 시원한 바람을 얻기 위해 한옥에 남동 방향으로 바람길을 만들었습니다.
바람이 지나다니기 좋도록 집의 끝에서 끝까지 일직선으로 뚫기도 하고, 여러 개의 사선을 교차시켜 더하기(+) 모양의 바람길도 만들었습니다. 창의 위치도 모두 일직선으로 놓아서 바람이 막히지 않게 했고요. 그래서 한옥에서 창을 모두 열어 놓으면 맨 끝에 보이는 창 너머의 바깥 풍경도 볼 수 있습니다.
이중에 최고라고 생각할 수 있는 바람길은 충남 논산에 있는 명재 윤증 선생의 고택에 있습니다. 이 집의 안채의 처마와 창고로 쓰이는 곳간채가 마주 보고 있는 곳인데요. 두 건물은 나란하지 않고 삐뚤어지게 놓여 있습니다. 건물을 삐딱하게 놓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두 건물을 비스듬하게 놓으면 바람길의 양쪽 간격이 달라집니다. 남쪽이 넓고 북쪽이 좁게 만들어져 있죠. 이렇게 되면 바람길 양쪽에서 재미있는 일이 생깁니다. 길이 넓은 남쪽에서 들어온 바람이 좁은 북쪽 길로 빠져나갈 때 바람의 속도가 빨라져서 더 시원한 바람이 불고요. 반대로 북쪽에서 들어온 바람은 남쪽으로 빠져나가면서 속도가 느려지고 순해지게 됩니다.
결국 윤증 고택에 있는 바람길은 여름에 불어오는 남동풍을 북쪽까지 시원하게 밀려들어가게 만들고, 겨울에 부는 차가운 북풍은 순하게 만들어주는 구조인 것입니다. 여기에는 숨어 있는 과학이 바로 ‘베르누이의 정리’입니다. 이는 비행기가 하늘에 뜨는 이유를 설명할 때도 이용되는 원리죠.
비행기 날개는 윗면을 볼록하게, 아랫면을 평평하게 만드는데요. 이렇게 하면 윗면을 지나는 공기가 장애물을 만나기 때문에 더 빠른 속도로 흘러가게 됩니다. 공기가 윗면에서 빠르게 흘러버리면 공기가 누르는 압력이 낮아지게 됩니다. 반대로 아랫면에서는 공기의 속도가 상대적으로 느리므로 압력이 높죠. 공기는 압력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이동하려는 성질이 있으므로 아래쪽 공기가 비행기 날개를 위로 밀게 되는 겁니다. 이 힘이 바로 ‘양력’이죠.
윤증 고택에서는 두 건물의 간격을 다르게 만들어서 바람이 시작하고 끝나는 지점의 속도를 조절했습니다. 무려 300여 년 전에 만들어진 한옥에 바람의 속도를 조절할 수 있는 구조가 들어 있는 셈입니다. 고택의 주인은 바람이 빨리 흘러 들어가는 곳에는 차갑게 보관해야 할 곳을 놓아두는 공간도 마련했다고 하니 정말 제대로 과학적인 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옥에서 찾을 수 있는 두번째 과학은 햇빛을 조절하는 방식입니다. 지구의 자전축은 23.5° 기울어져 있습니다. 따라서 북반구에서 해는 여름에 높이 뜨고 겨울에 낮게 뜹니다. 여름과 겨울에 각각 다르게 뜨는 햇빛을 잘 막고 불러들일 수 있어야 여름에는 시원하게, 겨울에는 따뜻하게 지낼 수 있습니다.
첫 번째 햇빛 조절 장치는 대청마루와 기단을 넘어 마당까지 닿는 처마입니다. 쭉 뻗은 처마는 여름에 빛을 막아 튕겨내고 겨울에는 햇빛을 통과시킵니다. 또 여름엔 시원한 공기가, 겨울엔 따뜻한 공기가 빠져나가는 것을 막아줍니다.
또 한옥은 방의 깊이를 얕게 지어서 추운 겨울에도 방 끝까지 햇빛을 들였습니다. 이 햇빛은 난방과 소독을 도왔죠. 창문도 여름과 겨울의 햇빛이 처마와 만나 이루는 각도의 중간 지점에 냈습니다. 여름에는 햇빛을 피하고 겨울에는 햇빛을 불러들이기 위해서였습니다.
마당에는 꼭 왕모래를 깔았습니다. 모래에 반사된 햇빛이 대청마루와 방안으로 들어와서 간접조명의 역할을 하도록 만든 것입니다. 이렇게 한옥에는 바람과 햇빛을 다스리는 지혜가 숨어 있습니다. 올 겨울에는 잘 보존된 한옥을 찾아가 숨어 있는 과학적 원리를 찾아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