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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受苦惱救護
가, 法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於非親友에 守護廻向호대 與其親友로 等無差別이니 何以故오 菩薩摩訶薩이 入一切法平等性故로 不於衆生에 而起一念非親友想하며 設有衆生이 於菩薩所에 起怨害心이라도 菩薩이 亦以慈眼視之하야 終無恚怒하고 普爲衆生하야 作善知識하야 演說正法하야 令其修習하나니라
"불자들이여, 보살마하살이 친구 아닌 이를 수호하고 회향하되 친구와 다름이 없게 하나니,무슨 까닭인가. 보살마하살이 일체법이 평등한 성품에 들어간 연고로, 중생에게 잠깐도 친구가 아니라는 생각을 내지 아니하며, 설사 어떤 중생이 보살에게 해치려는 마음을 일으키더라도 보살은 자비한 눈으로 보고 성내지 아니하며, 중생들의 선지식이 되어 바른 법을 연설하여 닦아 익히게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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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고뇌구호(受苦惱救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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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뇌를 받음으로써 구호한다. 여기는 중생들을 대신해서 고뇌를 받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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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法): 친구 아닌 이를 친구와 다름없이 여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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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자(佛子)야
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이
어비친우(於非親友)에 : 친우가 아닌데
수호회향(守護廻向)호대 : 수호해서 회향하되, 친구, 친한 사람, 일가친척, 형제자매, 부모처자 이런 사람들을 수호하고 보살피고 베풀고 하는 것은 누구든지 다한다.
굳이 사람을 들먹거릴 것도 없다. 가만보면 새들이 그런 것을 참 잘한다. 자기 죽음을 무릅쓰고 멀리 날아가서 먹을 것을 구해서는 자기는 안먹고 입에 물고와서 새끼에게 먹여 주고 또 날아가서 벌레를 잡아와서 새끼에게 먹여준다. 먹이를 자기 입에 물고 있는데 얼마나 목구멍으로 넘기고 싶겠는가, 그런데도 참고 자기 새끼에게 먹이는 것이다. 조류도 그렇고 일체 동물들도 다 잘하는 일인데 사람이 ‘자식을 위해서 열심히 살았다’고 하는 것은 물론이고, 자기가 벌어서 자기 자식에게 물려주는 것은 이야기거리도 안된다. 친우가 아닌데서 수호회향하되
여기친우(與其親友)로 : 그 친우를 위하듯이, 내가 낳은 새끼들을 위하듯이 친우가 아닌 사람, 전혀 알지도 못하는 사람에게 내 피붙이처럼 여기고 보살핀다.
이것은 참 어려운 주문이다. 그러나 여기는 보살사상이니까 아무리 어려운 주문이라 하더라도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등무차별(等無差別)이니 : 그 친우로 더불어 평등하게 차별이 없어야 하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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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고(何以故)오 : 왜냐
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이 : 보살마하살이
입일체법평등성고(入一切法平等性故)로 : 일체 평등한 성품에 들어가는 고로. 일체법은 평등하니까 평등한 성품에 들어가는 까닭으로
불어중생(不於衆生)에 : 중생에게 있어서
이기일념비친우상(而起一念非親友想)하며 : 한생각도 친우가 아니라는 생각을 일으키지 아니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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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유중생(設有衆生)이: 설사 어떤 중생이
어보살소(於菩薩所)에 : 보살의 처소에서
기원해심(起怨害心)이라도: 원해심을 일으킨다 하더라도. ‘저 나쁜보살, 저 나쁜 스님, 저 나쁜 중 어떻게 하면 저걸 한 번 밟을까’ 그런 생각을 일으킨다 하더라도
보살(菩薩)이 : 보살은
역이자안시지(亦以慈眼視之)하야: 또한 자비로운 눈으로 그를 바라보아서
종무에노(終無恚怒)하고 : 마침내 끝까지 그를 향해서 성을 내거나 분노하는 바가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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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위중생(普爲衆生)하야 :널리 중생을 위해서
작선지식(作善知識)하야 :선지식이 되어서
연설정법(演說正法)하야 : 바른 법을 일러 주어야 한다. 연설정법 이것이 중요하다. 정법을 연설한다.
다른 복잡한 것은 설명할 것도 없이 인과이치 인연의 이치 하나만 잘 설명해 줘도 좋다. 그것이 정법이고, 또 제일 익숙하고 만만하기 때문이다.
‘석가세존이 깨달은 바가 뭐냐?’ 라고 했을 때, 모든 학자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하는 것이 ‘연기의 이치를 깨달았다. 인과 이치를 깨달았다’라는 것이다. 바로 그것 하나만 가지고 철저히 믿고 철저히 실천하고 철저히 일러주면 훌륭한 법사다.
우리가 인과를 무시하고 사는 경우가 너무 많다.
영기수습(令其修習)하나니라 : 그로 하여금 그것을 실천하도록 한다. 거기다 별을 또 쳐놓았다. 저 위에는 별을 세 개 쳐놨고 여기는 또 별을 한 개 쳐놨는데 참 대단하다.
십회향 법문에 들어오니까 처음부터 이렇게 사람을 놀라게 하는 법문을 한다.
‘일체중생을 위하여 등불이 되리니, 일체 중생에게 대도사가 되리니, 일체중생에게 구호가 되리니, 일체 중생에게 나아갈 바가 되리니. 일체 중생의 집이 되리니.’ 시적 감각이 있는 사람이 이 대목을 우리말로 잘 다듬으면 좋은 기도문이 될 것 같다.
아까 별 세 개 쳤다고 하는 대목이 이락구호라고 하는 대목이었다. 이롭고 즐거운 것으로써 구호하는 것이고, 그다음에 방금 읽은 것은 고통을 대신 받는 것으로써 구호한다는 내용이다.
나, 大海喩
譬如大海를 一切衆毒이 不能變壞인달하야 菩薩도 亦爾하야 一切愚蒙이 無有智慧하야 不知恩德하며 瞋狼頑毒하야 驕慢自大하며 其心盲瞽하야 不識善法하는 如是等類의 諸惡衆生이 種種逼惱라도 無能動亂이니라
"마치 큰 바다는 모든 독한 것으로도 변하게 할 수 없나니 보살도 그러하여, 어리석고 지혜 없고 은혜도 모르고 심술궂고 완악하고 교만하여 잘난 체하고 마음이 캄캄하여 선한 법을 알지 못하는 그런 종류의 나쁜 중생들이 갖가지로 못 견디게 굴더라도 능히 움직이지 못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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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해유(大海喩): 큰 바다가 변하지 아니함에 비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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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경이 이렇게 많아도 아까와서 앞으로 쉽게 넘겨지지 않는다.
앞의 글들이 다 너무 좋아서 미련이 많아진다.
위에 나온 대목 중에 자안시지(慈眼視之)가 있었는데 ‘자비의 눈으로 바라본다’는 것은 재물을 들이지 않고 보시하는 일곱 가지 보시인 무재칠시(無財七施) 에도 들어있다. 자안시(慈眼施)가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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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여대해(譬如大海)를 : 비유하자면 큰 바다를
일체중독(一切衆毒)이 : 일체중독이
불능변괴(不能變壞)인달하야 : 큰바다의 물을 변하게 하지 못한다.
아무리 독한 독이라고 하더라도 그 바다는 변괴시키지 못한다. 독도 바다에 들어가면 전부 바닷물로 변해 버리기 때문이다. 중국의 황하강에서 내려온 그 많고 많은 황토물 역시 바다로 들어가는 어귀에서 한 몇 킬로 까지는 누렇지만, 우리 생각 같아서는 태평양 중간까지 가도 갈만한 물인데, 그 전에 이미 물이 전부 맑은 물로 변한다.
황토물도 바다에 들어오면 어느 순간 맑은 물로 변해버리는 것이다.
황하에서 누런 흙만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곳곳에서 얼마나 많은 오염물들이 바다로 들어오겠는가? 그렇지만 전부 청정한 물로 변해버린다. 또 바다물은 시체도 남겨두지 않고 기여이 물결을 쳐서 가장자리로 밀어낸다. 그런 것이 바다의 역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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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살(菩薩)도 : 보살도
역이(亦爾)하야 : 또한 그래서
일체우몽(一切愚蒙)이: 일체 어리석고 몽매한 사람이
무유지혜(無有智慧)하야 :지혜가 없어서
부지은덕(不知恩德)하며 : 은덕을 알지 못하며, 이것이 중요한 말이다. 은덕을 알지 못하며
진낭완독(瞋狼頑毒)하야 : 화내고 이리처럼 완악한 독을 품으면서
교만자대(驕慢自大)하며 : 아무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 하늘을 떠받들 정도로 교만이 탱천하다. 스스로 높고 스스로 크다고 잘났다고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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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심맹고(其心盲瞽)하야 : 그 마음은 아주 타고난 봉사, 태어나면서부터 아무것도 못 보는 봉사와 같아서
불식선법(不識善法)하는 : 선법을 알지 못하니
여시등류(如是等類)의 : 이와 같은 무리들의
제악중생(諸惡衆生)이 : 온갖 악을 짓는 중생들이
종종핍뇌(種種逼惱)라도 : 가지가지로 핍뇌 할지라도 그런 중생들이 가지가지로 핍박하고 괴롭게 한다 하더라도
무능동란(無能動亂)이니라: 능히 동란함이 움직이지 않는다. 요지부동이다.
그런 사람들이 아무리 핍박한다 하더라도 요지부동이다.
어릴 때 내가 해인사에서 지월스님을 모시고 살았다. 그 스님은 선방의 유나스님으로 오래계셨다. 경을 본 스님도 아닌데 어쩌다 학인이 도량을 거닐다가 그 스님을 만나면 보통 한 시간, 두 시간도 좋게 붙들고 ‘부처님이 말씀하시기를’ 하고 이야기를 하셨다. 당신이 평소에 학인들에게 고쳤으면 싶은 내용들이 많이 쌓여있는데, 그 자리에서 그 학인이 잘못한 건 아니지만, 누구라도 만나면 ‘오냐 잘 만났다’ 하고 평소 생각을 계속 이야기 하시는 것이다. 그런데 얼마나 간절하게 이야기 하는지 그 자리를 떠날 수가 없다. 만났다 하면 ‘부처님이 말씀하시기를’ 하는 이야기를 한 두시간씩 들어야 하니 학인들은 그 스님을 안만나려고 피해 다녔다.
지월스님이 6.25직후에 강원도에서 남쪽으로 내려오다가 경찰에게 걸렸다. 아무 잘못도 없이 그냥 걸린 것인데, 그 당시는 주민등록증이 없고 도민증이라는 것이 있었는데 스님들은 그런 것도 제대로 안갖추고 다닐 때였다.
그런데 무지몽매한 순경들이 경찰서에 이 스님을 데리고 가서 얼마나 구타를 했는지 하루종일 얻어맞았다. 아무리 때려도 진실만 말하니까 나중에는 그냥 놓아주었다.
6.25때니까 빨갱이가 혹시 승복을 입고 절에 스며들지 않았나 하는 의혹이 많았을 때였다. 그런데 그렇게 오랫동안 구타를 해도 그 스님은 아는 대로 곧이 곧대로 이야기하니까 나중엔 풀어준 것이다.
그래서 스님이 두시인가 세시인가가 되어서 절에 올라왔다.
“스님 왜 이제 왔습니까.” 하고 상좌들이 물으니까 “아 내가 길을 잘못들어서 이렇게 늦게 왔다.”라고 하셨다. 그리고는 새벽 3시에 모두 일어나서 예불하고 정진하는데 스님도 그 피투성이가 된 몸을 가지고 반듯하게 앉아가지고 대중들과 똑같이 정진을 했다. 낮에도 그렇게 정진을 하고 밤에도 정진을 하고 그러면서 자기도 모르게 졸게 되었는데 조는 사이에 끙끙 앓았다. 상좌들이 아무래도 이상해서 조사해 보니 스님의 온몸이 완전히 피투성이가 되고 멍이 들어서 거의 송장이 다 되다시피한 상태였다. 그런 상태에서도 스님은 빳빳하게 앉아서 그렇게 정진 시간을 다 채우며 공부를 한 것이다.
그때 그 자리에 있었던 상좌스님이 태종대 도성스님인데 도성스님 도견스님이 그 스님의 상좌다. 도견스님이 돌아가셨지만 도자돌림 스님들이 상좌인데 그 스님들한테 내가 직접 들었던 이야기다.
우리가 모시고 산 그 스님의 별명은 자비보살이었다.
그 스님은 선방에 계시는데도 낮에 부처님께 불공올리고 낮축원만은 꼭 당신이 하셨다. 수십년을 해인사 대적광전의 축원을 살아있는 동안은 당신이 다 했는데, 최고의 축원이었다. 그렇게 듣기 좋았다. 그래서 그 스님의 축원을 들으려고 같이 가서 예불하고 그 축원을 듣곤 했다. 그런 아주 훌륭한 스님이 계셨다. 지월(指月)이라고 가리킬 지(指)자 달 월(月)자 해인사 지월스님이다.
여기에 보니까 마음이 아주 캄캄해서 선법을 알지 못하고 이와같은 유의 모든 악한 중생들이 가지가지로 핍박하고 괴롭게 할지라도 무능동란이라. 능히 그를 움직이게 하고 어지럽게 하지 못한다. 정말 그 스님이 그랬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이지만 참으로 눈물겹고 대단한 정진력이라는 것을 알았다.
다, 日輪喩
譬如日天子가 出現世間에 不以生盲不見故로 隱而不現하며 又復不以乾闥婆城과 阿修羅手와 閻浮提樹와 崇巖邃谷과 塵霧煙雲인 如是等物之所覆障故로 隱而不現하며 亦復不以時節變改故로 隱而不現인달하야
"마치 일천자(日天子)가 세간에 나타날 적에 소경들이 보지 못한다고 해서 숨어버리지 아니하며, 또 건달바성이나, 아수라의 손이나, 염부제의 나무나, 높은 바위나, 깊은 골짜기나, 티끌. 안개. 연기. 구름. 따위가 가린다고 해서 숨어버리지 아니하며, 또 시절이 변천한다 해서 숨고 나타나지 않는 것이 아니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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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륜유(日輪喩):태양에 비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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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여일천자(譬如日天子)가 : 비여일천자가, ‘일천자중’이라는 말도 있는데 여기 일천자는 태양을 두고 하는 소리다. 비유하자면 태양이
출현세간(出現世間)에 : 세상에 출현함에
불이생맹불견고(不以生盲不見故)로 : 태어나면서부터 맹인이 된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이 보지 못한다고 해서
은이불현(隱而不現)하며 : 숨어서 나타나지 아니하며, 봉사가 태양을 못본다고 해서 태양이 숨은 것은 아니다. 저렇게 하늘에 떠서 쨍쨍하게 비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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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부불이건달바성(又復不以乾闥婆城)과 : 또 다시 건달바성과
아수라수(阿修羅手)와
염부제수(閻浮提樹)와
숭암수곡(崇巖邃谷)과: 높은 바위 깊은 골짜기와
진무연운(塵霧煙雲)인 : 먼지 구름 안개 구름 이런 것들이
여시등물지소부장고(如是等物之所覆障故)로 : 이러한 사물들이 덮어서 방해를 하는 까닭으로
은이불현(隱而不現)하며 : 숨어서 나타나지 않는다. 태양은 태양대로 그대로 태양의 모습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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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부불이시절변개고(亦復不以時節變改故)로 : 또한 시절이 변개하는 고로
은이불현(隱而不現)인달하야 : 숨어서 나타나지 아니한 것과 같다. 태양은 봉사가 못본다고 해서 안나타나는 것도 아니고 다른 여러 가지 방해물들이 태양을 가린다고 해서 안나타나는 것도 아니다. 또 밤과 같은 어떤 시기가 되어서 보이지 않는다고 해도 태양이 없는 것도 아니다.
라, 合
菩薩摩訶薩도 亦復如是하야 有大福德하며 其心深廣하며 正念觀察하며 無有退屈하며 爲欲究竟功德智慧하며 於上勝法에 心生志欲하며 法光普照하야 見一切義하며 於諸法門에 智慧自在하며 常爲利益一切衆生하야 而修善法하며 曾不誤起捨衆生心하며 不以衆生이 其性弊惡하야 邪見瞋濁하야 難可調伏으로 便卽棄捨하야 不修廻向하고 但以菩薩大願甲冑로 而自莊嚴하야 救護衆生하야 恒無退轉하며 不以衆生이 不知報恩으로 退菩薩行하야 捨菩提道하며 不以凡愚가 共同一處로 捨離一切如實善根하며 不以衆生이 數起過惡하야 難可忍受로 而於彼所에 生疲厭心하나니
"보살마하살도 그와 같아서 큰 복덕이 있고, 마음이 깊고 넓으며, 바른 생각으로 관찰하여 물러나지 않고, 공덕과 지혜에 끝까지 이르며, 높고 훌륭한 법에 뜻을 두어 구하며, 법의 광명이 두루 비치어 온갖 이치를 보며, 모든 법문에 지혜가 자재하여 항상 일체 중생을 이익케 하려고 선한 법을 닦으며, 실수하여서도 중생을 버리려는 마음을 내지 아니하느니라.
중생들의 성품이 추악하고 소견이 잘못 들고 성 잘 내고 흐리어 조복하기 어렵다 하여, 문득 버리고 회향하는 일을 닦지 않는 것이 아니니, 보살은 오직 큰 원력의 갑옷으로 스스로 장엄하여 중생을 구호하고 잠깐도 퇴전하지 아니하며, 중생들이 은혜 갚을 줄을 모른다 하여 보살의 행에서 퇴전하여 보살의 도를 버리지 아니하며, 어리석은 범부들과 한 곳에 있다 하여 모든 진실한 선근을 버리지 아니하고, 중생들이 허물을 자주 일으켜도 참을 수 없다 하여 그들에게 싫증내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으니라."
*
합(合): 법과 비유를 함께 해석하다
*
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도 : 보살마하살도
역부여시(亦復如是)하야 : 또한 이와 같아서
유대복덕(有大福德)하며: 큰 복덕이 있어서 보살은
기심심광(其心深廣)하며 : 그 마음이 깊고 넓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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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념관찰(正念觀察)하며:아주 바른 생각으로 관찰해서
무유퇴굴(無有退屈)하며 : 퇴굴하지 아니하며
위욕구경공덕지혜(爲欲究竟功德智慧)하며: 공덕 지혜를 완성하고자 해서. 구경하고자 해서.
어상승법(於上勝法)에 : 상승법에 훌륭한 법에
심생지욕(心生志欲)하며 : 마음에 하고자 하는 뜻을 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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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광보조(法光普照)하야 : 법의 광명이 널리 비춰서
견일체의(見一切義)하며 : 일체 뜻을 보며
어제법문(於諸法門)에: 모든 법문에
지혜자재(智慧自在)하며 : 지혜가 자재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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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위이익일체중생(常爲利益一切衆生)하야 : 항상 일체 중생을 이익하게 하기 위해서
이수선법(而修善法)하며 : 선한 법을 닦으며
증불오기사중생심(曾不誤起捨衆生心)하며 : 일찍이 그릇 중생을 버리는 마음을 일으키지 아니하며, 보살은 한 번도 중생을 버리려는 마음을 일으킨 적이 없다.
그 상대가 어떻든지 간에 그렇다.
불이중생(不以衆生)이 : 또 중생이
기성폐악(其性弊惡)하야 : 그 성품이 폐악해서
사견진탁(邪見瞋濁)하야 : 사견과 성내고 혼탁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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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가조복(難可調伏)으로 : 가히 조복하기 어려운 것으로써
변즉기사(便卽棄捨)하야: 곧 사기해서 회향을 닦지 아니하지 않고. 그렇다고 해서 중생이 아무리 나쁜 놈이라고 해서 그 사람 때문에
불수회향(不修廻向)하고: 회향을 버리는 일은 없다. 보살은 보살의 의무를 다하고 보살의 할 일을 다하는 것이다.
상대가 착한데 착하게 해주는 것, 좋게 해주는 것은 누구든지 다 하는 일이다. 아까도 이야기 했듯이 자기 새끼를 돌보는 일이야 누구든지 다하는 일이다. 여긴 나쁜 놈에게도 그렇게 나쁘다고 해서 그를 버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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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이보살대원갑주(但以菩薩大願甲冑)로 : 다만 보살의 큰 원력의 갑옷으로써
이자장엄(而自莊嚴)하야 : 크게 스스로 장엄해서
구호중생(救護衆生)하야 : 중생을 구호해서
항무퇴전(恒無退轉)하며 : 항상 퇴전함이 없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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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이중생(不以衆生)이 : 중생들이
부지보은(不知報恩)으로 : 은혜 갚을 줄 알지 못한다고 해서
퇴보살행(退菩薩行)하야 : 보살행에서 물러나서
사보리도(捨菩提道)하며 : 보살도를 버리지도 아니한다.
‘저 나쁜 놈, 은혜도 모르고, 배은망덕한 놈, 보살행이고 뭐고 걷어치워야 되겠다’ 그런 경우가 많다. 하다보면 위한다고 위하고 그렇게 위해줬건마는 끝내 그 사람 은혜를 저버리고 등에다 비수를 꽂는 일들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가? 보살은 그런 일을 당했다고 해서 보살도를 버리지 않는다. 전부 그런 이야기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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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이범우(不以凡愚)가 : 어리석은 범부가
공동일처(共同一處)로 : 한곳에 살면서
사리일체여실선근(捨離一切如實善根)하며 : 사실과 같은 선근을 버려서 떠나지도 아니하며. 아주 어리석은 범부하고 같이 산다고 해서 그와 한타령이 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처염상정(處染常淨) 하고 화이부동(和而不同)하는 것이다. 같이 살되 그들과 함께 하지는 않는다. 내면까지 모든 것을 다 함께 하지 않는다. 화광동진(和光同塵)이니 하는 말이 그런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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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이중생(不以衆生)이 : 중생들이
삭기과악(數起過惡)하야 : 자주자주 악을 일으켜서
난가인수(難可忍受)로 :가히 참고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으로써
이어피소(而於彼所)에 : 그들이 있는 곳에서
생피염심(生疲厭心)하나니 : 피염심을 내지 아니하나니라. ‘이런 중생 참 정말 못봐주겠네’ 하는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중생이라고 해서 그들이 있는 곳에서 그를 싫어하거나 미워하거나 버리려고 하거나 외면하려고 하거나 떠나려고 하거나 ‘내 니 안보면 되지’ 하는 식으로 보살은 마음을 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 말씀은 큰 나무와 같다. 우리가 올라가기는 어려운 큰 나무인데 그 나무는 너무 아름답고 훌륭하다. 보살의 나무라고 하는 이 거대한 나무는 너무 훌륭한 나무라서 쳐다보니 욕심은 나지만 올라가기는 어렵다. 그러나 끝내 우리가 정복해야 할 나무다.
얼마나 근사한가. 정말 이런 좋은 법을 설하려고 도솔천궁에 올라가는 이야기, 도솔천궁에서 또 게송으로 찬탄하는 이야기를 얼마나 많이 뜸들였는가. 뜸도 보통 뜸이 아니었다.
*
오늘 공부 마치기 전에 지난 시간에 보았던 마지막 게송을 한 번 더 살펴보겠다.
중생무시래(衆生無始來)로 : 중생이 무시 이래로
생사구유전(生死久流轉)하야 : 생사에 오랫동안 유전해서
불료진실법(不了眞實法)일새 : 진실한 법을 알지 못했을새
제불고흥세(諸佛故興世)로다 : 그래서 모든 부처님은 세상에 나오셨다.
중생이 잘 살면 부처님이 나올 까닭이 없다. 중생이 힘들고 고통받고 못사니까 그들을 구하려고 부처님이 이 세상에 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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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법불가괴(諸法不可壞)며: 모든 법은 가히 무너뜨릴 수 없으며
역무능괴자(亦無能壞者)니 :누구도 그 법을 무너뜨리는 자도 없다.
법도 무너지지 않지만 이 불법(佛法)을 무너지게 하는 사람도 없다.
누가 불법을 무너지게 하겠는가? 스님들이 스님노릇 좀 잘 못한다고 해서 불법까지 무너지지는 않는다. 물론 승려가 존중하게 살면 법도 존중히 여긴다는 말이 있다.
그렇다고 해서 승려들이 잘못하는 일이 부지기수라고 해서 불법 전체가 무너지는 것은 아니다. 불법은 절대 그런 것이 아니다. 불법을 그렇게 안다면 잘못 알아듣고 있는 것이다. 흔히 이 세상에서 ‘불법이 훼손되었다’는 둥, 그렇게 많이 이야기 하지만, 불법은 영원히 훌륭한 법으로서 그냥 남아 있을 뿐이다. 불자나 스님들이 부처님 제자의 탈을 쓰고 무슨 짓을 하더라도 엄격하게 이야기 하자면 그런 것은 불법하고는 관계가 없다.
불법은 아주 훌륭한 불법으로 그냥 남아있는 것으로 이해해야 된다.
불법이 그렇게 사람 몸에 딸려서, 사람이 우리가 한 둘이 잘못한다고 해서 불법까지도 문제가 있다면 그런 것이 무슨 불법인가? 그렇게 되면 사람법이다.
불법은 그렇게 사람에게 호락호락 하게 넘어가는 것이 아니다. .
자재대광명(自在大光明)이: 자유자재한 큰 광명이
보시어세간(普示於世間)이로다: 이 세간에 널리보이는 도다.
내가 오늘 십회향품 이야기 하면서 뒤를 다시 돌아보니 또 미련이 남아서 이렇게 부연설명을 하였다.오늘 법문도 정말 훌륭하다.
이런 것들이 우리에게는 콩나물 법문과 같다. 금방 잊어버리고 돌아서면 또 새카만 중생, 어리석은 중생으로 돌아가더라도 우리가 공부한 것들은 제8 아뢰야식, 저 깊은 곳에 잠재되어 있어서 언젠가 그것이 보살의 꽃을 활짝 피우고 보살의 열매를 맺을 것이다.
전혀 싹이 날 것 같지 않고 꽃이 필 것 같지도 않은 딱딱한 나무 등걸에서, 봄이 오면 싹이 나고 잎이 피고 꽃이 피는 것과 같이 우리 완악한 중생에게도 시절 인연이 도래하면 그런 보살의 꽃이 피고 열매가 맺는다. 이것은 틀림없는 이야기다. 그런 꽃과 열매가 우리 속에 잠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거기다가 우리는 계속 화엄경이라고 하는 물을 붓고 있다.
본래 우리 마음속에 잠재되어 있는 씨앗에 화엄경이라고 하는 물을 부으니 꽃을 피우는 것이다. 이치는 그렇다.
오늘 공부 여기까지 하겠다.
(박수소리)
하강례
큰스님의 보약
흐린 날씨 탓인지 법회 전에는 큰스님의 몸이 무거워 보이셨다. 요즘엔 피곤해서 공부 사이사이 ‘잠을 많이 잔다’고 하셨다. 화분을 갖고 오신 스님보다 선물이 먼저 올라왔다.
그 꽃을 보고 ‘색이 중간색이고 이 색도 아니고 저 색도 아니고 어째 희줄그레한 꽃’이라고 하셨다.
“내가 비판안하기로 했는데 업이 되어가지고 그런가. 화엄경에 보면 요즘 내가 공부하는 이세간품에 나와 있어. 절대 책망하지 말라. 부모가 어린이아들 똥싸고 오줌싸도 책망하지 않잖아? 그렇지? 그렇게 생각해 버리면 누가 무슨 짓을 해도 탓할 일은 아닌거라.”
그러시고 덧붙여 주셨다.
“어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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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어려움을 다 해결해 주는 것은 역시 화엄경 강의였다.
1부 강의를 마치시고 잠깐 나오셨는데도 큰스님 얼굴이 환했다.
“화엄경이 내 살 길이야. 아이고 화엄경에게 내가 얼마나 고마운지 이제사 알겠어요. 화엄경을 가지고 내가 집을 삼고 도반을 삼고 스승을 삼고 의지처를 삼고 양식을 삼고 원기를 삼고 화엄경이 나의 모든 것이야. 그 좋은 것을 가지고 나의 모든 것으로 삼았으니 참!” 하고 기뻐하시는데 서울에서 오신 노비구니스님들이 쉬는 시간에 맞춰 인사를 하러 들어오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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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봉산 연수암에서 뵈었던 노스님도 상좌스님과 같이 오셔서 인사를 올리셨다.
“제가 나이가 억수로 많은데 간신히 왔어요. 19살에 절에 와서 절 밥도 많이 먹었는데 아무것도 모릅니다.” 2년 전에 뵈었을 때 연수암 노스님은 늘 일본어로 된 경전을 읽으신다고 하셨었다. 얼마나 책읽기를 좋아하시면 악보를 놓는 보면대 위에 경전을 올려놓고 읽으실까 하고 놀랐던 기억이 난다. 아마 올해 87세가 되셨을 것이다.
“스님 아주 감사합니다. 오래오래 계십시오.”
노스님이 큰스님께 간절히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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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 분 옥수동 미타사에서도 노비구니 스님이 오셨다. 다리가 너무 아파서 1부만 마치고 서울로 올라가신다고 하면서, 문중의 회의에 참석하러 오신 김에 공부를 하러 오셨다고 했다.
“먼데서 스님들이 정성을 기울이시니 그게 내 힘이다. 그게 보약이고”
“고맙습니다. 스님”
두 분 스님이 서로 고맙다고 인사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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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회전 꽃 이야기를 마무리 하자면, 화분을 미리 올려보내셨던 지리산 스님이 나중에 올라오셨는데 큰스님은 방금까지 꽃이 밉다고 하시던 말씀을 바꾸셨다.
“꽃 좋은 것 가지고 왔습니다. 지리산에서 나는 꽃이야?”
하고 물으셨다.
“오늘 다육이네 집에 갔다가 괜찮다고 하길래.”
“괜찮다고 하길래? 스님이 보기는 어떤데?”
“그냥. 스님 차탁에 올리시라고요.”
“산중에서는 어지간한 밖에서 들어온 꽃이 눈에 안들어 와. 산중에 꽃 피고 새순이 돋는 거 얼마나 예쁘고 아름다운지 몰라.”
“맞아요.”
지리산 스님도 문득 말머리를 돌리셔서 진해 벚꽃 구경을 하고 오신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한창 피었지?”
“한창 피어갖고 일부 시내에는 흩날리고 있더라고요.”
“좋았겠네.”
큰스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날씨가 따뜻해서 꽃도 금방 피고 금방 진다”
“그래갖고 오는 길에 다육이네 집에 갔더니 특별한 건 없고”
“고마워요 꽃을 준다는 게 중요한 거지”
생각해 보니 화엄법회 전에 이미 큰스님 마음은 가볍게 풀어지신 듯 했다.
지리산 스님이 올해는 대중들과 화계를 다녀올 거라고 하셨다.
“화계? 벚꽃 보러? 아유 그 사람 많은데? 그래도 가야지 어떻게 해.”
큰스님이 고개를 끄덕이셨다.
그래도 가야지
화엄의 꽃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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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그래도 가야지 화엄의 꽃구경...아름다운 잔치 고맙습니다... _()()()_
감사합...
의견을 반영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_()_
고맙습니다. _()()()_
演說正法하야 令其修習하나니라..
고통을 대신 받는 것으로 구호한다.
혜명화 님! 수고 하셨습니다.._()()()_
고맙습니다._()()()_
화엄경을 가지고 내가
집을 삼고
도반을 삼고
스승을 삼고
의지처를 삼고
양식을 삼고
원기를 삼고
화엄경이 나의 모든 것이야.
그 좋은 것을 가지고 나의 모든 것으로 삼았으니...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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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대방광불화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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