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홍구 교수가 쓰는 사법부, 회한과 오욕의 역사]
제 7 화 - 사법파동 (상) 사법부의 독립성
71년 7월 사법파동 당시 유태흥 수석부장판사가 형사지법 판사들의 사표를 모아들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왜 이범렬 부장이었나? 표적이 된 이범렬 부장판사는 심성이 곱고 착했지만, 검찰과의 관계에서는 자를 것은 칼로 자르듯 서릿발 나게 확실히 잘르는 존경받는 법관이었다. 목요상 변호사는 자신이 <오적>사건과 <다리>사건을 맡아 심신이 고달파 서울형사지법의 부장판사들을 모두 찾아다니며 조언을 구했는데, 이범렬 부장만이 소신껏 하라고 격려해 주었다고 회고했다. 이범렬 부장의 형사지법 항소3부는 1971년 1월부터 7월까지 1심에서 유죄가 선고된 19건의 사건에 대해 원심을 깨고 무죄를 선고했고, 반공법 위반사건 5건에 대해서도 무죄 또는 일부 무죄를 선고했다. 이 때문에 그는 서울대생 신민당사 농성사건을 무죄판결한 양헌 부장판사와 함께 검찰의 ‘사랑’을 담뿍 받게 된 것이다. 검찰은 양헌 판사도 얽어 넣기 위해 수사관을 구치소에 잠입시켜 정보를 수집하기까지 했는데, 양헌 판사의 부인에게 돈을 주었는데 “돈은 돈대로 처먹고 형은 빵, 실형 때리고 영 나쁜 놈”이라고 불평을 터트리는 재소자를 만나 쾌재를 불렀다고 한다. 그런데 조사해보니 중간에 돈을 전달하던 사람이 꿀꺽해버린 것이라 양헌 판사는 다행히 화살을 비껴갈 수 있었다고 한다. 현직법관이 향응이나 금품수수와 관련하여 구속된 사례는 자유당 시절에도 몇 차례 있었고, 심지어 서울지법원장이 수뢰혐의로 구속된 일까지 있었다. 그러나 이런 사건에 대하여 법관들이 집단행동에 나선 적은 없었다. 그만큼 이번 사건은 검찰의 보복이었음이 명백한 것이었다. 파동의 확산 형사지법의 젊은 단독판사들은 대법원장의 면담을 요구했고 휴가 중이던 민복기 대법원장도 급거 귀경하여 소장판사들과 만나기로 하였다. 그런데 서울에 돌아온 민복기는 대법원장인지 법무장관인지 모를 언동으로 빈축을 샀다. 그는 이번 사건이 법원과 검찰의 갈등처럼 알려져 있지만, 자신은 갈등으로까지는 해석하지 않으며 사소한 개인사건으로 서로가 의사전달이 안 돼 빚어진 오해일 뿐이라고 사태의 의미를 축소했다. 그는 이번 사태를 사법권 침해나 보복으로 보지 않는다면서 법무부 장관을 만나 해결책을 모색해보겠다고 말했다. 보수적인 법관들이 집단으로 사표를 제출하는 긴박한 상황에서 대법원장이 사법권 침해가 아니라 오해라고 검찰을 비호하면서 겨우 법무장관을 만나보겠다고 하였으니 젊은 판사들의 반발은 더욱 거세졌다. 이에 대한변호사협회는 비상총회를 열어 검찰보다도 대법원장을 강력히 비판하면서 사퇴를 권고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이 결의안에 따르면 사법부의 최고책임자인 대법원장이 법관들의 비장한 결의를 외면하고 오히려 검찰을 비호하는 발언을 하여 사태를 더욱 악화시킨 것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퇴해야 한다는 것이다. 최영도, 홍성우 등 판사들은 7월 30일 대법원장 면담을 앞두고 더욱 강력하게 입장을 전달하기 위해 사법침해 사례를 1) 반공법·국가보안법 사건에서 검찰과 견해를 달리한 법관을 용공분자로 취급하여 협박하고 신원조사를 했다, 2) 판사실에 도청장치를 했다, 3) 무죄선고가 나면 법관이 부정한 재판을 한 듯 비난하면서 예금통장을 조사했다, 4) 판사들을 미행·사찰하고 함정수사까지 했다 등 7개항으로 정리했다. 서울민사지법원의 법관들도 가만 있지 않았다. 민사지법의 판사 44명도 집단사표를 제출했고, 형사지법의 판사들과 더불어 위의 7개항을 뼈대로 한 사법권수호건의문을 발표하였다. 건의문 발표와 함께 서울형사지법의 홍성우, 김인중, 최영도, 장수길, 금병훈, 목요상, 김공식 등 7명의 판사가 민복기 대법원장을 방문하여 검찰의 사법권 침해사례에 대한 시정책을 강구할 것을 요청했다. 최영도 변호사에 따르면 대법원장이 “놀라시는 척 하시는 것” 같았다고 한다. 검찰총장에 법무장관까지 지내 검찰의 행태에 대하여 누구보다도 잘 알 만한 대법원장이 이런 사정을 전혀 몰랐었다고 믿을 수는 없다는 뜻이었다. 판사들이 자부심을 갖고 여태까지 외압에 굴하지 않고 법과 양심에 따라 재판을 해왔다고는 하지만, 이렇게 검찰과 정보기관에서 일일이 판사들의 동정을 감시하고 도청하고 미행하고 은행계좌 조사하는 것은 피곤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판사들은 사법부의 건의문에 대해 서울지검 차장검사 박종훈은 다음날 기자회견을 열고 법관들의 건의문에서 거론된 7개항은 사실무근이라고 주장했다. 7월 31일에는 가정법원 판사 4명, 휴가 중이던 민사지법 판사 8명, 서울고법 판사 13명이 사표를 제출하여 사표를 제출한 법관의 수는 총 1백 명을 넘어섰다. 당시 법관의 정원은 455명이었는데 파동발발 사흘 만에 근 4분의 1의 법관이 사표를 내던진 것이다. 판사들의 사표제출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지방과 고등법원으로 계속 확산되었다. 한편 검찰은 두 차례나 영장이 기각된 데다가 뜻밖에 판사들이 일치단결하여 집단행동으로 나와서 곤혹스러운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그러나 검찰은 서울사법서사회가 수수료 일부를 서울민사지법 등기소에 정기적으로 상납을 한 혐의가 있다면서 일제 수사에 착수하는 것으로 맞불을 놓았다. (다음 회에 계속) 성공회대 교수·한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