굶어 부황이 든 와중에도 인간으로서 품위를 잃지 않고 되레 멋드러지게 한 방 먹이는 장면, 오늘 들어보시죠. 장자가 즉석으로 지어 낸 '수레바퀴 자국 안의 물고기(학철부어)' 이야기입니다.
배가 고픈 장자가 어느 날 제후에게 돈을 빌리러 갔다.
"좋습니다. 머지않아 세금을 거두게 되니 그때 거금을 빌려드리리다."
밉살스러운 제후의 말을 받아치는 장자, 가히 천생이야기꾼 답다.
"오는 길에 다급하게 누가 부르기에 돌아보니 수레바퀴 자국 안에서 붕어가 숨을 헐떡이고 있습디다. 그러면서 '한 말이나 한 되쯤 되는 물로 나를 좀 살려주시오.' 이렇게 애원하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그랬죠. '좋다. 내가 이제 남쪽으로 가서 서강의 물을 끌어다가 너를 맞이하러 가마.' 그러자 붕어가 화를 벌컥 내며 '물 한 바가지만 있으면 수레바퀴에 패인 땅을 메워 바로 살 수 있는데 지금 당신은 강물을 끌어오네 마네 헛소리를 하고 있으니, 차라리 머잖아 건어물전에서 나를 찾는 게 나을 것이오.' 이러더란 말입니다." - 신아연 『좋아지지도 놓아지지도 않는』 / 책과나무
그리고는 미련없이 돌아서는 장자, 며칠 굶은 상태에서 세상에 없던 이야기까지 지어내느라 허기에 하늘이 다 노랬을 것 같습니다.
제가 <장자>는 마음에 관한 책이라고 했지요? 마음을 어떻게 먹어야 이 풍진 세상을 잘 살 수 있는지를 말해주고 있는 책이지요.
숨 넘어가듯 다급하고 곤궁한 처지에서 장자처럼 여유롭다 못해 익살을 부릴 수 있는 사람이 보통 사람 중에야 있겠습니까만, 수레바퀴 자국에 빠져 헐떡이는 물고기를 외면하지 않을 수는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지금도 가난하지만 제가 '처절히' 가난했을 때 '건어물전 물고기' 신세가 되지 않도록 저를 보살펴 준 분들이 여럿 계십니다. 돈을 주고, 쌀을 주고, 김치도 주고, 밥을 사주고, 커피도 사주고, 옷을 사주고, 소소한 생필품을 챙겨주고, 필요한 책을 사주고, 무엇보다 제 책을 왕창 사서 주변에 알려주고...
그 덕분에 저는 지금까지 건어물전에 걸리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장자처럼 굶어죽지는 않는 세상입니다. 그러나 '정신의 건어물전'은 그 어느 때보다 살벌합니다. 말 한마디가 고픈, 외로움에 쩐 정신적 굶주림의 시대인 것이죠.
[출처] [신아연의 영혼의 혼밥 775] 왕따 장자(9) 정신의 건어물전|작성자 자생한방병원
첫댓글 수레바퀴 자국 안에서 붕어 이야기가 여기서 나왔군요
한국에서 굶어죽은 안타까운 기사가 이슈화되곤 했는데 그분들에게 그런 과정이 있었을 것 같아요
가슴 떨리는 이야기네요
네, 장자에서 나왔지요. 들어보셨군요.
물 한 바가지로 살릴 수 있는 생명을 무수히 놓쳤을 거라 생각하면 정말 인간이 얼마나 죄 많은 존재인지요...
어느 교수님이 하신말씀 "나중에 잘살게 해주겠다는 정부 믿지말라" 오래전에 들었던 강의 내용의 부분인데요
정부 정책은 장단기 발전계획을 함께 펼쳐 나가야 한다는 뜻 ... 좋은글 감사합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정부라는 게 수시로 갈려버리니 그저 눈가림이나 생색내기식으로 쓸 데 없는 곳에 돈 쏟아붓기로 흐르게 되지요. 지금도 잘 살고, 나중도 약속되는 그런 정부, 어디 없을까요? 없겠지요.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