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추자도 등대산공원 돈나무
사람살이가 역사이고, 사람 사는 곳에 설화가 있다. 추자도의 설화에서 그 사람살이를 찾아본다. 하추자도의 엄바위는 풀도 예의를 갖춘다는 마을 예초리의 수호신이다. 어느 날 나무꾼이 이 바위 아래 아름드리 소나무를 베자 새 한 마리가 ‘상·하추자도 사이를 메우면 다시 돌아오겠다’며 사라졌다. 신조가 사라져 걱정하는 마을 사람들 꿈에 노인이 나타나 ‘상·하추자도를 연결하면 신조가 다시 돌아와 추자도에 큰 인물이 나고 부자마을이 된다’라고 했다.
또 이 엄바위 아래 바닷가의 커다란 바위 다섯 개로 공기놀이를 하는 억발 장사가 살았다. 이 억발 장사가 엄바위에서 건너편 횡간도로 건너뛰다가 미끄러져 그만 목숨을 잃었다. 이때부터 예초리와 횡간도 사람들은 혼인을 하지 않았는데, 청상과부가 되기 때문이었다.
횡간도는 섬이 비스듬하게 누워 비탈지고, 태풍과 외적이 비껴갔다는 ‘빗겡이’의 한자어이다. 이곳 횡간도의 일등 부자는 귀신에게 젓갈을 판 이봉춘이다. 이봉춘은 한 해에 보리 40여 가마를 거두고 멸치젓갈을 만들어 팔았다. 해남 어란과 관두에서 멸치젓갈을 팔고, 그 돈으로 다른 물건을 사서 군산과 인천에 가서 팔아 돈을 많이 벌었다.
어느 해 안개가 많이 낀 날 장사를 마치고 섬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낯선 배가 다가오더니, 낯선 상인이 멸치젓을 사겠다며 많은 돈을 주었다. 이에 이봉춘은 멸치젓갈을 많이 담가 놓고 낯선 배를 기다렸다. 하지만 일 년이 되어도 낯선 배는 오지 않았다. 마을 사람들은 그 낯선 배의 상인을 도깨비라고 했다.
하추자도 대왕산 절벽 아래에 굴이 있고, 굴 앞에 용둠벙이 있다. 이곳 이무기가 용이 되고 싶어 도를 닦았다. 어느 날 산신이 용이 되려면 도를 닦기보다 착한 일을 하라고 했다. 이에 이무기는 상·하추자도를 끌어당겨 가까이해놓고 40여 개의 섬도 보기 좋게 늘어놓았다. 불어오는 북풍은 횡간도로 막고, 섬마다 물고기들이 마음껏 놀 수 있게 해주었다.
마침내 뇌성이 울리는 날 이무기는 용이 되어 하늘로 올라갔다. 이제 용둠벙이 흔적만 남았지만, 이곳에서 기도하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1974년 5월 20일 깊은 밤 북한 무장간첩 3명의 간첩선이 대서리 더널해안에 닿았다. 그중 1명은 6·25 때 동생과 함께 출정, 전사통지서가 온 대서리의 원완희였다. 당시 원완희는 노모가 계신데도 동생과 함께 징병 되어 큰 불만을 품었다. 원완희가 아들 집에서 며느리와 손자를 만나고 나올 때 경찰이 검문하였다. 순간 간첩이 수류탄의 안전핀을 뽑았고, 옥신각신 격투 중에 폭발하여 경찰, 면사무소 직원, 간첩 등 3명이 사망하였다. 그러나 원완희와 간첩 1명은 도주하였고, 이때 해안에 잠복 중이던 방위병 2명도 사망하였다,
이 ‘추자도간첩사건’ 뒤 1975년 8월 북제주군 학생의 성금으로 세운 ‘반공탑’에는 ‘여기 바람과 비와 눈보라와 파도와 국토의 남단을 지켜 온 대한의 파수 추자, 1974년 5월 20일 그날 칠흑의 밤에 북괴의 무장간첩들이 향토를 유린했을 때 우리의 파수들은 목숨을 태워 어둠을 밝히고 조국을 지키셨으니 고 지방행정서기 원학상님, 고 경사 서병철님, 고 방위용사 변길만님, 고 방위용사 조재선님. 천년의 비바람과 눈보라와 파도가 지우지 못할 거룩한 이름들, 만년의 어둠 가운데서도 타오를 님들의 뜨거운 충혼을 여기에 새겨 기린다.’라는 비문이 있다.
이 반공탑이 있는 공원이 등대산공원이다. 이곳에 사철 푸른 돈나무가 무리 지어 숲을 이루고 있다. 바닷물을 온몸에 뒤집어써도, 어지간한 가뭄에는 끄떡없이 저절로 아름다운 모양새로 자라는 돈나무 숲에서 추자도의 사람살이를 떠올리니 세월이 곧 설화이구나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