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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BC 성서연구 - 제21B강 역대기상하 메시야 왕국의 대망
(43) 우리에게 임하신 하나님의 영광 (역대하5:1-14)
이삭을 줍는 은혜를 넘어, 이삭을 주실 수 있는 하나님을 만나려면, 우리는 성전에 올라가야 합니다. 성전에 올라가는 길, 거기에서 만나게 되는 성물들은, 우리가 드려야할 예배의 단계, 단계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예배는, 일단 동쪽으로 나 있는, 단 하나의 문이신 예수님을 통과합니다. 그렇게 성전 뜰에 들어서면, 하나님을 만나는 길은 언제나 ‘회개’로 시작됩니다(번제단). 그렇게 우리의 죄의 문제를 해결하고, 그런 우리에게 주신 은혜, ‘세례’를 통한 ‘거듭남’의 의미를 되새겨야 합니다(물두멍과 놋바다). 그렇게 나아간 우리는 두 기둥을 통과합니다. 하나님이 세우신다. 하나님이 능력이시다. 변화되고 새로워질 나를 기대하며, 성전 안에 들어가면, 하나님 주신 호흡을 가지고, ‘기도’를 올려드려야 합니다(분향단). 그리고 ‘말씀의 등불’이 꺼지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그렇게 그 빛으로 인도함을 받으며, 생명을 얻는 것이지요(등잔대). 그리고 ‘성만찬 떡’을 나누는 것입니다(진설병 상). 떡을 떼며 우리가 하나임을, 무엇보다 우리를 위해 몸을 찢으신 예수님의 죽으심과 그분으로 말미암는 구원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떡을 먹으며 더욱 그 입에서 나오는 말씀을 더욱 마음에 새기는 것이지요. 우리에게 주신 사명으로 먹을 거리를 삼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요4:4)
그렇게 아침 저녁, 시간 시간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는 우리, 우리에게 허락하신 세상에 파송받아 소금으로 빛으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의 성전이, 건물성전이든, 인생성전이든, 늘 하나님을 만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는 곳이 되시길, 무엇보다 하나님이 늘 임재하신 곳이 되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자, 오늘 본문 마지막 부분을 다시 읽어보겠습니다.
“나팔 부는 자와 노래하는 자들이 일제히 소리를 내어 여호와를 찬송하며 감사하는데 나팔 불고 제금 치고 모든 악기를 울리며 소리를 높여 여호와를 찬송하여 이르되 선하시도다 그의 자비하심이 영원히 있도다 하매 그 때에 여호와의 전에 구름이 가득한지라 제사장들이 그 구름으로 말미암아 능히 서서 섬기지 못하였으니 이는 여호와의 영광이 하나님의 전에 가득함이었더라”대하5:13-14)
오늘 본문에는 놀라운 일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바로 솔로몬의 성전에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 임하였던 것입니다. 제사장이 능히 서서 섬기지 못할만큼, 그 놀라운 영광이 성전에 가득했던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성전도 이렇게 하나님의 영광이 늘 가득한 성전이 되길 원합니다. 성령의 충만하심으로 숨쉬기마저 어려운 압도적인 영광을 늘 누리시길 축복합니다. 오늘 솔로몬의 성전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요? 어찌하여 솔로몬의 성전에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임하게 되었을까요? 그 비결을 말씀을 통해서 확인해보고자 합니다.
첫 번째, 하나님을 성전 중심에 모시기로 모두가 마음을 확정하고 행동했기 때문입니다. 2절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이에 솔로몬이 여호와의 언약궤를 다윗 성 곧 시온에서부터 메어 올리고자 하여 이스라엘 장로들과 모든 지파의 우두머리 곧 이스라엘 자손의 족장들을 다 예루살렘으로 소집하니”(대하5:2)
성전이 완공되었으니 아버지 다윗성에 모셔두었던 하나님의 언약궤를 성전으로 옮기고자 합니다. 이를 위해 솔로몬은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장로와 모든 지파의 족장들을 예루살렘으로 소집하였고, 성경에 기록해주신 그대로, 제사장과 레위 사람들이 언약궤를, 그리고 회막과 장막 안에 있던 모든 성전 기구를 메고 성전으로 올라갑니다. 회막은 기브온산당에 있었고, 장막은 다윗의 시온성에 있었지요? 어쩌면 나뉘고 흩어져 있던 하나님을 향한 마음들을 이제 성전 중심으로 모아내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왕에서부터 모든 백성에 이르기까지 마지막까지 정확하고 온전하게 말씀을 지켜냅니다. 이 모든 일을 기쁘게 여기고 자원하여 성실하게 감당하며 한마음으로 감사의 제사를 드렸던 것입니다. 5-6절을 읽어볼까요?
“궤와 회막과 장막 안에 모든 거룩한 기구를 메고 올라가되 레위인 제사장들이 그것들을 메고 올라가매 솔로몬 왕과 그 앞에 모인 모든 이스라엘 회중이 궤 앞에서 양과 소로 제사를 드렸으니 그 수가 많아 기록할 수도 없고 셀 수도 없었더라”(대하5:5-6)
사랑하는 성도님들, 우리 삶의 중심에 하나님이 계시고 하나님이 우리를 다스리시는 것이 참 기쁨입니다. 우리는 믿음의 공동체 안에서 하나님과 교제하며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나라를 이루어가는 것을 기뻐해야 합니다. 각자의 삶 속에서 하나님께 받은 사명이 다릅니다. 하지만 각자가 맡은 일에 충성하며 한마음으로 말씀을 지켜 하나님을 기뻐하며 예배할 때 우리는 같은 마음으로 같은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오늘도 우리 성전 중심에 하나님을 모신 우리 성도님들의 모든 삶의 자리마다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하시길 축복합니다.
두 번째, 드디어 준비된 최고자리에 언약궤를 모셨기 때문입니다. 7절입니다. “제사장들이 여호와의 언약궤를 그 처소로 메어 들였으니 곧 본전 지성소 그룹들의 날개 아래라”(대하5:7)
제사장들은 하나님의 언약궤를 성전의 지성소에, 그룹들의 날개 아래에 두었습니다. 그리고 언약궤에는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과 언약을 맺으실 때에 주셨던 십계명이 적힌 두 돌판이 들어 있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의 임재는 하나님의 말씀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언약궤라는 명칭에서 알 수 있듯이, 하나님은 이스라엘과의 언약을 지키시는 분이며 자신의 백성도 그 언약을 지키기를 원하십니다. 성전의 중심에 하나님을 모신 백성, 더욱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백성, 그 말씀을 지켜 행하며 복을 누리는 백성인 것입니다. 내 마음 가장 중요하고 거룩한 곳에도 하나님이 계시고, 그분의 약속이, 그분의 말씀이, 늘 우리에게 힘이 되고 위로가 되고 소망이 되며 우리 삶을 이끄시는 능력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그 말씀이 우리 인생의 든든한 추가 되어 흔들리지 않고 요동하지 않고 넘어지지 않는 우리 인생길이 되시길 아울러 축복합니다.
그래요. 성전 건축과 같은 헌신과 수고로운 일들도 중요하지만, 하나님이 우리에게 가장 원하시는 바는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백성, 그 말씀에 청종하는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7장 성전봉헌을 하고 기도를 드린 솔로몬에게 하나님은 말씀을 청종하고 지키라고, 그러면 대대손손이 복을 받는다고 재차 말씀을 하셨던 것입니다(17~18절).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말씀의 사람들입니다.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속히 듣는 사람들입니다. 언약궤를 지성소에 모시듯,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 삶의 중심, 내 마음속 최고자리에 두고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이 바라시는 우리의 모습은 말씀 내용과 말씀 원칙을 머리로 이해하고 그 말씀을 손발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야고보서에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약1:22)
하나를 이 저녁에 꼭 기억하십시오. 신앙에 이월장부는 없습니다. 내가 해야한다는 뜻이고, 다시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타인에게서 내게로, 혹은 부모에게서 자녀에게로 사람에게서 사람에게로의 이월장부만 없는 것이 아니라, 지난달의 나로부터, 이번달의 나로, 아니, 어제의 나로부터 오늘의 나로 이어지는 나에게서 나에게로의 이월장부도 없습니다. 매일 매일 새롭게 오늘 또다시, 지금 또다시 시작하는 것입니다. 지난 달에, 지난 주에, 어제 열심히 했으니? 하나님 앞에 서서 말씀을 듣고 행하고 실천함으로 우리의 믿음을 증명하고, 하나님을 중심에 둔 사람임을 나타내는, 복된 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랬더니 어떻게 됩니까? 하나님의 언약궤가 옮겨져 지성소에 놓이고 성전에서 첫 제사를 드릴 때부터 하나님이 임재하십니다. 12-13절에서 확인해봅니다.
“노래하는 레위 사람 아삽과 헤만과 여두둔과 그의 아들들과 형제들이 다 세마포를 입고 제단 동쪽에 서서 제금과 비파와 수금을 잡고 또 나팔 부는 제사장 백이십 명이 함께 서 있다가 나팔 부는 자와 노래하는 자들이 일제히 소리를 내어 여호와를 찬송하며 감사하는데 나팔 불고 제금 치고 모든 악기를 울리며 소리를 높여 여호와를 찬송하여 이르되 선하시도다 그의 자비하심이 영원히 있도다 하매 그 때에 여호와의 전에 구름이 가득한지라”(대하5:12-13)
언제? 예 나팔불고 제금치고 모든 악기를 울리며 소리높여 여호와를 찬송할 때, 그때 하나님께서 성전에 임하십니다. 우리의 찬양 중에 임하시옵소서. 찬양부르기 전에 늘 기도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입니다. 하나님께서 온 백성의 악기소리와 찬양 중에 임하시는 것입니다.
연기와 구름, 출애굽 때부터 하나님 임재의 상징이었던 것이지요. 시내산 마치 구름 속에서 모세와 대화하셨듯, 변화산 마치 구름 속에서 예수님과 대화하셨듯, 하나님이 사람이 지은 성전에 임재하시고 이들이 올려드린 모든 제사, 소와 양의 제사는 물론, 찬양과 감사의 제사도 기쁘게 받으셨던 것입니다. 인간의 허물과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친히 우리에게 와주셨던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부족하고 작을 수밖에 없는 우리네 인간의 마음과 고백을 기쁘게 받아주셨습니다.
여러분은 어떠신지요? 오늘 본문 중에서 저는 이 부분이 참 좋습니다. “제사장이 능히 서서 섬기기가 어려웠다.”
무슨 뜻일까요? 하나님이 꼭 끌어 안아 주신 것입니다. 움직일 수도 없을만큼 꼭 안아주신 것입니다. 오실 주님을 위해 분주하게 마음이 바쁜 마르다를 안아주신 것입니다. 그간의 신뢰와 수고와 마음이 고맙다고 인정해 주신 것입니다. 영원하신 하나님이 당신의 피조물을 당신 품에 가득 안아 주시는 순간을 성경은 오늘 이렇게 표현해 두었던 것입니다. “제사장이 능히 서서 섬기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천하일품” 하일교회입니다. 우리가 제일이라는 교만함의 표현이 아니라, 늘 하늘 아버지 품에 안겨 있길 소원하는 마음입니다. 우리의 하나님을 향한 신뢰와 마음, 그로 말미암는 작은 섬김들과 헌신들을 다 기억하고 안아주시는 은혜가 우리에게 가득하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 사랑이 포옹하고 포용하는 사랑입니다. 몸과 마음을 안아주는 사랑이 우리 것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의 제사도 이렇게 하나님이 받아주시는 예배가 되길 축복합니다. 한없이 부족한 인생들이 드리는 제사이지만, 기쁘게 받아주시고 당신의 영광으로 응답하시는 제사, 오늘 저와 여러분의 예배가 되면 좋겠습니다. 나아가 순간 순간 하나님 전에 나오실 때마다 아침에 일어나 하루를 시작하려할 때마다 하루를 마치려 할 때마다 고맙다 사랑한다 늘 우리 하나님께서 안아 인정해 주시는, 축복 속에, 상처와 눈물과 서운함을 다 이기시고 늘 우리의 자리에 힘껏 서시는 주의 종들이 다들 되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면서 특이한 사실 하나가 소개되지요? 10절 여호와의 언약궤에 대한 소개인데, 읽어보겠습니다. “궤 안에는 두 돌판 외에 아무 것도 없으니 이것은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에서 나온 후 여호와께서 그들과 언약을 세우실 때에 모세가 호렙에서 그 안에 넣은 것이더라”
한 번 말씀드렸지요? 언약궤는 십계명 두 돌판, 깨뜨려져서 새로 만들어진 것, 만나항아리, 그리고 아론의 싹난 지팡이가 들어있습니다. 모두가 인간의 범죄함, 하나님 백성답지 못함의 상징입니다. 그걸 어떻게 하셨다구요? 안에 넣고 뚜껑을 덮으시는 것입니다. 살몬의 은혜입니다. 그리곤 그 위에서 다시는 그 죄를 볼 수 없도록, 그 뚜껑을 지키시면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아무 것도 허물이 없는 것처럼 여겨주시면서 말입니다. 어떻게 하시면서? 들여다 보면 죽는다고 하시고, 실제로 죽이시면서 말입니다. 그분이 저 구약시대부터 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허물을, 우리의 범죄함의 증거를 당신이 덮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지키시는 분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우리의 허물을 덮으시며 우리를 의롭다 여겨주시며, 당신의 백성으로 우리를 받아 안아 주시는 분이신 것입니다. 그렇게 다시금 솔로몬의 성전에 임하여 당신의 백성들을 끌어 안아주셨던 것이지요.
그랬던 그분이 다시금 우리 가운데 오셨습니다. 어떻게요? 그 때는 구름이 아닌, 사람의 형상을 입으시고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그렇게 오셔서 하나님의 아들, 은혜와 진리가 충만한 독생자의 영광을 우리에게 보여주셨던 것입니다. 그랬던 그분은 어떻게 하셨습니까? 동일한 하나님이시기에 당신 안에 우리의 모든 죄와 허물을 넣으셨습니다. 우리의 모든 죄를 그분이 담당하시고,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아무런 죄가 없는 의인으로 인치심을 얻었던 것이지요? 그분으로 말미암아 주홍빛 같고 먹빛보다 더 검은 우리의 죄가 다 덮어지는, 도말되는 역사를 얻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그분은 다시금 우리 가운데 찾아오셔서 성령님으로 임재해 계십니다. 승천하시곤 열흘을 못 기다리셨다고 오순절은 그 이름이 붙여진 것이 아닙니까? 여러분, 이 오순절이라는 이름에서 놀라운 사랑을 느끼시길 축복합니다. 그렇게 찾아오시고 그렇게 만나주시려 하시건만, 우리의 삶은, 어떻습니까? “자기 땅에 오셨으나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다”고 하는 요한복음 1장 11절, 그 안타까운 기록의 주인공이 되어 있는 것은 아닙니까?
어떻습니까? 오늘 성전된 우리는, 솔로몬의 성전처럼,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한 성전입니까?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오늘 우리는 느낄 수 있는 성전입니까? 하나님의 영광을 세상과 사람들에게 보이는 성전입니까? 아니면 언약궤도 없고 말씀도 없고 순종도 없고 찬송도 없는, 그러니 영광도 없는, 텅빈, 그저 지어진 허우대만 멀쩡한 그저 무늬만 성전인, 그냥 좀 잘 지어진 건물만 인 것은 아닙니까?
성전에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임마누엘’의 성전이 있는가 하면, 하나님의 영광이 떠난 ‘이가봇’의 성전이 있습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는 어떤 성전일까요? 이가봇의 성전이 되지 않으시길 축복합니다. 모두가 임마누엘의 성전이신 줄로 믿습니다.
한 순간이라도 하나님께서 내 마음의 중심에서 멀어지시게 되었다면, 얼른 속히 오늘 이스라엘처럼 내 마음 최고자리로 다시금 모시고, 다시금 그분의 음성에 청종하여 우리 주님의 기쁨이 되시길 바랍니다. 그러면 어느 새 하나님의 영광은 우리 안에 다시 가득차고 넘쳐서 우리 주위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지고 역사를 일으키실 것입니다.
하루하루 하나님의 임재 안에 하나님의 영광 중에 영혼과 육신, 심령이 모두 평안하시고, 든든하게 승리하시는 늘 새롭고 힘찬 날들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그렇게 남은 한주, 남은 사순절, 남은 우리의 신앙의 여정에 늘 임재하시고 동행하시는 하나님과 함께 승리하시길, 우리 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임마누엘 성전, 하나님께서 복주시는 성전 되게 하소서.
능히 섬기기 어려울만큼 하나님께서 늘 안아주시는 성전되게.
하나님을 중심에, 최고의 자리를 드리는 성전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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