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부터 자고 일어나면 목이 아프고,
새벽운동을 할 때는 다른 때와는 달리 힘겨움을 느꼈었다.
오늘 역시 목이 아픈 것이 느껴졌으나 나이를 먹어가면서 생생한 날보다는
불편한 것을 견디는 날들이 많아졌기에
또 하루를 그러한 인내로 지내야 되는 날이구나 생각하면서 집을 나섰다.
4일에 비가 왔고, 6일에도 비가 온다는 예보가 있었으나
5일은 흐리기만 한다는 예보였지만 우의를 챙기어 넣었다.
산에서 비를 만나도 어쩔 수 없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산행에는 무리가 따르는 계절인데다 덕유산이 만만치 않은 코스라고 들었는지
지난 두 차례 빠지지 않았던
김ㅅㅅ여사와 신국장, 조ㅅㅅ여사, 전이사장 이ㅇㅇ씨가 보이지 않았다.
산행하기에는 좋은 조건일수 있지만
버스 밖으로 보이는 좀 높은 산들은 낮은 구름에 쌓여 있었다.
회장 박ㄱㅅ씨의 산행을 무사히 하자는 연례적인 말이 끝나고,
박과장이 동남아 여행지인 '하롱베이'여행신청을 받는다는 공지를 했다.
옆자리의 부회장 김ㅇㅈ씨에게 같이 신청하자고 했더니,
지난 달에 미국에 10박11일의 여행을 다녀와서 당분간은 보류해야 겠다고 했다.
김부회장은 꽤많은 여행과 등산을 했다고 했다.
겨울 산행을 해 본 일이 없고, 두렵게만 느껴지는 겨울 산행에 대해서 물어 보았더니
높은 산에 올라갔을 때 컵라면의 물이 끓지 않을 정도로 추워서
고생을 했다는 이야기. 아이젠은 필수라는 이야기 등을 해주었다.
그리고 대전 근방을 지날 때는, 대전의 둘레 길도 아주 좋은 트레이킹코스라는 말도 했다.
어떻게 그렇게 자유롭게 산행을 할 수 있는지 그 여유와,
같이 다닐 수 있는 친구들이 부러웠지만
내게는 주어질 수 없는 타고난 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덕유산은 대전-통영간 고속도로 변에 있는 산이었기에
별로 여행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내게도 낯익게 다가오는 산이었고,
거리도 별로 멀지 않았다.
하지만 인터체인지를 벗어나 국도를 지나며 보이는 산들은
고속도로에서 보는 산과는 천양지차로 고개를 뒤로 젖히고
하늘을 보듯이 처다 보아야 되는 급경사의 높은 산들 이었다.
주차장에서 백련사로 가는 길은 포장 된 길로 허가 된 차량만
간간히 조심스럽게 오가는 길이었다.
끝이 없을 것 같은 긴 길. 몇 그루의 나무 틈으로 물이 철철 흐리는 물이 보였다.
물이 좋다는 강원도도 그렇게 물이 좋은 곳은 별로 없으리라.
비와는 관계 없이 늘 그렇게 흐른다는 물은
이끼 하나 없이 깨끗한 냇 바닥을 가득히 채우며 흐르고 있었다.
그리고 모퉁이를 돌며 흐르는 곳에는 파란 웅덩이가 되어 있어서.
당장에 뛰어 들어 땀이 줄줄 흐르는 몸을 담그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했다.
사무장 박여사가 동네 친구인 최ㅈㄱ여사와 최ㅅㅈ여사에게
이불을 차에 싣고 와서 이불 빨래를 하자는 농담을 해서 까르르 웃었다.
정말 그렇게 빨래를 한 이불을 덮으면, 그것을 덮고 잘 몸까지도 깨끗해 질 것 같았다.
옛날에는 동네 빨랬 터에서도 맑은 물에 빨래를 하기도 했지만
그 물들이 다시 맑아 질리도 없고, 맑아 진다 해도
이 물처럼 많지도 깨끗하지는 않으리라.
스틱이 말을 듣지 않아 그것을 손보다가 후미로 처지게 된 경성식당의 김ㄱㅅ 여사는
"이렇게 맑고 좋은 물이 숲 사이로 흐르는 길을 걷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고 했다.
옛날 16비트 컴과 전화모뎀으로 인터넷을 해 보았다는 김여사는
지금은 생활 전선에서 컴을 가까이 할 수 없다고 하면서도
내가 컴을 가까이 하는 이야기를 잘 들어 주어서 그런 야기를 하게 된다.
길기는 했지만 그렇게 백련사까지의 길은 가벼운 산책길이었고,
연인들이 데이트를 하면서 가끔 씩 길옆의 물가의 바위 위에 앉아 정담을 나누면
그것만으로도 환성적일 것 같은 길이었다.
백련사에서 길은 향적봉으로 직접 올라가는 길과 오수자골과 중봉을 거쳐
향적봉으로 오르는 본격적인 등산 코스로 갈렸다.
여자들이 다수여서 험한 코스라는 향적봉으로 직접 올라가는 코스를 피하고
비교적 완만한 오수자골 코스를 택한다고 의논이 되었는데, 좀 착오가 생긴 것 같았다.
잠시 착각을 하고 백련사에서 머뭇 거리는 동안,
박과장과,전ㅁㅎ씨, 정ㅎㅅ씨와 함께 뒤에 처지고 말았다.
그 시간이 불과 10분 미만이었을 텐데, 아무리 부지런히 걸어도
먼저 간 일행의 뒷 모습을 볼 수가 없었다.
이름 모를 나무들이 하늘을 뒤덮은 산길은 계곡물을 만났다가 다시 산길이 되기도 했다.
그 길은 나무뿌리와 돌이 멋대로 뒹구는, 두고 두고 걷고 싶을만큼 정스런 길이었으나
일행을 따라 잡으려는 급한 마음은 그것을 즐길 여유가 없었다.
천천히 걸어도 빠른 박과장과 지팡이를 짚지 않고도 뒤뚱거리지도 않는 전양을 보면서
"내가 더 이상은 젊지 않구나"하는 생각을 거듭하게 했다.
하지만 보기에도 날씬한 것과는 거리가 있는 정ㅎㅅ씨는 나보다 더 힘들어했다.
내 뒤에서 오르던 다른 팀의 일행들이 "먼저 가자"는 양해를 구하고
앞서서 지나가고 멀어지는 모습을 힘의 한계를 느끼며 바라보았다.
그렇게 악을 쓰듯 달린 걸음은 오수자굴 아래 200미터 쯤 되는 지점에서
쉬고 있는 일행을 겨우 따라 잡을 수 있었다.
거기서 숨을 돌린 것도 잠시 일행은 다시 출발했고,
이미 힘이 소진된 다리는 무겁기만 해서 다시 처지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몇 걸음 앞서간 사람들이 길을 잘못 들었다고 도로 오는 바람에 중간에 끼게 되었다.
몇 걸음 가다 보니 길이 아니라 돌아섰다는 것이다.
그 길이 흔들거리는 돌들이 많고 물이 흘러서 사무장박여사가 넘어져서
한쪽 발이 물에빠졌다고도 했다. 옛날에 알던 몇년 세월보다도 몇번의 산행으로
다정스러움을 느끼는 노장 김ㄷㅇ씨가 뒷 따라 오다
"박감사 아무래도 발 떼는 것이 무거워보여."라고 말하며 앞서갔다.
예정은 향적봉에서 점심식사를 하려는 것이었으나 날이 덥고, 대부분 여자들이라
오수자굴 앞에서 식사를 하게 됬다.
굴이라고는 했지만 깊이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입구의 넓은 부분이 전부였기에, 갑자기가 소나기가 오면 쉬어가기에 적당한 곳이었다.
지나던 다른 일행의 누가 "영화를 찰영하던 곳"이라고 하면서 사진을 찍고 갔는데,
어떤 영화인지는 자기들도 생각이 나지 않는 모양이었다.
오수자굴에서 중봉에 이르는 길은 등산의 진수를 느끼게 하는 길이었다.
우선 45도 이상의 경사가 졌고, 바위위로 길이 나있는 곳이 있는가 하면
바위와 돌이 엉키어 한발을 바위 틈에 딛고 나무를 잡고 올라가야 되는 곳도 있었다.
바위와 길의 층이 비교적 크게 진 곳에서
사진을 찍느라고 처질 수밖에 없었던 재무 강ㄷㅅ여사가 가볍게 먼저 오르고,
내가 오르는 것이 힘겨워 보였는지 손을 끌어 주느냐고 물었다.
그랬으면 좋겠지만 아무리 나이를 먹었어도 남자인데 창피해서 사양하고
손을 써서 네발로 기어오르기도 했다.
그렇게 중봉이 보이는 이름을 알 수 없는 봉우리까지 올라가자
그제서야 앞뒤의 산 중턱만 보이던 시야가 산 너머로 먼산이 보였다.
버스 속에서 고개를 젖히고 보던 산보다도 더 높은 곳에 이른 것이었다.
그 곳이 중봉이라고 생각했으나 중봉은 아득히 먼 곳에서 약을 올리듯 보였고,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다는 산악대장 이ㄱㅈ씨의 워키토키 목소리가 들렸다.
정ㅎㅅ씨가 "나 더 이상 못가. 여기서 곤돌라 태워줘."하면서 주저앉았다.
거기서 곤돌라를 탈 수있었다면 정ㅎㅅ씨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곤돌라를 타고 내려 갔으리라.
아득히 보이는 것 같았지만 중봉까지의 길은 평평한 산등성이 길이었고
잘 가꾸어 놓은 공원을 연상하는 길이었다.
하지만 조형적인 공원에서는 볼 수 없는 이름 모를 나무들이 우거져 있었고,
나팔꽃 보다는 작지만 공주의 산속에서는 볼 수 없는 노란꽃이 드문 드문 피어 있고,
사진에서 보던 죽은 주목이 어떤 살아 있는 나무보다도 더 꿋꿋이 서있는 것이 보였다.
나도 그곳에서 그것을 카메라에 담고. 여사님들의 사진을 몇장 찍어주다 보니
선두와는 더욱 처지게 되었다. 중봉은 올라서서 이곳이 중봉이란 것을 확인만하고
곤돌라가 있다는 향적봉으로 향했다. 향적봉으로 가는 길도 중봉에 오던 길처럼 평탄했다.
다른 것은 대피소가 있었는데, 마을금고 최ㅊㄱ대리의 말은 봄에 왔을 때도
수리중이었는데 지금도 수리중이라는 것이었다.
애초에는 거기서 점심식사를 생각했으나 오수자굴 앞에서 하기를 잘했다는 것이다.
평탄한 길은 향적봉을 오르는 계단에서 끝이 났다.
힘겨워하던 정ㅂㅎ여사의 배낭을 최대리가 대신 메어주었다.
180센티가 넘어 보이는 최대리는 운이 좋았으면 탈렌트도 되었을 것 같은 미남자에
일행 중 힘겨워 보이지 않는 몇안 돼는 사람이었다.
정ㅎㅅ씨 까지 계단에 주저앉자 이사장이 가지 않았기에
이 산악회의 책임자가 되는 장ㄷㅅ상무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정ㅎㅅ씨를 부축했다.
동네의 한참 어린사람으로 자라던 모습이 고정관념처럼 머리에 있었으나.
장상무는 마을금고 상임직의 최고위자로서 근엄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나도 순간 온몸이 쥐가 나는 듯해서 얼른 모자에 달린 옷핀으로 피를 냈다.
신기할 듯이 근육마비가 풀려서 정ㅎㅅ씨와 정여사에게 권하려 했으나
사람마다 같은 것도 아니고 그런대로 일어나고 있어서 그만두었다.
향적산 정상에서 아침에 버스에서 보고, 오수자골에서 잠시 보았던 산악대장 이ㄱㅈ와
부회장 김ㅇㅈ씨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역시 그들은 산에 익숙한 사람이었고, 나는 등산 초보인에다 건강적으로
약자인 모양이었다.
향적봉에서 좀 아래로 곤돌라 승강장이 보였다.
꽤 커다란 광장을 끼고 있었는데, 거기서 극기 훈련을 하러온 어느 회사의 직원들인지 소리를 치면서 훈련을 하고 있었다.
향적봉에서 그곳까지 나무로 된 계단이었다.
미끄러지지 말라고 못이 보이지 않는 특별한 방법으로 고무바를 촘촘이 붙여 놓았는데,
피곤한 몸은 그 사이에 스틱을 디디면서도 스틱이 걸려서 넘이지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며 비틀거렸다.
곤돌라는 케블카의 일종이지만 다른 곳과는 달리 헬리콥터의 앞부분처럼
둥그스레한 모양이었다. 한참의 줄을 서서 곤돌라에 올랐는데, 6인승이었다.
마음을 먹고 승차시부터 내릴때까지를 동영상으로 잡았다.
장상무, 박과장, 박여사, 강여사.그리고 아직은 이름을 모르는 분과 같이 탔는데,
녹화와 함께 녹음이 되는 사실을 잊고, 좀 개인적인 말이 오갔기에 녹음은 지우고,
동영상만 올리려한다.
거기까지 온 피곤은 마찬가지 였을텐데 박여사와 강여사는
그동안 먹을 사이가 없었던 수박을 잘라서 온 회원들에게 권했다.
미안스런 마음을 느끼며 수박을 받아들어 먹었다.
쌓였던 갈증이 가시는 것 같은 맛이었다.
시간은 5시에 가까워져 있었고, 공주의 '착한낙지'란집에서 저녁을 먹기로 했기에
차는 다른 곳을 들리지 않고 곧장 출발했다.
나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힘겨운 코스였던 것 같았다.
모두 꼼짝 못하고 자리에서 눈을 감고 있었다.
버스의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삼팔선의 봄'같은 류의
옛노래가 구슬프게 정적을 채울 뿐이었다.
그 음악을 들으며 그 무엇인지 모르지만
정든 어떤 것을 떠나 온 듯한 서글픈 마음을 느끼며 창밖을 보았다.
구름 낀 날은 서서히 저물고 있었다.
넘 좋네요
멋있네요
경치가 참좋네요, 감사합니다~
사진 넘 멋져요. 가 보고 싶네요
저는 한달전 상고대보러 스키장쪽으로 올라서서 곤도라타고 눈보라헤치고 향적봉 정상을 올랐드랬습니다.
그때 그 기분 아직도 생생합니다.
미국에서 사는 오빠내외와 덕유산을 갔었는데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