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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시인의 방 [蒜艾齋 산애재] 원문보기 글쓴이: 松葉
▲시집 [황금서랍 읽는 법]의 앞표지(좌)와 뒤표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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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서랍 읽는 법]
정영숙 시집 / 문학세계현대시선집 194 / 문학세계사(2012.08.20) / 값 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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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서랍 읽는 법
정영숙
기린의 긴 목을 지닌 여인이
가슴에 황금빛 서랍을 열고 강가에 서 있다
열린 서랍 속에는 푸른 강물이 가득 흐르고
흰 물새 한 마리 강물을 차고 하늘로 오른다
그녀의 서랍 속 풍경은
그녀의 머릿속에 지워지지 않고 있는 기억들
전생부터 돌고 있는 차륜의 바퀴살
내세에도 이어지는 소망의 강물이다
바람에 흔들려 고리의 연을 끊고 어둠 속에 잠기는 새는
빛나는 이슬을 보지 못하는 법
황금빛 빛나는 서랍 속에는
허깨비 같은 그의 눈으로 바라보던 그녀의 실체
그의 착각이 빚은 그녀의 몸뚱어리는
애초부터 없었다
뜨거운 심장의 박동 없이 오감으로만 느끼는
그의 직관은 어둠의 환영 속에 갇히고 만다
모태인 강물을 담고 있는 기린여인의 신비한 가슴을
그의 흐린 눈으로는 끝내 보지 못할 것이다
기린여인의 열린 가슴에는 여전히 꿈의 강물이 흐르고
그녀의 하얀 새가 물을 차고 하늘로 오르고 있다
내 것이 아닌 당신의 문자들
정영숙
썰물이 빠져나간 아침 바닷가 모래펄에
내 생애가 판화로 찍혀 있다
상형문자 속에 감춰진 생의 비의들
밀물이 밀려오면 순식간에 지워질 무늬들을
뽀글뽀글 거품을 문 게들이 열심히 그려놓고 있다
모래펄에 찍힌 최초의 문자
단 한번 씌어진 단 하나의 문자, 내 영혼을 빌어
이 세상에서 나온 문자들은
이제 내 것이 아닌 당신들의 것이다
제5 빙하기의 화석에 새겨질 내 생애
내가 아닌 누군가가 읽을지도 모르는
허망한 생의 비의를 찾기 위해
지금 나는 찬 겨울 바닷가에 앉아 모래문자를 적고 있다
물속의 책
정영숙
궁남지 연못에서 물의 책을 읽는다
책갈피를 넘길 때는 맑은 물 흐르는 소리가 들리곤 했다 내 몸을 담고 있는 페이지마다 물이 넘쳐흘러 노랑어리연꽃이 피어나고 때때로 물잠자리가 나도 알지 못하는 행간을 읽기도 했다 내 몸에 비친 프러시안 블루의 하늘빛, 내 머리를 맴도는 물잠자리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바람의 방향과 구름의 낯빛이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하늘빛을 만들었다 프러시안 블루의 하늘도 잠시, 입 다문 연꽃 봉오리가 피어나기도 전 먹구름이 몰려와 책장을 덮어버렸다
몇 번의 소나기가 지나가고 햇빛이 내리쬐어도 책은 열리지 않았다
물 속에서 흰 빛을 띤 누군가 내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녹슨 시간을 딛고 일어선 진흙땅에서 활짝 피어난 연꽃의 목소리였다 닫았던 책을 펼치고 내 몸에 하얀 연꽃의 목소리를 소중하게 기록했다 그 목소리는 내가 가장 듣고 싶던 내 책의 마지막 장에서 읽을 완성된 문자였다
이제 하늘빛을 마음대로 담을 수 있는 내 책은 물 속에서 나오지 않을 것이다
눈빛 전언
정영숙
능금꽃이 흰빛으로 터졌다
멀리서 손전등을 켜고
어둔 골목길을 걸어오는 능금꽃
수십 년 어둔 골목길을 걸어와
이제 겨우 내 집 앞에 당도한
그의 환한 눈빛
우리 집 담벼락 위에서 편지글을 띄운다
부치지 못한 사연들을 꽃잎 모양으로 접어
나뭇가지에 달아놓는다
어디서 날아왔는지 새 한 마리
꽃잎 속에 들어가
그의 마음이 담긴 말들을 물고 하늘 높이 날아오른다
순간 오래된 골목길을 밝히며
흰빛으로 터지는 꽃잎들의 함성
白蓮體
정영숙
연잎 위에 얹힌 빗방울이 굴러 떨어지는 순간
연꽃 봉오리는 흰빛 언어로 터진다
연잎 위 은방울 구르는 소리에
잠시 두 귀를 접고 생각에 잠기는 흰 꽃잎들
물 한 방울의 무게마저 실리지 않은 가벼운 영혼일 때
비로소 몸을 여는 흰빛 무구한 불립문자
머굿잎 사랑
정영숙
망종에
머구대를 꺾으니
머리 위를 맴돌던 왜가리
머구 머구 하며
먹통으로 우네
보리 패는 망종에
머구대를 꺾으니
주황빛으로 팔랑이던
머굿잎 그대 사랑
손톱 끝에 어둠되어 파고들어
논 속 개구리
머구 머구
먹통으로 우네
한낮의 햇볕으로 삶아도 삶아도
지워지지 않는
먹빛 그대 사랑
먹물 까맣게 내뿜어 천지를 밤으로 물들이니
밭고랑에 넘어져 일어서지 못하네
머구대 꺾여져도
풋보릿대 꺾져져도
그대 쌉싸래한 보랏빛 향기
내 몸에 싸하니 남아
내 몸을 싸하니 맴도네
보리 그슬음 불
주황빛으로 타오르는
망종이 오면
머굿잎 그대 사랑 되살아나
천지가 빛으로 웃겠네
천지가 주황빛으로 웃겠네
*머구는 머위의 경상도 사투리임
별을 찾을 수가 없다
정영숙
내 몸에 붙어 잇는 통신망 중
가장 소중한 센스
오른쪽 가운데 손가락이 고장이 났다
젓가락질을 배우던 떡잎 같은 손가락
ㄱㄴㄷㄹ 미농지에 쓰던 새파란 촉의 손가락
펜촉이 닳도록 잉크빛 잎을 틔우던 손가락
엉겅퀴 씨앗처럼 콘사이스에서 떨어지지 않던 송가락
대학 입학 통지서를 받고 서울행 기차표를 끊던
나무 줄기에서 떨어져 나오던 손가락
왕십리 추운 캠퍼스에서 뿌리 내리지 못하고 헤매던 손가락
첫 발령지 한강 초등학교로 접붙이던 손가락
십 년 동안 새싹을 키우던 분필가루 하얀 손가락
열매를 달기 위해 열심히 밭을 갈던 마디가 굵어지던 손가락
추수 때마다 춤추던 손가락
하늘과 소통하기 위해 시를 쓰던 손가락
이제 내 몸의 가장 소중한 센스가 고장이 났으니
하늘에 있는 별을 찾을 수가 없다
펜글씨도 삐뚤삐뚤 워드도 떠듬떠듬
별빛이 보이지 않으니
그대에게 가는 길도 어둡고 멀기만 하다
관음조觀音鳥
정영숙
능가산 위로 금빛 새 한 마리 날아오르는 걸 보았다
어디 간다는 말 한 마디 않고 떠났던 새
천 년 동안 꿈쩍 않고 앉아 있는 내소사
대웅보전 앞에 금빛 날개를 접는다
못 하나 박지 않고 지은 대웅보전
혹여 당신이 채색한 단청이 흠이 날까
풍경 소리에도 잠 이루지 못한 날들
천 년 동안 비우고 비워서 지금은 색이 다 바래진
붓질한 흔적조차 찾을 수 없는 민낯의 나무토막들
당신이 드나들던 여덟 짝 문살, 꽃살 문양마저
맨살의 나뭇결을 드러낸 채 지는 해에 흰빛으로 빛나고 있다
색이 사라지고
남은 건 허공을 붓질하던 새의 기억
대웅보전이 내뿜는 흰빛의 적요 속으로 사라지고 있는
금빛새의 울음 소리
바다로 만든 빵
정영숙
창문을 열고 당신의 바다를 끌어들여 방을 꾸며야지
해초 냄새 나는 당신의 입김으로
잠에서 덜 깬 눈썹 열어줄 창문을 만들고
햇빛 따라 바뀌는 당신 마음의 색깔
스카이 블루, 세루리언 블루, 울트라 마린의 바닷물로
창문마다 색색의 커튼을 달아놓아야지
꿈처럼 스르르 밀려오는 당신의 부드러운 손길로
푹신한 소파와 쿠션을 만들어볼까
당신의 긴 허리에 두르고 있는 수평선을 끌고 와
당신이 나를 모를거나
내가 당신을 모르는 문장을
햇볕 잘 드는 창가에 걸어놓아야지
내 외로움이 깊으면
당신 가슴 한켠에 지은 외딴 집
달빛에 굴 껍질이 샛별처럼 반짝이는 섬을 불러 와
새벽녘까지 내 머리맡에 앉혀놓고 말없이 바라볼 거야
내 가슴 가득 한량없는 밀물로 밀려와
만월로 차오르던 당신
어느새 창문을 넘어 내게서 사라지네
보름 동안의 기쁨보다
보름동안의 외로움이 더 크기에
이제 나는 창문을 잠그고 방문을 열지 않을 거야
내 마음에 새겨진 당신, 해초무늬 청금석으로 반짝이고
보름달 속에 찰랑대던 물결 소리 귀에 쟁쟁한
보석으로 빛나는 내 마음의 방
노래하는 인형
정영숙
딸아이가 손가락으로 가슴을 누르면
알 수 없는 음역의 소리를 내는
노래하는 인형을 소포로 보내왔다
한참 동안 가슴을 누르면서 그의 소리를 연거푸 듣다 보니
그 가슴 속에 딸아이가 들어가 있었다
그가 내는 소리가 모두 딸아이의 음성으로 들여왔다
딸 곁에 잇을 때 내가 듣지 못했던 이야기들이
한꺼번에 쏟아져나오는 게 아닌가
멀리 떠나와서야 그가 부르는 노래 소리의 의미를 알 것 같았다
겉으로 눈물 나는 웃음을 주던 그 이상한 소리들은
구를 기울이지 않으면 들을 수 없는
외로움의 신호음이었음을
딸아이를 안듯 그를 내 품에 꼭 안아주었다
戀歌
정영숙
나는 불을 지피는 사람
나는 불을 지피는 사람
언제나 찬 바위에서 불을 지피는 사람
당신이 돌아가실 때 잡앗던
차가운 돌멩이 같은 손
차마 잡을 수 없어
나는 죽어서도 불을 지피는 사람
당신의 차가운 심장에 불을 지피는 사람
아득히 먼 곳에서 당신을 바라보며
홀로 뜨겁게 불타는 별
흔들리는 수프레의 저녁
정영숙
가을 저녁 슈프레 강을 바라보며
마시던 맥주 맛은 회색빛이다
집 잃은 사람들의 안개 낀 눈빛이다
싸늘한 바람에 옹크리고 마시던 맥주 맛은
가슴을 아리게 하는 고향의 하늘빛이다
그 빛들이 알 수 없는 도시의 바람이 되어
슈프레 강에 배를 띄운다
마실수록 강물빛이 점점 깊어지는
베를린의 저녁
감은 눈동자에 빠져 누룩내나는
필쯔*를 마시는 사람들은
모두 회색빛이 되낟
뒷맛의 여운이 오래 남는 필쯔처럼
가슴에 아린 사연을 지닌다
두로 되돌아갈 수도 앞으로 나갈 수도 없는
막막한 회색빛이 된다
끊어질 듯 이어지는 집시의
애잔한 선율을 사랑하는 사람들만이
필쯔 맛을 찾아 슈프레 강가에 모여든다
안개빛 눈빛의 슈프레의 밤은 깊어가는데
흐느끼는 집시의 기타 선율은
다리 난간에 붙어 떨어질 줄 모르고
따듯한 하늘 한 조각 찾을 수 없는 나는
감은빛 슈프레 강이 되어
부서지는유람선의 불빛을 안고
밤새도록 흔들린다
*필쯔(pilz) : 버섯을 재료로 만든 맥주
햇빛葬
정영숙
햇빛 유리알로 부서지는 날
태평양 푸른 바닷가 어느 이름 모를 해변에 누워
불가사리 내 몸 말리리
별처럼 붉게 타오르던 내 몸 바짝 말리리
어디선가 들려오는 해조음에 귀를 열고
내 생전 그리워하며 아쉬움에 놓지 못했던 질긴 끈
저 멀리 푸르스름하게 걸린 수평선으로 풀어놓으리
내 목숨같이 사랑했던 사람, 수평선으로 친친 동여매어
태평양 넓은 바다에 후울쩍 띄워 보내리
내 몸 구석구석 박혀 있는 유리알 그대 눈동자
그 맑은 눈동자 속에 환하게 피어오르던 붉은 꽃자리
서늘한 모래 무덤 속에 묻으리
뜨겁게 불타던 붉은 심장 서늘한 모래 무덤 속에 깊숙이 묻으리
당신의 목소리인 양 끊어질 듯 이어지는 해조음
아직도 남은 그리움 있어 내 붉은 촉수마다 물기 맺히면
저 바다에 부서져 내리는 수천 수만 평의 햇빛 끌어모아
내 몸에 퍼부으리 하얗게 퍼부으리
하얀 모래에 피처럼 번지는 붉은 꽃무리, 수평선 위에 가뭇가뭇 머물면
당신과 내가 누워도 좋을 흰 너럭바위 위에 붉은 꽃잎을 늘어놓고
한 장 한 장 말리리 가을 창호문처럼 가뿐히 말리리
여태 내 손톱 위 서늘한 초승달로 떠 있는 당신
싸늘한 해풍 내 바삭이는 몸피에 닿으면
당신 눈빛 서리서리 내려진 해변
한 점 별떨기로 부서져 내리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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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의 말
지금껏 햇빛 한 아름 안아보기 위해
물 속에서 옹크리고 녹슨 꿈을 꾸었다.
내 몸에 부드럽게 감싸던 자잘한 햇빛 무늬들.
지상에 한 조각 내 삶의 작은 무늬들을 펼쳐놓는다.
쓸쓸하지만 조금은 눈 시리도록 환한.
얼마나 더 쓸쓸하고 얼마나 더 오래 아파야
하늘의 은총처럼 내려오는 너를 온전히 안을 수 있을까?
잠시 잠깐 머물던 너의 앳된 그림자를 여기에 남기고
유리알처럼 빛나는 너를 찾아 물 위를 흘러가리라.
2012년 여름 정 영 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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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숙 詩集 [황금서랍 읽는 법]
[ 해설 ] -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존재하는 법
이 승 하(시인)
언젠가 학생들 앞에서 이 세상에는 두 부류의 사람이 있는데, 한 부류는 시인이요 나머지 부류는 범인凡人이라고 하였다. 소설가와 방송작가 지망생들의 항의 어린 질문을 받고서 내가 해준 말은 대충 이런 내용이었다.
“산문은 환상성이 요구되는 판타지 소설일지라도 낱낱의 문장은 사실과 현실에 기반해야 하지만 운문, 즉 시는 그렇지 않습니다. 시는 다의성과 애매성을 지향하기 때문에 솔직한 의사 전달이나 정보 전달의 차원에서 벗어나려고 합니다. 다의성이란 어느 시어나 문장의 의미가 이런 뜻이기도 하고 저런 뜻이기도 하다는 것이고, 애매성이란 이런 뜻일 수도 있고 저런 뜻일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깃발을 두고 저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이라고 하는 것이 시인입니다. 시인은 사물에 대해 새롭게 의미를 부여하는 명명자이지만 여타 장르의 글을 쓰는 사람은 사전에 나와 있는 낱말을 정확히 구사해야 하는 언어학자입니다. 그래서 세상에는 시인과 범인이 있다고 한 것입니다. 시인은 반어(아이러니)와 역설(패러독스)에 능한 사람이며, 허무맹랑한 생각을 많이 하는 별종입니다. 눈 내리는 한밤에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데 뜰에 나가서 먼 곳의 여인이 옷 벗는 소리를 듣는다고 하지 않습니까. 상상 속에서 소리를 듣는 것입니다.”
시인 정영숙은 시집의 제일 앞머리에 놓인 시에서 이렇게 말한다.
제5빙하기의 화석에 새겨질 내 생애
내가 아닌 누군가가 읽을지도 모르는
허망한 생의 비의를 찾기 위해
지금 나는 찬 겨울 바닷가에 앉아 모래문자를 적고 있다
-「내 것이 아닌 당신의 문자들」마지막 연
시인 스스로, 왜 시를 쓰고 있는지 밝힌 부분이다. 허망한 생의 비의를 찾기 위해서 하는 일이란, 찬 겨울 바닷가에 앉아 모래문자를 적는 것이다. 모래에 적는 문자이니 금방 사라질 것임에 틀림없다. “모래펄에 찍힌 최초의 문자”, “단 한 번 씌어진 단 하나의 문자, 내 영혼을 빌어/ 이 세상에 나온 문자들은/ 이제 내 것이 아닌 당신들의 것”이라고 하니, 시인은 문자행위의 허망함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이 화려한 영상매체의 시대에 시집이 전국 방방곡곡의 도서관에 비치된다고 한들 누가 읽어줄 것이며 언제까지 꽂혀 있을 것인가. 생각하면 허망한 노릇이지만, 시인은 제5 빙하기의 화석에 내 생애가 새겨질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또 한 편의 시를 쓰지 않을 수 없다. 혹자는 독자 없는 시 쓰기가 맹목이고 집착이라고 비난할 수도 있겠지만 시인에게는 이것이 죽는 날까지 짊어지고 가야 할 운명인 것을 어떻게 하랴. 당나라의 이백과 두보가 독자가 있어 시를 썼으며 김시습과 김병연이 독자를 겨냥하여 시를 쓴 것인가. 아니다. 시인은 불의의 세계와 싸우는 전사이며 사물의 의미를 탐색하는 탐험가이며 존재의 이유를 찾는 철학자이다.
닫았던 책을 펼치고 내 몸에 하얀 연꽃의 목소리를 소중하게 기록했다 그 목소리는 내가 가장 듣고 싶던 내 책의 마지막 장에서 읽을 완성된 문자였다
이제 하늘빛을 마음대로 담을 수 있는 내 책은 물속에서 나오지 않을 것이다
-「물 속의 책」끝부분
이 시도 글의 운명, 책의 최후에 대한 시인의 전언으로 읽힌다. 자연은 끊임없이 변화하지만, 그 변화 속에서 늘 자기 자리를 지키려 하는 영원회귀의 자세를 견지한다.
사계절의 변화를 보라. 올해 봄이 가면 내년에 다시 봄이 온다. 하지만 인간은 조삼모사하고 조변석개하는 슬픈 존재다. “입 다문 연꽃 봉오리가 피어나기도 전 먹구름이 몰려와 책장을 덮어버렸다”고 한 대목에 이르니, 자연의 유구함과 인간의 유한함이 대비된다. 하지만 시인은, 시를 씀으로써 영원을 ‘추구’하는 것이려니, 시가 인간의 역사와 함께 영원무궁 지속될 수는 없겠지만 윌리엄 블레이크나 프리드리히 흴덜린 같은 위대한 시인은 언어의 연금술사로서 끝 모를 우주를 향하여 항해하였고, 영원성을 추구한 시간 조정자였다.
정영숙 시인의 항해는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행해진다. 하나는 여행을 통한 시적 영감 얻기이고 또 하나는 인접예술을 통한 시적 소재 얻기이다. 시인은 국내 국외 할 것 없이 발길 닿는 곳에서 시심을 얻는다.
나비 날개, 벚꽃
흐드러지기 핀, 삼존석불 앞
바람에 날리는 벚꽃잎들, 두 무릎 위에
고스란히 받고 있는, 모전석탑을 봅니다
-「벚꽃잎 서신」제1연
이런 시를 통해 시인이 추구하는 것은 시간의 오묘함이다. 나비의 날개도 벚꽃도 이 지상에 얼마나 짧게 존재하다 가는가. 그런데 이 시에서 모습을 보이는 대구 팔공산 기슭에 있는 삼존불상은 7세기 통일신라시대 초기의 조각이다. 모전석탑도 천 년의 세월이 넘도록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천지간 가득 날리는 벚꽃 이파리와 석불 및 석탑은 완벽하게 대조를 이루고 있다. 전자는 생명체에서 떨어져 나온 것이고 후자는 생명체가 만든 것이다. 전자는 지상에 잠시 머물다 사라지지만 후자는 앞으로도 천 년을 더 제자리를 지킬 수 있다. 영원을 향한 시인의 갈망은 시집 내내 계속된다.
귀를 막고 세상의 소리를 접은 나뭇결 속에
화석처럼 굳어지고 싶다
낡고 헐어도 따사한 온기를 지닌
아파도 아픔을 모르는 푸른 무늬 속에
영원히 살고 싶다
-「나무화석」제4연
나무 중에는 수령이 천 년이 넘는 것도 있지만 일단 베어낸 나무로 만든 목조건물은 비바람 앞에서 천년만년 제자리를 지킬 수는 없다. 그러나 니스를 잘 칠해놓으면 반영구적이 된다. 시인은 ‘나무 화석’에 대한 꿈을 버리지 못한다. “도리깨를 휘두르며 깨를 털던 등 굽은 할머니”와 “선머슴애처럼 폴짝폴짝 뛰어놀던 가시내의 발자국”, “수틀 위 붉은 목단꽃에 떨어지던 어머니의 눈물방울”은 모두 유한을 상징하는 것들이다. 시인은 그런 유한의 한계를 넘어서 “반들반들한 니스 속 나뭇결” 속에 있고 싶어한다. 화석이 된 채로, 물론 불가능한 일이지만 그런 꿈을 꾸는 것이다. 펜을 들고서, 시인이 그리는 나무는 그냥 나무가 아니다. 생명의 원천, 세계의 중심, 인류의 발상지가 된다는 세계수이다. 세계수는 메소포타미아 지방의 성수聖樹 숭배의 전통에서 비롯된 상징의 하나이다.
세 세 연 년
그 나무 아래서
노 래 부 르 며
춤 추 게 하 자
-「幻 ․ 2- 세계수」끝부분
흡사 나무 모양을 방불케 하는 시의 밑둥치 부분이다. 이 시도 시간과 공간의 넓이가 엄청나다. 범인凡人은 무엇을 지어도 유한자이지만 시인은 시간을 늘리기도 하고 줄이기도 하는 시간 조정자임을 알 수 있게 하는 시가 계속 이어진다.
남해의 푸른 바다가 보이는
땅끝탑을 오르는 갈두산 산길에서
빨간 앞발을 내밀고 있는 농게 한 마리를 만났다
156미터의 사자봉까지 오르느라 힘들었는지
발바닥에 빨간 피가 고여 있다
끝없이 넓은 바다를 마다하고
여기 산등성이까지 올라온 사연은 무엇일까
무량겁의 시간을 품은 무심의 바다에서 참선을 막 끝낸 참인가
-「그의 바다를 읽다」앞부분
시인은 갈두산 산길에서 농게 한 마리를 본다. 농게는 발바닥에 빨간 피가 고인 채 고행의 길을 걷고 있는데, 농게가 떠나온 “무량겁의 시간을 푸은 무심의 바다”는 1만년 전에도 바다였고 1천 년 전에도 바다였다. 시인은 상상한다. 농게는 참선을 끝냈기에 끝없이 넓은 바다를 마다하고 산등성이까지 올라온 것이 아니겠냐고. 그런데 “눈앞에 보이는 소망을 이루기 위해 땅끝탑을 오르는 나는/ 그의 무심의 바다를 볼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여기는 ‘그’는 농게다. 나는 참선을 끝내고 산을 오르는 농게보다 못한 존재이다. 화자는 나중에 가서 상상으로나마 마음껏 바다를 헤엄치는 자유를 구가한다. 그렇다. 시인이기에 이런 상상이 가능한 것이다. 일상 차원의 언어를 뛰어넘어 언어를 자유자재로 부릴 줄 아는 존재이기에 이렇게 할 수 있는 것이다. “돌고래를 타고 태평양을 건너온 아이들”은 “바다 속에 들어가/ 또 다른 바다를 낳는지 보이지 않는다”(가족사진)고 하지 않는가.
시인의 발걸음은 겨울 팔당호 쪽을 향하기도 하고 직지사 석탑 앞을 향하기도 한다. 한계령의 세찬 회오리바람에 여지없이 갇히기도 한다. 화암사 극락전 앞마당에서 하늘을 우러러보기도 한다. 화암사를 닮은 사람은 “세상의 이치가 옳으니 그르니 하는 사람보다/ 입을 봉하고 있어도 깊은 눈빛으로 말하는 사람”이고, “그런 사람의 가슴은 가을 하늘처럼 깊고 푸르리라”는 시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인공보다는 자연을, 현세보다는 영원을, 달변보다는 침묵을 윗길로 치는 시인의 표현에 십분 공감하기 때문이다. 시인은 어느 여름밤, 애월리 바닷가에서 편지를 쓰기도 한다.
천 년 동안
당신의 발자국 소리에 귀 기울이느라
거북을 닮아가는 내 몸에는 화등花燈이 켜지고
내 눈이 쏘는 인광에
어김없이 애월愛月인 나를 찾아옵니다
-「애월리에서 보내는 편지」제4연
이 시에서도 시간 개념은 ‘화무십일홍’ 정도가 아니라 천 년 단위이다. 그래서 장수동물인 거북이를 내세워 “거북을 닮아가는 내 몸”이라고 한 것이다. 공간은 어떠한가. “은하수 저편, 은빛 무늬 짜는 당신의 날갯짓 소리 듣는/ 여름 밤”이다. 바다 정도가 아니라 시인의 상상력은 은하수 저편의 무한천공을 유영하기도 한다.
어디 간다는 말 한 마디 않고 떠났던 새
천 년 동안 꿈쩍 않고 앉아 있는 내소사
대웅보전 앞에 금빛 날개를 접는다
-「觀音鳥」제2연
불가佛家에서는 ‘겁劫’ 이라는 단위를 쓰니까 시인의 시간 단위 천 년은 약과라고 해야 할까. 아무튼 시간과 공간의 진폭이 대단히 큰 시를 쓰고 있음을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시인의 발길은 해외로도 향한다. 아름답게 수놓은 바둑판무늬의 자갈길로 된 프라하의 길을 발이 부르트도록 뱅뱅 돌기도 하고, 빈의 벨베데레 궁 미술관에 가서 클림트의 그림을 보기도 한다. 시인의 시심을 자극하는 것은 이외에도 보르헤스와 존 스타인백의 소설, 고흐와 에곤쉴레의 그림 등 다양하다. 조각가 하랄드 하케가 제작한 피에타를 보고 쓴 시도 있다. 정영숙 시인은 이런 일련의 시를 통해 인간은 유한하지만 예술은 영원하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시집은 후반부의「바람의 이력」「봄나들이」「아버지의 눈」「통하다」에 가서 어머니와 아버지와의 추억을 더듬기도 한다. 집의 아이와 손녀를 등장시키기도 한다. 이들 시에 대한 감상과 이해는 독자의 몫으로 돌리고자 한다.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시는 연가풍의 시이거나 연가다.
당신은 나를 지극히 사랑해서
나는 벚꽃관을 쓴 최초의 신부가 된다
처음으로 눈뜨는 사슴의 큰 눈망울
개울물 속에 수정으로 빛나고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세상의 검은빛이 묻히는 하얀 땅
제 몸을 불태워 화촉을 밝히는
자작나무 빛나는 하얀 숲에서
오늘 밤 나는 영원히 산다
-「당신이 나를 사랑해서」후반부
대부분의 연애시는 화자가 타자를 사랑한다는 내용인데 이 시는 타자가 나를 사랑해서 내가 어떻게 된다는 내용이다. 당신이 나를 사랑해서 “오늘 밤 나는 영원히 산다”는 결구가 심금을 울린다. 결국 우리 인간은 사랑을 통해서 영원을 꿈꾸는 존재이다. 사랑은 자기희생이다. 자기희생으로 승화되는 자는 거룩한 존재로 거듭날 수 있음을 이 시는 알려준다. “우리 함께 알몸으로 쬐었던 뜨거웠던 태양”을 잊지 않고 있지만 어느덧 11월이다.
그대 내게 무심히 뱉은 사랑한다는 말의 속알갱이
어느 얄궂은 새 날아와 물고 갔는지 보이지 않고
빈 쭉쟁이 아직도 허허벌판에 싸락눈으로 날려
내 눈자위 붉은 단풍빛으로 물드는
11월은 모두 다 사라진 것은 아닌 달
-「11월은 모두 다 사라진 것은 아닌 달」제2연
가을이 오자 님은 떠나고,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것은 님의 체취며 체온이다. 연인간 이별의 아픔이야말로 수많은 시인들이 노래했던 것 아닌가. 유리왕의「황조가」에서부터 발원하여 소월과 영랑, 서정주와 박재삼으로 이어져온 이별의 노래를 정영숙도 이렇게 부르고 있다.
나는 불을 지피는 사람
나는 불을 지피는 사람
언제나 찬 바위에서 불을 지피는 사람
당신이 돌아가실 때 잡았던
차가운 돌멩이 같은 손
차마 잡을 수 없어
나는 죽어서도 불을 지피는 사람
당신의 차가운 심장에 불을 지피는 사람
아득히 먼 곳에서 당신을 바라보며
홀로 뜨겁게 불타는 별
-「戀歌」전문
동서고금에 수많은 사랑의 노래, 이별의 노래가 있었지만 어느 것에 못지않게 ‘뜨거운’ 연가이다. 이미 가버린 사람을 어떻게 할 것인가. 사별이면 더욱 가슴 아프다. 화자는 당신의 차가운 가슴에 죽어서도 불을 지피겠다고 한다. 참으로 열렬한 사랑 고백이 아닐 수 없다. 열렬함의 정도에 있어서는 「누란의 사랑」이 단연 최고이겠지만 사랑함으로써 영원을 함께한다는「그대, 내 안의 연꽃으로 피어나다」와「햇빛葬」이야말로 그에 못지않은 절창이 아닐까.
아아, 그대 내 가슴을 여닫는 순한 바람이었다
따사히 내 몸을 적시는 촉촉한 빗방울이었다
비봉산 산등성이에 비끼는 영롱한 무지개였다
마침내 영원을 밝히는 연꽃으로
내 몸 속에 환히 피어나네
-「그대, 내 안의 연꽃으로 피어나다」마지막 연
이런 시에서도 시인은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는다. 선산 죽장동 서황사 오층석탑을 쌓은 석공도 누군가를 사랑했을 것이다. “석공의 징 속에 스며 울던 인애忍愛의 날들”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그대는 “비봉산 산등성이에 연꽃으로/내 몸 속에 환히 피어나”고 있다. ‘사랑은 영원한 것’이라는 진부한 표현 대신 시인은 사랑을 영원히 성취했음을 이렇게 표현한 것이다. 「햇빛葬」도 연가로 들린다. ‘햇빛’과 ‘葬’을 낮과 장례로 해석하면 길지 않은 시간이지만 ‘태양’과 ‘죽음’으로 해석하면 영원에 가깝다. 인간은 유한자인지라 사랑을 그리 길게 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사랑을 함으로써 영원을 꿈꾸고 영원히 거룩할 수 있다는 것이 시인의 생각이다. 이 시도 시간과 공간의 진폭이 얼마나 넓은가. “아직도 남은 그리움 있어 내 붉은 촉수마다 물기 맺히면/ 저 바다에서 부서져 내리는 수천 수만 평의 햇빛 끌어모아/ 내 몸에 퍼부으리 하얗게 퍼부으리”라는 시행에 이르면 과거와 현재의 거리는 완전히 무화된다. 이승과 저승의 구분이 무화되고 지상과 천상의 구분이 무화된다. 햇빛의 장례, 혹은 햇빛 속의 장례는 “당신 눈빛 서리서리 내려진 해변/ 한 점 별떨기로 부서져 내”린다. 옳거니, 시인은 이제 이 시로써 영원을 살 수 있게 되었다. 누구나 때가 되면 생명현상이 끝나지만 정영숙은 시인이기에 사랑의 노래를 목놓아 부름으로써 또 하나의 우주를 창조하는 역사를 이루었다. 이 세상의 모든 창조는 사랑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사랑은 새로운 생명 창조의 원동력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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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사의 글 ◆
정영숙 시인의 새 시집은 한마디로 노자 <도덕경>을 떠올리게 했다. 「내 것이 아닌 당신의 문자들」에서 바다의 파도가 써 놓은 문양이 시인의 눈에는 문자 즉 시로 읽혀졌고,「부드러움이 이긴다」에서는 도덕경의 요지인, 여리고 연약한 것이 강하고 힘센 것을 이긴다는 내용으로 이어짐을 느꼈다. 상선은 약수라는 바로 그 핵심으로 이어져 흐르는 정 시인의 새 시집의 작품 편편을 읽으면서, 어느새 정 시인의 시적 경지가 이렇게 깊어졌나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고 보니 벌써 시집도 다섯 권이나 상재한 바 있어, 그의 시적 깊이가 결코 놀랄 일은 아니었다. 그 동안 이토록 깊은 작품들로 시적 높이를 쌓아올린 정 시인의 내공에 경의를 느끼면서 축하를 거듭하고 싶다.
―― 유안진(시인, 서울대 명예교수)
정영숙의 시편에는 햇빛 무늬의 언어들이 작은 알갱이가 되어 눈부시게 쏟아진다. 그 안에는 “짙은 포도주 향처럼”(「보르헤스의 책장 속으로」) 행간을 적셔가는 그녀의 깊은 목소리가 울렁울렁 담겨 있다. 그렇게 시인은 오래 빛나던 것들을 영혼 깊은 곳에 간직했다가 흰빛 언어로 마침내 터져 나오게 한다. 그러한 “운필運筆의 방향”(「아버지의 눈」)이 “책의 마지막 장에서 읽을 완성된 문자”(「물속의 책」)로서 지위와 속성을 그녀 시편들에 부여하고 있는 것이다. “맑은 성소처럼 빛나는” 그녀 시편들의 “황금빛 속삭임”(「클림트의 바람」)은 곳곳에서 새가 되어 날아오르기도 하고 햇빛이 되어 하늘로 번져가기도 하는데, 그때 그녀 시편들은 “세계의 소리를 담고 있는 거대한 책”(「히어링」)이 되고 “맑은 농담濃淡으로 가볍게 하늘로”(「일어서는 강」) 비상한다. 우리도 그 아르답고 열정적인 탄력과 결을 따라 “몸 환하게 불 밝히는 일”(「목백일홍」)에 흔연히 동참하게 된다. 진귀한 은총이 아닐 수 없다.
― 유성호(평론가, 한양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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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숙 시인∥
∙ 서울교육대학 졸업. 한국방송통신대학 영어영문학과 졸업.
∙ 1993년 시집『숲은 그대를 부르리』로 작품 활동.
∙ 그 외 시집으로『하늘새』『옹딘느의 집)』(2001년 문예진흥 기금 수혜)『물 속의 사원』『지상의 한 잎 사랑』등이 있음.
∙ 한국가톨릭문인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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