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타푸르 (Bhaktapur)
카투만두, 파탄과 함께 카투만두계곡의 3대 고도로 카투만두에서 약 15 km 떨어져 있다.
14 - 16세기경에는 티베트와 인도의 중계무역으로 최대의 전성기를 누렸으나 18세기 샤 왕조
정권교체기에 왕국의 중심이 카투만두로 이동하는 바람에 빛을 잃었다. 그러나 관광산업의
발달로 중세풍의 건축과 왕궁을 비롯한 사원들이 네팔 최고의 관광지로 다시 빛을 보고 있다.
'인도에 타지마할이 있다면 네팔에는 박타푸르가 있다' 고 할 정도다.
더르바르 광장 (Durbar Square) ; 더르바르 는 왕궁을 뜻하는데 카투만두나 파탄에도 더르바르 광장이 있다.
광장 좌측에 옛 왕궁, 정면에 사원들, 우측에 레스토랑 건물이 있다.
영화 ' 리틀 부다 ' 촬영장소였다.
파슈파티나트 (쉬바신의 다른 이름) 사원 ; 일부가 레스토랑 뒤로 보인다
레스토랑은 이층에 있다
네팔식 현지식
왕궁입구와 국립 미술박물관 ; 15세기경 말라 왕 시대에 만들어진 화려한 궁의 일부 건물로 이층은 수리중.
소나기 너머 '태양의 문' 이라는 금박의 왕궁입구가 멀리 보인다.
딸레주 종 (Taleju Bell) ; 두르가 여신의 화신인 딸레주의 이름을 딴 종으로 아침 저녁 기도시간을 알려준단다 .
부파틴드라 말라 왕의 돌기둥 ; 박타푸르의 말라 왕조의 전성기였던 부파틴트라 왕이 기도하는 모습.
17세기 후반 박타푸르의 건축과 예술발전에 크게 기여한 왕이다.
치아실린 만다라 사원 (Chyasilin Mandara)
두르가 사원 (Durga Temple) ; 여신 두르가는 쉬바신의 아내로서 팔이 8 - 10 개로 사자를 타고
팔에는 들소 악마와 싸울때 쓰는 각종 무기를 들고 있다.
두르가 여신상
터우마디광장 (Taumadhi Tol)- 바이라브나트 사원 (Bhairabnath) ; 말라 왕조때 만들어졌으나 1934년 지진으로
파괴된 것을 현재모습으로 복원했으며 쉬바신의 화신인 바이라브신을 모신 사원이다.
냐타폴라사원 (Nyatapola temple) ; 1702년 말라 왕조의 부파신드라 왕이 만든 5층 파고다양식으로
카투만두 계곡에서 가장 높은 사원이자 네팔건축술의 우월함을 자랑한다.
돌계단의 맨 아래 레슬러는 일반인보다 열배의 힘을 가졌고 그 위의 코끼리는
레슬러보다 열배, 그 위의 사자는 코끼리보대 열배, 또 그 위의 그리핀 (사자의
몸에 독수리머리를 가진 신화속의 동물) 은 사자보다 열배의 힘을 가졌단다.
냐타폴라 카페
박타푸르의 옹기마을
옹기마을 뒷골목 주택가
' 라마크리쉬나 ! ' 를 외치며 지나가는 종교행렬
사람들이 먹을 것을 전달하기도 하고 행렬차량위에서 먹거리를 던져 주기도 한다.
처음엔 사람인 줄 알았는데 자세히 보니 마네킹이었다. 아마 라마크리쉬나 성자 상인 모양이다.
라마크리쉬나 (Ramakrlshna) ; 1836년 인도 벵골에서 태어나 신에 관해서 책으로 배우기보다 자기가 살고 예배하는
방식으로 신을 실감하기를 원했던 근세 인도의 성자다.
" 파키스탄 사람은 물을 '잘'이라 하고, 영국 사람은 물을 '워터'라 하고, 인도 사람은
물을 '바니'라고 하지만 모두 다르게 부를 뿐 본질은 같다. 신에 대해서도 개신교는
'하나님'이라 하고, 무슬림은 '알라'라고 하고, 힌두는 '쉬바, 비슈누, 브라흐마' 라고
부르지만 모든 신은 하나다"
행렬이 터우마디 광장을 지난다.
행렬 앞에서는 " 라마크리쉬나 !"를 목청껏 외치는데 어느 백인이 마이크로 ' 라마 크리쉬나' 를 외치다가 사진찍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장난끼 어린 윙크를 한다.
행사차량 뒤에 타고가던 소년이 내다보다가 나와 눈이 마주쳤다
종교행사 행렬이 지나가자 결혼식 행렬이 이어진다.
유리창을 내리고 신랑신부가 모습을 보였다. 사진찍는 우리에게 결혼식장으로 오란다.
신랑신부가 탄 차량 뒤로 친지와 하객들이 따라가면서 즐겁게 노래도 하고 춤도 춘다.
다시 더르바르 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