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포전 지인들과 내장산 단풍구경 갔다가 지난 여름 유래없는 강태풍 마이삭으로 단풍은 별로였고, 대신에 새만금과 나주평야, 군산 갯벌과 만경평야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지평선을 체험할 수 있는 벌이 이 지역이라 합니다. 나주평야를 가로질러 가장 긴 시간을 황금벌판만 보고 달렸습니다. 군산항은 우리나라 최대 쌀생산지대를 끼고 일제가 조선의 쌀을 착취하여 일본으로 반출했던 근대사의 아픈 역사로 유명합니다.
전북에는 남한의 중심인 행정수도를 지향하는 세종특별자치시가 자리하고, 농촌진흥청 국립식량과학원이 종전의 농업중심도시 수원을 대신해서 완주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즉, 국립원예특작과학원은 수원에서 식량이 아닌 원예 및 특작 등 분야를 맡아 연구하고, 우리국민의 주식인 쌀과 지금은 퇴색했지만 보리, 밀 등 맥류와 잡곡류 등에 대해 완주 국립식량과학원에서 연구를 하는 것으로 역할 분담을 하고 있습니다.
보릿고개로 일컬어지는 배고팠던 시절이 언제 있었더냐고 물을만큼 지금은 먹거리가 넙쳐나고 있습니다. 물론 우리가 먹는 먹거리의 반 이상(2019년 식량자급률 45.8%)이 수입농산물임에도 전혀 불안감을 찾아볼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쌀부족 시대에 보리 혼식을 장려했던 것이 지금도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의도는 전혀 다릅니다. 그 옛날에는 부족한 쌀을 절약하고 보리쌀을 먹어줘야 식량 자급이 가능하다는 말이고, 지금은 칼로리가 높은 탄수화물 중심의 쌀을 많이 먹으면 선진국형 4대질병에 걸리기 쉬우니 건강식인 보리나 잡곡을 많이 먹자는 것입니다.
국민소득이 높아지니 맛난 고칼로리 식품인 쌀밥에서 밀빵으로, 더 나아가 닭, 돼지, 소고기 등 육류의 과도한 단백질과 탄수화물의 섭취로 비만인구가 급격히 늘어나고, 따라서 암, 고혈압, 당뇨, 뇌졸증 등 선진국형 질병이 엄습하여 국민건강에 적신호가 주어졌습니다.
그런데 국립식량과학원의 연구 트렌드가 이전과 많이 다른 점이 있습니다. 식량자급이 주목적이었던 과거에는 다수확 즉, 양적 요소가 주연구 대상이었으나 지금은 질적 요소가 주 대상으로 바뀌었습니다. 건강기능성 물질이 많이 함유된, 병충해 저항성이 높은 품종을 개발합니다. 식량자급율이 계속해서 떨어지고 있지만, 그래서 식량주권을 외쳐대는 학자들의 소리는 외로운 공허한 메아리로 되돌아 옵니다. '인구는 기하급수, 식량은 산술급수' 식의 말사스의 고전적 이론을 들먹이는 학자는 보기 어렵습니다. 과학의 발달로 식량생산은 획기적으로 증산되고, 세계는 개방되어 FTA(자유무역협약)이 다변화된 국제무역 질서의 변화가 큰 몫을 차지합니다. 공업화가 병행 발전한 우리나라는 식량생산기지인 논밭이 산업용지로, 도로로 전환되면서 급격히 줄어들고 있어 우려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생산자 농업인이나 소비자 도시인이나 위정자와 공무원들이 온통 뭐 소득이 될만한 것이 없나, 일자리를 늘릴만한 것이 없나 머리를 싸메고 궁리에 빠져 있습니다. 이런 와중에 당장이 아닌 미래에 대한 그것도 확실치도 않아보이는 문제에 발목잡힐 수 없다는 논리로 보입니다.
한국은 세계 IT산업에서 뿐만 아니라 농업분야의 연구도 세계에서 빠지지 않을만큼 첨단기술을 개발해 튼튼한 기반을 다지고 있습니다. 스마트농업뿐만 아니라 장미, 딸기 등 선진 외국에 로얄티를 지급하고 외국 품종을 사용해야 했던 과거와는 달리 주요 작물의 신품종을 개발, 동남아, 중국 등지로 수출하여 로얄티를 받는 나라로 바뀌고 있습니다.
최근 보릿고개로 대변되던 보리는 그 건강기능성에 착안하여 단순한 식량의 차원이 아니라 건강 약선 작물로 전환되어 농민들에게, 국민들에게 새로운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식량부족 시대에 국민의 생명을 지켜주던 보리가 쌀자급이 이루어지자 식량 조연의 자리조차 빼았겼다가 40여년 세월이 지난 다음, 영양이 아니라 건강기능성 계급장을 바꿔달고 어게인한 것입니다. 보리의 반란입니다.
여기서 나이든 사람들에게나 익숙한 찰보리에 관한 보도 하나를 소개합니다.
군산은 어떻게 찰보리 메카가 되었을까
기사 작성: 신동우 군산 농업기술센터 계장 - 2017.01.25 19:21
「백제 온조왕 28년(AD10) 전략..... 여름 4월, 서리가 내려 보리가 피해를 입었다.」
삼국사기에 기록된 우리나라 보리재배에 대한 최초의 언급이다. 이처럼 삼국사기에는 보리를 언급한 구절이 총 11회가 나온다.(2000, 한국맥류학회지) 그만큼 당시 위정자의 관심사는 온통 백성들의 구식지계(口食之計)에 있었음을 보여주는 기록이다. 자급자족을 치국의 근본으로 삼는 농경국가였으니 여북했을까? 이러한 기조가 무려 2천년을 지속되었다니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보리는 우리나라 서민들의 생명을 지탱하는 주식이었다. 어디 우리나라뿐이랴. 보리는 1만8천년부터 인류의 식량이었고 현재까지도 세계 곡물 중 네 번째로 많이 생산되는 작물이다. 믿기지 않겠지만 보리는 17C까지 유럽인들의 주식이었거니와 몰도바, 모로코, 라트비아 국민들에게는 지금도 생명의 밥상이다.
수천 년 우리민족에게 밥으로 사랑(?)받던 보리가 80년대 이후 서구 식생활과 쌀밥 위주의 식습관이 대세가 되면서 1980년 국민 1인당 소비량이 13.9kg, 1985년 4.6kg, 2004년 1kg까지 급감하게 되었고 식탁에서도 밀려났다. 보리 소비책은 백약이 무효였다. 농산물 수입개방까지 겹치면서 재고가 산더미처럼 쌓였고 불가피하게 2012년 보리수매제가 폐지되었다. 식용보리는 우리와 작별을 고할 처지였다.
난감했다. 하지만 보리는 ‘능동초(凌冬草)’라는 별명처럼 겨울을 이기고 식탁에 다시 올라왔다. 수매제도가 폐지되기 20년 전,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옥구군 대야면에서 찰보리 재배가 시작되었다. 그것도 전량을 가공하여 소포장해서 팔겠다는 다소 생소한 발상을 가지고 앞날을 준비했다는 말이다. 그때가 1992년, 쌀도 20kg들이 종이포장이 일반화 되지 않아 40kg들이 마대로 유통이 되던 시절이었다.
너무 빨랐던 것이었을까? 막상 찰보리로 직접 인절미를 만들면서 ‘사요’를 외쳤지만 시장 반응은 냉랭했다. 1kg들이 소포장은 고객의 심리적 구매량에도 미치지 못했다. 시판가격도 메보리에 비해 2배 정도 비쌌거니와 소비자들은 “보리만 봐도 징글징글하다”고 가난했던 기억과 동일시하기 일쑤였다. 그들은 찰보리의 다름을 인정하지 않았다. 농업인마저 실익 없음을 이유로 재배를 외면하면서 4년 만에 쓴맛을 보았다.
그럼에도 굴하지 않고 즉시 시장 실패의 원인을 찾았다. “농업인도 소비자도 좋은 품종이어야 한다.” 대체품종으로 호남농업시험장에서 육종한 ‘흰찰쌀보리’가 유력했다. 1995년 옥구읍에 있는 0.4ha 논에 증식, 이듬해 전량을 종자로 농가에 보급하였다. 그런데 이 시도가 우리나라 찰보리 재배의 본격적인 시작과 롱런을 동시에 알리는 신호탄이 될 줄을 누가 알았겠는가? 능동(凌忍)의 결과물이었다.
새로 선발된 ‘흰찰쌀보리’는 키, 수량, 색깔, 정맥수율 면에서 이전의 찰보리와 달랐다. 특히 보리알이 적고 혼반하면 퍼짐성이 좋았고 보리 고유의 미끌거리고 이질적인 식감이 개선되었다. 여기에 보리를 물에 불리지 않아도 밥을 지을 수 있다는 장점이 더해졌다. 시장의 반응은 확실했다. 1997년부터 시나브로 늘어난 찰보리 소비는 2000년을 기점으로 증가세가 확연해졌다. 찰보리 재배면적은 2000년 150ha, 2001년 550ha, 2005년 850ha로 늘어났다. 인접 시군은 물론 전남, 충남 농가들까지 찰보리를 재배하게 되었다. 바야흐로 군산이 찰보리의 메카가 된 것이다. 이는 우리나라 보리 재배사에서 찰보리 재배지의 원조 지위가 군산이고, 우리나라 혼반문화를 찰보리로 바꾼 군산의 일익도 기록되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또한 찰보리의 진일보는 시너지(synergy)를 가져왔다. 찰보리 농사로 쌀값 하락에 따른 농가소득 감소액를 보전하는 예상치 않은 효과가 나타난 것이다. 부연하자면 농업인들은 찰보리 직거래로 얻는 소득을 벼농사 비용으로 충당하였고, 그 영향으로 벼재배 농가경영은 그나마 안정될 수 있었다. 더욱이 보리 수매가 중단되기 전에 농가들이 찰보리로 갈아탈 수 있게 되면서 보리수매 중단으로 오는 충격을 완충하는 효과마저 있었다. 곡창지대인 전북에 불어온 개방의 파고를 농업인들은 찰보리 농사로 넘어왔던 것이다.
그렇게 성장세를 구가하던 찰보리 시장이 최근 2, 3년 전부터 경고음을 내고 있다. 그 이유는 크게 세 가지로 볼 수 있다. 첫째는 전국적으로 찰보리 면적이 급증하면서 찰보리 시장이 레드오션으로 전화하였고, 둘째는 찰보리, 현미의 소비증가로 형성된 국내 잡곡시장에 귀리, 렌틸콩 등 외국산 잡곡들이 낮은 가격을 무기로 대량 투입됐기 때문이며, 셋째는 찰보리 시장 동향에 대한 모니터링이 미흡해서이다. 지금이라도 찰보리 시장을 면밀히 분석하여 종합대책을 세우고 단계적으로 실행해야 한다.
러셀 크로우 주연의 영화 ‘글래디에이터’을 본 적이 있는가? 로마 검투사들의 스태미나식은 ‘보리’였다. 보리의 스테미나 증강 효과는 동의보감에도 언급된 바 있고, 일본 국립영양연구소에서는 쥐 먹이 임상실험으로 쌀을 먹인 쥐보다 보리를 먹인 쥐가 20% 더 멀리, 더 오래 달렸다는 사실이 입증하였다. 그뿐인가? 일본 표준성분표에 의하면 새싹보리의 알칼리 함유량은 토마토의 11배 이상이고 식이섬유는 고구마의 20배, 카로틴은 호박의 12배, 칼슘은 우유의 4.6배, 철분은 시금치의 25배가 많다. 단지 적시된 사실만으로도 우리는 당장 보리를 즐겨 먹어야 할 듯하다. 그래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보리시장의 세분화이고 다양한 제품 개발이다. 그 맥락은 소비촉진과 농가소득 증대이다.
혹자는 이제 예전과 같은 찰보리 호황은 다시 오기 어렵다고 말한다. 군산은 단보당 보리 수량이 예전부터 높은 곳이다. 군산 찰보리의 가격 경쟁력은 국내 최고 수준이다. 그래서 농가들이 지레 포기할까봐 더 마음이 급하다. 찰보리산업 부양에 지혜를 모아야 한다. 찰보리 시장은 농업인들의 직거래로 만들어지고 커진 시장이고 소마가 대마를 구축한 전례 없는 시장이다. 그 동안 군산농업인들은 장년층․ 노년층의 지난했던 ‘보릿고개’를 소환하여 추억으로, 향수로, 건강으로 치환하는 작업을 소명처럼 해왔다. 삼국사기 첫 보리 기록마냥 대한민국 찰보리 시작이 군산인의 열손가락 끝에 기록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것은 백제인이 살아온 숨결이다. 항상 역사는 끝난 곳에서 다시 시작 되어야 하나니.
보리의 역사는 현재진행형입니다.
그렇습니다.
농업은 6차 산업입니다.
보리의 역사도 6차산업의 개념으로 써 나갈 것입니다.
우리는 보리농사를 지어 통보리를 생산하고(1차산업), 보리를 가공하여 질적 변화를 시도하고(2차산업), 가공한 상품을 유통시키고(3차산업), 보리 체험 프로그램을 통해 조상들의 삶의 향기를 맛봄(서비스 산업)으로써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보리의 새 역사를 쓰고 있습니다.
화포천 뜨락영농조합법인에서 보리산업을 펼쳐나가고 있습니다.
신개념 시리얼스 포스트 바이오틱스(sereals post biotics)가 그 다음 역사가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