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김현묵 지음 [네 인생을 리모델링하라]
임재해(국립안동대 명예교수, 민속학자)
흥미로운 책은 읽는 이 자신과 관련하여 두 가지 기능을 발휘한다. 하나는 자기를 잊은 채 책의 내용에 빠져들게 만드는 책이고, 둘은 책을 읽으면서 줄곧 자기 삶을 되짚어 보게 하는 책이다. 읽는 재미로 말하면 앞의 책이 더 재미있다. 자기 자신을 잊을 정도로 책 속에 쏙 빠져들게 만드는 까닭이다. 그러나 의미 있는 책으로 말하면 책을 읽는 동안 자기의 과거와 현재를 되돌아보고, 미래의 삶을 내다보게 만드는 책이다.
수필가 김현묵의 <네 인생을 리모델링하라>(밀알서원)는 후자의 책에 해당된다. 이 책은 저자의 자서전이다. 그의 자서전이지만 꼭 나의 자서전처럼 읽히는 부분이 많아서 특히 관심을 끌었다. 가난 속에서 힘들게 살았던 이야기나 어머니 관련 이야기들이 특히 그렇다. 더 구체적으로는 소풍 갈 때 도시락이 없어서 밥그릇에 점심을 싸서 갔던 일이나, 연탄가스에 중독되어 죽을 뻔했던 일들은 조금 다른 그림으로 내 삶의 장면과 겹쳐 보였다. 따라서 그의 자서전을 읽으며 내가 써야 할 자서전을 떠올리게 되었다. 문득 나도 자서전을 쓰면 이렇게 써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우선 그의 문장이 마음에 든다. 누구나 술술 읽고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썼다. 글의 절목(節目)에 따라 한 편의 수필처럼 잘 쓰여져서 제각기 따로 발표해도 좋을 것처럼 읽힌다. 놀라서 다시 저자 소개를 보니 시인이자 수필가이다. 그리고 어릴 적에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 좋은 책을 많이 읽었다. 국어 선생님 사랑도 듬뿍 받은 걸 보면 소년 시절부터 일정한 문재를 타고났던 셈이다. 그러므로 나도 이런 자서전을 써야겠다는 발상은 일깨워주었지만 과연 이런 수준으로 쓸 수 있을까 하는 것은 의문이다.
그러나 자서전은 글쓰기 기법이나 문장력으로 쓰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살아온 삶의 내력을 오롯이 담아내는 글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무리 글솜씨가 탁월해도 삶의 경험이 다채롭지 못하고 생애사가 풍요롭지 못하면 자서전에 담을 만한 알맹이가 없어서 글을 쓸 수 없기 마련이다. 삶의 고난과 질곡을 경험하지 않고, 마음의 고통과 상처도 없는 순탄한 삶을 평범하게 살아온 사람들은 이른바 출세했다는 평판을 들을 만큼 성공을 해도 정작 자서전으로 쓸 내용은 가난하기 일쑤이다.
저자의 가난한 삶은 오히려 자서전으로 담을 내용을 풍부하게 만들었다. 소년 시절부터 이런 일터 저런 직장을 전전하며 직업 전선에서 일한 경험, 또는 출향과 귀향을 거듭한 방황의 경력은 가난했기에 겪을 수 있었던 소중한 삶의 자산이 되었다. 남들 다 가는 중학교에 가지 못한 초등학교 졸업의 학력이 오히려 독학과 검정고시를 거쳐 대학원 석사학위를 받게 하는 화려한 학력을 가질 수 있게 만들었다. 그러므로 고난의 행군과 같은 남다른 삶의 이력이 없으면 자전적 수필을 쓸래야 쓸 거리가 없다.
저자의 글쓰기 미덕은 어려운 가정 형편이나 살아오면서 겪은 숱한 고난을 숨김없이 솔직 담백하게 서술한 점이다. 나도 내 가난했던 삶에 대해 이렇게 꾸밈없이 솔직하게 쓸 수 있을까. 부끄러워서 감추고 싶은 생각이 먼저 들 것 같다. 게다가 저자는 늦장가를 들었지만, 19세에 이미 맞선을 보았을 뿐 아니라, 그 이후에 사랑하는 여성을 만나 몇 차례 사랑과 이별을 나눈 순애보 같은 절절한 사연이 있어서 자서전이 더 풍요롭다. 기차에서 억지 이별 장면은 애정 영화의 반전처럼 극적이기도 하다. 내게도 이런 절절한 사랑 이야기가 있는가, 자문해 보니 쑥스러울 정도로 빈약하기만 하다.
저자는 초등 졸업의 학력이 불만족이어서 자력으로 중고와 대학, 대학원 학력까지 갖추게 되었다. 그런가 하면 일정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 학교 교육에서 배울 수 없는 공부를 자력으로 했다. 이를테면, 직장에서 처음 외국 여행을 보내주는 기회를 맞이하자, 여행에 대한 들뜬 생각보다 다녀와서 여행기를 쓸 계획을 세우고 글쓰기 공부를 시작했다. 글쓰기 관련 도서를 두루 구해 읽고 차근차근 글쓰기 연습을 했다. 저자가 시인과 수필가로 제각기 등단할 수 있었던 것은 이때 글쓰기 수련을 한 결과가 아닌가 한다. 저자가 쓴 시 작품도 있지만, 어릴 적에 겪은 부모의 싸움에 관한 표현 한 대목만 옮겨 보자.
“아버지와 어머니가 싸울 때 내 얼굴에 튀었던 창피함이 지워지는 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내 얼굴의 흉터 같던 창피함은 세월이 조금씩 떼어 과거로 가져갔다. 그렇게 흉터가 엷어지며 나는 청장년의 고개를 넘어 여기까지 왔다.”
나도 같은 경우를 겪었지만 이런 수준의 문장으로 표현할 자신이 없다. <네 인생을 리모델링하라>라는 책의 제목도 자전적 수필집으로서는 특별하다. ‘너 자신을 알라’와 같은 고전적 경구보다 더 적극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국화꽃은 가을에 핀다”는 5장 제목도 탁월하다. 가장 쉬운 표현으로 인생 후반기에 대한 상당히 진지한 철학을 담고 있다. 나는 이 점에서도 저자에게 한참 모자란다는 사실을 실감한다. 저자처럼 시인은 물론 수필가로 등단할 엄두조차 못 내고 있으니까 말이다.
이 책이 자서전임에도 흥미롭게 읽히는 것은 삶의 여러 순간에서 겪은 우여곡절들이 제각기 하나의 사건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아찔하고 조마조마한 고비의 순간들이 여럿이다. 늦장가를 가는 혼인 과정도 우여곡절을 겪었고, 아파트를 처음 구입해서 입주하는 과정이나, 외국 여행을 하는 과정에도 뭔가 틀어지거나 어긋나서 가슴 졸이게 하는 우여곡절로 점철되어 있다. 항공기에 내려서 입국하는 과정에 휴대폰을 분실한 사연은 등에 식은땀을 나게 만들기 충분하다.
이처럼 저자가 겪은 온갖 우여곡절의 사건들이 마치 허구적 서사처럼 자서전을 역동적으로 만들고 있다. 내 삶을 돌아보면 이러한 수준의 우여곡절도 별로 없다. 할머니들이 흔히 말하기를, “내가 살아온 이야기를 다 하면 책 한 권으로도 모자란다”고 하는데, 저자의 삶이 그렇다. 한 마디로 자서전을 쓸 만한 남다른 삶을 살았기에 가능한 일이다.
따라서 저자는 모두들 괴로워했던 코로나 팬데믹 시기를 오히려 의미 있는 기회의 시간으로 만들었다. 영어 공부를 하느라 영어문장을 늘 외우며 일했더니, 동료들이 혼자 중얼거리는 모습이 불편하다고 사내 고충 처리함에 고발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여러모로 문장 암송 활동이 위축되었는데 코로나19가 시작되면서 마스크를 쓰게 되자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영어문장을 외울 수 있게 되었다. 3년 동안 마스크를 쓰고 마음껏 문장을 외운 까닭에 저자에게 코로나 팬데믹은 영어 공부에 더없이 좋은 기회가 되었다.
그런데 나는 같은 코로나 팬데믹 시기를 거쳤지만 그것과 관련하여 특별한 이야기 거리가 없다. 결국 자서전을 쓴다고 해도 쓸 거리가 없다는 말이다.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삶의 경험이 여러 편의 이야기로 축적되어야 자서전을 구성할 수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그러고 보니, 나는 자서전을 쓸 만한 삶을 살지 못했다는 자각을 하게 되었다. 달리 말하면 스토리텔링이 없는 삶, 곧 이야기 거리가 못 되는 삶을 살았다는 말이다.
저자가 “인생은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 가는 것”이라고 일갈했다. 스스로 겪고 실천한 경험을 근거로 인생을 창조적으로 만들어 가도록 리모델링하는 여러 가지 방법들을 집약해 놓은 것이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기도 하다. 자기 인생을 리모델링하려는 사람은 물론 자신의 자서전이나 회고록 쓰는 데 관심 있는 분들은 꼭 챙겨볼 만하다. 자서전을 쓰고 싶게 만드는 한편 인생을 도전적으로 살도록 만드는 책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