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시험은 특권의식을 강화하고 고착시키는가
선거철에 맞춰 의대생 2000명 증원의 거대 이슈가 터지면서, 의대생들이 동맹휴학을 하고, 종합병원 의사들이 사직서를 냈다. 공공의료 제도를 마련하는 것은 다양한 차원에서 제도적 개선이 필요한 일이지만 애초 정부도 의료계도 서로가 합리적 이성이 부재하다. 의사와 의대생들은 변화를 원하지 않는 보수주의자들이다. 어떻게 들어간 의대고 얼마나 많은 것을 투자한 의사인가? 본전을 넘어 수십 배 수백 배의 이득을 회수하기 위해 간 곳이 아닌가?
사실 각종 고시생들을 거친 사람들은 기득권 보수주의자가 되기 십상이고, 특권의식을 내면화하기 마련이다. 현대사 속에 사법고시가 그랬다. 지금 검찰독재가 탄생한 배경은 한국의 근대교육제도의 경쟁 원리로 한 평가 서열화의 결과물이다. 과거 1%의 두뇌들이 서울대 법대를 갔다면, 지금은 의대에 간다. 히포크라테스의 제자가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세습자본의 후손으로 계급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서다. 아마도 히포크라테스가 되고 싶었던 가난한 학생들은 강남의 사교육 혜택을 상상도 못한 채 일찌감치 포기했을 것이다.
그보다 밑의 교사들 임용고시도 그렇다. 아마 현대의 대부분 교사들은 임용고시는 자격 있는 교사를 뽑기 위한 제도라고 말할 것이다. 그 외 교사가 되는 길을 알지 못하고, 그 길을 이제는 국가는 완전히 제도적으로 차단하고 관리하려 하고 있다. 그것의 위험함을 교사들이 의식하고 있지 못하다. 경쟁을 통해 차별의식이 내면화되고 시야가 좁아졌기 때문이다. 스승의 범위가 이제 교과교사로 축소되어버렸다. 모든 특권이 이렇게 합법적 배제를 통해 공고해지고 지배를 합리화한다는 것 잊었다.
한국사회의 각종 ‘○사’ 직업과 ‘○○고시’의 자격시험은 점차 국가가 법적으로 보장한 특권층을 양산하고 지배를 공고히 하는 수단으로 작동하고 있다. 물론 지금은 자본의 이익이 국가를 앞질러 국가가 자본에 복무하고 있는 상황이다.
대학생들이 만인의 평등을 위해 특권계급을 비판하고 저항하던 시대는 지났다. 부끄럽지 않은가 특권의 밥그릇을 지키기 위해 자격 운운하는 것이?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을 수 없는 사람들이 저렇게 특권을 위해 노골적으로 용감할 수 있는 사회가 되고 학교가 되어버렸다. 독점을 허용하는 순간 지배와 군림이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