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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암소의 희생으로 이스라엘이 살길을 찾았습니다.(삼상6:10-16)
2014, 9/21 설교문()
오늘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에게 주시는 말씀은 삼상6:10-16절 말씀으로“암소의 희생으로 이스라엘이 살길을 찾았습니다.”이런 제목으로 말씀 선포될 때 주의 크신 은혜와 사랑이 이곳에 함께하실 원합니다.
한 주간 평안하셨는지요? 제15회 아시안게임이 우리고장 서구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성공적인 대회개최를 위해 기도를 해주시고, 교통통제에도 잘 따라주시고, 비인기종목은 입장권판매가 저조해 경기장에 가면 무료관람이 가능할지 모릅니다.
또 크리켓을 비롯해 무료입장하는 종목도 더러 있으니 확인하시고 가셔서 응원도 많이 해주십시오.
아침저녁으로 기온차가 큽니다. 감기조심하시고 건강한 한 주간 보내시기 바랍니다.
우리, 앞뒤 옆에 계신 분들과 함께 인사 나눕니다. 사랑합니다. 보고 싶었습니다.
사무엘서는 사사시대를 거치면서 백성들이 왕을 요구하였고, 하나님은 사무엘을 통해 저들에게 왕을 허락하심으로 그 왕을 통해 이스라엘을 대리 통치해 갑니다.
사무엘상이 사무엘과 사울왕의 무대라면 사무엘하는 다윗의 무대입니다.
이들을 통해 하나님이 역사 속에서 어떻게 개입하시는지를 볼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말씀은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빼앗긴 법궤가 스스로의 능력으로 다시 이스라엘로 돌아오는 과정이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다음과 같은 2가지로 은혜를 주셨습니다.
첫째로, 잃어버린 법궤를 싣고 갈 암소가 필요합니다.(10-11절)
둘째로, 암소는 모든 재앙과 저주를 짊어졌습니다.(11절)
사랑하는 여러분!!!
징례식 부고장을 보면 호상(護喪)이 있는데 호상은 상주들이 해야 할 모든 일을 대신하여 장례를 집행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왜 상주들이 할 일을 대신 해줄 사람이 필요할까요? 그건 상주들이 상을 당해 슬픔 때문에 경황이 없어서 일처리를 제대로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영혼도 죄로 인해 이미 죽어서 송장이 되어 있기 때문에 어떤 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호상이 필요했고, 주님이 우리대신 호상이 되셔서 모든 일을 관장하시고 우리를 살려내신 것입니다.
오늘 블레셋에 독종과 저주가 임해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가자 저들이 암소를 대신 재물로 삼아 법궤를 이스라엘로 돌려보냄으로 그 위기에서 벗어납니다.
암소가 블레셋의 호상이 되어 저들을 재앙과 저주에서 구해낸 것과 같습니다.
그러면 본문의 말씀을 따라가면서 저들에게 임한 재앙과 저주가 어떻게 사라졌는지 성령께서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도록 하겠습니다.
첫째로, 잃어버린 법궤를 싣고 갈 암소가 필요합니다.(10-11절)
본문10-11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그 사람들이 그같이 하여 젖 나는 소 둘을 끌어다가 수레를 메우고 송아지들은 집에 가두고 여호와의 궤와 및 금 쥐와 그들의 독종의 형상을 담은 상자를 수레 위에 실으니”아멘.
엘리제사장 때, 블레셋군대가 쳐들어와 전쟁을 치뤘는데 전투에서 패하자 저들은 법궤를 메고 전쟁터로 나갔습니다. 하나님임재의 상징인 법궤가 전쟁터에 나왔으니 무조건 이길거라 생각했지만 이번에는 지난번보다 대패하여 3만이라는 막대한 군사를 잃고 법궤까지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블레셋사람들은 법궤를 전리품으로 삼아 아스돗에 있는 다곤신전에 보관했는데 다곤신상이 무너집니다. 우연의 일치로 보고 일으켜 세워놨지만 이번에는 다곤신상이 무너지면서 머리가 잘리고, 팔 다리가 부러져서 만신창이가 됩니다.
거기다 5장9절에“...여호와의 손이 심히 큰 환난을 그 성에 더하사 성읍사람의 작은 자와 큰 자를 다 쳐서 독종이 나게 하신지라”독종이 악성 피부암쯤 될까요? 독종이 퍼져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자 결국 견디지 못한 아스돗사람들이 법궤를 가드로 보내고, 가드에서 다시 에그론으로 보냈지만 가는 곳마다 그 지역사람들이 죽어나가고 도시가 쑥대밭이 되자 결국 새끼를 갓 낳은 암소에게 법궤를 실려 이스라엘국경도시인 벧세메스로 돌려보냅니다.
하나님은 블레셋에 포로로 잡힌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잡혀주셨다가 스스로 나오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누구를 의지하거나 누구의 도움이 필요하신 분이 아닙니다.
온 우주만물을 만드시고 소유하시고, 영광을 받으시는 분이 무엇이 아쉬워 우리에게 섬김과 순종을 요구하겠습니까?
그럼에도 우리에게 예배받길 원하시고, 우리와 긴밀한 교제를 원하시는 것은 우리를 그만큼 사랑하시는 증거이고, 또 그걸 통해 우리에게 복주시기 위함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배를 사모하시고, 봉사와 헌신하는 것을 기뻐해야 합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블레셋에 7개월 동안 머물면서 당신의 위엄과 능력을 마음껏 보여 주시고 스스로 이스라엘로 돌아오시는데 이렇게 법궤가 이스라엘로 돌아오기 위해서는 수레를 끄는 소가 필요합니다.
이스라엘백성들이 누굽니까? 눈에 보이는 법궤만 끌어안고 하나님이 뭘 원하시고, 뭘 기뻐하는지 관심도 없이 빈껍데기만 붙들고 신앙생활 하던 자들입니다.
신앙의 본질은 놓쳐버린 채 형식만 추구했던 바리새인들과 똑같은 자들입니다.
그래서 저들 스스로는 도저히 하나님을 찾을 수도 없고, 만날 수도 없습니다.
영적으로 무지해 하나님을 잃어버린 저들이 다시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저들에게 하나님, 법궤가 필요하고, 그 법궤를 가져다줄 그 무엇이 필요합니다.
그런 의미로 암소는 이스라엘백성들에게 잃어버린 법궤, 잃어버린 하나님을 다시 찾아준 중보자가 된 것입니다. 암소가 이스라엘백성들에게 중보자의 역할을 했다면, 예수그리스도는 우리의 중보자이십니다.
롬5:10절에“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하게)되었은즉 화목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으심을 인하여 구원을 얻을 것이니라.”이렇게 말씀합니다.
우리가 죄 때문에 하나님과 원수되었을 때, 예수님께서 내 죄를 대신해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하나님과 다시 화목하게 하셨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죄로 인해 하나님을 잃어버리고 죄와 저주 속에 살다 죽어가는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 말할 수없는 수모와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암소도 비록 말은 못하지만 젖먹이 새끼를 떼놓고 가려니 얼마나 아팠겠습니까? 출산한 엄마가 아이에게 젖을 주지 못하면 젖이 땡땡 불어 그 고통이 상당합니다.
얼마 전 떠돌이 개가 죽은 새끼 곁을 떠나지 못하고 하염없이 그 자리를 지키는 모습을 TV로 봤는데 사람이나 짐승이나 모성애는 똑같은 것 같습니다.
이스라엘백성에게 하나님을 다시 회복시켜주기 위해 자기를 희생하며 법궤를 싣고 갔던 암소가 오늘따라 위대하게 보이는데 우리주님은 어떻겠습니까?
주님은 저와 여러분들을 살리기 위해 자신의 생명까지 버렸습니다.
본문은 암소가 법궤를 싣고 벧세메스로 갈 때 울지도 않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도 않고 똑바로 걸어갔다고 말하는데 이는 당연합니다.
왜냐면 지금 암소는 법궤를 메고 가는 막중한 임무를 맡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전하는 일, 법궤를 전하는 일, 생명을 살리는 일이 쉽지는 않겠지요.
그럼에도 한낱 미물인 소가 자기에게 맡겨진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아픔도 슬픔도 뒤로하고 그것 때문에 울지도 않고, 주저하거나 망설이지 않고 앞만 보고 가고 있습니다. 이런 모습이 바로 구원받고, 사명 받은 우리들의 모습이 아닐까요?
우리는 지금 말씀대로 살기 참 어려운 시대를 살지만 그럼에도 이 암소처럼 믿음 지키기 위해 애써야합니다.
여러분!!! 오늘 두 마리의 암소가 함께 수레를 끄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저 소들은 서로마음을 합하여 끝까지 사명을 완수합니다.
두 사람만 모여도 네당, 내당, 우리당, 당을 3개나 만드는 대단한 능력을 갖고 있는 우리들이 볼 때 놀라운 입니다.
여러분!! 나보다 잘난 사람에게 굽히는 것은 쉽지만, 못난 사람 섬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자존심 접고 먼저 양보하고 섬겨야 함께 수레를 끌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우리에게 암소와는 비교할 수 없는 위대한 중보자가 계십니다.
우리가 그 중보자 되시는 주님의 백성이고, 제자라면, 비록 젖먹이를 때놓는 고통과 아픔이 있을지라도, 묵묵히 벧세메스로 향했던 암소처럼, 많은 사람들을 주님께 인도하는 중보자가 돼야하지 않겠습니까? 그런 삶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둘째로, 암소는 우리의 모든 재앙과 저주를 짊어졌습니다.(11절).
본문11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여호와의 궤와 및 금 쥐와 그들의 독종의 형상을 담은 상자를 수레 위에 실으니”아멘.
여러분!!! 벧세메스로 가는 암소의 수레에 무엇이 실려 있었습니까?
하나님의 법궤와, 금으로 만든 쥐 형상, 금으로 만든 독종모양을 각각5개씩 수레에 실었습니다. 이것은 당시 블레셋의 5개 도시를 상징하는데 이는 블레셋 땅의 모든 저주와 독종까지 이스라엘로 함께 보내는 퍼포먼스를 한 것입니다.
저들이 알고 했는지 모르고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저들의 지혜가 대단합니다.
블레셋사람들은 자신들이 받고 있는 재앙과 저주를 피하기 위해 새끼가 딸린 암소 둘을 끌어다가 희생양으로 삼아 수레를 지워 유대 땅으로 보냅니다.
이 암소는 블레셋사람들의 재앙을 짊어지는 제물로 선택되었기 때문에 반항도 하지 못하고 순한 양처럼 결박당하여 꼼짝없이 벧세메스로 향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벧세메스에 도착하면 영원히 자신들의 새끼 송아지도 만나지 못하고 죽어야합니다. 왜냐면 재앙과 저주를 대신해 하나님께 번제로 드려졌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여러분들은 이 암소를 보면서 무엇이 떠오르는지요?
그렇습니다. 바로 예수그리스도의 모습과 오버랩이 됩니다.
이 암소가 제물로 선택되어 벧세메스로 향할 때 순한 양같이 반항도 하지 못했던 것처럼 주님도 한마디 변명도 없이 골고다로 끌려갔습니다.“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사53:7)
암소가 금독종과 금쥐를 지고 벧세메스에 도착한 것처럼 우리예수님도 우리의 모든 죄와 허물과 저주를 짊어지기 위해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에 도착합니다.
이 모습을 사53:4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그래서 우리가 주님을 제대로 만나면 우리 병도, 슬픔도, 허물도, 죄악도 사라지고, 마음에 평화와 기쁨을 누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암소들이 모든 재앙의 수레를 벧세메스로 끌고 와서 마지막 자신의 몸을 태워 하나님께 번제로 드려진 것처럼, 우리주님도 당신이 지고 온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우리를 대신해 십자가 위에서 하나님께 번제로 드려졌습니다.
십자가에서 마지막 물과 피 한 방울까지 아낌없이 번제로 드려졌습니다.
롬5:8절 말씀입니다.“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이 암소로 말미암아 블레셋사람들이 모든 저주와 재앙에서 해방되었듯이 우리도 모든 죄와 허물과 저주와 사망에서 구원받고, 가난과 질병에서 해방되었습니다.
블레셋의 재앙과 저주를 짊어졌던 저 암소는 우리의 죄와 허물을 짊어지셨던 주님의 예표였던 것입니다. 엡1:7절에“우리가 그리스도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사함을 받았으니”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소들이 수레를 끌고 향하던 곳이 어디입니까? 벧세메스입니다.
법궤는 원래 실로에 있었기 때문에 실로로 가는 것이 맞지만 실로로 가지 않고 벧세메스로 갑니다. 왜 그곳으로 갔을까요? 여기에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실로는 사마리아 땅이고 벧세메스는 다윗의 땅인 유대에 속했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사마리아는 왕국이 분열된 이후부터 우상을 섬기고, 하나님말씀에 적극적으로 대적하며 이방인보다 더 악하게 신앙생활 하다 결국 주전722년에 멸망하고 맙니다.
하나님은 타락하고 변질될 사마리아로 가지 않고 셈족속 이래로 아브라함과 다윗의 계보를 따라 믿음과 신앙을 지킨 예배공동체, 남쪽 유다를 택했던 것입니다.
시78:60절에“사람가운데 세우신 장막 곧 실로의 성막을 떠나시고”이렇게 말씀하시는데 타락하고 변질될 그 땅에 하나님이 더 이상 거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북쪽 사마리아도 시작은 남쪽과 같았지만 처음부터 왕을 잘못만나 하나님나라공동체에서 멀어지고, 백성들도 화를 당합니다. 이걸 통해 국가나 교회나 가정이나 지도자 잘 만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깨닫게 해줍니다.
여러분!!!이렇게 하나님임재의 상징인 법궤가 벧세메스에 도착해 50년 이상 머물다 기랏여아림 아비나답 집으로 옮겨져 20년 정도 머뭅니다. 다시 오벧에돔 집으로 옮겨져 3개월 정도 머물다 다윗에 의해 다윗 성으로 옮겨졌는데 전부 유다지파다윗의 영토 안이고, 그 이후 법궤는 단 한 번도 유다지파를 떠나지 않습니다.
이건 하나님영광이 사마리아를 떠나 유다로 촛대를 옮기신 것을 의미하는데 신앙이 변질되지 않고 끝까지 믿음 지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해주는 말씀입니다.
주님이 변질된 에베소교회에 하신 말씀입니다.“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사랑을 버렸느니라.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계2:4-5)
여러분!!!우리 신앙이 실로와 같으면 안됩니다. 자주 자신을 돌아보고 첫사랑이 식었는지, 믿음이 식었는지 점검해가면서 하나님께 믿음을 예쁘게 세워가야 합니다.
그리고 법궤가 벧세메스로 돌아온 두 번째 이유가 있는데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성취하기 위함입니다. 창49:10절에“홀이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치리자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시기를 실로(장차오실메시야)가 오시기까지 미치리니 그에게 모든 백성이 복종하리로다.”아멘.
하나님이 지금까지 말씀하신 것들은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고 이루셨습니다.
합2:3절 말씀에“이 묵시는 정한 때가 있나니 그 종말이 속히 이르겠고 결코 거짓되지 아니하리라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정녕 응하리라”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타락할 사마리아를 떠나기 위해 스스로 포로가 되셨고, 스스로 유대 땅으로 돌아오신 것도 말씀의 성취를 위함이셨습니다.
이걸 통해서도 두려울 정도로 말씀을 성취해 가시는 우리하나님을 보게 됩니다.
이렇게 오신 메시야는 우리의 모든 죄와 허물과 사망과 재앙과 저주, 질병과 실패와 근심걱정 염려까지 모두 짊어지시고 골고다에 오르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이 사실을 믿기만 하면 우리 안에 이 말씀이 그대로 성취되어 기쁨을 누리게 됩니다. 우리대신 주님이 모든 죄를 감당했다는 것을 믿고 신앙에 자유를 누리면서 날마다 행복한 신앙생활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