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과 계산능력이 출중한 캐서린 존슨, 뛰어난 슈퍼바이저이자 컴퓨터 프로그래머인 도로시 본, 흑인여성 최초의 NASA 엔지니어인 메리 잭슨. 짐작하겠지만 이들은 모두 흑인과 여성이라는 두가지 공통점을 지니고 있었다. 또 하나의 공통점이라면 각자가 지닌 뛰어난 능력으로 인해 과학기술 두뇌들의 집합체라 할만한 NASA(미국항공우주국)에 속해 있었다는 점이다.
1957년에 소련이 세계최초의 인공위성인 스푸트니크 1호를 쏘아 올리자 이에 충격을 받은 미국은 우주개발계획에 뒤처지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넘어서겠다는 의지로 우주와 항공에 관한 전문기관인 NASA를 설립하고 본격 우주경쟁에 뛰어들게 된다. 그러나 이미 소련이 한발 앞서 우주계획을 시작했고 급기야는 1961년에 유리 가가린이 탑승한 세계 최초의 유인 우주선을 지구밖 궤도비행에 성공시킴으로써 미국은 자존심의 상처를 다시 한번 입게 된다. 근 1년 후에야 존 글렌이 탑승한 궤도 비행의 성공으로 소련을 가까스로 따라 잡은 미국은 절치부심(!)의 세월을 거쳐 1969년 닐 암스트롱 외 2인이 탑승한 유인 우주선 아폴로 11호가 달에 착륙함으로써 우주개발에 있어서 역전(!)의 시기를 맞이하게 된다.
영화 [히든 피겨스(Hidden Figures)]는 위에 언급한 세명의 흑인여성이 유인 우주선 계획의 일환인 머큐리 계획이라고 불리우는, 존 글렌이 탑승했던 프렌드쉽7호가 발사 성공한 1960년대초의 시기에 NASA에서 활약했던 내용을 다루고 있다. 영화의 초반부에 세 여성이 NASA로 출근하면서 자동차 고장으로 인해 경찰의 조사를 넘어서 호위를 받는 장면에서 ‘기적’이 일어났다고 얘기하는 것은 이 영화가 보여주는 유쾌함의 시작이다. 실제로 존재했던 이 여성들의 실화에다 원작을 바탕으로 이 영화가 만들어진 것이지만 그 실제 에피소드들은 좀 더 긴 기간에 걸쳐 일어났을 것이다. 그러나 영화는 함축적으로 그 변곡점이 될만한 주요 사건들을 짧은 시간에 담아 관객들에게 유쾌함과 짜릿함을 선사한다.
이 세명이 보여주는 주요 사건들은 사소해 보이면서도 엄청 중요한 사건들이었다. 이를 테면 캐서린 존슨은 수학계산능력이 뛰어나 인간 전산원(Human Computer)으로 활약을 하지만 흑인여성화장실(Colored Ladies Room)이 사무공간에서 800m 떨어져 있음으로 인해 볼일을 볼때마다 계산자료를 들고 책상과 화장실을 오가는 강행군(?)을 펼친다. 그 사정을 알게 된 본부장(케빈 코스트너가 역할을 맡은)이 망치로 흑인여성화장실의 간판을 때려 부수는 장면은 통쾌하다. 또한 관리자인 슈퍼바이저 역할을 실질적으로 맡고 있었음에도 공식직책을 받지 못하고 있던 도로시 본은 NASA에서 막 도입되기 시작한 IBM 컴퓨터를 능숙하게 조작하고 심지어는 포트란(FORTRAN: 과학기술계산에 최적화된 컴퓨터 프로그래밍 언어)까지 배우고 교육하게 됨으로써 전산 시스템 구축에 주요 역할을 맡게 된다. 메리 잭슨은 뛰어난 엔지니어임에도 NASA에서 정식 엔지니어를 맡지 못하고 있었는데 이는 백인들만 졸업이 가능한 학교의 스펙을 요구하는 바람에 법원에 제소하여 학력까지 취득하고 그녀가 바라는 엔지니어의 자리를 결국 얻게 된다.
이 영화의 악덕(?)은 노예해방 이후 흑인들 그중에서도 특히 이중고라 할만한 처지인 여성들이 겪어왔던 지난한 인고의 시절은 생략했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의 미덕은 이런 변화의 에피소드를 자연스럽지만 중요한 사건으로 기억되도록 묘사했다는 점이다.
지금도 적지 않게 남아있는 인종차별의 벽 앞에서, 1960년대 초반의 상황을 파악하기란 미국인이 아니라도 어렵지 않을 것이다. 그 차별은 버스좌석의 구분, 화장실의 구분, 음료식수대의 구분, 학교입학의 구분같은 일상생활과 제도의 여러 요소에서 인종차별은 합법적으로(!) 존재하고 있었고 1863년 링컨 대통령이 노예해방 선언을 한 이후로도 오랜 기간 남아서 당시 흑인들에게 크나큰 벽으로 존재했다. 다행스럽게도 마틴 루터 킹이라는 희대의 인물이 1960년대 초반에 본격적인 인종차별 철폐운동의 리더로 활동함으로써 미국은 큰 변화의 시점에 서게 되었다.
영화는 이런 대외적인 변화의 내용을 다루지는 않았지만 인종차별 철페운동이 본격화된 이런 시점이었기에 그 변화가 좀 더 현실적으로 이루어졌을 것이다. NASA의 본부장 역할을 한 케빈 코스트너가 화장실 간판을 부수면서 더 이상 백인화장실도, 흑인화장실도 없고 같은 색깔의 화장실만 있을 뿐이라고 하는 장면은 점진적인 제도 개선을 넘어 리더의 결단이 종종 큰 역할을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사실 세계 최고의 지능집단이라고 할만한 조직의 하나인 NASA이지만 과학적 사고와 과학기술 지능은 조금은 다른 궤에 있다는 것을 몇몇 관객은 인지할 수 있을 것이다. 복잡한 인수분해와 고난이도의 미적분과 소수점 수십자리까지의 세밀한 계산에 능한 백인남자 연구원이라 하더라도 수백미터 떨어진 화장실을 왕래해야 하는 전산원의 고충과 흑백이 분리된 커피포트의 사용으로 나타나는 차별의식이 주는 비효율성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는 일부 기능에 뛰어난 계산원일지언정 과학적 보편적 사고의 소유자로서는 아직 미달인 셈이다. 이것은 개인 혼자만의 문제는 물론 아니다. 과학기술의 지식이나 지능보다 과학적 보편적 사고의 지혜를 알려주는 환경은 그 사회의 문명수준의 역량에 달린 것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과학기술이 주는 기능주의의 장점을 이해하면서도 기능주의의 한계를 넘어 진정한 과학적 보편적 사고를 지향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인종차별의 철폐가 이루어지는 에피소드가 곳곳에 들어있음으로써 영화는 상당한 통쾌함을 던져 주기는 하지만 성차별이라는 입장에서는 미국이나 한국이나 여전히 그 과제도 작지 않음을 느낄 수 있다. 능력으로 주로 평가받는 NASA라 하더라도 상급관리자들은 대부분 남자들이고 여자들은 종속변수에 머물러 있는 경우가 많아 보인다. 아마 현재는 예전과는 많이 변했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그 벽은 높다고 여겨진다. 미국 안에서도 그럴진대 한국에서 이 영화를 보는 입장은 그 점은 더욱 크게 다가온다. 가장 크게 느끼는 부분들은 이 흑인여성들이 여러명의 아이를 키우는 워킹 맘이라는 점이고 심지어는 남편과 사별한 상황에서도 치열한 업무의 공간인 NASA에서 여전히 일할 수 있다는 점은 한국에서 볼 때 상대적으로 부러운 점이라 할 만 하다. 워킹 맘을 위한 수유공간이나 휴게시설 혹은 마음놓고 저렴한 비용으로 업무시간에 맡길 수 있는 어린이집을 선택하기도 어려운 환경이 태반인 한국에서 1960년대 초반의 저런 모습은 지역과 문명이 다르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살펴봐야 할 부분이 무언가를 성찰하게 만든다.
[히든 피겨스]는 머큐리 계획 시대를 전후로 뛰어난 흑인여성 세명을 중심으로 고군분투하는 변곡점의 에피소드의 사례를 함축적이면서도 진솔하고 감동적으로 다루지만, 이 내용을 바깥쪽의 입장에서 보자면 서서히 과학기술적인 발전이 이루어지는 시점에서 케네디같은 대통령의 결단에 의해 아폴로 계획같은 거대한 프로젝트가 과학기술의 발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혹은 정치사회적으로 어떤 영향을 돌이켜 주는지를 살펴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다.
또한 여담에 가까운 것이지만 더 깊이 들어가 본다면 우주연구나 개발계획같은 중대한 사안을, 예전처럼 국가간의 경쟁도구로만 쓰이도록 하는 것이 현재의 지구화 시대에 온당한 것인지 혹은 NASA같은 거대조직이 한 국가의 이기적인(?) 도구로만 여전히 쓰이는 불편함과 더불어 보편적인 지구 발전의 도구로 진화(!)시킬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지에 대해 살펴보는 것도 어쩌면 중요하고 생산적인 한 성찰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첫댓글 저도 이 영화 보고 그 당시 흑인여성의 인권이 이정도였는지 적잖이 충격을 받았어요 ㅠㅠ 정말 이세상에는거저 얻어지는게 하나도 없구나 다시한번 상기했더랬죠. 이 영화는 인종문제를 다루고 있는 다른 작품들과 달리 유쾌하고 통쾌하기도 해서 즐겁게 보았어요. 주연 배우들 뿐 아니라 조연들도 연기도 좋고 마지막 쿠키 영상까지 충분히 감동스러운 영화입니다.
그리고 수학이 이렇게 멋지게 쓰인 작품을 만난 것은 실로 오랜만이네요. 수학이 저렇게 중요한데 기초과학이 약한 우리 사회 분위기를 되돌아보게 되더군요...
이들이 없었다면 변곡점의 시기는 훨씬 늦춰졋겠죠.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시기와 지금의 시기, 미국과 다른 나라를 비교해서 어떤 것이 변하고 어떤 것이 여전히 변해야 하는 부분들이 있는지 혹은 더 나아가 미국보다 한국이 많은 부분이 못하다고 인정되지만 더 잘 난 부분들은 없는지 자세히 살펴보는 것도 흥미로울것 같습니다^^
보편적 사고의 중요성.......... 멋진 생각입니다.
보편이라는 말에는 편견을 배제한다는 말이 전제되어 있지만
더 근본적으로는 타인의 생각을 수용하고 이해하려는 것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나는 이러한 보편적 사고의 배경, 그리고 인류가 형성해 온 모든 도덕의 기준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는 관습과 법적인 제한의 모든 배면에는
칸트의 정언명령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네 행위의 준칙이 타인에게도 적용되도록 하라....
네가 타인에게 하려는 행위가, 그가 너에게 하려는 행위여도 좋은가 생각하라는 것....
한 마디로 잘라 말하면, 입장 바꿔서 생각해라...... 그거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