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선대원군의 둘째 아들로 고종이 왕이 된 것은 아니구요.
고종은 효명세자와 그의 부인이었던 신정왕후 조대비의 양자가 되고,
12세에 왕이 됩니다.
이렇게 되면, 살아 있는 조대비가 수렴청정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조대비는 복잡다기한 수많은 문제를 원만하게 해결할 능력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살아 있는 대원군, 흥선대원군이 자연히 권력을 잡게 됩니다.
흥선대원군은 궁궐과 아주 가까운 거리에 있었던 운현궁에 거주하면서,
날마다 궁궐로 출퇴근을 합니다.
그리고 대원군은 "대원위 합하"라는 존칭으로 불립니다.
이 당시 흥선대원군의 정확한 자격은 왕의 아래에 있는 신하였습니다.
하지만 살아 있는 흥선대원군은 '왕'의 위에 있는 듯한 모습으로 비춰지기도 합니다.
왕은 어리고, 그의 양어머니 신정왕후 조대비는 정치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흥선대원군은 자신의 개혁정치를 마음껏 펼수 있었다고 생각됩니다.
여기까지가 흥선대원군을 긍정적으로 볼 수 있는 측면이 아닐까 생각되구요.
이후 흥선대원군의 지나친 정치 개입이나 권력욕은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고 생각됩니다.
역사저널 그날 - 흥선대원군, 왕‘위’에 오르다.; 3.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