達昌貯水池
1967년에 경상남·북도에 걸쳐 만든 대구광역시에서 제일 큰 저수지다.
명은 경북 달성군의 [達]과 경남 창녕군의 [昌]을 포합하여 지었다.
경기도 양평군(楊根郡,砥平郡)과 비슷한 사례다.즉, 兩個字다.
대구의 관광 명소 중 하나로 뽑히며 벚꽃 개화기에는 풍경이 아름답다.
창녕 성산면 後川 서쪽에 있는 큰 규모의 저수지로 1967년 8월에 축조 되었다.
그 당시 반대 시위가 수 개월간 있었다. 해당 지역은 창녕군과 경북 달성군 땅이 부지로 들어간 곳으로
양 군의 이름을 따서 달창이라 하였다.
대견의 원들, 대합면의 들과 달성군 똑으로는 구지면 일대의 들에 관개(灌漑)한다.
달창저수지의 조성으로 인하여 수몰된 마을이 경남 1개 마을, 경북 2개 마을이었는데
그 당시 반대 시위가 수 개월간 있었다.
尼東齋
대구 달성군 유가읍 달창로 439-7
대구 달성군 유가읍 본말리 635
갈산지가 보이고 그 좌측 약간 아래부터 달창로까지 자리잡은 서흥김씨 묘지군도 보인다.
後川
냉천의 북쪽에 있는 마을로 후천리에는 자연마을이 단 한마을 뿐이다.
예전에는 곽천이라 하였는데 전천(前川)으로 불리다가 후천으로 되었다 한다.
53호가 살며 서흥 김씨가 살았다고 하며 현재는 창녕 성씨가 많다.
하천으로서의 後川=藿川은 本末지=안삼저수지를 통과하여
경상도를 둘로 나누는 경계를 흘러 달창저수지에 도달한 후 車川을 따라 洛東江에 합류한다.
도로명주소는 곽천길에 해당하고 달창로 끝과 접한다.
냉천리의 북쪽, 방응산 아래 낮은 평지에 자리잡았으며 대구 달성 유가읍 본말리와 도랑을 사이에 두고 붙어 있다.
예전에는 곽천(藿川)이라 하였는데, 뒤에 전천(前川)으로 불리다가 후천(後川)이 되었다.
동리 앞에 있는 달창저수지 물은 대견을 지나 북으로 흘러 낙동강으로 유입되는데,
저수지 아래의 내명은 차천(車川)이다.
연암서원(燕巖書院)이 있었던 마을로, 지금도 부용정(芙蓉亭)이 남쪽 끝에 있어
금헌 이장곤, 부용당 성안의 등 선현들의 발자취가 력력한 곳이다.
행정리로는 후천 1개가 있다.
後川里
대부분의 지역이 평지로 이루어져 있는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다. 마을 남쪽으로 운봉천이 흐르고 있으며, 서쪽에는 달창댐이 위치하고 있다. 비교적 비옥한 토지로 지대가 구성되어 있다. 자연마을로는 후천, 서원 마을이 있다. 후천 마을은 마을 뒤로 내가 흘러 곽천 마을이라 불리다가 후에 후천이라 개칭되었으며, 서원 마을은 서원 터가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서원은 바로 燕巖書院. 1695년(숙종 21)에 지방유림의 공의로 이승언(李承彦)·이장곤(李長坤)·성안의(成安義)의 덕행과 학문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선현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 오던 중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1868년(고종 5)에 훼철되어 복원하지 못하였다. 다만 성안의의 정자(亭子)인 부용정(芙蓉亭)에서 성안의의 문인들이 뜻을 모아 매년 봄·가을에 향사를 지내고 있으며, 서원터에는 유허비(遺墟碑)만 남아 있다.
後川藿川
(藿川/곽천, 후천) 부용정 근처에 옛날 깊은 沼(소)가 있어 미역과 조개가 났다고 하여 곽천이라 하며,
후에 앞뒤에 내가 흐르므로 前川(전천)이라 했다가
또 내 앞에는 成氏(창녕성씨)가 내 뒤에서 金氏(서흥김씨)가 살아
成氏(성씨)의 세도가 높아 洞名(동명)을 후천이라 했다는 설이 있다.
本末池
지도상 안삼저수지
後川=藿川의 동북쪽에 있는 저수지로 경남, 북의 경계에 몰려있는 저수지이다.
대산리로 가는 길북쪽 계곡에 있는데 본말은 後川의 북쪽에 경북 달성군의 본말이라는 마을 이름이다.
도 경계가 저수지 복판을 지난다. 藿川은 마을을 가로질러 달창저수지로 흐른다.
藿川
부용정 근처에 옛날에는 깊은 소(沼)가 있어 물이 깊었다 한다.
이곳에 큰 바위가 있어 이 근처를 미역 바우라 부른다. 이 바위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있다.
이 동리에 효자가 살았는데 그 부모가 "미역국을 먹었으면 좋겠다. 조기를 구워 먹었으면 원도 한도 없겠다."
하는 말을 듣고 그 효자가 이 바위에 와서 기도를 하였더니
바닷물에서 나는 미역이 신기하게도 민물인 이 바위에 있었고, 또 바다에서 잡히는 조기도 얻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후세의 사람들이 미역바우라 부르는 것인데 이 미역바우는 달창저수지의 담수로 물에 잠겨 버렸다.
미역바우, 곽암이 있는 내라하여 내 이름도 미역내, 곽천으로 부르던 것이 마을 이름이 되고 또
서흥 김씨가 먼저 이곳에 와서 살게 되었는데 이 미역내의 앞에 동리가 있다 하여 前川이라 마을이름을 개칭하였다.
그 후 성씨들이 또 와서 살게 되면서 그들은 내 뒤에 동리가 있다 하였던 고로 後川이라 부르니
그 이후부터 동명이 후천이 되었다 한다.
부용정(芙蓉亭) 외에 곽천정(藿川亭 : 成安仁 休憩所), 재천재(在川齋 : 金海金氏 奉先所)가 있다.
의령에서 출발한 차가 의령→용덕→죽전→정곡→석곡→오방→세간→신반→적교→내동→伊方里(昌寧.大合面를 말함. 昌寧.梨房面와 다른 곳)→대암→갈미실→모정→구지→대동→차천→현풍→서대구 를 경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