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교는 주로 남성의 문제이지만 임신은 오로지 여성만의 문제다.
어린 아이는 아버지에게서
의지와 성격을 이어받고,
어머니에게서는 지성을
이어받는다.
지성은 구제의 원리이며
의지는 속박의 원리이다.
(......)
임신은 살려는 의지가 인간의 형태를 취하는
것이기 때문에 자유 자재로 오히려 위기양양하게 걸어다니는 데 비하여 성교는 범죄자처럼 살금살금 걸어간다.
---쇼펜하우어,
[살려는 의지와 긍정과
부정에 대하여]에서
성교는 더없이 아름답고 거룩하고 신성한
것이다.
하지만 왜,
우리 인간들은 이
아름답고 거룩하고 신성한 인륜지대사人倫之大事를 더럽고 추하고 불결한 행위로 죄악시 해왔던
것일까?
아마도 그것은 인간의
소유욕과 난교亂交로 인한 종의 혼잡을 피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일부일처제는 사랑에 대한
인간의 소유욕의 산물이며,‘나의 성교는 아름다운
것이고,
너의 성교는 더러운
것이다’라는 적대감이 그 소유욕에는 각인되어 있는
것이다.
인간이 아닌 다른 짐승들은 혈통을 따지지
않지만,
우리 인간들은 지나치게
순혈주의를 고집하면서,
그 순혈주의를 통해서
민족주의를 확립하고 가부장적인 서열제도를 구축하게 된다.
성교와 임신은 남성과 여성의 가장 중요한
문제이다.
어린 아이가 아버지의
의지와 성격을 이어받고 어머니에게서 지성을 물려받는 것도 아니다.
어떤 것은
아버지를,
어떤 것은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지만 그것은 유전적인 편차가 매우 크다고 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쇼펜하우어는 너무나도 자의적으로 남성과 여성의
문제를 이분법적으로 도식화시켜 놓은 것 같다.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라는 말도 있고,
‘씨 도둑질은 하지
못한다’라는 말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