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동북지방에서도 <억고회憶苦會>
라 하여 2차대전 중 일제의 수탈로
굶주렸던 시절을 상기하는 각종 회억回憶
행사를 갖는데, 그 중 날감자 하나만 먹고
하루를 굶는 모임이 있다고 한다.
고통받았던 시절을 상기하는 데 감자가
빈도 높게 이용되었던 것은, 바로 인류가
감자없이 극한상황을 살아낼 수 없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 된다.
18세기 전반의 독일은 해마다 흉년이
들어 유랑민이 급증하고 있었다.
당시 감자는 성서에 나오지 않은 식물이라
하여 먹으면 독이 있어 죽느니, 문둥병에
걸리느니 하여 거들떠 보지도 않았었다.
프리드리히 대왕은 독일을 구하는 길은
감자 밖에 없다고 판단, 스스로 대중 앞에
나서서 감자를 먹어보임으로써 죽지도
않고 문둥병에 걸리지 않음을 입증하기까지 했다.
그리하여 대기근을 감자로 극복했다.
그 흉년이 18세기 후반에 프랑스를
엄습했다.
이에 루이 16세는 농학자 파르망테의
감자 구국론에 힘입어 스스로 양복단추에
감자꽃을 꽂고 있다 다니는가 하면 왕비의
머리에 감자꽃을 꽂고 다니게 하는 등
역시 감자 구국을 하고 있다.
1백만명이 죽고 1백50만명이 고국을
떠났던 1845년 전후의 아일랜드 대기근도
감자가 구했음은 역사의 상식이 되고 있다.
우리나라 감자는 순조 32년(1832) 영국
상선을 타고 온 선교사가 충청도 고대도에
심어놓고 간 것이 남저南藷의 시작이요,
그보다 수년 앞서 무산에 사는 이형재라는
이가 국경지방에서 청나라 삼캐는 사람들
이 가꾸어 먹고있는 감자씨를 얻어 강원도
지방에 퍼뜨린 것이 북저北藷의 시작이다.
3~5년 만에 닥치는 흉년에 민족이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감자 덕분이며
그래서 김윤식 같은 이는 감자를 괄시하는
일은 바로 국망國亡 처사라 했다.
ㅡ 이규태 칼럼
감자씨 감사합니다.
감자가 인간에게 이렇게도 고마운 식물이란 것을 예전엔 미쳐 몰랐어요.
강원도 감자가 최고래요~~
감자가 얼마나 대우를 받았으면
동요 중에 아이들이 놀이 할 때
감자에 싹이 나서 ~~
감자 ~감자 ~감자 ~라 했을까
첫댓글 예쁜언니가 토욜 맛있는강원도감자 삶아오신댔는데 어찌아시고 이렇게 올려주시네요
강원도감자맛 기대하겠습니다 언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