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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경제 원문보기 글쓴이: 정중규
2012년 07월호 (2012.06.18) [48] |
박근혜 대선가도 최대 적은 자신의 그림자
박성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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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민 비선 라인설,
정수장학회·육영재단 논란,
형제간 불화설 등
걷어내기 위해 잰걸음…
온라인 백과사전 ‘위키피디아’ 검색창에 정치인 ‘박근혜’를 입력하면 관련 자료가 수두룩하다. A4용지로 34쪽분량이나 된다. 특히‘논란과 의혹’ 코너에는 그를 둘러싼 소문과 의혹이 줄을 잇는다. 순서대로 옮겨보면 ▶사생아 존재 여부 ▶전두환 정치자금 6억 수수 ▶성북동 주택 취득 ▶최태민씨와의 관계 ▶최태민씨 비리 옹호 ▶약혼설, 비밀 결혼설 ▶육영재단 운영관련 ▶영남대학교 관련 ▶정수장학회 세금 탈루 ▶5·16에 대한 관점 등이 있다.
위키피디아는 누구나 글을 올릴 수 있는 데다 진행 중이거나 검증되지 않은 사안도 실리는 탓에 백과사전이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을 만큼 정확도는 떨어진다. 그래도 수시로 정보가 오르내리고, 누구나 공짜로 볼 수 있어 그 위상은 날로 높아져 간다. 위키피디아에 오른 박 전 위원장 관련 의혹의 상당수는 지난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과정에서 걸러졌다고 새누리당 관계자들은 설명한다.
그러나‘고(故) 최태민 목사 인맥’, 육영재단을 둘러싼 가족간 갈등과 반목, 정수장학회 처리,박 전 위원장의 사생활 등은 이번 대선에서도 쟁점으로 불거질 가능성이 있다. 야당과 여권 내 비박(非朴) 진영은 박전 위원장의 불투명한 사적 영역’을 집중 폭로해 그의독주에 제동을 걸겠다는 심산이다.
새누리당도 박 전 위원장에 대한 음해성 공격은 방어하고, 상대방에게는 예리한 검증의 칼날을 들이대는 네거티브 대응팀 구성을서두른다. 김재원, 김회선, 권영세 등 검찰 출신 전·현직 국회의원들을 중심으로 팀을 꾸리리라는 전망이다.최근 박 전 위원장과 부산저축은행 로비스트 박태규씨와의 유착 의혹을 제기했던 민주통합당 박지원 원내대표에게 그러했듯이 구체적 사실관계를 들어 “허위사실을 유포하는 경우는 즉각적인 사법대응으로 맞선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사실 관계의 거증 없는 ‘독재자의 딸’, ‘수첩공주’, ‘불통’, ‘오만’ 과 같은 인신 공격에는 정치적 대응으로도 충분하다는 게 주류진영의 시각이다. 즉 법적 대응과 정치적 대응을 엄격하게 분리하면서도 병행하는 전략을 구사한다는 것이다. 박 전 위원장 주변에서도 행여 대선 가도의 아킬레스건이 될만한 소재들을 하나 둘씩 정리하려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정윤회는 최태민의 아바타?
서울 여의도 정치권에서 아주 오래된 궁금증 중의 하나는 박 전위원장의 비선(秘線) 조직이 과연 존재하는지 여부다. 이른바 ‘7인회’(박 전 위원장 주변의 원로그룹)와 같은 정치권 인사들, 국회 보좌진, 외부의 자문팀같이 공개된 조직 말고, 뒤에서 그야말로 은밀하게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는 그림자조직 말이다.박 전 위원장이 새누리당을 완벽하게 틀어쥐고, 총선 승리를 거머쥐기까지는 신속하고도 막강한 사조직의 뒷받침이 있었으리라는 추측이 무성하다. 그 실체가 드러난 적은 없지만 정치권에선 이런저런 얘기가 입방아에 오른다.
그 중심에는 고(故) 최태민 목사와 그의 사위 정윤회 씨가 있다. 정윤회 씨는 최 목사의 딸 최순실 씨의 남편이다.1970년대 후반 박정희 대통령의 큰 영애로서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수행할 당시 박 전 위원장과 친분 관계가 두터웠던 것으로 알려진 최목사는 당시는 물론 고인이 된 이후까지 각종 비리 의혹을 양산한 논쟁적 인물이었다. 박 전위원장이 관계한 정수장학회, 육영재단, 영남대 등에는 어김없이 ‘최태민 라인’으로 의심받는 인물들이 어른거렸고, 내부 분규를 불러온 요인이 되곤 했다는 게 세간의 평가다.
심지어 새누리당 비박(非朴) 대선후보 진영의 한 주요 인사는 요즘 떠도는 소문이라며 이렇게 전했다. “서울 강남 삼성동 박 전 위원장 자택에 고(故) 최태민 목사의 사위 정윤회씨가 드나든다고 한다. 헬멧을 쓰고 오토바이로 이동하기에 동네에서도 그를 본 사람이 별로 없다. 또 나갈 때도 삼성동 자택 문이 열리면 오토바이를 타고 빠져 나와 쏜살같이 사라진다.
”정씨의 역할을 두고 떠도는 이런저런 소문들이 한자락이라도 사실로 밝혀지면 과거 박 전위원장과 최목사와의 관계가 다시 도마 위에 오르고, 이는 비선 정치’논란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런 까닭에 정씨는 “철저하고도 은밀하게 움직이며, 취재진을 따돌리고자 일부러 오토바이로 이동한다는 얘기가 그럴싸하게 나돈다”고 그 인사는 덧붙였다. 마치 추리 소설의 한 토막 같지만 정씨를 박 전 위원장과 최 목사 라인의 연결 고리로 의심하는 뿌리가 대단히깊다는 건 분명해 보인다.
정윤회 씨는 박 전 위원장이 1998년 대구 달성 보궐선거를 통해 국회에 첫발을 내디딜 즈음부터 2004년 3월 국회 입법보조원 등록을 취소할 때까지 정치적 최측근으로 통했다.정씨는 박 전 위원장 주변에서 ‘2004년 총선을 앞두고 한나라당 대표직에 오른 박전 위원장에게 누가 될까 봐 알아서 떠난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 정씨인 만큼 2007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도 단연 뉴스의 초점으로 떠올랐다. 당시 이명박 후보 측은 정씨를 지목,이른바 논현동 팀을 이끄는 배후 실세”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나아가 정씨를 비롯해 최 목사의 친·인척이 박 전 위원장 관련 조직에 어김없이 관여했다는 의혹도 제기했다. 이때를 즈음해 정씨는 정치권에서 행적이 묘연해졌다.
정씨 부부의 마지막 흔적은 변동된 재산 내역에만 남아 있다. 부인 최순실 씨는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당시 차명재산 의혹을 샀던 강남 신사동 빌딩 두 채 중 한 채를 지난 2008년 1월 10일 동부상호저축은행에 매각했다. 이때가 이명박 대통령 취임직전이다. 그런 정씨가 다시, 아니 지금도 박 전 위원장 주변에서 활동한 다는 게 가능할까?
박 전 위원장 측은 정씨의 역할론을 한마디로 일축한다. 박 전위원장의 한 측근 인사는 공식 입장임을 전제로, “(박 전 위원과) 정씨가 연락이 되고, 조금이라도 그런 관계에 있으면 모르겠으되 전혀 있을 수 없는 상황을 전제로 엉뚱한 말이 나돈다”며 부인했다. 오토바이를 타고 이동한다거나, 삼성동 자택 집사라는 소문도“100% 엉터리”라는 것이다.
하지만 새누리당 안에서도 이런 입장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않는 이들이 있다. 이를 테면 정씨가 박 전 위원장에게 누가 될까봐 알아서 자발적으로 떠난 사람이니, 외부에서 도움을 주지 못할 이유도 없다는 말도 그중 하나다. 그들 말대로 만약 그가 2선에서 은밀하게 박 전 위원장을 접촉하거나 보좌한다면 그걸 알 만한 사람은 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박 전 위원장은 정윤회 필요로 하지않아”
정씨는 현재 국내에 있다고 알려져 있다.여의도 정치권은 물론심지어 친박계 주변에서도 그와 관련한 소문은 유령처럼 떠돈다.그러나 그 소문은 아직까지는 한 번도 사실로 확인된 적이 없다. 정치컨설턴트인 황태순 위즈덤센터 수석연구위원은 박 전 위원장의 정치 스타일이 “그런 소문을 불러오는 데 일조한다”고 말했다.
황 수석연구위원은 “박 전 위원장이 당 중진 등 공식 라인의 사람들과는 그다지 깊은 대화가 없는 듯 한데 적재적소에 의사결정을 내려왔다. 그래서 어떤 형태로든 ‘비선 조직’의 보좌를 받는다는 인식을 당내에 심어주고 있다”는 분석이다. “최근 총선 승리까지 박 전 위원장은 선거 때마다 거의 불패의 신화를 이어왔다. 박 전 위원장 개인의 능력이 출중하거나, 비선 라인이 탁월하거나 둘 중의 하나다.
그래서 정윤회 씨와 같은 비선라인이 계속 회자되는 것이다.”또 일부에서는 박 전 위원장의 용인술이 그런 소문의 진원지라는 지적도 한다. 박 전 위원장이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은 “신뢰할 수 있는가” “진취적인가” 등 크게 두 가지라고 그를 잘 아는 이들은 말한다. 그 중에서도 “신뢰할 수 있는가”를 더 중요하게 여긴다고 한다. 박 전 위원장의 한 측근인사는“박 전 위원장은 인생 역정에서 신뢰의 가치를 누구보다 뼈저리게 절감했고, 지향하는 정치 또한 신뢰에 방점을 둔다”고 밝혔다.
결국 박 전 위원장이 마음을 여는 상대는 오랜 기간 같이 했던 사람들, 믿음을 준 사람들이다. 그래서 사정을 좀 아는 정치권 인사들은 정윤회-최순실 부부가 그에 해당한다고 본다. 중요한 사실은 1970년대 말 박 전 위원장이 최태민 목사와 구국여성봉사단 활동 등을 매개로 한 때 긴밀한 협력관계에 있었다는 점이다. 정씨는 그런 최씨의 사위이며, 박 전 위원장의 대구 달성 보선을 지척에서 도운 첫 정치 참모였다.
그래서인지 현 정부 고위직을 지낸 정치권 인사는 “대선이라는 중요하고 결정적인 길목에서 정씨가 아무런 역할을 안 한다고 볼 수겠는가”라고 오히려 반문했다. 정치의 생리상 정씨가 박 전위원장 의 대선 과정에 어떤 식으로든 관여하리라고 짐작하는 시각이다.
박 전 위원장의 참모들과 정씨와의 관계에서도 그런 추론이 나올 법 하다. 박 전 위원장의 국회 보좌진 중 4급 보좌관, 5급 비서관, 일부 비서 등은 1998년 첫 국회 입문 시점부터 같이 일해온 초창기 멤버들이다. 당시 정씨는 신분이 입법보조원이었지만 호칭은 처음부터 ‘정 실장’으로 통했다. 박 전 위원장 국회 보좌진의 좌장 역할을 했었다는 얘기다. 정씨의 존재감은 바로 이들 국회 보좌진에서 나온다는 말도 있다.
정씨는 과연 어떤 인물일까? 2000년대 중반까지 그를 접해 본 이들이 그를 기억하는 내용은 제각각이다. 국회 쪽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해보면 당시 그는 “정치권의 돌아가는 사정에 비교적 밝았다”는 평가가 많은 편이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박 전위원장은 일개 의원에 지나지 않았고, 국회 의원회관 직원들은 외부와의 교류가 활발한 편도 아니었다.그럼에도 정씨는 당내 주요 인사들의 동향에 훤했다고 한다. 그 시절 국회에서 정씨와 교류했던 한 인사는 “정씨가 정보를 어떻게수집하는지는 몰라도 별의 별 걸 다 아는 듯 했다”고 돌이켰다.
반면 그가 “전략통의 이미지를 풍기진 않았다”고 되새기는 인사도 있다. 정씨가 박 전 위원장의 복심(腹心)이라기 보다는 차라리 전방위 활동형 참모에 가깝게 느껴졌다는 말이다. 그래서 경호와 같은 박전 위원장 신변 안전을 관리하고, 일정을 챙겨주는 역할에 더 잘 어울리는 것 같았다고도 말했다.
박 전 위원장 주변에서는 정씨는 최태민씨와 동의어처럼 곧잘 얘기된다. 그가 박 전 위원장주변에 다시 나타난다면 사람들은 자연스레 ‘박 전 위원장- 최태민 목사 관계’를 떠올릴 수 밖에 없다. 야당은 이를 정치 공세의 소재로 활용하려 들게 뻔하다. 예컨대 박 전 위원장의 ‘비선 정치’ 위험성을 제기하는 식을 말한다. 당장 MB정부의 민간인 불법 사찰도 정부기관인 공직윤리지원관실을 특정인사들로 채워 사조직화화는 바람에 폐해가 더 컸다는 지적이고 보면 그럴 개연성은 충분히 있다.
이와 관련해 박 전 위원장의 법률 문제를 자문해온 새누리당 김재원 의원은 “친박계 내부에서 정씨는 전혀 언급될 필요가 없는사람”이라고 선을 긋고 나섰다. 2007년 박근혜 대선 후보 캠프 대변인과 경선 룰 협상을 담당한 측근이기도 한 그는 “그 문제는 내가 확실하게 얘기할 수 있다”고 말문을 열었다.
“2004년 박 전 위원장이 한나라당 대표가 되면서 정윤회 씨의 보좌를 더 이상 받지 않게 됐고, 연락도 하지 않아 자연스럽게 정리됐다. 지금도 그런 소문이 나돈다면 반대 진영에서 박 전 위원장의 정치력과 판단력을 평가 절하하려는 불순한 의도에서 퍼뜨리는 것”이라고 ‘음모론’을 제기했다.
그는 또 박 전 위원장이 “친박계 내 최고의 전략가이자, 정무적 판단도 탁월하다”고 말한다. 말하자면 박 전 위원장은 정씨와 같은 외부의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내가 볼 때 박 전 위원장은 전략적 판단에서 좀처럼 실수하는 일이 거의 없다. 그는 어떤 사안을 판단할 때 정치적 함수를 따지기 보다는 그게 나라를 위해 옳은 일인지 아닌지를 따지는 스타일이다. 개인의 정치적 유·불리를 떠나 국가 공동체와 애국심을 앞세워 판단하기에 처음엔 불리하던 여론도 시간이 지나면 유리하게 돌아서는 경우가 많다.”
박근령과 신동욱, 꼬일대로 꼬인 집안 관계
박 전 위원장은 가족 문제도 골칫거리인 것만은 틀림없다. 대부분 두 동생들과 관련된 문제들이다. 당장 남동생인 박지만 EG 회장은 이미 문제가 된 삼화저축은행 신삼길 명예회장과 친분이 있고,부인 서향희 변호사는 이곳의 고문변호사를 지냈다. 야권은 이를근거로 박 회장 부부가 저축은행 구명 로비에 연루됐다고 의심한다.
서향희 변호사가 두 달간 일정으로 홍콩 연수를 떠난 것도 혹여앞으로 있을 지 모르는 야권의 네거티브 공세에 맞선 선제적 대응이라는 해석까지 나올 지경이다. 박지원 민주당 원내대표는 서 변호사의 연수 결정과 관련해“박 전위원장이 이제 주변정리를 준비하는것 같다”고 언급했던것이 그 예다.
박 전 위원장이 박 회장 부부와 긴밀하게 소통하는 관계라면 여동생 근령씨는 통제권 밖에 있다. 육영재단 파동이 있던 2008년 이래 박 전 위원장과 근령씨는 지속적으로 크고 작은 갈등을 빚었다.게다가 근령씨 남편 신동욱 전 백석문화대 교수가 박지만 회장을 비방한 혐의로 2011년 8월 구속되는 바람에 둘 사이는 더 벌어졌다.
거기다 박 전위원장은 지난 해 9월 6일 5촌 조카 둘이 불의에 숨지는 불상사로 적잖은 마음 고생을 하고 있다. 5촌 조카인 박용철(50)씨와 박용수(52) 씨가 그들이다. 박용철 씨는 이날 오전 6시쯤 서울우이동 북한산 국립공원 수유분소 앞 노상주차장에서 얼굴과 몸에 10여 차례 칼에 찔려 사망했다.
또 오전 9시20분쯤에는 박용수 씨가 3㎞ 정도 떨어진 북한산 용암문 인근 등산로에서 나무에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대리운전기사의 진술과 현장에서 확보한 혈흔 등을 토대로 박용수 씨가 금전 문제로 원한을 품고 박용철 씨를 살해한 뒤 자신도 목을 맸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 사건의 파장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박용철 씨가 육영재단 분쟁에서 유발된 재판의 주요 당사자인 까닭이다. 1982년 박근혜 이사장이 이끌던 육영재단은 1990년 12월부터 박근령 이사장 체제로 전환했다. 일명 ‘박근혜-박근령의 난’ 이라고 불릴 정도로 박근혜, 박근령 측 인사들이 격렬하게 충돌한 뒤의 일이다. 하지만 박근령 씨도 2001년 부실경영, 감사 거부 등의 이유로 관할 교육청이 육영재단 이사장 자격을 박탈하는가 하면, 2008년엔 대법원이 이사장직 해임이 정당하다는 판결을 내리기에 이르렀다.
이후 박지만 회장 측 인사들이 육영재단을 물리적으로 접수하고, 이사회를 장악하면서 육영 재단은 또 주인이 바뀌는 처지가 됐다. 이 과정에서 근령씨와 지만씨 양측이 서로 제기한 소송만도 20여 건에 달했다. 근령씨의 남편 신동욱 전 백석문화대 교수가 2011년 8월 박 전 위원장과 박지만 회장의 명예를 훼손하고 무고한 혐의로 구속됐다.
박용철 씨는 구속된 신 전 교수 측 증인으로 법정 증언 20여 일을 앞두고 변을 당했다는 게 신 전 교수측의 설명이다. 신 전 교수 변호를 맡은 조성래 변호사는 “증언을 한다던 박용철씨가 원인을 알 수 없는 이유로 살해당했다”면서 “동생(박용철)은 죽임을 당하고, 형(박용수)은 자살한 걸로 나오는 데 우리는 그 과정을 전혀 몰라 법원에다 이 사건 관련 기록 열람을 신청해두었다”고 밝혔다.
조 변호사는 지난 2002년 노무현 대통령 후보 부산 선대위원장과 17대 국회 열린우리당 비례대표 국회의원을 역임했다. 박근령 육영재단 이사장 시절 재단 이사로 10년 가까이 재임한 자유언론수호국민 포럼 이경식 대표는 “야권이 대선 정보 수집 차원에서 신 전 교수에게 비상한 관심을 갖고 접근하는 걸로 안다”고 말했다. 이렇듯 ‘혈육간 분쟁’은 박 전 위원장에게 대선 과정에서도 큰 짐이 될 전망이다.
박근령씨는 또 총선 출마를 통해 박 전 위원장에게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근령씨는 충북 보은·옥천·영동 선거구에 자유선진당 후보로 출마하려다 여의치 않자 무소속 출마를 택했다.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인 언니가 정치 생명을 걸다시피한 총선에서 동생이 반대 편에 섰다. 그것도 어머니(고(故)육영수 여사)의 고향(옥천)에서 언니와 동생이 맞대결을 벌이는 셈이 됐다.
선거일 이틀 앞둔 4월 9일 보수대연합 동참을 명분 삼아 후보직을 사퇴하면서 근령씨의 ‘거사’는 해프닝으로 끝나고 새누리당 후보가 무난히 당선됐다. 하지만 당시 친박 진영은 근령씨의 예측하지못한 뜻밖의 정치 행보에 놀란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사실 가족 문제는 박 전 위원장 말고는 측근 의원이나 핵심 참모라도 관여하기 어려운 사안이다. 당사자들이 푸는 게 가장 자연스럽지만 ‘신 전 교수 구속’이라는 현실적 장벽이 가로놓여 있다. 근령씨는 신 전 교수가 억울하게 영어의 몸이 됐으므로, 사회로 복귀시켜 새 삶을 살도록 박 전 위원장과 박 회장이 배려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법원은 지난 2월 그에게 허위사실 유포 등의 혐의로징역 1년 6개월을 선고했다.
게다가 검찰은 지난 5월 박 전 위원장이 육영재단 폭력사건을 배후에서 조종했다는 보도 자료를 인터넷 방송국 기자에게 보내 기사화되도록 한 혐의로 신 전 교수를 추가 기소했다. 게다가 박 전 위원장은 근령씨 결혼식장에도 가지 않을 정도로 신 전 교수를 가족의 일원으로 여기지 않는다. 이처럼 박 전 위원장의 가족사는 신 전 교수 문제로 꼬일 대로 꼬였다. 그 가족사가 신 전 교수 구속과 박용철, 박용수씨 사망 때문에 올 대선을 앞두고 또 다시 정치권의 입방아에 오를 가능성이 높아졌다.
근혜, 근령 두 사람이 여전히 대립각을 세우는 가운데서도 화해의 기류가 감지된다는 전언도 있다. 박지만 회장 쪽에서 보은·옥천·영동선거에 나선 근령씨를 은밀하게 도왔다는 증언이 나온 것도 그런 맥락이다. 당시 박근령 씨 선거캠프에서 중요 역할을 한 인사의 말이다. “어디서 어떤 과정을 거처 왔는지 모르겠으나 박지만 회장 쪽 사람들도 후원팀이라고 해서 선거캠프에 합류했다. 10명가량 됐는데 그들은 경제적, 경호상으로도 적잖은 도움이 됐다.”
근령씨 선거 캠프에 참여한 다른 인사도 비슷한 말을 했다. “선거 사무실에는 박지만 회장 측 사람들, 새누리당 모 중진 측의 인사들이 따로 그룹을 지어 박근령 후보의 주변을 맴돌았다. 특히 박회장 측 사람들은 박 후보의 경호를 담당하는 듯 했다. 나중에박후보가 후보직을 사퇴할 때도 박 회장 측 사람들의 역할이 있었다고 보인다.”
물론 박 회장 측은 “큰 언니가 비대위원장으로 있는 새누리당 후보가 출마한 지역에서 어떻게 무소속으로 출마한 근령씨를 도울수 있느냐”며 손사래를 친다. 하지만 현장에 있던 이들은 적어도 박 회장과 교감하는 이들이 선거에 개입했다고 확신하는 분위기가 더 강하다.
박근령 씨 또한 자신의 사퇴가 명분, 실리 양쪽에서 결과적으로 박 전 위원장을 도왔다고 여길 법하다. 나아가 가족 간의 분쟁과반목도 이제는 접었으면 하는 바람도 가진 듯 했다. 근령씨는 최근 “우리 가족 문제는 언론이 좋은 쪽으로 써주면 좋겠다”고 희망하면서“앞으로의 관계에 대해서는 언니(박근혜)와 동생(박지만)이 대답할차례”라고 말했다.
자신이 총선에서 중도 사퇴라는 양보를 했으므로 박 전 위원장과박 회장이 손을 내밀어줘야 한다는 뉘앙스로 읽혀진다. 나아가 그는 “이번 대선에서 우파가 승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근령씨는 대선 향배와 관련해 “자칫 잘못해서 대통령 선거에서 우익을대표하는 인사가 패배하면 나라가 큰일난다”고 말했다. 박 전 위원장이 근령씨가 말하는 ‘우파’의 가장 유력한 대선주자라는 점을 감안하면 박 전 위원장에 대한 지지 의사표시로 받아들일 만한 여지가 충분하다.
최필립의 마이웨이 행보를 막아라
박정희 대통령의 ‘정’, 육영수여사의 ‘육’자를 땄다는 정수장학회.박 전 위원장은 7년 전인 2005년 이 단체의 이사장직에서 물러났음에도 지난 총선에서 야권의 집요한 공세에 시달렸다. 이번 대선에서도 야권은 이 문제를 이슈로 삼겠다고 단단히 벼르는분위기다. 민주통합당은 정수장학회가 대주주인 부산일보에서 기자를 지낸 배재정씨를 비례대표 국회의원으로 영입, 정수장학회를 지렛대로 한 박 전 위원장 주 공격수로 활용할 방침임을 분명히 했다.
정수장학회는 1961년 부산지역 사업가 김지태(1982년 작고) 씨가 내놓은 부산지역 땅 10만 평, MBC, 부산MBC, 부산일보 주식을 기반으로 설립된 재단법인이다. 훗날 김지태 씨는 5·16 군사쿠데타 직후 국가재건최고회의의 강압 때문에 각종 양도서에 강제로 날인했다고 주장했고, 유가족은 정수장학회 반환소송을 벌인다.
총선 당시 민주통합당 문재인 상임고문은 정수장학회가 강탈된 장물’로서 사회에 환원돼야 하므로 박 전 위원장이 이 문제를 털고 가야한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문 고문이 이렇게 말한 이유는 박 전 위원장이 이 장학회의 이사장직을 10년 가까이 역임했고, 후임인 최필립 이사장도 이른바 ‘친박 인사’로 분류되기 때문이다. 최이사장은 1978년부터 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영애였던박 전 위원장을 담당하는 공보비서관으로 일했다.
최 이사장은 박정희 전 대통령을 ‘임금님’이라고 부를 정도로 끔찍이 흠모할 뿐만 아니라 2001년 박 전 위원장이 한나라당을 탈당,한국미래연합을 만들 때 운영위원도 역임했다. 두 사람이 아주 각별한 관계라는 공지의 사실이다. 박 전 위원장은 2007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 당시부터 “나는 이사장직을 그만 뒀으니 정수장학회와 상관이 없다”고 누차 선을 그었다. 하지만 야권은박 전 위원장과 최 이사장의 이런 인연을 부각시키며 공세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올해 대선에서는 그 강도가 더 세질 것으로 대부분 예상한다. 민주통합당 배재정 의원은 “최 이사장의 언론 인터뷰 발언을 보면서 그가 박 전 위원장의 복심이라는 심증을 갖는다”면서 “이른바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이 MBC 주식의 30%, 부산일보 주식의 100%를 가진 정수장학회를 측근을 통해 좌지우지하는 걸 용납할 국민이 얼마나 되겠느냐”고 반문했다. 정수장학회 논란은 재산권다툼 차원을 뛰어넘어 언론의 정치적 독립 문제로 번질 수도 있다는 말이다.
심지어 정권이 언론을 손에 쥐고 국민의 눈과 귀를 가린다는 식의 논리 전개도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대선에 출마하는 박 전 위원장이 이 문제를 피해갈 수 없다고 야권은 판단한다. 게다가 장학회 이사진 5명 중 최 이사장을 제외한 4명 모두 박 전 위원장 혹은 최 이사장이 영입한 사람들이다. 배의원은 “요즘 돌아가는 모양새를 보면 박 전 위원장이 2005년 이사 장직에서 물러났지만, 마음속에서는 아직도 정수장학회를 내놓지 못한 것 같다”고 주장했다.
최 이사장은 완강하다. 그는 언론 등을 통해 “정수장학회 운영은 투명하고, 박 전 위원장과 개인적인 관계가 있다고 이사장을 할 수 없다는 건 논리적으로 맞지 않다”며 자리에서 물러날 의향이 없음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사석에서는 정수장학회에 관선 이사 시대가 열리면 박정희 전 대통령의 유산 성격은 없어지고, ‘진보’를 자처하는 곽노현 서울시 교육감과 비슷한 성향의 인사들이 장악하게 된다고 우려를 표했다고도 한다.
또 자신이 물러나면 새 이사진이 과거 정수장학회 운영과 회계상의 문제점을 들쳐 낼 수 있고 그게 박 전 위원장의 발목을 잡을 까 우려하기 때문이라는 말도 있다. 그래서인지 최 이사장은 “내가 살아있는 한 이걸 지켜줄 의무가 있다”며 배수진까지 쳤다.
한술 더 떠 최 이사장은 박 전 위원장 지원에 두 팔을 걷고 나설 공산도 없지 않다. 정수장학회는 그 자체로 거대한 인적 네트워크다. 1962년 설립된 정수장학회가 배출한 장학생은 무려 3만8000여명에 이른다.
학생들은 대학 재학 때는‘청오회’, 졸업 후에는‘상청회’에서 활동한다. 장학회 출신 인사들은 학창 시절과 사회 진출 후에도 끈끈한 유대를 형성하며 박 전 위원장 관련 행사에 열성적으로 참여하는 걸로도 유명하다. 그래서 박 전 위원장이 위기에 처하거나, 결정적인 순간에 상황을 반전하는 외곽조직으로 가동될 가능성도 배제 못한다.
부산일보 출신의 배재정 의원도 “최 이사장이 박 전 위원장을 위해서라면 온몸을 던져 마지막 열정을 불사를 수도 있을 것”이라고 했다. 새누리당 비박 진영의 한 관계자는 “최 이사장과 그 주변에서 대선을 겨냥한 별도의 캠프를 꾸린다는 정보를 접했다”고도 귀띔했다.
박 전 위원장이 다른 주자들에 비해 확고한 우위를 점하는 요즘 같은 때 “최 이사장이 나서면 되려 역풍을 부를 수도 있다”는 우려도 일각에서 나온다. 그래서인지 박 전 위원장의 한 측근은 “정말 도와줄 참이면 그 자리에서 물러 나주는 게 상책”이라고 말했다.
야당이 정수장학회를 대선의 최대 이슈의 하나로 부각시키려는마당에 최 이사장이 ‘마이웨이’를 외친다면 그 부담은 고스란히 박전 위원장에게 돌아간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몇몇 국회의원이 최 이사장을 만나 용퇴를 종용했다고 알려지기도 했다.
박근혜의 딸? 황당무계한 망상?
김영삼 전 대통령(YS)의 차남 김현철 전 여의도연구소 부소장은박 전 위원장의 ‘사생활’에서 불투명한 부분이 너무 많아 본선을 장담키 어렵다고 말했다. YS가 박 전 위원장을 부도덕한 인물로 본다고도 했다. 다음은 김 전 부소장과의 일문일답이다.
YS는 박 전 위원장이 부도덕하다는 걸 어떤 경로로 파악하고 계신가?
“많이 알고 계시다. 그것도 팩트(fact·사실)를 알고 계시다.”
지난 2007년 당내 대선후보 경선 당시 거론된 가담항설(街談巷說) 수준 아닌가?
“아무튼 오는 대선에서 야당이 많이 들고 나올 거다. 일반 국민이 알아야 하는 것이니까. 그건 숨긴다고 덮고 넘어갈 수 있는 게 아니다. 확실하게 끝을 내야 한다.”
구체적인 예를 들어 달라.
“사생활 부분이라고 뭉뚱그리겠다. 이회창 씨의 아들 병역문제보다 훨씬 큰 논란거리가 될 거다.”
YS가 대통령에 취임하고 나서 사실로 확인해 본 내용인가?
“박 전 위원장 본인도 2007년 경선 당시 한마디 했다. DNA 검사를 받겠다고 말이다(당시 최태민 목사와 박 전 위원장 사이에 아이가 있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박 전 위원장은 자신에게 아이가 있으면 DNA 검사라도 받겠다며 맞받아쳤다). 그 이상의 얘기들이 더나온다. 나중에 그게 밝혀지면 그때는 이미 늦지 않나.
”팩트라면 검증이 돼야 하는데 가능한가?“
아주 상당히 엄청난 충격을 줄 것으로 본다.
”확인이 된다는 말인가?“
그렇다. 박 전 위원장 주변에서도 그런 것들을 정리하고자 하는데 정리할 수 없다. 팩트인데 어떻게 정리가 되나.”
대부분 2007년 경선 당시 나온 얘기들이다.예컨대 최태민 목사와의 사이에 자식이 있다는 주장에 대해 당시 박 전 위원장도 한 인터뷰에서 ‘아무리 네거티브지만 천벌받을 일’이라고 격분했었다. 경선 도중에 “아이가 있으면 DNA 검사라도 받겠다”고 결백을 호소하기에 이르렀다.
김 전 부소장이 말하는 ‘사생활’ 부분이 이 문제일 가능성이 커 보인다. 요즘은 더 구체적인 얘기가 나온다. 박 전 위원장이 낳은 자식이 올해 30살 정도이며 일본에 살며, 야당에서도 접촉을 꾀한다는 설명까지 붙는다.이와 관련해 5공의 실세로 청와대 고위직을 지낸 한 원로 정치인은 사석에서 “그럴 가능성은 제로”라고 일축했다.박 위원장이 1975년부터 퍼스트레이디 역할을하면서 아이를 가졌으면 누가봐도 금방 표시가 났을것이고 공식활동을 중단했어야 하는데 그런일은 없었다고 했다.
또 “5공 시절 그랬다면 청와대에 있던 내가 몰랐을 리 없다”며 헛소문일 가능성이 아주 높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김재원 의원도 이와 관련해 “박 전 위원장에게 다 물어봤다”면서 “그건 황당무계한 망상으로 일고의 가치도 없다”고 박 전 위원장의 입장을 대변했다.
지금 추세라면 12월 대선에서 창은 야권, 방패는 여권이 될 가능성이 큰 편이다. 새누리당은 공격하는 입장에서는 대선 날짜가 다가오고 불리할수록 ‘상식 밖의 카드’를 들이밀 수 있다고 보고 대책을 마련 중이다. 그런 카드로는 ‘흑색 선전’과 ‘인신 비방’에 ‘조작된 서류’까지 나올 수도 있다는 걱정에서다.
지난 2002년 대선 당시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는 아들의 병역 비리 의혹으로 곤욕을 치렀다. 그 문제를 집요하게 제기했던 김대업씨는 나중에 ‘허위사실’ 유포 혐의가 유죄로 인정됐다. 그런 사례가 박 전 위원장을 향해서도 나타날 수 있다는 점에서 경계를 늦추지 않고 있는 것이다. 새누리당은 이 후보가 군대에 가지 않은 두 아들을 뒀기에 김대업 씨의 허위공세가 선거국면에서 먹혔다고 본다. 하지만 박 전 위원장에게는 그런 결정적 약점이 없다는 게 친박 인사들의 기본적인 믿음이다.
<자료 : 월간중앙 2012년 7월호 박성현 기자>
박근혜가 정치 일선에 나서자 이종사촌 형부인 김종필도 박근혜에게 포문, "최태민의 자식까지 있는 애가 무슨 정치냐?"
만 이틀을 묵혔다. 두 가지 이유에서였다. 비록 언론매체의 보도이긴 하지만 근거자료 하나도 없이 증언만 딴 기사여서 ‘막장드라마’ 냄새가 조금 풍겼다. 다음은 어디서 어떤 후속보도가 나올지, 또 반응(시각)은 어떨지도 궁금했다. 그러나 만 이틀이 지나는 동안 인터넷에는 문제의 기사를 퍼다나른 글들로 넘쳐나고 트위터와 페이스북 등 SNS도 요란하다.그런데도 그 말 많던 매체들은 이 시각까지도 전혀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놀라운 일이다. 진보-보수매체 할 것 없이 다들 숨죽인 채 주변 반응을 살피고 있는 건가? 아니면 후속취재 중인가? 어쩌면 둘 다일 수도 있다. 그제(16일) 오후 4시 43분경, <뷰스앤뉴스>에 놀랍고 흥미로운 기사가 하나 떴다. 새누리당, 아니 현 시점에서는 여야를 통털어 차기 대통령으로 유력한 박근혜 새누리당 의원에게 숨겨놓은 사생아가 있다는 보도였다. 다들 알고 있는 대로 박 의원은 미혼이다. 만약 이 보도가 사실이라면 박 의원은 미혼 상태에서 아이를 낳았고 그간 이런 사실을 숨겨왔다는 얘기가 된다. 여염집 아낙도 아닌 유력한 대선후보의 도덕성 문제와 관련된 것이니 검증 차원은 물론이요, 진실규명 차원에서라도 언론은 당연히 취재, 보도하는 것이 맞다.
<뷰스앤뉴스>가 인용 보도한 ‘박근혜 사생아’ 기사의 소스(출전)는 17일 발매된 <월간중앙> 7월호다. 한 가지 납득하기 어려운 것은 이런 특종성 기사의 경우 본지에서 먼저 다루는 게 보통인데 웬일인지 <중앙일보>가 아닌 <뷰스앤뉴스>에서 이 특종(?)을 다뤘다. 조금은 의외다. 그건 그렇다고 쳐도 사흘째 모든 언론이 입을 다물고 있는 건 납득하기 어렵다. 만약 민주당의 문재인 고문이나 김두관 지사, 안철수 원장이 ‘사생아’ 의혹에 휩싸였다고 한번 가정해보자. 그래도 다들 이랬을까? 모르긴 해도 조중동을 위시해 거의 모든 매체들이 특별취재반을 편성해서 전국을 이 잡듯 뒤졌을 것이다. 우선 <월간중앙> 사이트에 들어가 해당 기사의 원문을 검색(유료)해 보았다. 문제의 ‘박근혜 사생아’ 관련 내용은 박성현 기자가 작성한 ‘박근혜 대선가도 최대 적은 자신의 그림자’라는 기사 말미에 실려 있었다. 이 기사는 박 의원을 둘러싸고 그간 나돈 최태민 목사와의 관계 등 각종 의혹과 박 의원의 집안사를 다룬 것으로, 그간 나온 얘기들의 종합판 정도라고 할 수 있다. 기사 말미에 YS의 차남 김현철 씨의 증언을 통해 ‘박근혜 사생아’ 얘기가 등장하는 데 조금은 뜬금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관련 내용 전문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박근혜의 딸? 황당무계한 망상? 김영삼 전 대통령(YS)의 차남 김현철 전 여의도연구소 부소장은 박 전 위원장의 ‘사생활’에서 불투명한 부분이 너무 많아 본선을 장담키 어렵다고 말했다. YS가 박 전 위원장을 부도덕한 인물로 본다고도 했다. 다음은 김 전 부소장과의 일문일답이다. - YS는 박 전 위원장이 부도덕하다는 걸 어떤 경로로 파악하고 계신가? - 지난 2007년 당내 대선후보 경선 당시 거론된 가담항설(街談巷說) 수준 아닌가? - 구체적인 예를 들어 달라. - YS가 대통령에 취임하고 나서 사실로 확인해 본 내용인가? - 팩트라면 검증이 돼야 하는데 가능한가? - 확인이 된다는 말인가? 대부분 2007년 경선 당시 나온 얘기들이다. 예컨대 최태민 목사와의 사이에 자식이 있다는 주장에 대해 당시 박 전 위원장도 한 인터뷰에서 ‘아무리 네거티브지만 천벌받을 일’이라고 격분했었다. 경선 도중에 “아이가 있으면 DNA 검사라도 받겠다”고 결백을 호소하기에 이르렀다. 김 전 부소장이 말하는 ‘사생활’ 부분이 이 문제일 가능성이 커 보인다. 요즘은 더 구체적인 얘기가 나온다. 박 전 위원장이 낳은 자식이 올해 30살 정도이며 일본에 살며, 야당에서도 접촉을 꾀한다는 설명까지 붙는다. 이와 관련해 5공의 실세로 청와대 고위직을 지낸 한 원로 정치인은 사석에서 “그럴 가능성은 제로”라고 일축했다. 박 위원장이 1975년부터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하면서 아이를 가졌으면 누가 봐도 금방 표시가 났을 것이고 공식 활동을 중단했어야 하는데 그런 일은 없었다고 했다. 또 “5공 시절 그랬다면 청와대에 있던 내가 몰랐을 리 없다”며 헛소문일 가능성이 아주 높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김재원 의원도 이와 관련해 “박 전 위원장에게 다 물어봤다”면서 “그건 황당무계한 망상으로 일고의 가치도 없다”고 박 전 위원장의 입장을 대변했다. <월간중앙>이 위 대목에서 언급한 박 의원의 ‘부도덕’ 문제의 핵심은 ‘사생아’ 관련 얘기라고 할 수 있다. “박 전 위원장이 낳은 자식이 올해 30살 정도이며 일본에 살며”라든가 ‘DNA 검사’ 운운한 대목이 그것이다. 본문 속에서 관련 내용의 증언자는 김현철 씨로 나오지만 사실상의 소소는 김 씨의 부친 김영삼(YS) 전 대통령인 셈이다. 속성상 이런 내용은 증거자료를 구하기가 쉽지는 않지만 충격적인 사안 치고는 관련 사진이나 호적서류 등 물증이 전혀 제시되지 않았다. 이런 점에서는 객관적으로 신뢰도가 그리 높아 보이지는 않는다. (물론 후속보도에서 관련 자료를 공개할지는 모르겠다.)
[관련글] “박정희 동거녀 이현란, 아들 낳았다” 한편, <월간중앙>의 보도를 인용 보도한 <뷰스앤뉴스>에 따르면, 박근혜 측은 이에 대해 “김현철 씨의 발언 수위가 정치적 허용범위를 넘어서는 만큼 캠프에서 법적 대응을 추진하기로 했다”고 한다. 또 5년 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때 박근혜 캠프의 검증대변인을 맡았던 김재원 새누리당 의원은 “박 전 위원장에게 다 물어봤다”며 “그건 황당무계한 망상으로 일고의 가치도 없다”고 일축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들의 얘기를 전적으로 믿기도 어렵고, 그렇다고 구체적으로 반박할 근거도 없이 못 믿겠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현재로선 누구의 주장이 진실인지 단언하긴 어렵다. 그렇다면 이번 <월간중앙> 보도가 어느 정도 신빙성이 있는지를 한번 점검해 보기로 하자. 우선, 무엇보다도 김현철(혹은 YS)씨가 올 연말 대선을 앞둔 이 시점에서 이런 ‘중차대한’ 얘기를 꺼낸 배경이 대체 무엇일까? (혹자는 김현철이 기자의 질문에 대답했다고 할 수도 있지만 이런 문제는 기자가 묻는다고 선선히 대답해 줄 사안은 아니다) 하나 전제할 것은 YS는 박정희의 정적이었고, 그로 인해 두 사람은 마치 ‘견원지간’이나 마찬가지였다고 할 수 있다. 박정희 정권 시절 김대중(DJ)과 함께 민주진영의 한 축을 이뤘던 YS는 군사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를 ‘민주주의의 적(敵)’ 정도로 여겼다. 그런 감정은 어쩌면 그의 딸인 박근혜에까지 이어졌을 가능성도 있다. 따라서 어쩌면 이번 건은 YS측에서 ‘독재자의 딸’인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해 작심하고 폭로(?)한 것이 아닌가 추측된다. 그런데 우연하게도 그런 ‘혐의’(?)를 둘 만한 ‘사건’이 최근에 하나 있었다. 지난 11일 김문수 경기지사가 새누리당 대선후보 경선 참여 발표를 앞두고 YS를 예방했다. 이 자리에서 김 지사는 “지금은 토끼가 사자를 잡는 격”이라며 자신의 어려운 처지를 토로했다. 그러자 YS는 “(박근혜 의원은) 사자가 아니다. 아주 칠푼이다. 사자가 못 돼”라고 혹평하고는 “(경선이 막상 시작되면) 박근혜는 별것 아닐 것”이라며 박근혜 무시 발언을 쏟아냈다. 평소 독설가로 통하는 YS라고는 하지만 이날 박근혜를 향해 날린 ‘독설’은 예사롭지 않다. 극도의 불신과 그로인한 깊은 반감이 없지 않고서야 유력한 차기 대권주자를 이렇게 표현할 수는 없다. 어쩌면 YS는 박근혜의 ‘부도덕’ 건을 잘 알고 있고 그리고 그것이 바로 ‘사생아’ 건인지도 모르겠다. 다음, 두 번째로는 YS측이 박근혜의 ‘부도덕’과 관련된 확증자료를 과연 가지고 있을지의 여부다. 필자 개인적인 판단이긴 하나 만약 박근혜의 사생아 건이 ‘팩트’라면, 즉 실지로 박근혜의 사생아가 있다면 YS가 관련 근거자료를 손에 넣었을 가능성은 커 보인다. 일반적으로 정보기관은 여야, 재조-재야 할 것 없이 거물급 인사들을 대상으로 수집, 작성한다. 소위 ‘존안자료’로 불리는 것이 그것이다. 모르긴 해도 박 정권 시절 중앙정보부는 박정희 관련 자료도 수집, 정리해뒀을 것이다. 그 연장선상에서 육영수 여사 사후 5년가량 ‘영부인’을 대신했던 박근혜 관련 자료도도 당연히 수집했을 것이다. 그 이유는 정권은 유한(有限)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문제는 ‘팩트’의 실존 여부인데 이에 대해 김현철은 <월간중앙>과의 인터뷰에서 세 차례에 걸쳐 거듭거듭 확인해 줬다. 심지어 김현철은 ‘팩트’여서 ‘정리’, 즉 어떻게 손을 쓸 수도 없다는 얘기까지 했다. 앞에서 소개한 내용 중 ‘팩트’ 부분을 재인용해 보면, - YS는 박 전 위원장이 부도덕하다는 걸 어떤 경로로 파악하고 계신가? - 팩트라면 검증이 돼야 하는데 가능한가? - 확인이 된다는 말인가? 완전히 ‘뻥’이 아니라면 YS측이 관련 자료를 손에 쥐지 않고서야 이렇게 단언하기는 어려운 법이다. 그런데 이들 두 사람의 전력을 감안하면 이들이 관련자료를 입수했을 가능성은 크다고 하겠다. YS는 ‘권위주의 정권’ 시절 대통령을 지냈고, 그의 아들 김현철은 ‘소통령’으로 불렸다. YS는 대통령 시절 안기부 등 권력기관을 속속들이 장악하고 있었다. 따라서 YS는 자기 자신을 포함해 중앙정보부(->안기부->국정원)가 수집한 일체의 ‘인비(人秘)자료’를 다 봤을 걸로 생각된다. (반면, DJ는 핵심자료를 다 보지는 못했다는 후문이다. 왜냐하면 정보기관 내 일부 극우보수파들이 DJ의 사상(‘빨갱이’)을 의심하여 특수정보는 제공하지 않았다는 얘기가 있었다.) <월간중앙> 기사에 따르면, ‘박근혜 사생아’의 나이는 ‘올해 30살 정도’이며 일본에 살고 있다고 한다. ‘사생아’의 나이를 역으로 환산하면 출생 시기는 1980년 전후, 즉 ‘10.26사건’ 전후로 추정된다. ‘5공의 실세로 청와대 고위직을 지낸 한 원로 정치인’의 말대로 박근혜가 청와대 시절 출산을 했을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청와대 시절 박근혜는 육 여사를 대신해 영부인 노릇을 하며 대외활동을 활발하게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 시기는 ‘청와대를 나온 이후’라는 얘기가 된다. ‘10.26사건’ 후 박근혜-근영-지만 등 3남매는 청와대에서 나와 부친의 사저인 ‘신당동 집’으로 거처를 옮겨 칩거에 들어갔다. 이후 박근혜는 육영재단, 정수장학회 운영에 관여하였으나 1998년 국회의원 선거에 나서기 전까지는 그의 행적에 대해 자세히 알려져 있지는 않다. 마침 오늘자(18일) <한겨레>에서 [대선주자 탐구-박근혜 편] 제3탄으로 박근혜와 최태민 목사와의 관계를 집중적으로 다뤘다. <한겨레>는 글 첫 머리에서 “지난 40년가량 박근혜(60) 인생의 결정적인 순간에는 최태민(1912~1994)과의 관계에 대한 의혹이 자주 따라 붙었다”고 쓰고는 그간 두 사람과 관련해 제기된 각종 의혹들을 기존 보도를 통해 추적했다. ‘박근혜 사생아’ 얘기가 나올 때마다 최태민이 당사자로 지목돼 왔는데 다른 의혹 건으로는 몰라도 이 둘을 ‘남녀관계’로 묶는 것은 그리 온당해 보이지 않다. 최태민은 부인이 6명, 이름이 7개라고 할 정도로 신원이 불명확한 인물이긴 하나 출생연도는 1912년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최태민은 1917년생인 박정희보다 5세, 1952년생인 박근혜보다 40세 연상이다. 그 점을 고려할 필요는 있지 않을까? 끝으로, 이번 ‘사생아’ 논란이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 또 누가 어떤 상황에 처해질 것인지를 한번 짚어보자. 우리 형법은 허위사실은 물론이요, 비록 ‘사실’이라고 해도 이를 적시하여 사람의 명예를 훼손할 경우 죄가 된다. (형법 제307조(명예훼손) ① 공연히 사실을 적시하여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2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따라서 설사 ‘박근혜 사생아’가 사실이라고 해도 박근혜 측에서 명예훼손 소송을 낼 경우 문제가 된다. YS측이 이런 사실을 모를 리 없건만 이같은 주장을 편 것은 왜인지 궁금할 따름이다. 앞에서 언급했다시피 YS측에서는 나름으로는 물증을 갖고 있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 그러나 만에 하나 물증을 갖고 있지 않거나 또는 공인받기 어려운 것이라면 YS측은 엄청난 법률적, 사회적 비난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공은 박근혜 쪽으로 넘어간다. 만약 ‘사생아’가 실존하는 걸로 밝혀진다면 박근혜의 정치생명은 그날로 ‘끝’이다. 이 건은 금전비리나 정책 실패 같은 문제가 아니다. 보수진영에서는 더러 '공주'로도 불리는, 그것도 미혼여성인 박근혜에게 사생아가 있다고 한다면 이는 남녀노소, 보수-진보, 영-호남을 떠나서 공분을 금치 못할 일이다. 따라서 박근혜 측은 이 문제에 대해 단순히 ‘그런 일 없다’고 만 해명할 게 아니라 이번 기회에 명확하게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고 본다. 혹 ‘사생아’로 지목된 사람이 나타난다면 ‘DNA검사’만이 아니라 그 이상의 신체검사라도 해야 할 판이다. 결국 이제 남은 것은 하나 뿐이다. 이번 '사생아' 논란의 당사자랄 수 있는 YS와 박근혜, 이 둘 가운데 하나는 이번 일로 죽게 될 것이다.
‘박근혜 사생아’, YS-근혜 둘 중 하나는 죽는다
[보도비평] 유력 대선후보 관련 ‘충격적 폭로’ 불구 언론이 침묵하는 이유는?
정운현 기자 | 등록:2012-07-18 14:08:58 | 최종:2012-07-18 23:08:23
▲ <월간중앙> 7월호에 실린 '박근혜 사생아' 관련 내용을 보도한 <뷰스앤뉴스> 16일자
“많이 알고 계시다. 그것도 팩트(fact·사실)를 알고 계시다.”
“아무튼 오는 대선에서 야당이 많이 들고 나올 거다. 일반 국민이 알아야 하는 것이니까. 그건 숨긴다고 덮고 넘어갈 수 있는 게 아니다. 확실하게 끝을 내야 한다.”
“사생활 부분이라고 뭉뚱그리겠다. 이회창 씨의 아들 병역문제보다 훨씬 큰 논란거리가 될 거다.”
“박 전 위원장 본인도 2007년 경선 당시 한마디 했다. DNA 검사를 받겠다고 말이다(당시 최태민 목사와 박 전 위원장 사이에 아이가 있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박 전 위원장은 자신에게 아이가 있으면 DNA 검사라도 받겠다며 맞받아쳤다). 그 이상의 얘기들이 더나온다. 나중에 그게 밝혀지면 그때는 이미 늦지 않나.”
“아주 상당히 엄청난 충격을 줄 것으로 본다.”
“그렇다. 박 전 위원장 주변에서도 그런 것들을 정리하고자 하는데 정리할 수 없다. 팩트인데 어떻게 정리가 되나.”
과거 우리 정치사에서 유명 정치인들의 ‘사생아’ 얘기가 더러 있어 왔다. 이는 남성우위의 가부장적 문화와 이른바 ‘요정정치’에서 기인한 측면이 크다. 박정희 정권 시절 소위 ‘정인숙 사건’이 대표적 사례랄 수 있다. 큰 선거 때만 되면 ‘믿거나 말거나’식의 마타도어가 난무했다. 92년 대선 당시 YS는 일본에 숨겨놓은 딸이 있다며 일본 주간지 등에 사진까지 공개됐다. 또 김대중(DJ)도 마찬가지로 그와 비슷한 소문에 시달렸고 ‘친자소송’으로까지 비화됐다는 얘기도 있었다. (참고로, 박정희도 첫 부인(김호남)과 이혼하기 전에 이화여대생과 잠시 동거한 적이 있는데 그 사이에서 아들을 낳았고, 그 아들은 생후 6개월 만에 죽었다.)
▲ 92년 대선 당시 YS(사진 윗쪽 작은 네모사진)의 사생아로 지목된 '가오리' 양의 어린시절 모습으로 YS를 많이 닮았다는 소문이 있었다. ? 선데이저널
http://blog.ohmynews.com/jeongwh59/280188
▲ 김영삼 전 대통령과 차남 현철 씨가 대화를 나누는 모습
“많이 알고 계시다. 그것도 팩트(fact·사실)를 알고 계시다.”
“아주 상당히 엄청난 충격을 줄 것으로 본다.”
“그렇다. 박 전 위원장 주변에서도 그런 것들을 정리하고자 하는데 정리할 수 없다. 팩트인데 어떻게 정리가 되나.”
▲ 1976년 박정희 대통령(왼쪽)이 대한구국선교단 야간진료센터를 방문, 최태민 총재(오른쪽)와 얘기를 나누는 모습. 박근혜는 당시 대한구국선교단 명예총재를 맡고 있었다.
첫댓글 죠선,채동욱 잘해어요?
중앙일보가 기본을 했으니 이것도 탐사 보도 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