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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독특한 디자인으로 전세계적인 관심을 모으며 등장한 뉴비틀의 화려한 성공 속에는 ‘패션카’라는 수식이 오랫동안 자리잡고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 탄생한 뉴비틀의 후속작 ‘비틀’은 1938년 탄생한 오리지널 비틀을 철저히 계승하면서도 달리는 즐거움(Fun to drive)을 추구했다. 드디어 미니(MINI)에 대적할 유쾌하면서도 잘 달리는 차가 탄생한 것이다. * 글 박지훈 편집장 사진 폭스바겐
비틀, 그리고 오리지널 비틀의 후속작 뉴비틀, 그럼 뉴비틀의 후속 모델은 뉴 뉴비틀? 이쯤 되면 응당 ‘뉴’를 생략한 채 그냥 비틀로 돌아올 것이라는 예상은 적중했다. 지난 4월 상하이오토쇼와 독일 베를린, 미국에서 동시에 발표한 비틀(정확히 말하면 The Beetle)이 올 가을 미국과 유럽 판매에 앞서 독일 베를린에서 국제 시승행사를 열었다. 한국 기자단은 더 비틀의 시승에 앞서 폭스바겐의 본고장 슈투트가르트를 찾아 그 유명한 아우토슈타트를 비롯해 폭스바겐 아우토뮤지엄을 방문해 오리지널 비틀의 탄생과정을 더듬어 보았다. 폭스바겐의 탄생 주역인 비틀은 한때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는 차가 될 수도 있었지만 폭스바겐은 10여 년 전 ‘뉴비틀’이란 카드를 내밀었고, 오리지널 비틀의 성격을 한층 더 살린 ‘더 비틀’을 선보임으로써 ‘비틀’이란 이름은 여전히 폭스바겐에서 현재진행형의 아이콘이 되었다.
시대의 아이콘, 클래식 비틀
기습 폭우로 서울 강남이 물바다가 되고 있던 그 시간, 기자는 독일로 향하는 비행기에 올라 있었다. 독일에 도착해서 검색한 서울은 말 그대로 엉망진창이었다. 걱정이 되어 여기저기 전화와 문자, 카톡을 해보았지만 다행히 기자의 주변에서 큰 피해를 입은 이는 없었다. 그러나 연일 올라오는 안타까운 소식으로 먼 이국에서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슈투트가르트의 날씨는 비교적 쾌청했다. 한국 기자단은 먼저 폭스바겐의 테마파크 아우토슈타트를 둘러본 후 폭스바겐 아우토뮤지엄을 찾았다. 사실 폭스바겐은 다른 세계 유수의 자동차 기업에 비해 역사가 짧은 편이다. 그도 그럴 것이 30년대 폭스바겐의 근간이 된 비틀이 개발되었지만 전쟁을 치르는 와중에 군용차로 전용되어 정작 비틀이 세상에 나온 건 전후인 45년이 되어서야 가능했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비틀은 전후 연합군, 특히 영국군의 도움이 있었기에 세상의 빛을 보게 되었다. 아우토슈타트의 폭스바겐 박물관이나 아우토뮤지엄을 통해 기자단은 전후 비틀의 탄생과정과 초대 비틀의 모습을 확인하며 유럽 속에 자리잡은 비틀의 이미지를 어렴풋하게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40~50년대를 거쳐 60~70년대까지 이어진 비틀의 다양한 모습도 엿볼 수 있었다.
페르디난트 포르쉐 박사가 개발한 초대 비틀은 포르쉐의 탄생과도 궤를 같이 하는데, 클래식 비틀의 폴폴거리는 공랭식 엔진에는 초대 포르쉐의 느낌이 고스란히 묻어 있다. 이러한 독특한 탄생 비화를 내세우지 않더라도 비틀은 그 자체로 한 시대의 아이콘이 되기에 충분하다. 미국에서의 큰 히트와 각종 모터스포츠에서의 활약을 바탕으로 올드 비틀은 종종 영화와 애니메이션의 소재가 되었다. 동그란 반원 3개로 이루어진 비틀의 모습은 어린이에게도 아주 익숙한 자동차 캐릭터다. 그러한 비틀이 독일에서는 78년 단종되었지만 멕시코에서는 계속 생산되어 2003년까지 명맥을 유지했다. 독일과 멕시코에서 생산된 비틀의 수는 총 2,153만 대로, 자동차 역사상 가장 많이 생산된 모델 중 하나로 손꼽힌다.
아우토슈타트
아이들이 더 좋아하는 테마파크
폭스바겐 본사가 있는 독일 볼프스부르크의 자동차 종합 테마파크 아우토슈타트(Autostadt)는 2000년 6월 문을 연 이후 본지 2000년 10월호를 시작으로 여러 번 지면을 통해 소개되었다. 폭스바겐 출고장, 드라이빙 스쿨 및 오프로드 코스 그리고 폭스바겐을 포함해 아우디, 벤틀리, 람보르기니, 세아트, 스코다 등 폭스바겐 계열사의 전시관으로 이루어진 이 테마파크는 자동차와 관련된 온갖 것들을 한곳에서 보고 듣고 느낄 수 있는 테마파크다(심지어 최근에 편입한 이탈디자인 차들까지 전시해 놓았다). 폭스바겐 최초의 공장이 자리한 바로 옆에 마련된 이곳은 유럽 최대의 자동차 회사 폭스바겐그룹의 세를 과시하려는 목적도 있지만 무엇보다 자동차와 인간이 함께 호흡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현장이기도 하다. 여러 자회사들의 전시관과 커다란 유리 주차타워, 자연과 환경이 어우러진 시설물도 인상적이지만 기자들의 눈길은 하나 같이 아이들을 데리고 아우토슈타트를 찾은 가족단위 관람객들에게 쏠린다.
부모를 따라온 아이들이 자동차 전시관들을 둘러보며 꿈을 키워가고 있고 어스름한 저녁, 이곳 한켠에서 열린 분수쇼에는 수많은 지역 주민들이 무료 관람을 즐기며 한여름의 열기를 식히고 있었다. 한마디로 이곳은 폭스바겐그룹을 홍보하는 전시관이라기보다는 폭스바겐, 나아가 차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과 함께 하는 공원에 다름 아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 이익의 사회환원 등의 거창한 말을 꺼내들지 않더라도 이를 직접 실천하고 있는 VW의 모습에서 언제나처럼 잔잔한 감동이 밀려왔다. 한국에는 도대체 언제쯤 이런 자동차 테마파크가 생길까 하는 의구심은 이곳을 찾은 모든 한국인들이 갖는 한결같은 아쉬움이자 강렬한 바람일 것이다.
www.autostadt.de
폭스바겐 아우토뮤지엄
VW 비틀의 살아 있는 전설
폭스바겐은 독일을 넘어서 유럽 최대의 자동차 그룹으로 성장했지만 그 역사는 다른 유럽 메이커에 비해 길지 않다. 1936년 나치정부 주도로 시험차 개발(VW3)을 시작해 38년 완성차(VW38)가 만들어진 첫차는 나치에 의해 KdF란 이름이 붙여졌다. 이렇게 탄생한 국민차는 2차대전이 발발하면서 군용차(타입82의 퀴벨바겐과 타입166의 슈빔바겐)로 개조되어 전장을 누볐다. 전쟁 후 점령군인 영국군의 도움으로 볼프스부르크공장은 45년부터 KdF가 아닌 폭스바겐을 찍어내기 시작했다. 바로 이 차(타입11)가 비틀의 시초이자 폭스바겐 회사의 시발점이다. 수평대향 4기통 1.1L 25마력 엔진을 뒤에 얹고 폴폴거렸던 비틀 생산 이후 폭스바겐은 확장일로를 걸었고 지금은 아우디, 벤틀리, 람보르기니, 세아트, 스코다, 스카니아 등 수많은 자동차 회사를 거느린 유럽 최고의 자동차 그룹으로 성장했다.
오늘날 폭스바겐이 있게 한 비틀의 역사를 찬찬히 살펴볼 수 있는 ‘아우토뮤지엄 폭스바겐’(AutoMuseum Volkswagen)은 의외로 소박하다. 메르세데스 벤츠나 BMW, 포르쉐 박물관처럼 으리으리한 박물관을 찾는다면 아우토뮤지엄보다 아우토슈타트의 박물관을 찾는 게 낫다. 이곳은 클래식한 폭스바겐들을 좀 더 가까이에서 편하게 접할 수 있는 곳. 조금 과장하자면 전시차의 절반이 비틀이다. 이는 폭스바겐의 역사에서 그만큼 비틀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아우토뮤지엄의 설명을 맡은 폭스바겐 클래식의 수장 에버하르트 키틀러(Eberhard Kittler)는 얼마 전까지 독일 유력 자동차 전문지 <ams>의 기자로 일했다. 3년 전 폭스바겐에 합류한 그는 클래식카 부문에서 상대적으로 약한 폭스바겐 클래식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포르쉐 박사가 개발한 오리지널 비틀은 포르쉐와 닮은 구석이 굉장히 많습니다. 같은 메커니즘에서 출발해 VW은 국민차로, 포르쉐는 스포츠카로 발전한 것이지요. 아이들에게 자동차를 그리라고 하면 십중팔구 비틀처럼 생긴 차를 그립니다. 그만큼 비틀은 아이코닉한 차라는 말이지요. 현재 독일에 있는 250여 개의 폭스바겐 클럽 중 150개가 비틀클럽일 정도로 클래식 비틀의 인기는 높습니다. 당신들이 시승할 신형 비틀은 펀 투 드라이브가 가능합니다. 패션카를 지향했던 2세대와는 뚜렷한 차이가 있지요. 그런 면에서 보면 포르쉐와 닮은꼴인 오리지널의 의미를 더욱 잘 살렸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의 말대로 아우토뮤지엄에서는 폭스바겐에 있어 더없이 소중한 비틀의 모든 것을 살펴볼 수 있었다. 부가티, 벤틀리 등 온갖 호화로운 브랜드의 역사까지 자사 그룹의 역사로 편입해놓은 거대한 아우토슈타트와 달리 폭스바겐 브랜드의 출발과 흐름을 한눈에 살펴보며 비틀 사랑을 노래하는 곳. 초대 비틀의 뒤창이 원래는 2개로 나뉜 자그마한 모양이었는데 나중에 하나로 합쳐졌고, 그 후 창이 커진 이유를 알고 싶다면? 지금 당장 아우토뮤지엄을 찾을 일이다.
www.volkswagen-automuseum.de
www.volkswagen-classic.de
1998년 탄생한 뉴비틀
초대 비틀은 세계적인 히트를 쳤지만 아쉽게도 한국에서는 그러지 못했다. 동남아에만 나가도 쉽게 볼 수 있는 클래식 비틀이 유독 수입차 개방이 늦었던 한국에는 발을 붙이지 못했던 것. 그래서 우리 기억 속의 클래식 비틀은 만화나 사진 속의 차로만 존재할 뿐 실질적인 비틀의 역사는 98년에 나온 뉴비틀이 시작이다. 비록 처음 접하긴 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뉴비틀에 친밀감을 표했다. 실제 클래식 비틀이 거리에 돌아다니지는 않았을 뿐 기억 속 한켠에는 동글동글한 비틀이 자리잡고 있었던 것이다.
뉴비틀은 클래식 비틀이 독일에서 생산을 멈춘 지 20년이 지난 1998년 북미국제오토쇼에서 비틀을 닮은 새 모델로 등장해 화제를 모았다. 디자인의 기초는 1994년 만든 컨셉트카 ‘컨셉트Ⅰ’으로 둥근 루프라인과 램프, 두드러진 오버펜더 등 구형 비틀의 디자인 요소를 이어받은 깜찍한 스타일링을 자랑했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구형의 특징적인 요소를 차용했을 뿐 정확하게 반원 3개를 겹쳐놓은 듯한 스타일은 클래식 비틀을 계승했다기보다는 이미지적인 요소만 가져왔을 뿐 완전히 새로운 스타일이었다. 기자 또한 처음 뉴비틀이 나왔을 때 컨셉트카적인 스타일 그대로 양산된 데에 적잖이 놀랐었다. 이러한 과감한 스타일 덕분에 뉴비틀은 10년이 넘은 지금도 질리지 않는 신선함으로 많은 팬을 확보하고 있다(뉴비틀 팬들은 마치 애플의 그들과 비슷한 성향을 보인다).
스타일만큼이나 실내의 감각도 독특했다. 앞 윈도가 둥근 원을 그리며 멀찍이 자리잡았을 뿐 아니라 실내 곳곳에 익스테리어의 원을 주제로 한 독특한 구성으로 만들어져 개성적이면서도 멋스럽다(그것이 꼭 실용성을 의미하진 않는다). 대신 손해를 본 구석도 있으니, 뒷좌석 헤드룸은 거의 없는 것으로 여겨야 하고 트렁크공간 역시 작고 입구가 좁아 짐을 부리기에 불편한 구조. 여성스런 이미지 또한 뉴비틀이 안고 있는 장점이자 단점이다.
하지만 동글동글한 뉴비틀은 휠베이스가 자그마치 2,516mm에 이르고, 특히 트레드가 넓어 핸들링과 코너링 성능이 좋은 편이었다. 엔진은 1.4L 75마력 휘발유를 시작으로 1.6L~2.3L에 이르는 5가지 휘발유와 1.9L TDI 90마력/100마력 등 2가지 디젤 엔진을 얹었다. 한때(2001~2003년) VR6 엔진(225마력의 V6 3.2L 유닛)을 얹은 고성능 모델 RSi가 나오기도 했지만 250대 한정판매되는 데 그쳤고 값도 5만8,000달러에 이르렀다. 국내 판매 모델은 아쉽게도 2.0L 115마력 가솔린 엔진 한 가지. 성능의 갈증 때문에 기자는 한때 병행수입으로 들어온 1.8L 터보 150마력 버전을 눈여겨 본 적이 있었다. 동글동글한 녀석이 달리기까지 잘하는 것을 상상해 보라. 눈가에 웃음이 절로 나지 않는가.
13년 만에 더 오리지널로 진화
앞서도 말했지만 사실 클래식 비틀은 뉴비틀처럼 반원을 3개 겹쳐놓은 모양이 결코 아니었다. 동그란 3개의 원이 뉴비틀을 통해 비틀의 상징이 되었지만 이번에 선보인 신형 비틀은 과감히 뉴비틀의 디자인 비율을 버리고 오리지널의 비율을 추구했다. 즉, 보닛이 앞으로 전진하고 앞창의 각도를 좀 더 세운 오리지널의 모양을 택한 것. 덕분에 완벽한 원의 비율은 깨졌지만 한결 스포티한 모습이 되었다. 이러한 신형 비틀의 탄생을 예고한 건 2005년 북미국제오토쇼에서 나온 래그스터(Ragster) 컨셉트카였다. 래그스터는 새로운 스타일의 지붕과 낮은 루프라인으로 신형 비틀이 동그란 원형에서 탈피할 것임을 예고했다.
신형 비틀의 디자인 테마는 ‘Design a new original’. 폭스바겐그룹 디자인 총책 발터 데 실바(Walter de Silva)와 폭스바겐 브랜드 디자인 총괄 클라우스 비숍(Klaus Bischoff)은 뉴비틀보다 길이를 152mm 늘이고 너비는 84mm 넓히면서 지붕은 12mm 낮췄다. 덕분에 보닛이 길어졌고 뒤로 밀려난 윈드스크린은 경사가 급해졌으며, 이로 인해 탄생한 더 비틀은 구형보다 한결 다이내믹한 인상이다. 새로운 다이내미즘을 추구한 결과이다. 바이제논 램프를 얹고 LED 데이타임 램프를 양쪽에 둘렀으며 범퍼 모서리에 각을 준 앞모습은 그들의 주장대로 한결 다이내믹하다. 동그란 원에서 탈피한 덕에 바깥으로 열리는 선루프의 크기가 한결 커졌고, 뒤창 아래에 자리한 스포일러는 마치 뉴비틀 RSi의 그것을 연상시킨다.
동그란 익스테리어 디자인이 실내 곳곳에 차용되었던 뉴비틀과 달리 신형 비틀의 인테리어는 최신 폭스바겐다운 모습이다. 속도계를 중심으로 좌우에 타코미터와 연료게이지를 크게 배치했고, 대시보드 위쪽에 옵션으로 오일 온도계와 스톱워치, 터보 과급압 게이지를 나란히 얹어 스포티한 느낌을 살렸다. 커다란 내비게이션이 센터페시아 상단에 자리해 시인성이 좋고 하단에는 공조장치를 비롯한 몇 가지 장비들을 배치했다. 눈에 띄는 것은 대시보드를 포함한 트림의 색상. 기본적인 색상(‘비틀 트림’)은 검은색 하이글로시 재질이며 ‘디자인 트림’에서는 보디컬러와 같은 색상이 적용된다. 최고급인 ‘스포츠 트림’에는 카본이 장착된다. 언뜻 보아서는 스포티한 최신 폭스바겐의 실내와 같지만 조수석 앞 대시보드 위쪽에 글로브박스를 단 것은 클래식 비틀에서 힌트를 얻은 것. 별도의 큰 글로브박스가 그 아래에 자리하고 있다.
전체적인 루프 높이는 뉴비틀보다 낮아졌지만 루프가 뒤로 길어진 탓에 뒷좌석에서의 헤드룸이 한결 좋아졌다. 트렁크도 209L에 불과했던 뉴비틀에 비해 310L로 늘어났고 게이트가 커져 짐을 넣고 빼는 것이 한결 수월해졌다. 눈여겨 볼 또 하나의 특징은 오디오. 기본적으로는 골프, 제타 등에 쓰이는 VW 공용 오디오를 얹지만 신형 비틀을 위해 폭스바겐은 펜더-파나소닉 프리미엄 사운드 시스템을 마련했다. 펜더는 에릭 클랩튼, 지미 헨드릭스가 사랑했던 기타 브랜드다.
뉴비틀과 달리 신형 비틀은 더욱 강력해진 엔진을 다양하게 얹는다. 1.2 TSI 105마력 엔진을 시작으로 1.4 TSI 160마력, 5기통 2.5 170마력(북미 및 남아메리카 전용), 2.0 TSI 200마력 등 4종류의 가솔린 엔진에 1.6 TDI 105마력과 2.0 TDI 140마력 등 2종류의 디젤 엔진을 얹는다. 미국시장에는 2.5L 및 2.0 TSI 가솔린과 2.0 TDI 디젤 등 세 종류가 투입되고 나머지 시장에는 지역별 특성을 고려해 수입이 결정된다. 이 가운데 2.0 TSI는 블랙과 화이트 터보의 스페셜 버전으로도 판매될 예정이며 유럽에서는 2.5L MPI 엔진을 제외한 모든 라인이 판매된다. 아울러 2.5를 제외한 모든 엔진에 6~7단 듀얼 클러치 DSG 변속기가 결합된다(토크 25.5kg·m 이하는 7단, 35.7kg·m 이하는 6단). 핸들링 성능을 높이기 위해 앞 맥퍼슨 스트럿, 뒤 멀티링크 서스펜션을 장착하고 전자식 파워 스티어링을 사용했으며 코너링에서 안쪽 타이어의 브레이크를 살짝 잡아 자연스럽고 빠른 코너링을 유도하는 장비도 얹었다. 또한 160마력과 200마력을 내는 가솔린 모델에는 코너링 때 안쪽 타이어의 브레이크를 살짝 잡아 뉴트럴하면서도 빠른 코너링을 유도하는 전자식 디퍼렌셜 록 XDS를 달아 핸들링 성능을 더욱 끌어올렸다.
우리에겐 그저 비틀로 불리지만 Kafer, Vocho, Coccinelle, Fusca, Maggiolino, 갑각충 등 지역이나 나라마다 다양한 별칭을 지니고 있는 것도 이 차의 매력이다. 신형 비틀은 고객이 원할 경우 영문 Beetle 대신 이들 이름을 뒤쪽에 달고 나올 수 있다고.
운전하기 재미있어졌어요!
더 비틀을 처음 만난 건 독일입성 3일째 되는 날 베를린에서였다. 이번 출장 중 유일하게 비가 내린 날 하필 신형 비틀의 시승이 잡혔다. 신형의 성능을 마음껏 음미하기에 아쉬움에 많은 날씨였지만 물난리로 아우성인 서울에 비하면 베를린의 촉촉한 비 정도는 그저 감사할 따름이었다. 더 비틀과 함께 클래식 비틀까지 시승할 기회를 잡은 것도 행운이었다.
한국에서는 기자를 비롯해 모두 5명이 초대된 데 비해 중국 기자들은 수십 명은 족히 되어보였다. 폭스바겐에 있어 중국시장은 그 어느 곳보다 중요한 곳이니 당연한 일일 터. 독일과 미국에서 함께 발표했다지만 모터쇼를 통한 공식 데뷔를 중국으로 잡은 것만 보더라도 폭스바겐이 중국시장에 거는 기대를 충분히 읽을 수 있다.
비틀의 베를린 시승센터에는 더 비틀이 이젠 더 이상 귀엽고 동글동글하기만 한 차가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는 홍보물로 가득했다. 이들 중 눈에 띈 것은 ‘시속 200km에 도달하는 데까지 66년이 걸렸어요’, ‘Flower(X), Power(O)’ 등 그동안 성능보다는 스타일로 어필했던 뉴비틀의 이미지에서 벗어나려는 흔적이 역력했다. 이런 점을 염두에 두었을까. 시승차로 준비된 신형 비틀은 2.0L 터보 엔진을 얹은 200마력짜리 최고 모델이었다.
쏟아지는 비를 피해 익스테리어를 살펴볼 겨를도 없이 운전석으로 뛰어 들어갔다. 실내는 예상대로 최신 폭스바겐의 스포티 모델처럼 안락하면서도 세련되었다. 루프를 낮추었지만 앞좌석 헤드룸이 충분하고 뉴비틀처럼 개방적이지 않은 시야는 오히려 스포티한 긴장감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처음 계기판 속을 들여다보았을 때 커다란 속도계 좌우로 자리한 타코미터와 연료게이지, 특히 연료게이지의 어마어마한 크기에 압도당했다. 그러나 시승 후에는 고유가 시대의 커다란 연료게이지가 스트레스가 아니라 연비가 좋은 비틀의 장점을 실컷 경험하라는 의도된 장치로 느껴졌다. 아쉽게도 시승차에는 대시보드 상단에 3개의 미터가 없는 대신 덩그런 수납공간이 자리잡고 있었다.
2.0 TSI 200마력 엔진은 골프 GTI에도 얹히는 유닛. 반응이 자연스럽고 힘에는 시종일관 여유가 있었다. 특히 가속 때에는 제법 스포티한 사운드가 실내를 감싸돌아 드라이빙의 즐거움을 배가시켰다. 서스펜션은 조금 부드러운 세팅. 동행한 미국형 비틀(17인치)과 달리 시승차는 16인치 휠을 달고 있었다. 스포티한 6단 DSG의 반응은 깨끗했으나 이따금 다운 시프트 때 약간의 진동이 느껴지기도 했다. 전체적인 드라이빙 느낌은 스포티한 골프 GTI와 비슷했다. 시승 중 느낀 유일한 불편함은 뒷유리창에 와이퍼가 없다는 것. 의외로 빗물이 잘 흘러내리지 않아 후방시야 확보에 불편함을 느꼈다. 그러나 뒤 와이퍼를 단 비틀을 상상하니 ‘영 아니올시다’이다.
중간지점에서 운전자를 바꿀 때 잠시 뒷좌석에 앉아본 후의 느낌은 이렇다. ‘헉, 비틀 뒷좌석이 앉을 만해졌어요.’ 헤드룸이 일반 세단처럼 넉넉한 건 아니지만 뉴비틀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좋아졌다. 이쯤 되면 패션카란 말은 집어치우는 게 좋을 듯. “신형 비틀은 더욱 오리지널의 정신을 계승하면서 스포티해졌다”는 폭스바겐의 주장에 수긍할 수밖에.
더 비틀을 시승한 후 잠깐 오리지널 비틀을 시승할 기회를 가졌다. 아쉽게도 독일에서 생산된 말 그대로의 ‘오리지널’이 아니라 멕시코산 90년대 모델이었으나 클래식 비틀의 향수를 느끼기엔 부족함이 없었다. 조그마한 와이퍼, 폴폴거리는 공랭식 엔진음은 느린 가속에서도 꽤 방방거려 기분만큼은 최고로 스포티해졌다. 지금의 비틀로 이런 스포티함을 느끼려면 적어도 속도가 몇 배는 되어야 할 터. 엔진음이 그대로 실내에 유입되었으나 실내공간은 겉보기보다 여유로웠다. 특히 뒷좌석에 탄 사람이 헤드룸 때문에 곤욕을 치를 일은 없었다. 파워 스티어링 없어도 잘 돌아가는 스티어링 휠과 조그마한 삼각 쪽창, 방향 표시 없이 그저 깜빡이는 실내 방향지시등에서는 예전 차에 대한 짙은 향수가 배어 있었다.
디젤 비틀의 국내 상륙을 기다리며……
아쉽게도 이번 시승 행사에서 디젤 모델은 타지 못했다. 그러나 골프 GTI와 2.0 TDI를 타 본 경험을 바탕으로 할 때 2.0 TDI 정도면 충분히 잘 달리면서도 좋은 연비를 누릴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시대의 아이콘을 타면서도 연비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는 건 크나큰 메리트다. 국내에서 판매되는 가솔린 엔진의 미니(MINI)에서는 결코 누릴 수 없는 호사다.
신형 비틀의 한국시장 론칭은 내년 상반기로 예상된다. 특히 이번에는 TDI 모델까지 검토하고 있다니 기대가 남다르다. 한국에서는 골프가 큰 인기를 끌고 있는데 최근에는 제타 역시 골프처럼 수개월은 기다려야 살 수 있는 인기차로 급부상했다. 이런 상황에서 디젤 비틀까지 더해진다니 반갑지 아니한가. 골프나 제타처럼 5도어는 아니지만 스타일 때문에 실용성을 포기했던 뉴비틀과 달리 이젠 스타일과 실용성 그리고 무엇보다 드라이빙의 즐거움까지 느낄 수 있는 팔방미인으로 탄생했으니 말이다.
한때 폭스바겐 코리아는 ‘폭스바겐=비틀’의 이미지를 탈피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었다. 프리미엄 준중형차 골프, 독일산 중형차 파사트, 최고급 대형 세단 페이톤을 판매해야 하는 상황에서 대중적인 비틀의 이미지는 프리미엄 브랜드로 가고자 하는 폭스바겐 코리아가 넘어야 할 산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는 그 누구도 폭스바겐을 비틀과 동일시하지 않으며 비틀 역시 결코 대중적인 차가 아니다. ‘The original German’이란 이미지가 각인된 상황에서 신형 비틀의 등장은 메이커에게도 소비자에게도 반가울 따름이다. 잘 달리고 연비도 좋고 스타일리시하면서도 아이코닉한 차. 이런 차를 마다할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자동차생활, 2011년 09월호 - 저작권자 (주)자동차생활,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