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출증
박희연
툭하면 그는 방바닥에 똥을 뭉개놓았다.
이놈아 죽지, 왜 죽지도 않니…
그의 똥을 치우던 아버지는 울었다.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왔을 때
그가 또 똥을 싸놓았는데
주먹만 한 똥 덩어리가 엉덩이에 매달려
떨어지지 않고 있었다.
엉거주춤 서 있던 그가 날 보고 웃었다.
정박아… 난 정박아의 동생…
무언가 주체할 수 없는 기분이 들어
나는 막 소리치고 싶었다.
어떻게 인생이 이럴 수 있냐고
왜 나는 이렇게 살아야하느냐고…
책가방을 내려놓고 고무장갑을 찾아 꼈다.
끊어질 듯 끊어질 듯
끊어지지 않는 똥 덩어리
내가 막 잡아떼려고 했을 때
그가 ‘으으으’하고 신음했다.
바닥에 뚝뚝 떨어지는 선지
그것은 탈장이었다.
그간 그의 똥을 숱하게 치워왔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이어서
뜨겁게 울고 싶은 것은 처음이어서
무섭게 가슴만 뛰고 또 뛰었다.
직장(直腸)을 매달고 있는 저 핏줄이 끊어질까봐
저 가느다란 핏줄이 영 끊어질까봐
난 열심히 그 장을 항문에 갖다 댔지만
도로 밀어 넣기에는 구멍이 턱없이 작았다.
죽어버려라.
차라리 나 같은 건 죽어버려라.
살아온 날은 모조리 아득하기만 해
한없이 무력한 스스로를 저주할 때
기적처럼 직장이 항문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여느 때처럼 그의 사타구니를 씻겨주고
새 옷으로 갈아입혀 주었다.
<시작노트>
열 살 때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다운증후군 작은오빠를 돌봐줄 사람이 없었다. 새벽장사를 나가야했던 엄마는 임시방편으로 근처에 사는 사촌고모에게 부탁을 했다. 내 임무는 등하교 길에 작은오빠를 데려다주고 다시 데려오는 일이었다.
아침에 눈을 떠 씻고 도시락을 챙기고, 작은오빠 옷을 입혀 고모네 가는 길은 언제나 절망이었다. 오빠가 창피하지는 않았다. 내가 태어난 순간 어떤 모습으로든 그는 나의 오빠였다. 다만 지긋지긋한 지각이 문제였다.
오빠 손을 잡고 학교 가는 길과 반대인 고모네로 올라가자면, 아이들은 ‘와와’ 함성을 지르며 언덕배기를 뛰어 내려갔다. 난 걸음을 멈추고 아이들을 뒤돌아보기 일쑤였고, 그러다 다시 오빠 손을 꼭 붙들어 잡아끌었다.
“가자아-”
신발주머니를 든 다른 한손으로 가끔 눈물을 훔쳤는지 모르겠다. 아니 다만 서러운 기억으로 그렇게 추억할 뿐, 실제로 눈물 짤 겨를 없이 발만 동동 굴렀는지도 모르겠다. 기억은 쉽게 왜곡되므로 오빠 등짝을 한 대 후려쳤는지도 모를 일이다.
종종 산다는 게 고모네 가는 길 같아서 절망이 많다. 절망을 왜곡하지 않고 직시하는 일은 가능할까? 쓰지 않고 살 수 있다는, 쓸 데 없는 희망은 집어치워 버린다. 끊으려야 끊을 수 없는 핏줄처럼 연신 동동거리며 쓴다.
꼭 붙들고 잡아끌며, 제발 가자아-.
박희연
2021년 『상상인』 신춘문예 등단
- 2020년 사북항쟁 40주년 기념 뮤지컬 <사북, 화절령 너머> 대본 집필
- 2022년 아르코 문학창작기금 수혜 (발표지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