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연휴가 지나고 사흘 만에 맞이하는 주말이다. 이슬이 내리기 시작한다는 백로가 지난 지 한참이고, 내일이 추분이건만 어제까지 더위가 맹위를 떨쳤었다.
이틀째 내린 비 탓인지 오늘 아침 기온은 뚝 떨어져 서늘한 기운마저 느껴진다.
분당에서 차를 몰아 경의중앙선 풍산역과 경의로를 사이에 두고 자리한 '일*칼국수' 본점에 도착하니 거의 점심때가 되었다. 식당 건물 전면 벽면에 'Since 1982'라는 글씨가 적혀 있는 것으로 보아 식당의 역사가 40년이 조금 넘었음을 알 수 있다.
국수라면, 어린 시절 시골에서 어머니가 홍두깨로 밀어서 손수 만들어 주시던 손칼국수가 제일 먼저 떠오른다. 콩가루를 묻혀 가며 국수를 넓게 밀고 난 후 칼로 썰 때, 그 옆에 앉아 기다리다가 꽁지 한 조각을 얻어 부엌에서 짚불에 구워 먹던 모습이 선하게 떠오른다. 장터 국숫집에는 늘 국수 기계가 돌아가고, 마당에 걸린 빨랫줄처럼 긴 줄에는 금방 뽑은 국수를 널려 말리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바쁜 농촌 일손을 더는데 단단한 몫을 했던 기계국수는 대개 삶아서 애호박 고명에 간을 맞추어 먹거나, 비빔국수로 만들어 먹었다.
고향을 떠나 사회인이 되어서는 자장면, 짬뽕, 냉면, 밀면, 막국수, 각종 라면 등 온갖 종류의 면(麵)을 접하게 되었다. 그중에서 이곳 닭칼국수 집은 1995년 9월 결혼과 동시에 일산 탄현으로 이주해서 2000년 초까지 4년여를 거주하면서 아내와 함께 가끔 찾곤 했던 터라 특별히 기억에 남아 있는 곳이다.
중국 근무는 면류(麵類) 음식 체험의 지평을 크게 넓힌 계기가 되었다. 베이징의 자장면(炸酱面; 쟈쟝미엔) 샨시(山西)의 도삭면(刀削面; 따오샤오미엔), 허난(河南)의 회면(烩面; 후이미엔), 란저우(兰州)의 우육면(牛肉面; 니우러우미엔), 쓰촨(四川)의 단단면(担担面; 딴딴미엔), 샨시(陕西)의 유발면(油泼面; 여우포미엔)과 비앙비앙면, 옌지(延吉)의 냉면(冷面; 렁미엔), 류저유(柳州)의 라사분(螺蛳粉; 뤄쓰펀) 등 오랜 세월 각지 특유의 전통을 지켜온 풍미를 접하는 경험은 특별했다.
식당 건물 앞에는 자기 차례를 기다리는 손님들이 긴 줄을 이루었고, 주차장 안내원이 40여 분을 기다려야 한다고 귀띔한다. 긴 줄을 보며 문득 '근처 주민들은 모두 이곳에서 점심을 해결하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 같으면 같은 류(類)의 다른 음식점을 찾아서 발길을 돌렸겠지만, 20여년 전 기억의 창고에 아로새겨진 미각이 긴 줄 뒤로 마음을 붙들어 매었다.
족히 40여 분을 기다려 백여 명이 앉을 수 있는 식당 내부의 빈자리에 자리를 잡았다. 주문한 지 10여 분 후에 서빙하는 아주머니가 닭 칼국수, 바지락 칼국수, 갓 담근 배추김치를 함께 내왔다. 예전 모습 그대로의 비주얼에 국물과 면이 오래되어 희미하게 퇴색된 예전 그 맛의 기억을 되살려 준다.
결혼 후 첫 보금자리였던 탄현의 옛 아파트는 그 자리 그 모습 그대로였지만 세월의 주름이 내려앉은 우리처럼 많이 낡아 있었다. 귀로에 일산을 뒤로하고 자유로로 접어들었다. 이십여 년 전 일산에서 떠나올 때 두 살배기였던 아들이 휴대 전화에서 이문세의 노래 <가을이 오면>을 틀었다.
"길을 걸으면 불러보던 그 옛 노래는
아직도 내 마음을 설레게 하네
하늘을 보면 님의 부드런 고운 미소
가득한 저 하늘에 가을이 오면~"
자유로와 강변북로를 거쳐 집으로 달리는 차창 밖으로 비가 그친 서울을 둘러싼 북한산 관악산 청계산 등이 눈앞까지 다가와 속살까지 보여줄 듯 선명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길고 긴 여름의 끝 언저리가 태풍과 함께 물러나면, 바야흐로 우리 산하는 가을빛으로 물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