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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라지의 비밀(마 13:24-30,36-43)
마태복음 13장은 지난 주에 살펴본 씨뿌리는 비유를 시작으로 7가지 비유를 통해서 천국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관심은 천국입니다. 왜냐하면 잃어버린 천국을 회복하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핵심은 천국입니다. 어떻게 하면 천국을 회복할 수 있습니까? 예수님이 첫번째로 외쳤던 복음에서 그 비밀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는 말씀입니다.
회개와 천국입니다. 씨뿌리는 비유에서도 길가와 같은 밭, 돌밭, 가시밭같은 심령은 열매를 맺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것을 기경해서 옥토로 만들라는 말씀입니다. (호 10:12) "너희가 자기를 위하여 공의를 심고 인애를 거두라 너희 묵은 땅을 기경하라 지금이 곧 여호와를 찾을 때니 마침내 여호와께서 오사 공의를 비처럼 너희에게 내리시리라" 묵은 땅을 기경하라는 권고입니다. 어떻게 묵은 땅을 기경할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한 마디로 말하면 회개입니다. 지금의 영적 현주소를 바로 깨닫고 하나님앞에 자기의 모든 죄를 자백하고 돌이키면 용서해주시고 새롭게 해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그것이 바로 구원입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바로 그 메시지입니다. 호세아에서도 그렇게 할 때 마침내 여호와께서 오셔서 공의를 비처럼 내려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가라지 비유도 역시 하나님 나라를 설명하기 위해서 사용하신 비유입니다.
24절, "예수께서 그들 앞에 또 비유를 들어 이르시되 천국은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과 같으니" 천국은 마치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과 같다고 하였습니다. 주인은 고르고 뽑아 좋은 씨앗을 옥토에 뿌렸는데, 나중에 보니 뿌리지도 않은 가라지도 났다는 겁니다. 가라지가 무엇입니까? 가라지는 벼와 함께 자라는 피와 같고, 보리밭의 깜부기와 같습니다. 잡초입니다. 유대나라에 가라지는 보리와 비슷하게 생겼기 때문에 독보리라고 부릅니다.
이것은 어렸을 때에는 보리와 너무 비슷하기 때문에 보리밭에 자랄 때는 분별하기 어렵습니다. 또 논농사 때 보면 벼와 함께 자라는 피도 어릴 때에는 벼와 분별이 어렵습니다. 분명한 것은 독보리나 논에 피는 주인이 씨를 뿌리지 않아도 나오는 것들입니다. 이것들은 자랄 때 보면 알곡보다 더 잘 자랍니다. 이삭이 필 때까지는 거의 구분이 안되지만 추수 때가 되면 알곡은 고개를 숙이고 있지만 가라지는 고개를 숙이지 않고 뻣뻣합니다.
물론 열매도 다릅니다. 그러니까 초기에 가라지를 뽑으려면 뿌리를 보아야 알 수 있고 뿌리를 보려면 뽑아야 하는데 그러다가 잘못해서 알곡을 뽑아 버리기가 쉽습니다. 종들이 가라지를 발견하고 깜짝 놀라 주인에게 보고합니다. 가라지가 밀과 함께 자라고 있으니, 당장에 가서 뽑아 버릴까요? 주인은 추수 때까지 가만 두라고 합니다. 뜻밖의 대답입니다. 36절에 보면 제자들이 주님께 가라지 비유를 설명해 달라고 합니다.
37절 이하에서 예수님께서 설명해 주십니다. [37] "대답하여 이르시되 좋은 씨를 뿌리는 이는 인자요 [38] 밭은 세상이요 좋은 씨는 천국의 아들들이요 가라지는 악한 자의 아들들이요 [39] 가라지를 뿌린 원수는 마귀요 추수 때는 세상 끝이요 추수꾼은 천사들이니"
좋은 씨를 뿌린 자는 인자, 곧 주님 자신입니다. 밭은 세상이고, 좋은 씨는 천국의 아들, 가라지는 악한 자의 아들, 가라지를 심은 사람은 마귀, 추수꾼은 천사, 추수 때는 세상 끝 날이라고 하십니다. 단순하고도 명쾌한 해설입니다. 이윽고 가라지의 최후를 말씀합니다. 40-42절, "그런즉 가라지를 거두어 불에 사르는 것 같이 세상 끝에도 그러하리라 [41] 인자가 그 천사들을 보내리니 그들이 그 나라에서 모든 넘어지게 하는 것과 또 불법을 행하는 자들을 거두어 내어 [42] 풀무 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여기 나오는 풀무불은 대장간의 불입니다. 쇠도 녹이는 불입니다. 마지막 하나님 심판의 불은 풀무불인데 타 없어지지 않는 영원한 불입니다. 이러한 가라지의 최후와는 달리 알곡들의 최후는 이렇습니다. 43절입니다. "그 때에 의인들은 자기 아버지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나리라 귀 있는 자는 들으라." 지금 함께 알곡과 가라지가 섞여 살 기 때문에 구분이 잘 안되지만 추수 때가 되면 이 둘의 운명은 확연하게 갈립니다.
지금은 주인이 추수 때까지 가만 두라고 했기 때문에 알곡과 가라지가 뒤섞여 살지만, 추수 때가 되면 알곡은 곡간에, 가라지는 영원한 풀무불에 들어갑니다. 여기서 우리가 얻는 중요한 사실 몇 가지가 있습니다. 우선 왜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에 온갖 악이 넘쳐 나는 걸까요? 저가 어렸을 때 부모님이 밭농사를 지을 때 조금씩 도왔는데요, 농사를 짓는데 가장 큰 장애는 병충해도 있지만 사실은 잡초들입니다. 농사는 잡초들과의 전쟁입니다.
비만 오면 그 다음날 가보면 잡초가 잔뜩 자라 있습니다. 아주 지독하고 끈질깁니다. 가라지는 심은 적도, 비료를 준 적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더 빨리 자라고 가만히 내버려 주면 온밭을 뒤 덥습니다. 세상도 마찬가집니다. 악이 얼마나 공격적이고 파괴적입니까? 우리가 날마다 접하는 소식은 미담보다는 흉악한 소식들이 더 많습니다. 훔치고 죽이고, 사기 친 얘기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주 좌절하고 회의에 빠집니다.
하나님이 계시다면 왜 세상이 이 모양인가? 정말 하나님은 선하고 의로우신가? 하나님이 심판주라면 왜 마냥 지켜만 보고 계시는가? 왜 이렇게 세상이 불공평합니까? 하나님이 역사의 주인이신데 왜 역사는 자꾸 거꾸로 가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역사의 주권자이신 하나님은 정의로운 분인데 왜 세상은 이 모양인가 라는 겁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고 보시기에 심히 좋았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매 번 당신이 창조한 세상을 바라보시며 감탄을 금치 못했습니다. 본문도 주인이 분명 좋은 씨만 뿌렸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째서 뿌리지도 않은 가라지가 나느냐는 겁니다. 교회도 원래는 알곡만 있어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주님은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25절, "사람들이 잘 때에 그 원수가 와서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더니" 28절도 보십시오. "주인이 이르되 원수가 이렇게 하였구나 종들이 말하되 그러면 우리가 가서 이것을 뽑기를 원하시나이까" 원수가 그랬다고 합니다. 그런데 39절을 보면 그 원수가 마귀라고 하십니다.
마귀가 주인의 밭을 유린한 주범이라고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다 하수인이요, 마귀가 진범입니다. 주님이 세상에 알곡을 뿌리듯이 마귀도 밤을 틈타 자기의 종자를 뿌립니다. 왜 심지도 않았는데 가라지라는 못된 독초가 나는 줄 아시겠습니까? 마귀의 짓입니다. 알곡들을 해치고, 자기의 세력을 확장하려는 사탄의 공작입니다. 이게 바로 가라지의 비밀입니다. 이게 바로 세상 악의 비밀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사탄의 역할 가운데 두 가지를 배우게 됩니다.
첫째, 마귀는 가라지를 밤에 몰래 뿌렸습니다. 이것이 마귀가 하는 일입니다. 마귀는 파괴자요 살인자요 거짓말장이입니다. 마귀는 참소하는 자이며 중상모략하는 자입니다. 마귀의 궁극적인 목적은 하나님의 아들들이 드러나는 것을 막는 것입니다. 그들을 그 영혼을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것입니다.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기 위해서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심은 씨앗, 하나님의 아들들이 자라지 못하게 방해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천국을 방해하는 세력들입니다. 천국은 방해하는 세력들 속에서 자라납니다. 마귀는 가라지를 심어 놓았습니다. 25절을 보면 모든 사람들이 잠자는 밤에 마귀는 몰래 역사하였습니다. 마귀에게 억압된 사람들은 무슨 일이든지 밤에 합니다. 밤에 나쁜 짓을 많이 합니다. 마귀는 밤에 와서 가라지를 뿌리고 갔습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잠을 잘 때에, 밤에 사탄은 와서 씨를 뿌리는 것입니다. 질병으로 인해서 고통을 당하고 있는 그 밤에, 실직을 해서 고통을 당하면서 애쓰는 그 밤에, 이런 저런 시험의 밤에 마귀는 와서 가라지를 뿌립니다.
마귀는 이처럼 사람들이 잘 때 교회에도 사회에도 가라지를 뿌립니다. 여기 잘 때라는 말은 영적인 의미에서 우리 심령이 졸고 있을 때를 말합니다. 그때가 언제입니까? 기도하지 않을 때입니다. 기도하지 않고 세상의 유혹의 한눈을 팔 때에 말씀을 듣지않을 때 영적으로 깨오 있지않을 때 가라지를 뿌립니다. 이렇게 우리가 잘 때에 개인의 심령에도 그 가정에도 가라지를 뿌립니다.
그래서 정신적으로 영적으로 신앙적으로 근신해야 합니다. 그래야 마귀에게 당하지 않습니다. 졸거나 자다가는 그야말로 무방비로 당합니다. 마귀는 야행성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우리가 깨어 있으면 우리 방어선을 뚫지 못하지만 자면 당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막 14:38)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우리가 무서워서가 아니라 우리 안에 계신 성령이 두려워 우리를 범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성령 충만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잘 때 마귀가 자기의 종자를 뿌렸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다. 마귀의 궁극적 목적이 무엇입니까? 어떻게든 알곡들을 넘어뜨리려는 겁니다. 마귀는 알곡을 공격하여 가라지로 전락하게 하려고 합니다. 그러므로 알곡신자라고 방심하지 말고 영적으로 깨어 있어 선한 싸움을 싸우고 믿음을 지키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가 졸고 있을 그때에, 잠자고 있을 그때에, 기도하지 아니할 그때에 말씀을 보지 않을 그 때에 사탄은 가라지를 자꾸 뿌립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일 중요한 것은 가라지를 뿌리지 못하도록 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범하지 말아야 됩니다. 미국의 존경받는 목회자중의 한 분인 빌 하이벨스목사님은 이런 책을 썼습니다. "너무 바빠서 기도합니다." 분주한 일상생활가운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살을 살기를 원한다면 기도를 쉬지말아야 합니다.
사무엘은 기도를 쉬는 것이 죄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도 기도를 쉬는 것이 죄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지는 않습니까? 바쁘다는 핑게로 합리화시키지 말고 기도하는 일을 통해 하나님과 교제를 나누고 하나님이 주시는 힘으로 하루를 승리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영혼이 잠자지 않도록 늘 깨어서 기도해야 됩니다. 그것만이 사탄이 가라지를 뿌리는 것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둘째, 마귀는 언제나 진리와 비슷한 것을 심습니다. 마귀의 방법은 모방입니다. 알곡과 비슷한 가라지를 뿌립니다. 앞에서 말씀을 드린 것처럼 가라지는 싹이 나고 줄기가 자라서 열매를 맺을 때까지 구분이 안된다는 사실입니다. 씨의 모습도, 줄기의 모습도 잘 구분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마귀의 모습입니다. 마귀는 언제나 양의 가죽을 쓴 이리입니다. 천국의 아들들과 비슷한 모습을 하고 비슷한 행동, 비슷한 말을 합니다.
마귀가 얼마나 종교적인지 아십니까? 기도도 잘 하고 봉사도 잘합니다. 예수 믿는 척을 아주 잘합니다. 지능지수 낮은 마귀는 "나는 마귀다" 하면서 나타나는 마귀입니다. 까만 망토를 입고 이빨을 드러내고 나타나는 마귀는 아무도 무서워 하지 않습니다. 마귀는 결코 그렇게 나타나지 않습니다. 가장 신앙적이고 매력적이고 그럴듯하게 나타납니다. 그러나 그 내용을 보면 칼날과 발톱이 숨어 있고 무서운 이빨을 갈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럴듯한 사람을 조심해야 합니다. 때가 되면 마귀는 양의 가죽을 벗어 버립니다. 때가 되면 발톱을 내어 놓고 이빨을 내어 놓습니다. 그리고 인정 사정없이 양을 찍어 버립니다. 이것이 마귀의 본질입니다.
그러면 이러한 현실에 부딪쳤을 때 어떻게 해야 합니까? 가라지가 내 옆에서 자라고 있을 때, 가라지가 이 사회속에서 자라고 있을 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27절에 "집 주인의 종들이 와서 말하되 주여 밭에 좋은 씨를 심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러면 가라지가 어디서 생겼나이까?"라고 하였습니다. 가라지가 도대체 어디서 생겼습니까? 하룻밤 자고 났더니 원치 않는 것이 자라고 있는데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문제가 생겼을 때는 먼저 그 원인을 규명해야 합니다. 사탄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들어왔습니다. 사탄이 들어가지 못하는 곳은 이 땅에 그 어느 곳도 없습니다. 교회에도 사탄은 들어옵니다. 우리가 선한 일을 하고 기도하고 나면 곧 마귀가 달라붙습니다. 그리고 신앙을 교란시킵니다. 가라지가 내 주위에 자라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사랑하였는데 이상하게도 갑자기 미워지기 시작합니다. 마귀는 우리에게 기도하지 않고도 신앙생활 할 수 있다고 속삭입니다.
기도없이도 교회 일을 할 수 있다고 혼돈시킵니다. 은혜를 율법으로 바꿉니다. 이것이 마귀가 하는 일입니다. 은혜롭게 살던 삶을 종교적인 율법에 얽매이게 만듭니다. 무엇인가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내 안에서 생기게 됩니다. 자기도 모르게 소망이 절망으로, 축복이 저주로, 성공이 실패로 바뀝니다. 잘 하자고 시작하였는데 결과가 이상하게 꼬이는 것입니다. 내가 왜 이렇게 되었는지, 내 마음에 왜 이렇게 사탄의 마음이 심어졌는지, 그 원인을 규명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가라지에 대한 주인의 처방은 무엇입니까? 종들이 당장 가라지를 뽑을까요? 라고 제안하니까 주인은 추수 때까지 그대로 두라고 말씀합니다. 추수 때는 세상 종말, 심판입니다. 이게 우리에게 가장 답답한 부분입니다. 당장 낫을 대거나 뿌리를 뽑으면 좋겠는데 주님은 가만 두라고 합니다. 그것도 추수 때까지 가만 두라고 하십니다. 이게 주님과 우리와 덜 맞는 부분입니다. 당장에 심판하고 싶어도 주님은 추수 때까지 참으라고 하십니다. 인내가 필요합니다. 인내는 기다리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이 로마서 5:2,3절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을 소망을 이루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하나님을 믿느니 내 주먹을 믿으라는 사람도 하나님은 가만히 두십니다. 시편을 살펴보면 의인의 고통을 호소하는 장면이 자주 나옵니다. 왜 의인이 고난을 당하고 악인이 형통하느냐는 것입니다. 시 13편을 보면 "나의 영혼이 번민하고 종일토록 마음에 근심하기를 어느 때까지 하오며 내 원수가 나를 치며 자랑하기를 어느 때까지 하리이까?"(시13:2). 왜 악인들의 번성을 방관하시냐고 항의합니다.
그냥 내버려 두라고 하신 주님 말씀의 진정한 목적은 가라지를 위해서가 아닙니다. 29절입니다. "주인이 이르되 가만 두라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 알곡을 위해서입니다. 이 가라지는 처음에는 알곡처럼 보입니다. 구분이 안됩니다. 그러나 이 가라지가 알곡과 구별되어 보일 때는 이미 가라지의 뿌리가 알곡의 뿌리와 뒤엉켜 있을 때입니다. 정체가 드러날 때는 이미 그 뿌리를 알곡의 뿌리 속에 깊이 넣고 있을 때입니다.
이때 가라지를 뽑으면 알곡마저 뽑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가라지를 그냥 두라고 하신 것입니다. 고통이 있고, 악이 득세하고, 불의가 판치는 것을 보면서도 가라지를 뽑다가 알곡을 뽑을까 봐 그냥 두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열 개의 가라지보다 한 개의 알곡을 더 귀하게 여기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십니다. 주님은 악이 있는 것을 알면서도 그대로 놓아두게 하신 것입니다.
추수 때까지 심판을 유보하시는 겁니다. 추수 때 풀무불에 던진다고 하십니다. 완전하고 완벽하게 처리하겠다는 겁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악이 아무리 득세하고 가라지가 승승장구한다 해도 억울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가라지의 종말은 이미 정해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심판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가라지와 함께 운명적으로 세상 끝까지 함께 살아야 합니다. 그 가운데 시험도 당하고 고통스럽겠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정하신 겁니다. 교회와 사회에 대한 지나친 낙관주의는 금물입니다. 가라지 때문에 어떤 일도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며 살아야 합니다. 현실에 대해 좌절하거나 세상에 대해 절망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가라지들이 있기 때문에 어디든 모순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십시오.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고 생각하십시오. 마귀의 장난에 더는 희생되지 않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합니까? 늘 깨어 있어야 합니다. 두 눈을 부릅뜨고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누구도 내가 알곡이라는 사실 하나로 안도할 수 없습니다. 혹 내가 졸 때 마귀가 가라지를 뿌리지 않을까 하며 경계해야 합니다. (벧전 5:8,9)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9]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라"
근신하라고 하였습니다. 근신하라는 말은 영어로 Be self-controlled, 스스로 자신을 통제하고 조심하라는 말입니다. 그냥 세월 가는 대로 물결흐르는 대로 살지 말고 조절을 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말성경이나 쉬운 성경에는 "정신을 차리고 깨어 있으십시오" "마음을 강하게 하고 늘 주의하십시오"라고 번역을 했습니다. 마치 우리가 운전같은 일을 할 때는 특별히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운전하는 사람들은 운전이 항상 하는 일이니까 별 생각없이 긴장을 풀고 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운전같은 일은 잠깐의 실수가 아주 큰 사고가 나기 때문에 언제나 긴장을 하고 조심을 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오늘 우리의 삶속에 일어나는 수많은 유혹과 시험가운데 영적으로 깨어 있지 않고 정신을 놓고 적당히 하다보면 나도 모르게 자기 영혼을 잃어버리고 도덕질 당한단 말입니다. 그러므로 영적으로 깨어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처럼 먹을 것을 찾고 있단 말입니다.
영적으로 긴장하십시오. 사도바울은 빌립보서 2:12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고 권면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가라지가 판을 치고 있는 이 세대가 정신을 차리고 하나님앞에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찾고 그 뜻대로 순종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천국은 좋은 씨를 제밭에 뿌린 사람과 같다고 하였습니다. 알곡은 분명히 심어진 그것에서 백배, 육심배, 삼십배의 열매를 거두워 열매의 기쁨을 누리며 살아갑니다. 그런데 밤에 잘 때 그 원수가 와서 곡식가운데 가라지를 뿌리고 간다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정신을 차리고 깨어 있어야 합니다. 전 교인이 날마다 큐티하는 교회가 되어서 영적으로 깨어 있어 사탄의 속임수에 속지 않고 시험에 빠지지 않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가라지와의 공존, 쉽지 않습니다. 우리도 처음에는 가라지와 같은 인생이었는데 이제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알곡이 되어서 쓰임 받는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된 줄로 믿습니다. 가라지의 교만, 가라지의 성공, 너무 부러워 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믿음의 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영적으로 깨어 있어 가라지의 시험에 넘어가지 않고 끝까지 믿음을 지키며 선한 싸움을 싸워서 승리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첫댓글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