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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의 초입에 서서 ...
「경기둘레길」이 개통되었다는 뉴스를 보면서 웬지 꼭 가야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앞에 새로운 넘어야 하는 넘고 싶은 길이 펼쳐진 것이라는 생각이다. 홈페이지를 찾아 하나 하나 들여다 보며 그 생각은 더욱 굳어졌다. 총연장 860Km, 도합 60개 구간. 경기도가 심혈을 기울여 연결한 이길은 은근한 끈기를 필요로 하는 길이다. '천리길도 한걸음부터'라는 말이 있고, '시작이 반!'이라고 했다. 시작을 했다는 것은 이미 많은 것을 성취했다는 것을 내포하고 있다. 하지만, 그 첫걸음을 내딛는것은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다. 특히, 2년 가까이를 가야하는 장거리, 여러명과 같이 하기로 다짐한 거라면 그것은 더 힘든 발걸음이 된다. 개인적으로 나름 이런 저런 산길, 들길을 많이 걸었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새로운 길이 보이면 생기는 생경함과 기대감, 설레이는 마음과 함께 다가오는 일정에 대한 부담감은 맨처음 길이라는 곳으로 나섰던 날의 그것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호기심일까? 아니면 해보고 싶은 욕구가 넘치는 것일까? 스템프북의 인기가 시샛말로 하늘을 찌른다. 스템프북 2권과 지도를 신청했지만 "죄송하다"라는
편지와 함께 딱 한권의 스템프북만 배달되었다.
나는 산길이건 트레킹 길이건 목적 종주를 좋아한다. 스탬프를 찍을때의 기분도 좋고, 완성된 것을 들었을 때의 성취감이 내 작은 욕망을 즐겁게 해준다. 몇명이
같이 할지 모르지만 첫구간에서의 스탬프를 찍는 설레임을 도반(道伴)들과 나누고자 경기둘레길 홈페이지에서 내려받은 pdf를 이용하여 스탬프북 10여권을 제작했다. 내 마음이다.
전체적은 진행 차수별 거리는 약 20Km를 기준으로 하기로 했다. 상황에 따라 조금씩 늘려갈 생각이지만 우선은 같이 하는 사람들의 대략적인 진행 정도와 구간 상황을 살펴볼 필요가 있었다.
시작이 반 ...
경기둘레길은 경기 평화누리길, 경기 숲길, 경기 물길 그리고 경기 갯길의 4개 권역으로 나눠져 있다. 1~11 구간은 평화누리길의 경기권역 노선과 일치한다. 따라서, 평화누리길을 완주한 사람들(증명을 할 수 있는)에게는 경기둘레길 1~11 구간을 걸었음을 보증해준다. 물론, 그 반대의 경우에도 해당한다.
총 11명의 도반들이 경기둘레길 1구간이 시작하는 대명항에 모였다. 평화누리길 1구간 표지가 더 크고 뚜렷한 입구에 경기둘레길 스탬프함과 표지들이 추가로 세워져 있었다. 첫출발을 축하하는 케익 절단 행사도 조촐하게 가졌고, 나에게도 첫 방문지인지라 시간 계산에 착오를 가져와 최초 계획한 10시가 아닌 11시에 모두가 첫 스탬프를 찍었다. 이제 시작했으니 반절은 온 셈이렸다. 날씨는 흐리고 구름이 좀 끼었으며 기온은 겨울답지 않게 따스한 날이었다. 바닷가와 강가를 따라 난 길이었지만 다행히 바람도 그다지 많이 불지 않아 체감적으로 그리 춥지는 않았다.
아마 대부분의 도반들의 마음도 나와 비슷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다. 조금은 설레이고 조금은 부담스럽고. 하지만, 다들 밝은 표정으로 새로운 도전을 기꺼이 즐기려는 기색이 또렷하다. 모두가 끝까지 같이 건강하게 걷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고 화이팅! 함성과 함께 힘차게 출발했다. 참고로, 평화누리길 1코스의 이름은 '염화강철책길'로 명명되어 있다.
들머리 인근에 「함상공원」이 있다. 함상으로 들어가는 것은 별도의 입장료가 필요하지만, 공원은 개방되어 있다.
"경기도 김포시 대곶면 대명리 해안가에 위치해 있는 공원. 김포의 유일한 어항(漁港)인 대명항 근처에 있는 함선공원이다. 1944년에 전차상륙함(LST-1010)으로 건조되어서 2006년까지 대한민국 해군 소속으로 활동했던 군함인 LST-671운봉함을 전시관으로 개조하여 만든 곳으로 2006년 운봉함이 해군에서 공식 퇴역하고 해군본부에서 김포시에 운봉함을 기증하게 되면서 현재는 김포시가 관리하고 있다.
1944년에 메사추세츠주 퀸시에서 건조되었던 운봉함은 2차세계대전은 물론 1950년 6.25 전쟁과 1975년 베트남 전쟁 등에 전하였던 전적이 있으며 1955년에 대한민국 해군에 인계되었고 이후에도 대한민국 해군의 주력함으로 기여하였다가 2006년 해군에서 공식 퇴역한 후 김포시에 기증되어서 지금의 함상공원 및 전시관으로 개조하여 국민들의 안보교육장 및 해군 홍보관을 맡고있다.
말 그대로 운봉함을 전시장으로 개조하였기 때문에 민간인들이 처음으로 해군 군함 내부를 체험할 수 있는 전시장이기도 하다. 서울 한강 망원지구에 서울함 공원이 2017년 개장하여 수도권 지역의 유일한 함상공원은 아니게 되었다.[발췌 : 인터넷 위키백과]"
첫구간은 오롯이 보안 철조망을 따라 가도록 설계되어 있다. 왼쪽으로 강화도가 보이고 철조망안에는 철새들이 한가로운 아침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윗부분만 남기고 거의 물에 잠긴 닻 하나가 세월의 무상함을 말해주고 있었다.
평화누리길은 꽤 오래전에 조성된 길이다. 말그대로 평화를 갈망하는 마음을 담아 만든 길이다. 중간 중간에 조형물들이 설치되어 있어 심심찮은 길로 가꾸어 놓았다.
오랜 기간 걸어야 하는 길에서는 '첫 발의 내딛는 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길 떠난 처음 며칠의 설레임과 환희는 머지않아 적정한 균형의 심리 상태로 돌아 올 것이고, 현실에서 마주하는 어려움과 고통에 눌리기도 한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은 바라보는 태도에 따라 다가오는 압박의 강도는 다르다. 세상을 흑백으로 보느냐, 색이 다 칠해진 모습으로 보느냐에 따라 보이는 것이나 느끼는 것들이 전혀 다른 것과 비슷한 이치다.
경기둘레길은 구간마다 구간 출발지점과 도착지점의 2개 스탬프를 찍어야 한다. 스탬프는 해당 구간의 주요 지점을 추상화하여 디자인했는데, 첫구간 스탬프에는 '함상공원'과 '덕진포'를 담았다. 우리 발길은 어느덧 덕진포에 이르렀다. 넓다란 잔듸가 심겨진 포대에는 둘레길을 걷는 사람들과 인근에서 마실나온 듯한 사람들이 한가롭게 여유를 즐기고 있었다.
"덕포진은 서해로부터 강화만을 거쳐 서울로 진입하는 길목인 손돌항에 천혜의 지형을 이용한 군사의 요충지로, 창설 시기는 임진왜란의 쓰라린 체험을 겪은 조선 왕조의 선조조로 추정된다. 그후 영조36년(1760)에는 덕포진에 종 3품의 수군첨사가 수군 316명을 지휘하였으며, 부에서 전속 방어 거리는 남쪽으로 15리에 이르렀다. 병인양요(1866)와 신미양요(1871) 격전을 치루었던 곳이며, 1980년에 발견되어 옛 모습대로 복원하였다. 발굴 당시 탄약고 및 포대에 불씨를 공급하기 위한 불씨 보관장소 파수청지가 발굴되었고 소포, 중포, 포탄 및 상평통보가 출토되었다. 당시 발굴된 6문은 국립중앙박물관에, 덕포진 전시관에 1문이 보관중이다.
[발췌 : 다음백과 '대한민국 구석구석']"
문득 하늘에서 '꺼억'거리는 철새들의 쉰목소리가 들려 고개를 들어 올려다 보니 ㅅ자로 한떼의 철새들이 열을 지어 날아가고 있었다. 한때 철새들의 비행에 관한 과학적인 분석이 기업 임직원 교육의 주요 소재로 쓰인적이 많았고, 요즘도 간혹 인용되고 있다. 그들은 맨 앞에 있는 리더를 중심으로 바람과 기압의 미세한 조정을 통해 멀리 날을 수 있는 지혜와 힘을 얻는다. 리더가 힘들면 그들은 순서대로 역할을 바꾼다. 그런 식으로 '신천옹'은 험준한 히말라야를 넘어 멀리 시베리아, 유러시아 까지 비행한다.
꿈 그리고 그리움 ...
생뚱맞은 출렁다리가 놓여 있었다. 생각보다 출렁임이 많아 제법 재미있었다. 출렁다리 한쪽 끝은 내려오는 계단과 연결하여 이어 놓았고 반대쪽에는 문을 달았다. 그 의미를 가만히 생각해 보니 설계자의 기획 의도가 보였다. '자유롭게 갈 수 없는 물길을 보면서 오르락 내리락 마음을 추스르면서 산길, 들길을 걷다가 서러움과 아쉬움에 뭇내 겨워 출렁이는 마음을 달래다 목적지에 이르러 문을 열면 진정한 평화의 누리길이 전개되어 있지 않을까.'
가슴이 탁 트이는 물의 길이 보이는 곳도 있고,
한 곳에는 가슴을 턱! 하니 막아 버리는 철조망 너머로 고개 숙여 탈출을 시도하는 나목들이 회색 구름과 섟여 있었다.
공동묘지가 있는데 한곁에는 커다란 송전탑이 세워져 있고, 강을 건너 송전선들이 지나가고 있었다. 앞에는 예의 막막한 철조망이 버티고 있어 많이 불편해 보였다. 문득, '저 곳은 철새들만 아니라 전기들도 오가는 길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길옆 자그마한 개천에 얼음이 얼어 있었다. 요 몇년사이 서울을 포함한 내륙에는 상당한 양의 눈을 보기가 쉽지 않다. 기상 뉴스를 보면 태백, 정선 등의 겨울 관광지에도 눈이 많지 않아 걱정들이 많다고 한다. 얼음이 녹아 물이 된 곳에 길가의 전봇대 그림자들이 비치고 있었다. 앞이 잘 보이지 않는 현실에 간혹 풀어진 얼음 사이로 세상이 조금은 보이는 것과 비슷했다. 이 시국이 언제쯤 풀릴까? 봄이 오면, 꽃이 피면, 들판에 새싹이 돋아나면?
철조망 옆으로 걸어가는 한 도반의 모습이 전투베낭을 메고 소총을 앞에 든 씩씩한 군인의 그것과 닮아 보였다. 그 아래로 양손을 높이 들고 평화의 노래를 부르는 남과 북의 손길이 펼쳐져 있다. 어쩔 수 없는 현실을 감안하고 감내하더라도 꿈만은 버리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두개의 노래 자락이 합쳐서 제대로 된 구성진 노래 한자락이 불리워지리라 기대해본다.
사람의 모습은 정면에서 제대로 보는 것도 좋지만 가끔은 그들의 뒷모습에서 또 다른 아름다움을 볼 때도 많다. 지금 보이는 풍경이 그랬다. 그들의 마음 속에는 어떤 감정과 생각이 자리하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같이 같은 길을 걷는 모습은 한결같이 아름다웠다. 이 사진을 보면서 내 얼굴에는 한참동안 미소가 떠나지 않았고, 잠시 사르르 꿈속으로 젖어 들었다. 꿈속에서 끝없이 펼쳐진 길들을 미소 지으면 걸어가는 내 모습을 만났다.
사람의 기억은 몇시간이나 지속될까. 잊을만 하면 이 길이 '염화강철책길'임을 알려주는 표지가 세워져 있었다. 내 기억은 한 시간이 채 못되는 것 같다. 자꾸만 잊어버리고 생각이 안나는 것을 보면.
논 한가득 볏단을 여미어 놓은 것들이 많이 놓여 있었다. 가을걷이가 끝난 겨울의 언젠가부터 보여지는 살아있는 모습중의 하나이다.
아무도 없는 철조망과 전봇대들이 사잇길을 만들어 놓은 모습을 담아 보았다. 그러고 보니 길에는 사람이 있어야 더 낫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길이 존재하는 이유는 사람이나 동물이나 물건들이 이동하는 것이다. 살아 있는 것들, 움직이는 것들이 없는 길은 쓸쓸하다. 그 길을 걷는 내 마음에도 뭔가가 꾸준히 흐를 수 있으면 좋겠다. 사랑이든 그리움이든 쓸쓸함이든... 내가 아직 살아 있는 느낌이 들고, 내가 감동과 생각이 그리고 기가 흐르는 사람임을 알아 차릴 수 있도록...
둘레길 2구간은 문수산을 올라 문수산성길을 따라 걷는 길이다. 한참을 올라 도착한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지금까지 옆구리에 끼고 걸어야 했던 강물들이 아래로 보인다. 강화대교 위로 꾸준히 차들이 움직이고 있다.
"둘레 약 2,400m, 지정면적 208,526㎡. 사적 제139호. 강화의 갑곶진(甲串鎭)을 마주보고 있는 문수산(文殊山)의 험준한 줄기에서 해안지대를 연결한 성으로, 현재 해안쪽의 성벽과 문루(門樓)는 없어지고 산등성이를 연결한 성곽만 남아 있다. 명칭은 문수사(文殊寺)에서 유래하였다. 이 성은 갑곶진과 더불어 강화 입구를 지키는 성으로, 1694년(숙종 20)에 축성되었고 1812년(순조 12) 대대적으로 중수되었다. 다듬은 돌로 견고하게 쌓았고 그 위에 여장(女墻 : 성 위에 낮게 쌓은 담)을 둘렀다. 당시 성문은 취예루(取豫樓)·공해루(控海樓) 등 세 개의 문루와 세 개의 암문(暗門 : 누각이 없이 적에게 보이지 않는 곳에 숨겨져 앉은 성문터)이 있었다.
이 가운데 취예루는 갑곶진과 마주보는 해안에 있었으며 강화에서 육지로 나오는 관문 구실을 하였다. 특히, 이 성은 1866년 (고종 3)의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과 치열한 격전을 치른 곳으로 유명하다. 이 전투 때 해안쪽의 성벽과 문루가 모두 파괴되었고 지금은 마을이 되어 있다.
[발췌 : 다음백과 '대한민국 구석구석']"
역사의 현장에서 잠시 흐름을 멈추고 숨을 고른다. 무수산 정상 부근까지 숨가쁘게 올랐던 길은 이제 아래로 흐른다. 길가에 고깔 모자를 쓴 옷을 잘 챙겨 입은 허수아비 하나가 길가는 나를 바라보며 손을 들어 주먹질을 하고 있었다. '인생은 허수아비 춤을 추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다들 본인들은 자유로운 존재이고 스스로 생각하며 산다고 하지만, 실상은 남들이 정해놓은 기준을 따라 시시비비를 가릴 생각도 없고 왜 그런지 의문을 제기할 필요도 못느끼며 그냥 살아간다는
의미로 나는 이해한다.
내가 지금 걷고 있는 길도 사실은 남들이 만들어 놓은 길이다. 어쩔 수 없는 것이지만, 그 안에서 내가 무엇을 얻고 무엇을 바라볼 것인지, 뭐를 만날 것인지는 내 하기에 달린 것이겠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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