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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시리즈] 두 명의 대통령: '도적 지배 체제'는 극복될 수 있는가 ☞ 이승환 고려대 교수
최근 세계의 언론을 뜨겁게 달구는 두 명의 대통령이 있다. 한 명은 러시아의 대통령 푸틴(Vladimir Putin)이고, 다른 한 명은 우루과이의 전 대통령 무히카(Josē Mujika)이다. 푸틴은 마피아를 무색게 하는 엄청난 부패 행위로 명성을 떨치고 있는 반면, 무히카는 수도사에 버금가는 청빈한 생활 태도로 세계인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 우루과이의 무히카 전 대통령 2014년 사라예보에 본부를 둔 <조직범죄 및 부패 보고 프로젝트: OCCRP>는 ‘올해의 부패 인물’로 푸틴을 선정하였다. 그는 국가의 정보기구(KGB)와 각종 범죄 조직을 이용하여 러시아 및 우크라이나에 소재한 석유와 가스 회사를 사유화하고, 여기서 얻은 천문학적 규모의 수익금을 돈세탁하여 해외로 빼돌린 혐의를 받고 있다. 마이애미 대학 정치학과의 카렌 다위샤(Karen Dawisha) 교수는 『푸틴의 도적 지배 체제: 누가 러시아를 소유하고 있는가(Putin’s Kleptocracy: Who Owns Russia?』(2014)에서 푸틴과 그의 친구들이 저지르고 있는 조직적 범죄와 부패 행위를 각주까지 달아가며 소상하게 밝힌 바 있다. 현재 세계에서 공식적으로 인정받는 최고 부자는 빌 게이츠로 그의 재산은 860억 달러이지만, 서방의 정보기관은 푸틴이 소유하고 있는 회사의 지분만 400억 내지 700억 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우리 돈으로 약 40조에서 80조에 해당하는 돈이다. 1억 원 가량인 그의 연봉을 40만 년 내지 80만 년 동안 모아야 하는 액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러시아에서 그의 인기는 식을 줄을 모른다고 하니, 그 나라 국민들은 배고픈 고양이에게 생선 가게를 통째로 맡겨놓은 셈이다. 우루과이의 무히카는 1960년대부터 1980년대 사이에 군사 독재에 맞서 싸우다가 여섯 차례나 총상을 입었고 총 14년의 시간을 옥중에서 보냈다. 2009년 대통령에 당선되어 온몸에 국민들의 사랑을 받으며 일하다가 작년에 임기를 마친 서민 대통령이다. 국내에도 그의 전기가 번역되어 소개된 적이 있지만, BBC를 비롯한 세계의 언론이 전하는 그의 모습은 푸틴과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그가 취임 초에 ‘공직자 재산등록법’에 따라 신고한 재산은 1800달러로, 평소 타고 다니는 1987년산 폭스바겐 ‘비틀’ 한 대와 농기구 몇 가지를 합친 값에 불과하다. 그는 대통령 궁을 노숙자들에게 내어주고 부인 소유의 허름한 농가 주택에서 출퇴근하였으며, 매달 받는 봉급의 90%를 자선 단체에 기부하였다.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대통령으로 꼽히는 무히카는 두 차례나 노벨 평화상 후보에 올랐으며, 교황 프란치스코는 그를 가리켜 ‘현자’라고 칭송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가 대통령으로서 칭송받는 이유는 단지 개인의 생활 태도 때문만은 아니다. 그가 재임했던 5년 동안 우루과이의 경제는 급성장하여 남미에서 가장 잘사는 나라로 바뀌었고, 빈곤률과 실업률이 감소하여 불평등의 격차가 크게 줄어들었으며, 2013년에는 <세계 투명성 기구>에 의해 라틴 아메리카에서 부패지수가 가장 낮은 나라로 꼽히게 되었다. 그가 여러 연설과 인터뷰를 통해 남긴 명언은 수도 없이 많지만, 우리의 현실과 관련하여 인상적으로 들리는 몇 마디만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대통령과 국민 사이에는 거리가 없어야 한다.” “정치에서 첫 번째로 요구되는 사항은 지적 정직성이다.” “적에게 존경받지 못하는 정치인은 몰락하기 마련이다.” “가난한 사람이란 만족할 줄 모르고 항상 더 많이 가지려고 하는 사람들이다.” 언뜻 듣기에는 평범해 보이지만 우리 현실의 곪아터진 부분을 정확하게 칼로 도려내는 듯한 지적에 아픔과 더불어 시원함을 느끼게 된다. 우리 전통에서 국가 지도자를 평가하는 단어로는 성군(聖君), 명군(明君), 용군(庸君), 혼군(昏君), 폭군(暴君) 등 다양한 이름이 있다. 푸틴과 무히카에게는 각기 어떤 칭호가 어울릴까? 무히카에게 ‘성군’이라는 칭호를 붙여주고 싶지만, 그러한 칭호가 너무 과도하다면 우선은 ‘명군’이라는 칭호를 붙여주어도 아무런 손색이 없을 것 같다. 푸틴의 경우는 어떠한가? 아마도 맹자라면, 인정(仁政)과 민본(民本)을 외면한 채 사욕 추구만 일삼는 푸틴에게는 폭군이라는 칭호가 적합하다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푸틴의 경우, 전통적 의미의 폭군보다는 오히려 도군(盜君)이라는 이름이 더 어울리지 않을까 생각된다.
‘정치인 혐오’란 수렁에 빠지게 하는 현실 앞에서 카렌 다위샤 교수는 푸틴의 정치 체제를 ‘도적 지배 체제’(kleptocracy)로 명명한 바 있다. ‘클렙토크라시’는 그리스 어원의 ‘도적’(κλέπτης)과 ‘정치 체제’(κράτος)가 합쳐진 말로서, 집권자 또는 집권 계급이 나라의 자원과 공적 자금을 사금고처럼 여기면서 국가 권력과 조직을 이용하여 사익 추구에 매진하는 권위주의적 부패 정권을 일컫는 말이다. 일찍이 2004년에 <국제 투명성기구>에서는 ‘클렙토크라시’의 전형적인 사례로 인도네시아의 수하르토, 필리핀의 마르코스, 스페인의 라호이, 콩고의 모부투 등을 들고, 이러한 정치 유형의 표상으로 푸틴을 지목한 바 있다. 우리의 경우에도 지난 7~8년간 경험해온 암울한 정치 상황을 주저 없이 ‘클렙토크라시’라고 명명하는 학자들이 적지 않다. 정부의 부정과 부패를 감시하고 견제해야 할 언론마저 무력해진 작금의 상황에서 젊은 세대 유권자는 무력감을 느끼고 정치 혐오증에 빠져들곤 한다. 아무리 소망해도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지 않는 세상, 아무리 소리쳐도 끄떡조차 하지 않는 정치 현실, 지도자라는 사람이 무심코 내뱉는 말 한마디에 ‘없었던 화병’마저 생겨나게 하는 이 나라에서 정치인은 극혐(極嫌)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매년 주기적으로 행해지는 설문조사에서 불신 받는 직업군의 1순위로 정치인이 꼽히지만 상황은 조금도 개선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정치인에 대한 혐오와 불신은 비단 우리나라에서의 일만은 아니다. 우리보다 훨씬 사정이 낫다는 미국에서도 젊은 세대의 정치인 혐오증은 날로 증가하고 있으며, 심지어 몇 십 년 후에는 아무도 정치인이 되지 않으려 하는 ‘정치 소멸’의 시기가 올 것으로 예측하는 목소리가 들리기도 한다. 하지만 ‘정치인 혐오증’과 ‘정치 혐오증’은 구별되어야 마땅하다. 밥상에 차려진 반찬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하여 밥 먹는 일을 포기할 수는 없다. 입맛에 맞지 않는 반찬은 새로 갈아치울 수 있지만, 반찬이 맛없다고 하여 아예 밥 먹는 일 자체를 그만둘 수는 없는 일이다. 마찬가지로, 정치인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하여 정치에 대한 관심 그 자체를 꺼버려서는 안 된다. 어떤 이들은 정치란 ‘나’와는 아무 상관도 없는 ‘그네들끼리의 더러운 짓거리’라고 치부하며 초연한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내가 피땀 흘려 노력한 대가의 4분의 1 내지 3분의 1을 세금으로 납부해야 하는 납세자의 입장에서 보자면, 이러한 태도는 도적에게 금고를 맡겨두고서 물욕에 초연한 척하는 도덕군자의 무능이나 위선에 불과할 수도 있다. 오늘날 영어에서 ‘얼간이’를 뜻하는 단어 idiot의 어원은 idiotes이다. 그리스어에서 idiotes란 공공의 세계에서 벗어나 사적 세계에만 탐닉하는 ‘위아주의자’(爲我主義者)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자신이 힘들게 벌어들인 노력의 상당 부분을 세금으로 바치면서도, 정작 그 돈이 ‘도적 정치가들’(kleptocrats)의 사금고로 흘러 들어가는지 어떻게 쓰이는지도 모른 채 정치에 초연한 척하는 태도는 바보 멍청이에 불과하다는 의미이리라. 우루과이 국민들의 무히카에 대한 사랑은 암담한 정치 현실로 절망감에 빠져 있는 우리에게 한 가닥 희망의 빛을 던져준다. 무히카와 같은 대통령을 만나지 못한 것은 우리에게 운이 없기 때문이지만, 우리에게 운이 없는 이유는 우리가 우리 손으로 그러한 대통령을 뽑지 않았기 때문이다. 스스로 운명을 개척하지 못하는 자에게 행운이란 있을 수 없다. 한 나라의 정치 수준은 그 나라의 유권자 수준과 같을 뿐이다. 필자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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