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十七篇 無逸
逸者는 人君之大戒니 自古로 有國家者 未有不以勤而興하고 以逸而廢也니라 益이 戒舜曰罔遊于逸하시며 罔淫于樂하시라하니 舜大聖也로대 益이 猶以是戒之하니 則時君世主 其可忽哉아 成王初政에 周公이 懼其知逸而不知無逸也라 故로 作是書以訓之하시니라 言則古昔하고 必稱商王者는 時之近也요 必稱先王者는 王之親也요 擧三宗者는 繼世之君也요 詳文祖者는 耳目之所逮也일새라 上自天命精微로 下至畎畝艱難, 閭里怨詛히 無不具載하니 豈獨成王之所當知哉리오 實天下萬世人主之龜鑑也라 是篇은 凡七更端에 周公이 皆以嗚呼發之하사 深嗟永歎하시니 其意深遠矣니라 亦訓體也니 今文古文에 皆有하니라
안일함은 임금의 큰 경계니, 예로부터 국가를 둔 자가 부지런히 하고도 일어나고 안일하게 하고도 폐하지 아니한 자 있지 아니했느니라. 익이 순임금을 경계하여 가로대 “안일함에 놀지 마시며 즐거움에 음란하지 마시라(大禹謨 제6章)”고 했으니, 순임금이 큰 성인이지만 익이 오히려 이로써 경계했으니, 당대의 임금이자 세상의 주인이 그 가히 소홀하랴? 성왕이 처음 정치를 함에 주공이 그 안일함만 알고 안일하지 말아야 함을 알지 못할까를 두려워했으므로 이 글을 지어서 가르치셨느니라. 말하면 곧 옛 것이고, 반드시 상나라 왕을 칭한 것은 때의 가까움이고, 반드시 선왕을 칭한 것은 왕의 친척이고, 삼종(은나라의 中宗, 高宗, 祖甲)을 든 것은 세대를 잇게 한 임금이고, 문왕 할아버지를 자세히 한 것은 이목이 미친 바이기 때문이라. 위로는 천명의 정미함으로부터 아래로는 밭도랑과 이랑의 어려움과 마을 사람들의 원망에 이르기까지 갖추어 싣지 않음이 없으니, 어찌 홀로 성왕만이 마땅히 알아야 할 바리오! 실로 천하 만세의 임금의 귀감이라. 이 편은 무릇 일곱 번이나 단서를 고침에 주공이 다 ‘오호’로써 발하시어 깊이 슬퍼하고 깊이 탄식하셨으니 그 뜻이 심원하니라. 또한 훈체이니, 금문과 고문에 다 있느니라.
<제1장>
周公曰嗚呼라 君子는 所其無逸이니라
주공이 가로대, “아아! 군자는 그 안일하지 않는 바이니라.”
○所는 猶處所也라 君子는 以無逸爲所하여 動靜食息이 無不在是焉하니 作輟則非所謂所矣니라
○소(所)는 처소와 같으니라. 군자는 안일하지 않음으로써 처소를 삼아 움직이고 가만히 있고 먹고 쉼이 여기에 있지 않음이 없으니 하다가 그만두면 처소 삼는다고 이를 바가 아니니라.
<제2장>
先知稼穡之艱難이오사 乃逸하면 則知小人之依하리이다
먼저 심고 거둠의 어려움을 아시고서 이에 편안하면 소인들의 의지함을 알리이다.
○先知稼穡之艱難乃逸者는 以勤居逸也라 依者는 指稼穡而言이니 小民이 所恃以爲生者也라 農之依田은 猶魚之依水와 木之依土하니 魚無水則死하고 木無土則枯하고 民非稼穡則無以生也라 故로 舜이 自耕稼로 以至爲帝하시고 禹稷은 躬稼以有天下하시며 文武之基는 起於后稷하시며 四民之事는 莫勞於稼穡하고 生民之功는 莫盛於稼穡이라 周公이 發無逸之訓에 而首及乎此하시니 有以哉로다
○먼저 심고 거둠의 어려움을 알고서 이에 편안하다는 것은 부지런함으로써 편안함에 거처하는 것이라. 의지한다는 것은 심고 거두는 것을 가리켜 말함이니 낮은 백성들이 믿고서 살아가는 것이 되는 바라. 농부가 밭에 의지함은 물고기가 물에 의지하는 것과 나무가 흙에 의지하는 것과 같으니, 물고기가 물이 없으면 죽고, 나무가 흙이 없으면 마르고, 백성들은 심고 거둠이 아니면 이로써 삶이 없음이라. 그러므로 순임금이 밭 갈고 심음으로부터 이로써 임금이 됨에 이르셨고, 우와 직은 몸소 농사지어서 천하를 두셨으며, 문무의 터전은 후직에서 일어나셨으며, 사방 백성들의 일은 심고 거둠보다 수고로움이 없고, 생민의 공은 심고 거둠보다 성대함이 없음이라. 주공이 안일하지 말라는 가르침을 발표하심에 먼저 여기에 미치셨으니 까닭이 있도다.
출처 : 『書經講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