뼈를 묻다 외 4편
김연종
나는 뼈대 있는 종족이라
오직 뼈의 길이로 삶의 높낮이를 재고
뼈의 단단함으로 살을 짓무르는 척추동물의 후예다
한 가닥 뼈도 없는 흡반의 다리로
온통 삶이 꼬여버린 연체동물과는 근본부터 다르노니,
대대손손 뼈대 있는 가문이라 무릎 닳아지고 허리 굽을 때까지 쉬지 않고 뛰어가리라 오로지 뼈있는 농담을 주고받으며 고통의 강을 건너 광활한 바다에 뼈를 묻으리라 황홀한 다리에 곧추서서 오래 버티리라 이대로는 못 살겠다고 잔뼈가 아우성치고 갈비뼈가 소리쳐도 개뼉다귀 같은 소리 하지 말라고 찬란한 햇빛을 받아먹으리라 유령 같은 거리에 서서 허명의 빗장뼈를 움켜쥐리라
천변의 자전거를 타다가
대퇴부 골절상을 당한 용가리 통뼈가
아작아작 멸치 뼈를 씹고 있다
네일 아트
너는 명예이자 멍에다
너무 짧아도 길어도 병이 된다
덧칠하고 수정하여 슬픔을 위장한다
너는 손가락이자 숟가락이다
너무 과해도 부족해도 골칫거리다
막연한 허기와 비장한 포만감을 가려야 한다
너는 예술이자 흉기다
너무 화려해도 사나워도 무기가 된다
나서야 할 때와 지워야 할 때를 알아야 한다
너는 망자이자 생자이다
죽어서도 자란다는 생각의 손톱을
갈고
닦고
다듬어
짧게
더 짧게
망각의 발톱까지
악수와 포옹
빈손이라야
악수가 가능하다
한쪽의 힘이 너무 세거나 약하면
진심의 악력이 전해지지 않는다
흉금 없는 사이라야
포옹이 가능하다
가슴 속에 억울함 품고 있으면
서로 껴안거나 등을 토닥일 때
마음의 독 가시가 툭 튀어나오고 만다
잠수함 속 토끼도
갱도 속에서 노래하는 카나리아도
미세한 떨림을 감지한다
지난밤 당신이 한 일을 알고 있어
억울한 소문과 낯선 두려움이
깡마른 주먹 악수를 하며
가파른 서로의 등을 어루만진다
디폴트
비자금이 꽃비처럼 쏟아지면
장미를 살까 권총을 장만할까
내 안에 내장된 여정을 마무리하고
또 다른 세계로 떠난다면
장미는 알까
권총 같은 부채를 안고
오지 않는 그 날을 기다린다는 것을
노구에 장식된 감정의 실타래가 풀리면
난 시집을 살까 청진기를 챙길까
익숙한 감각마저 사라지면
어떻게 나를 증명할 수 있을까
꽃잎은 시들었고 가시도 무뎌졌는데
안락의자에 앉아 고통의 현재 시각을 바라본다
친절한 프사가 악역 배우처럼 충고한다
장미의 주인공은 당신일지도 몰라요
신용과 불량이 자연스럽게 겹쳐진다
경력 30년 전문직이라는 멘트와 함께
사각지대
시집 한 권 보내고 싶었는데 주소를 물어보기는 겸연쩍고 주소를 알만한 단서는 보이지 않아
차일피일 미루다가 누구인지 가물거리고
혼사 소식을 들었는데 모바일 단체 청첩장이라 가기도 쑥스럽고 안 가기도 체면이 아니라
계좌번호만 확인했는데 날짜가 지나가 버리고
신문 동정란 보고 병원장 등극한 동창 소식 접했는데 축하 전화도 축하 난도 어색해서
우물쭈물하다 보니 어느새 퇴임 소식
부고를 접하고 망자 대신 장례식장을 확인하는데 주중에는 시간이 없고 주말에는 거리가 멀어
핑계 대신 반가운 계좌번호만 하릴없이 바라보고
보조미러를 달고
두 눈 부릅뜨고
귀 활짝 열고
말없이 '좋아요'만 누르고 사라진 지인에게
메신저를 통해 안부나 전할까
전화로 직접 목소릴 확인할까 고민하다가
다시 들어가 보니
이미 페친 삭제
김연종
2004년 <문학과 경계> 등단
시집『극락강역』『히스테리증 히포크라테스』『청진기 가라사대』
산문집『닥터 K를 위한 변주』『돌팔이 의사의 생존법』
제3회 의사문학상 수상, 2018년 '아르코문학창작기금' 수혜
2022년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우수출판콘텐츠' 수상
현) 한국의사시인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