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시간입니다. ‘우리말글-어휘’가 뭐에요? 궁금증 가득한 표정으로 묻는 아이들과 마주하고는 그 궁금증을 풀어줄 단서를 하나 줍니다. 눈을 감고 ‘소리’를 들어보자 했지요.
소란하던 새들마루에 점점 깊어지는 침묵이 찾아오자, 선생님은 새들마루에서 들리는 소리와 경당 밖의 소리와 더 귀를 열어 산속 깊은 소리와 마지막으로 하늘의 소리까지 들어보자 했습니다. 아이들은 어떤 소리를 들었을까요?
류시화 시인의 책을 보면 별들의 노래를 듣는 부시맨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부시맨과 같은 장소 같은 시간에 있었다면 모두가 들을 수 있었을까요? 그렇지는 않았습니다. 그럼 하늘 깊은 곳에서 울리는 소리는 정말 별들의 노래일까요? 정말 태고적부터 우주와 자연의 소리가 늘 지상에 있었지만 우리가 듣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닐까요?
아이들과 이런 생각도 같이 해 보았습니다. 소리는 본질(실재세계의 근원)이며 형태는 아닐까. 우주를 구성하는 최소 단위를 입자와 파동으로 본다면 꽃, 물, 공기, 모래, 동물, 사람 등 모두는 소리와 연결되어 있는 본질일 것 같다고요.
꽤 어려운 내용 같지만, 아이들은 곧 빠져들어 재미있게 수업을 합니다.
소리와 말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동물의 언어는 본질(실재세계의 근원)에 가까운 의사소통이라 명확하고 오해가 없습니다. 천적이 나타났으니 전부 피하자! 동물들이 나오는 TV 프로그램에서 보셨을 것 같습니다. 반면 인간의 언어는 ‘사회적 약속’으로 된 말과 글을 사용하기에 관념적이고 추상적입니다, 즉 본질에서 멀어진 의사소통이라 불명확하고 오해의 소지가 있지요. 나는 이런 뜻으로 말한 건데 너는 왜 저런 뜻으로 받아들이니?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말과 글이 필요합니다.
소리에 ‘의미’를 포함시켜 ‘사회적 약속’으로 만들면 말이 됩니다. 예를 들어, ‘연필’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연과 필이라는 소리뿐이었지요. 그런데 연필이라는 소리에 의미를 포함시킵니다. ‘필기도구의 하나. 흑연과 점토의 혼합물을 구워 만든 가느다란 심을 속에 넣고, 겉은 나무로 둘러싸서 만든다.’ 이것을 우리는 연필이라 부르자 약속하면 말이 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사회적 약속으로 만들어진 글자가 있습니다. 글자는 정보의 전달과 소통, 기록을 통한 역사와 문명의 소유를 위해 필요한 것이지요.
이제 슬슬 우리나라의 글자가 궁금해집니다. 우리나라의 글자 훈민정음 창제 이유는 해례 정인지 서에 잘 나와 있지요.
有天地自然之聲 則必有天地自然之文.
천지자연에 소리가 있다면 반드시 그에 맞는 글이 있어야 한다.
즉 훈민정음(한글)은 소리를 표현하기 위한 글자입니다.
初非智營而力索
처음부터 슬기로 마련하고, 애써서 찾은 것이 아니라
但因其聲音而極其理而已.
다만 그 (원래에 있는)성음(의 원리)을 바탕으로 이치를 다한 것 뿐이다.
理旣不二 則何得不與天地鬼神同其用也.
(음양의) 이치가 이미 둘이 아니니 어찌 천지 자연, (변화를 주관하는) 귀신과 그 사용을 같이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正音二十八字 各象其形而制之.
훈민정음 스물 여덟자는 각각 그 모양을 본떠서 만들었다.
한글로 인해 우리 겨레는 세상에서 가장 풍부한 말글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고, 또 동양 문명의 중심인 한자를 가장 체계적으로 공부하고 발음할 수 있게 되었죠.
이어서 아이들과 글자에 담긴 소리와 얼 대해 배워보았습니다. 자음 중 비슷한 결로 된 소리들이 있어 함께 찾아보았습니다.
1) ‘ㅂ’이 들어간 글자들에는 어떤 소리의 결(얼)이 있을까요? 모두가 똑같지는 않지만 비슷한 결의 소리로 되어있습니다. 같이 생각해 보실래요? 빛나다, 비추다, 비치다, 밝다, 불, 부리부리, 분발하다, 바라다, 보다, 버리다, 부르다, 바다, 바탕, 부수다, 밖, 번지다, 부풀다, 배움, 바람, 불다, 발, 뱉다. 혹시, 찾으셨나요. 네~ 맞습니다. 사방으로 발산하는 기운을 가지고 있습니다.
2)다음은 ‘ㅁ’입니다. 만들다, 만나다, 뭉치다, 모으다, 뭉개다, 말다, 몰다, 물다, 모이다, 모둠, 모두, 마주, 맞이, 묶다, 매듭, 먹다, 맞다, 마무리, 못, 마중. ‘ㅂ’과는 반대로 수렴하는 기운을 가지고 있습니다.
3)‘ㅅ’입니다. 생명의 얼을 담았는데 위로 솟는 기운을 가진 음성기호입니다. 단어들이 막 떠오르시죠. 우리 아이들은 어떤 단어들을 말했을까요. 세다, 세우다, 솟다, 솟구치다, 쏘다, 살다, 싱싱, 신선, 상쾌, 신난다, 싹, 쌀, 씩씩하다, 소리, 소름, 싸움.
4)마지막은 ‘ㅈ’입니다. ‘ㅅ’과는 반대로 아래로 내려가는 결을 가진 소리입니다. 그럼 볼까요? 지다, 저물다, 저녁, 잠, 죽다, 잔잔하다, 조용하다, 줄다, 작다, 적적하다, 주름, 자르다, 접다, 졸다, 징그럽다, 조리다, 주리다, 짊어지다.
모두가 같은 결을 가진 것은 아니지요. 분명 ‘ㅈ’이 들어감에도 즐기다, 자라다, 잘한다, 좋다, 젊다, 자랑 같은 결의 단어들도 있습니다.
아이들과 소리, 말, 글에 대해 배운 첫 시간이었습니다. 그동안의 배움으로 본다면 너무 익숙한 시간일 것 같습니다. 하지만 실재세계의 근원을 새롭게 알고 그 ‘본질’을 만남으로, 우리는 더욱 구체화 된 우리말글-어휘를 익히게 될 것이라 생각해 봅니다.
첫댓글 언어를 배워 가는 일은 인간이 자기를, 자기 생을 문득 타자로 낯설게 만나기 시작하는 걸음인 것 같습니다. ^ ^
'ㅂ'의 얼이라..단 한번도 생각해본 적 없었어요. 어느 하나 그저 있는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무심하게 지나쳤던 하나하나에 깊은 애정을 갖고 만나가야겠다 생각하게 되요. 하나하나 본래의 의미를 만나가다보면 우리를 하나로 묶는 그 본질을 만나게 될 것만 같습니다. ^^
뜻이 소리를 만들고, 또 소리가 뜻을 만들고.. 그렇게 어울어져가는 우리를 알아가는 시간 아이들의 눈빛이 참 진지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