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1-3
그리로 도망하게 하라 / 한서노회
지난 달 22일에 이스라엘군이 팔레스타인 무장 세력인 하마스가 장악하고 있는 가자지구에 탱크로 포격하고 전투기로 공습해 8명이 숨졌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마스가 박격포를 쐈기 때문에 보복했다고 말했습니다.
다음 날 예루살렘시내 버스정류장에 폭탄이 터져 1명이 죽었습니다. 이번에는 하마스가 보복테러를 감행했습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 세력은 당하면 갚아주는 피의 복수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왜 보복의 악순환을 끊지 못하는 것일까요? 이들은 함무라비 법전에 매여 살기 때문입니다. 함무라비 법전은 ‘눈에는 눈으로, 이에는 이로’로 갚으라고 말합니다. 이것을 동태복수법 또는 동형보복법이라고 하는데 반드시 복수하라는 말이 아니라 과다한 복수를 하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복수를 부추기지 않고 복수를 규제하는 조항입니다. 죄보다 처벌이 크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은 탈리오의 법칙을 어기고 과다한 복수를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오른뺨을 때리면 왼뺨도 돌려주라는 예수님의 사랑의 법칙을 모르기 때문입니다.(마 5: 39)
구약성경시대에는 피의 복수를 당연시했습니다.
가족이 상처를 입거나 살해를 당하면 가장 가까운 가족이나 친척이 ‘피의 보복자’가 되어 가해자를 죽였습니다.(민 35: 16-21)
고의로 죽였든 실수로 죽였든 피해자 가족은 가해자를 찾아가 죽였습니다. 그게 가족의 명예를 지키는 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고의로 죽인 경우에는 당연히 죽였으나 실수로 죽인 경우에는 피할 길이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산에서 나무를 하다가 도끼 자루가 빠져 옆에 있는 사람을 쳐서 죽였습니다. 그러면 그 사람은 도피성으로 피신했습니다.(신 19: 5) 우리나라 정치인이나 경제인은 검찰조사나 국세청 세무조사를 앞두고 해외로 도피성 외유를 떠납니다. 도피성 외유는 외국으로 피하는 여행이지만 성경에서 말하는 도피성은 실수로 사람을 죽인 경우에 피하는 성입니다. 도피성은 피난처였습니다. 하나님은 도피성을 6개 만들라고 말씀하셨습니다.(민35:13) 요단강을 중심으로 동쪽에 3개(바산 골란, 길르앗 라못, 베셀(수20:8))를 만들고, 서쪽에 3개(갈릴리 게데스, 세겜, 기럇 아르바 곧 헤브론)를 도피성으로 만들었습니다.(수20:7) 실수로 사람을 죽인 것을 과실치사라고 하는데 실수이지만 사람을 죽였기 때문에 죄는 죄입니다. 하나님은 여호수아 20장 2-3절을 통해 “너희를 위해” 도피성을 만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이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연약한 존재인 것을 아시고 죄를 용서받을 수 있도록 도피성을 만드셨습니다. 도피성은 몇 가지 특징이 있었습니다.
도피성은 누구나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도피성은 이스라엘 사람이던지 외국이던지 누구나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민 35: 15) 실수로 사람을 죽인 경우 도피성으로 가 성문 어귀에서 장로들에게 사건의 전후좌우를 말하면 장로들은 도피성으로 받아들였습니다.(민 20: 4)
도피성은 죄인들의 피난처로 도피성은 예수님을 상징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도피성입니다. 도피성이 아무나 들어갈 수 있었듯이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을 수 있습니다.
도피성에 들어가면 살인자도 살 수 있었듯이 아무리 죄를 많이 지었어도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을 받습니다. 도피성에 들어가면 살 곳을 마련해주었듯이 예수님을 믿으면 살 길이 열립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11장 28절을 통해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알게 모르게 죄를 지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죄를 감추지 말고 죄의 짐을 가지고 나오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죄의 짐을 지고 나오면 예수님은 대신 짐을 져 주십니다.
도피성은 가까이에 있었습니다. 도피성은 이스라엘 전역에 골고루 배치됐기 때문에 걸어서 한나절 거리에 있었습니다. 도피성이 멀다면 피의 보복자가 뒤쫓아 와 죽일 수 있기 때문에 도피성은 어디서든지 걸어서 한나절 거리였습니다. 우리나라 경찰차는 3분 안에 도착하고 서울의 119 구급차는 평균 9분 안에 도착한다고 합니다. 한강 수난구조대는 4분 안에 도착해야 생명을 살릴 수 있다고 합니다.
요즘은 분초를 다투지만 예수님 당시는 느긋했습니다. 예수님이 사신 나사렛에서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까지는 걸어서 사흘 길이었습니다. 도피성은 걸어서 한나절 거리였기에 가까웠습니다. 도피성이 가까웠듯이 예수님에게 나가는 길도 가까워야 합니다.
예수님이 멀리 계시다면 중간에 마귀가 틈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누군가 이 땅에 교회가 많은 이유는 도피성이 되시는 예수님께 쉽게 나갈 수 있기 위해서라고 말했습니다. 전승에 의하면 도피성으로 가는 길은 쉽게 찾아갈 수 있도록 이정표가 붙어 있었고, 도피성으로 가는 길은 쉽게 들어갈 수 있도록 길이 닦아져 있었다고 합니다.(수 19: 3)
그렇다면 도피성에서 언제까지 머물어야 할까요? 정식재판을 받을 때까지 머물거나 그 당시 대제사장이 죽을 때까지 머무르다 대제사장이 죽은 후에 고향으로 돌아갔습니다.(민 35: 28) 대제사장이 죽는 날이 도피성이 비는 날이었습니다. 대제사장이 죽는 날이 죄를 용서받는 날이었습니다.
하나님은 히브리서 4장 14절을 통해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계시니 승천하신 이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대제사장이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셨으나 죄는 없으십니다.(히 4: 15) 예수님은 시험을 받으셨으니 사람이기도 하고 죄가 없으셨으니 하나님이기도 합니다. 사람이자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피를 흘리고 돌아가셨습니다.
짐승의 피로도 사람의 죄를 씻었는데 하나님의 아들의 피로는 우리의 죄를 얼마나 깨끗하게 씻었겠습니까? 짐승의 피는 속죄의 피를 흘린 그때뿐이었고 또 다시 피를 흘려야했지만 예수님의 피는 영원토록 효과가 있었기 때문에 단 한번으로 충분했습니다.
대제사장이 죽어야 죄인이 집으로 돌아갔듯이 예수님이 죽으심으로 우리는 천국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도피성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에게 들어가야 살게 됩니다.
어느 연예인의 간증입니다.
그가 9살이었을 때에 그의 어머니는 그가 보는 앞에서 독을 마시고 자살을 했다고 합니다. 그는 그 충격으로 인해 매사에 부정적이었고 대인관계도 원만하지 못했습니다. 사랑해서 결혼했지만 부부싸움도 심하게 했고 몸에는 결핵이 생겨 인생을 포기할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이런 절망적인 상황에서 아내가 친구의 권유로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아내가 교회에 지나치게 빠질까봐 반대를 하고 핍박을 했습니다.
그런데 아내가 교회를 다니면서 그에게 순종했고 그를 위로했습니다. 아내가 달라지자 그는 아내를 따라 교회에 나갔습니다. 교회에 다니자 그에게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의 결핵이 치료되었습니다. 그는 건강이 회복되자 하나님이 자신을 사랑하시는지를 깨달았습니다. 그는 신앙생활을 열심히 해 장로가 되었고 얼마 전에 목사가 되었습니다.
그는 탤런트 임동진입니다. 그가 도피성인 예수님에게 갔을 때 그의 인생은 절망에서 희망으로 바뀌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도피성입니다. 도피성으로 들어가십시오. 그러면 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