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 교회와 야고보의 순교
"발꿈치를 잡음" 또는 "추종자" 라는 뜻을 가진 야고보는 예수의 친동생으로 알려졌으나 그가 함께 살아온 짧지 않은 인생으로 인하여, 공생애 기간 동안 예수 그리스도가 메시아임을 항상 의심하였습니다. 그 후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3일 만에 일어난 부활을 목격하고 성령을 체험한 후에야 믿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 후 사도들과 더불어 복음전파에 힘을 기울였으며 예루살렘교회의 최고 지도자가 되어 교회를 치리하였습니다(행 15:13, 21:18) 주후 45년경, 야고보서를 기록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유대전쟁 발발 직전에 산헤드린 공회에서 돌에 맞아 순교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의 함락으로 기독교회들은 멸망과 큰 타격을 입게 되었습니다. 당시 예루살렘 교회의 감독의 지위에 있었던 야고보는 예수님의 친동생으로서 책임감이 더욱 더 강했던 것 같습니다. 복음서에 의하면 야고보를 비롯하여 예수님의 형제들이 예수를 신앙하였다는 기록이 전혀 나타나 있지 않았습니다. 야고보에게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는 한 부모를 모시고 있는 한 형제 그 이상으로 여길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한 관념을 깨뜨리기 쉽지 않았고 그 때문에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야고보에게 나타나심으로 말미암아 그때부터 신앙을 갖게 되었던 것으로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고전 15:7)
그 후, 제자들로 부터 신앙적 신임을 받고 예루살렘 교회에서 중요한 인물이 되었으며, 베드로, 요한과 함께 교회의 기둥으로(갈 2:9) 추대되었던 것입니다. 성경에 나타난 기록에서 보듯이 예루살렘 교회에서 이방인들의 구원에 관한 총회의 결의에서 야고보가 최종적인 승인을 한 것으로 볼 때, 그가 예루살렘 교회 지도자였음이 분명하였으며, 또한 바울로부터 선교활동에 대한 보고를 받았던 것으로 보아 예루살렘 교회뿐만 아니라 아시아와 유럽을 연결하는 모든 지역의 선교활동을 총괄 지휘하는 위치에 있었던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하게십보에 의하면 유세비오 교회사 제 2권 23장을 인용하여 그를 "의로운 야고보" 라고 칭하기도 하였습니다. 또한 무릎이 낙타의 발처럼 되었다는 전승이 전해지는 것으로 보아 철저히 주의 권능에 의지하는 기도의 용사였던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그 당시 야고보라는 수많은 동일인에 대한 여러 가지 분류작업에 있어서 오류의 위험성이 있었으며 이러한 전승에 관한 기록이 사실과 다를 수도 있음을 알려둘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즉, 이러한 여러 가지의 전승에 관한 내용들이 한사람의 야고보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명의 야고보의 조합일 수 도 있다는 측면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야고보가 율법시대에서 복음시대로 넘어가는 혼란기에 갖가지 산적되어 있는 다양한 견해차와 어려운 문제들을 지혜롭게 처리함으로서 초대교회 신앙의 기초를 세울 수 있었던 것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온전히 의지하며 기도하는 삶으로 일관했기 때문이었던 것은 분명한 사실인 것입니다.
야고보에 대한 좀 더 많은 이해를 위해서 우리는 야고보서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야고보서는 단순하면서도 정확한 메시지로 우리들에게 질문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신앙은 우리의 행동으로 입증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행위의 과정 속에 성도들에게 수반되고 일어나는 시련과 고통의 문제를 어떻게 극복하고 처리할 것인가에 대하여 야고보서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시련은 인생의 과정 중에 한 부분으로 신앙을 강화하고 인내의 연단을 위한 기회이며 훈련과정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명확히 하면서도, 죄의 유혹에 관한 문제는 엄격성을 드러내며 구분되어질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야고보는 자신에 대하여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설명하고 있을 뿐 그 어느 부분에서도 우리들에게 새로운 사실을 전해주지 않고 있습니다. 단지 야고보서 1장 19~27절에서 야고보서의 집필 목적에 대하여 보다 구체적이고 명료하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성도들이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간다는 것은, 죄악과 연관된 온갖 행동을 단절하는 것이고, 죽기까지 모든 것을 포기하는 것이라고 단언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죄악을 단절하는 것만으로 모든 문제가 종결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에 입각한 적극적인 선을 행하고 순종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야고보는 진정한 회개의 모습은 보여주지 않으면서 단지 신앙고백만을 외치는 사람들의 문제를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교회 안에 한 부분을 차지하며 여전히 세상의 가치와 법률을 기준으로 사람들을 재산과 사회적 신분에 따라 차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사람들로 인하여 복음은 변질되고 진리는 훼손되어 엄격해야 할 진리가 도전을 받게 되는 극한 위험성이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복음은 경제적, 사회적 지위에 상관없이 모든 이웃을 사랑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복음은 노예와 상인과 권력을 구분하지 않고 모든 사람을 하나의 소중한 영혼으로 구분한다는 것입니다. 복음은 이러한 계층 간 구분만을 해체하는 것이 아니라 관계적 구분도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해산시키는 것입니다. 즉, 그가 원수이든, 모르는 사람이든 그것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기독교인은 바로 이러한 초월에 따르는 실질적인 행위와 가치가 수반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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