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성도님들이 손수건에 담긴 권능의 10~20프로도 활용하지 못하고 있지요. 왜 그럴까요? 아직 영으로 들어오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영으로 들어오면 손수건에 담긴 권능을 활용하는 정도가 육에 있을 때와는 비교도 안될 만큼 커집니다. 물론 영으로 들어와서도 얼마나 더 깊이 영으로 들어오느냐에 따라 그 정도는 또한 달라지고요.
더 나아가 온 영으로 들어오면 그만큼 권능을 활용하는 정도는 이전에 영에 있을 때와는 확연히 차이납니다.
비유를 들어 보겠습니다. 아주 커다란 댐이 있습니다. 서울시에 사는 시민들이 몇 년을 먹어도 남을 만큼의 물이 이 댐 안에 담겨 있지요. 그런데 물을 끌어오는 파이프가 얼마나 크냐에 따라 끌어올 수 있는 물의 양이 달라진다는 사실입니다. 아무리 댐에 물이 많아도 그 물을 끌어올 수 있는 파이프가 작으면 그만큼만 물을 끌어 올 수가 있지요. 파이프가 커지는 만큼 더 많은 물을 끌어올 수가 있는 것이고요. 여러분의 믿음이 반석을 지나 영으로, 온 영으로 들어오는 만큼 여러분이 댐에서 물을 끌어다 쓸 수 있는 파이프가 커진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온 영에 해당하는 파이프가 되면 이때는 원하는 만큼 마음껏 물을 끌어다 쓸 수 있는 차원이 되지요. 물론 온 영도 더 깊은 차원으로 들어갈수록 또 더 큰 역사를 베풀 수 있지만 일단 온 영으로 들어오면 이때는 권능의 1단계부터 4단계까지를 다 활용할 수 있는 차원에 이르게 됩니다.
그런데 이때 한 가지 알아야 할 것은 영으로 온 영으로 들어온다고 해서 다 이렇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이것이 무슨 말일까요? 가령 영으로 이제 막 들어온 사람을 직경이 1미터 정도되는 파이프에 비교하면 이때 비록 열 사람이 똑같이 1미터 정도 되는 파이프라고 해도 모두가 똑같은 양의 물을 끌어올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파이프의 직경은 똑같아도 누구는 그 파이프를 꽉 채워서 물을 끌어 올 수 있는 사람이 있고, 누구는 파이프의 반쯤 채워서 물을 끌어 올 수도 있다는 것이지요.
마치 같은 굵기의 파이프라도 수도꼭지를 얼마나 여느냐에 따라 나오는 물의 양이 달라지듯이 같은 영이라도 손수건에 담긴 권능을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의 차이가 난다는 말입니다. 바로 이 능력의 차이는 기도의 양에 달렸지요. 얼마나 불같이 많은 기도를 쌓았느냐에 따라 같은 분량에서도 차이가 난다는 것입니다. 온 영으로 들어와도 마찬가지이지요. 같은 온 영의 분량에서도 누가 더 기도를 많이 쌓았느냐에 따라 권능을 활용하는 정도가 달라집니다.
성도 여러분, 이 권능은 아버지 하나님께서 저에게 주신 것입니다. 그것을 제가 손수건에 기도하여 담았고 여러분은 손수건에 담긴 권능을 끌어내어 사용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이때 손수건을 사용하는 분이 그 안에 권능을 불어넣어 준 목자를 얼마나 신뢰하느냐에 따라 손수건을 통해 나타나는 권능의 사역이 차이 나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영 이상으로 인정받은 분들은 일단 목자에 대한 신뢰를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인정받은 것입니다. 반면에 육에 있는 이상 아무리 입술로는 목자를 사랑하고 신뢰한다고 해도 하나님 앞에 온전히 인정받지 못하는 것이지요. 사단이 이에 대해 송사하기 때문에 육에 있는 이상은 아직 손수건에 담긴 권능을 사용하는데 한계가 따릅니다.
비유를 들어 보겠습니다. 어떤 부자인 사장 아버지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 아버지에게 아들이 있지요. 이 아들은 아버지를 전적으로 신뢰할 뿐만 아니라 아버지를 꼭 닮아서 아버지의 마음과 뜻에 맞추어 일들을 이룹니다. 그러니 아버지도 아들을 신뢰할 수 있지요. 이럴 때 아버지와 아들이 하나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하나 되었을 때 아버지는 자기가 가지고 있는 돈을 아들이 필요할 때는 얼마든지 가져다가 쓰도록 허락할 것입니다. 아들이 함부로 돈을 허비할 리도 없고 돈을 사용할 때도 아버지의 마음에 맞추어 가장 필요한 곳에 쓸 것을 믿기 때문이지요. 그러니 아들이 굳이 일일이 허락받지 않아도 아버지의 돈을 마음껏 가져다 쓰도록 사장인 아버지는 전권을 위임한 것입니다.
반면에 아버지인 사장에게는 다른 여러 부하 직원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부하 직원들과는 앞서 말씀드린 아들과 같은 그런 신뢰로 하나 된 관계가 이루어진 것이 아니지요. 그러니 필요한 재정을 그때마다 청구하여 사장으로부터 결재를 받고 타서 써야 합니다.
그런데 만약 부하 직원이 사장의 결재도 없이 임의대로 자신이 원하는 만큼의 돈을 가져다 쓰려고 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당연히 주변으로부터 제재를 받게 되지요. 사장의 결재 도장이 없으니 원하는 만큼 재정을 줄 수가 없다고 할 것입니다.
바로 목자와 하나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영적으로는 이러한 상황과 비슷합니다. 바로 목자와 신뢰로 하나 된 사람이 손수건에 담긴 권능을 마음껏 사용하고자 할 때는 사단도 거기에 대해 송사를 못합니다. 하나이기 때문에 하나처럼 사용할 수 있지요.
반면에 목자와 신뢰로 하나되지 못한 사람은 손수권에 담긴 권능을 마음껏 사용하고자 해도 사단으로부터 송사를 받을 수가 있습니다. ‘아직 신뢰로 하나되지 못한 저 사람이 저 손수건에 담긴 권능을 어떻게 저렇게 크게 쓸 수 있습니까?’ 하고 말입니다.
쉽게 말해 아직 자격이 안 된다는 말이지요. 요15: 5 전반절에 보면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말씀합니다.
즉 우리가 주님과 하나 된 만큼 많은 과실을 맺을 수 있다는 뜻이지요. 이런 원리는 목자와 여러분과의 관계에도 그대로 적용이 됩니다. 목자와 신뢰로 연결되어 하나 될 때 목자에게 주신 권능이 여러분을 통해 많은 열매로 맺힐 수가 있다는 말이지요.
그래서 바로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지난 32년간, 좀 더 실제적으로는 지난 3년 여 간 목자와 여러분 사이의 신뢰 관계를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대폭적으로 키워 오셨습니다.
여러분이 목자를 믿고 신뢰하여 결국 반석을 지나 영으로 온 영으로 들어오도록 역사해 오신 것이지요. 이제 이렇게 준비된 여러분이 바로 2014년부터는 본격적으로 저와 함께 이 제단에 주신 섭리를 이루기 위한 ‘사역’을 펼쳐나가는 것입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 신년기도제목을 통해 지금 바로 이것을 선포하고 계신 것이지요. 이미 준비된 분이라면 불같은 기도를 통해 2014년 마음껏 목자의 권능을 펼치십시오. 아직 준비가 좀 덜 된 분이라도 금년 초를 넘기지 말고 신속히 준비를 마쳐서 이 사역에 멋있게 동참하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 때가 다 되었음을 아실 것입니다. 사 6:8에는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은즉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그때에 내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하신 말씀이 나옵니다.
저 또한 이 시간 동일한 질문을 던집니다. “저와 본 제단에 주신 사명을 이루기 위해 제가 누구를 보내야겠습니까? 누가 가겠습니까?” 여러분 모두가 “나를 보내소서” 고백하기를 원하는 마음이실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고백만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결을 이루어 준비된 자만이 이 고백을 담대히 이룰 수 있지요.
저는 지금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며 그 순간을 기다립니다. 할 수만 있다면 여러분 모두가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이 고백을 담대히 이룰 수 있는 그날을 말입니다. 여러분 모두가 그렇게 해 주지 않으시렵니까? 저와 함께 멋지고 창대하게 이 귀한 ‘사역’에 동참해 주지 않으시렵니까?
올해 2014년 여러분의 멋진 활약을 기대합니다. 꼭 손수건을 들고 나가는 분들만이 아니라 여러분 모두가 있는 곳 가정, 일터, 사업터에서 이 권능의 사역에 동참해 주시기 바랍니다. 성결의 말씀과 권능의 손수건으로 무장한 전 세계 만민의 주의 종과 일꾼, 성도님들! 우리 모두 힘차게 아버지 하나님의 영광으로 온 세상을 가득히 덮어 갑시다. 그래서 여러분에게도 해와 같이 빛나는 영광이 아름답게 임하기를 존귀하신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