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산시 주요명소
보석박물관
익산 보석박물관은 백제 문화유적과 보석의 아름다움을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기 위하여 43,368평 규모의 왕궁보석 테마관광지내에 건립되었으며, 진귀한 보석 원석 등을 11만여점 이상 소장하고 있는 세계적 수준의 박물관이다.
또한, 지질시대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화석전시관에는 시대별 각종화석과 익룡, 수장룡, 실물크기의 골격공룡 등을 전시하여 청소년들에게 상상의 세계를 펼칠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익산시 왕궁면 동용리 575-1 보석박물관 063-859-4641~3
솜리 문화예술회관
뿌리깊은 마백문화의 근원지인 이곳에 예술의 공간을 마련하여 시민들에게 보다 풍요롭고 여유로운 문화공간을 제공하고자 '92년 12월에 문화예술회관 설계현황공모 실시결과 93년 이배화씨의 작품이 당선되어 '94. 5 ~ '95. 10. 30 공사기간을 거쳐 '96년 11월 29일 개관하였다.
※ 특 징 익산시의 미래지향적인 모습을 구조에 반영하여 웅장하며 견고하며, 수려한 외관을 자랑하고 있으며 공간과 전시의 기능 뿐 아닌 시민들의 산책, 휴식공간의 역할도 하고 있다.
익산시 마동 58번지 솜리 문화예술회관 063-859-5278~9
익산시 국민생활관
익산시 올림픽기념 국민생활관은 1988년 제24회 서울 올림픽대회를 온 국민이 참여하여 성공으로 이끈 뜻을 새기고 서울 올림픽의 높은 정신과 우리 국민의 영광을 기리기위하여 1991년 6월 26일 개관하여 지역사회 생활체육 활성화와 지역주민의 체력증진에 이바지하고 있다.
익산시 남중동 86-3 익산시 국민생활관 063-859-4621
원광대학교 박물관
박물관은 각지에 산재한 문화유산을 수집· 발굴· 정리· 보존·전시하는 기능과 함께 선인들의 생활상과 문화예술을 밝혀내는 연구·교육기관으로서의 성격을 지닌 곳이라고 할 수 있다. 1968년 1월 도서관 4층에 20평 규모의 작은 전시공간과 274점의 소장유물로 처음 문을 연 우리 박물관은 이후 계속적인 성장을 거듭하여 1987년 6월에 지하1층, 지상4층, 연건평 1,834평 규모의 전용 박물관이 건립됨으로써 명실공히 종합박물관으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현재 우리 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유물자료는 고고미술자료·불교미술자료· 생활민속자료 ·무속자료,서화 및 탁본자료,고문서·한수등 총 17,311여점에 이르고 있다. 고고미술자료는 선사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는 석제품, 도자제품, 금속제품 등으로 시대의 흐름에 따라 기술의 발달 과정을 파악할 수 있는 자료와 우리 학교에서 발굴한 유물들이며, 불교미술자료는 삼국시대의 불상을 비롯한 불상류와 불교공예품, 그리고 조선시대의 불화가 주를 이루고 있다. 생활민속자료는 실생활에 쓰여졌던 농기구 및 각종 연모와 생활용품 등 선인들의 손때가 묻은 유물들을 고루 소장하고 있으며 서화,탁본자료는 조선시대 명사들의 서화와 전국 각지에 산재한 금석문의 탁본자료이다.
무속자료는 무속화·무신상·무신기·무복 등으로 무속연구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자료들이라 할 수 있으며, 고문서는 교지·호구단자·간찰·분재기 등으로 조선시대 사회상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자료이고, 한수는 민간신앙에서 모셔진 신상을 중심으로 전통자수 기법으로 수놓은 작품들이다. 전시실은 약800평 규모로써 2·3·4층에 9개의 상설전시실을 갗추고 있다. 2층전시실은 선사·삼국시대실, 고려시대 금속 및 도자실, 조선시대 도자실로 구분되어 있으며, 3층 전시실은 생활민속실과 무속실로 나누고 생활공간을 재현시켜 전시효과를 높이고 있다. 4층 전시실은 불교·서화·고문서실·한수실로 구분되어 있다.
지금까지 우리 박물관은 본교 재학생은 물론 지역주민에게 전통문화에 대한 산교육장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해 왔는데, 현재 박물관의 고유한 기능과 함께 더욱 다양해진 문화적 욕구를 충족시켜 주기 위해서 기획전시 및 역사·문화에 대한 정기강좌와 유적답사, 영상자료의 활용 등을 통하여 문화기관으로서의 기능 뿐만 아니라 사회교육기관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익산시 신용동 원광대학교 (신룡동 344-2)
원광대학교 박물관 063-850-5483
나바위 성당(화산천주교회)
이 성당은 조선 현종 11년(1845) 김대건 신부가 중국에서 사제서품을 받고 페레올 주교 다불뤼 신부와 함께 황산 나루터에 상륙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고종 광무 10년(1906)에 건립하였다. 요셉 베르모레르 신부가 설계와 감독을 하고 시공에는 청국인 기술자가 동원되었다.
이 곳은 우리나라 최초의 신부인 김대건 성인이 처음으로 전도하던 곳이어서 한국 천주교회에서 성지로 지정한 곳이며, 이 건물은 천주교의 한국 유입과 그 발전과정을 볼 때 서구식 성당 건축양식과 우리나라 건축양식을 잘 절충시켜 조화를 이루고 있는 초기 성당 건물이다.
원래 이름은 화산 천주교회이었지만 현재 '나바위 성당'으로 개명하였다.
익산시 망성면 화산리 1158-6번지 063-861-8183
익산미륵산성(益山彌勒山城)
익산 지역은 5세기 중엽부터 백제지방의 중심세력이었고 7세기를 전후하여 금강변의 웅포지역보다 내륙에 위치한 금마 지역을 중심으로 백제 문화의 꽃을 피웠다. 익산미륵산성은 일명 용화산성이다. 기준왕이 이 곳에 도읍하였다하여 기준성이라고도 부른다. 이 산성이 미륵산에 있기에 미륵산성이라고 하며, 미륵산의 명칭이 용화산이기도 하다.
기준왕이 도읍하였다기 보다는 마한의 여러 나라 중의 하나가 이곳을 중심으로 세력을 누리고 있었던 것으로 보아 산성도 그 때부터 축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다만 고려초에 전주를 근거로 할거하였던 후백제의 신검이 부왕 견훤을 쫓았을 때 고려 태조가 이를 토정<討征>하여 마성<馬城>에서 신검의 항복을 받았다고 하는 그 마성이 바로 이 산성이다.
해발 430m의 미륵산에는 정상을 기점으로 하여 북쪽에 있는 또 하나의 산봉우리를 향하고 있는 성 줄기는 다시 동쪽으로 꺾이어 능선을 따라 내려가고, 남쪽은 역시 정상에서 동남으로 향하여 뻗은 능선을 따라 내려가다가 북으로 꺾이면서 수구를 향하여 내려간다. 아마 그 합쳐진 수구 근처에 동문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석축으로 되어있는 성 줄기는 지금도 완연히 남아 있는데 수구가 있었던 곳은 이젠 옛모습을 전혀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그 흔적이 산만하다. 산성의 둘레는 3,900척, 높이는 8척이며 성안에서는 석촉, 능철, 포석환, 기타 유물이 발견되기도 하였다. 미륵사지에서 하차하여 등산코스를 이용, 정상에 오를 수 있다.
익산시 금마면 신용리 산 124-1 063-859-3114
함열향교
함열향교는 함라면 소재지 서북쪽으로 함라산을 등지고 동남향으로 위치하며, 위쪽으로는 대성전이 있고 동쪽에는 영소전이 세워져 있으며, 서쪽에는 난심제와 고팻집으로 된 교직사가 있다. 함열향교는 조선 세종19년(1437)에 처음 지었으며 임진왜란으로 완전히 불타 없어진 것을 영조(재위 1724∼1776) 때에 다시 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대성전의 규모는 앞면 3칸, 옆면 3칸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자 모양인 맞배지붕이다. 안쪽에는 공자를 비롯한 그 제자와 우리나라 성현들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나라에서 토지와 노비, 책 등을 지원받아 학생을 가르쳤으나 지금은 교육기능은 없어지고 제사 기능만 남아 있다.
익산시 함라면 함열리 579번지 문화관광과 063-859-5273, 5274, 5791, 5873
익산 함라마을 돌담길
‘함라’라는 명칭은 이 곳의 주산인 함라산에서 취한 것으로 전해지며 홍길동전의 작자로 유명한 허균이 1611년(광해군3)에 함열로 귀양을 와 유배되어 있는 동안 800년 동안의 시 가(詩歌)를 96권으로 묶은 『성수시화(惺#21471;詩話)』등 여러 작품을 집필한 것으로 알 려져 있다. 마을 뒤의 함라산을 주산으로 하여 그 옆으로 부를 가져온다는 길상(吉祥)의 의미로 알려 진 소가 누워있는 형세에서 따온 와우산이 마을 전체를 싸고 있고 앞으로는 넓은 들이 펼 쳐져 있어 일찍이 부농촌으로 자리 잡았다. 마을의 건축물은 새마을운동 당시 상당 부분이 신축 또는 개축된 것으로 시도민속자료 제 23호 ‘김안균가옥’ 등의 지정문화재가 마을의 분위기를 주도하고 있다.
이 마을의 담장은 토석담이 주류를 이루고 있으며, 이 외에도 토담, 돌담, 전돌을 사용한 담 등 다양한 형태의 담이 혼재되어 있다. 평쌓기 방식으로 축조되었으며 담의 지붕은 한 식 기와가 아닌 시멘트 기와를 써서 처리되었다. 담장의 높이는 일반 농가의 담장이라는 점과 주택의 규모가 그리 크지 않은 점에 비하여 높은 점이 한 특징이다. 또한 차순덕 가옥의 담장은 거푸집을 담장의 양편에 대고 황토흙 과 짚을 혼합하여 축조한 보기 드문 전통적인 방식으로 축조되어 있어 눈에 띈다. 전통가옥들과 마을 한편에 자리한 문화재자료 제85호 ‘함열향교대성전’은 전통마을로서 의 품위를 더해주고 있으며 마을의 역사와 함께 해 온 묵은 돌담길은 보존상태 또한 양호 하다.
* 담장형태 - 토담길이 약 1,500m의 토석담, 돌담(전형적인 토석담, 일부 전돌담, 판축담) * 마을형성 - 조선시대 이전 형성, 현 178세대 (534명) 거주 * 문화재 - 함열향교 대성전(문화재자료 85호) 등 4건
익산시 함라면 함열리 문화관광과 063-859-5273, 5274
태봉사
익산은 백제 무왕과 신라 선화공주의 애틋한 사랑이 전해져 오는 지역이다. 그곳에는 미륵사지 석탑을 비롯하여 백제시대의 유적이 여럿 남아 전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찾게 된다. 이렇게 오늘날까지 잊혀지지 않고 기억되는 백제 유적을 찾을 때 태봉사도 꼭 한번 들르길 바란다. 태봉사는 백제시대의 삼존불상이 있는 사찰이다. 사찰을 찾아가는 길도 쉽고 편안하다. 거의 평지에 위치한 대웅전은 뒤쪽의 야트막한 구릉과 어우러져 한폭의 그림과 같다. 그 대웅전 안에 그 유명한 삼존불상이 모셔져 있다. 화강암 위에 두꺼운 호분이 칠해져 있어 부처님이 짓고 있는 온아한 백제의 미소를 느끼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그 또한 현세의 때가 끼어 웃음을 잃은 사람들의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사는 것이 즐거워 웃음이 절로 나오는 사람의 눈에 백제의 부처님은 천년 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중생을 향해 인자한 미소를 보낼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을 못 보는 것은 보는 이 자신의 탓인 것을....
운 좋게 태봉사의 스님과 말씀을 나눌 기회가 되면, 원응료 안에 들어가 따근한 차 한잔과 함께 그 안에 모셔진 여러 부처님을 뵐 기회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곳에는 오래된 불상에서 느낄 수 있는 안온함이 배어 있는 불상과 보살상이 여러 구 모셔져 있다. 합장하는 우리에게 무언가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갈 길 바쁜 나그네는 그 이야기를 다 못 듣고 만다.
백제시대 불상이 있는 태봉사. 여유를 가지고 백제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무왕과 선화공주의 이야기가 있는 여러 곳도 들르면서, 이 곳 태봉사에도 머물면서 불상들이 전해주는 이야기를 듣게 되길 바란다
익산시 삼기면 연동리 150 한국 불교 문화 사업단 02-2011-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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