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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틴 루터 루터, 그리스도께서는 유대인의 인식에 맞게 주기도문을 가르치셨습니다
포기브 추천 4 조회 218 25.01.14 07:54 댓글 15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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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25.01.14 08:39

    첫댓글 좋은 글입니다. 특히 이 카페 다른 회원이 올리는 성경의 무오성 포스팅과도 연결되는 아이디어 부분이 있는 것 같습니다:

    "성경의 다음 구절들이 서로 모순되지 않느냐고 루터에게 물었습니다. ... 그렇지 않습니다. 이 구절들은 서로 모순되지 않습니다."

  • 25.01.14 10:59

    네, 공감합니다.

  • 25.01.14 17:13

    공감합니다22

  • 25.01.14 08:42

    겔14:14
    <호크마 주석>

    노아, 다니엘, 욥 - 성경의 다른 위인들 중에 특별히 이 세 사람이 본절에서 언급된 것은 그들이 타락한 세대에서 의로움을 지켰거나 극도의 환난 가운데서 의로움을 지킨 인물들이었기 때문이다. 즉 에스겔이 활동하던 그 당시가 그 세 사람이 활동하던 당시의 상황과 유사하다는 점에서 그들이 언급되었다. 그들은 자기의 의로 자기의 생명만 건지리라 - 하나님 앞에서 구원은 하나님과 각 개인과의 관계에 따른 것임을 암시한다. 이것은 각 사람의 영혼은 하나님 앞에서 근본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았으나 범죄하므로 말미암아 타락한 독립된 개체로서 존재하기 때문이다(롬 3:23;5:16-21). 노아나 다니엘 그리고 욥과 같은 인물들은 극도로 타락한 세대 또는 극도의 환난 중에 의로움을 지킨 그 자체로 구원을 얻게 되었지만 그들이 다른 사람을 구원해 줄 수 있는 중보자는 될 수 없다.

  • 25.01.14 08:44

    렘7:16
    <호크마 주석>
    이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지 말라 - 본절에서부터 20절까지는 유다 백성에 의해 저질러지고 있는 가증스러운 우상 숭배를 지적하고 있다. 이 말씀은 다른 장에서도 여러번 나타나는데(11:14; 14:11), 본절에서는 세 번이나 반복되어 강조적 의미를 전달해준다. 그리고 본절에서부터 20절까지에서 지적되고 있는 죄상을 참조하건대, 이 같은 당부는 이 백성에게서 이제 회개의 가능성을 전혀 찾을 수 없음을 강조하는 것으로도 해석된다. 고집스럽게 지속되는 우상 숭배에 대한 처방책은 언약의 저주 조항을 가동시키는 것뿐이었다.

  • 25.01.14 11:05

    루터가 말한 것과 비슷한 흐름 같습니다.

  • 25.01.14 10:22

    기도할 때에는 아버지께서 아들을 인하여 들으신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말이 이해가 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유대인의 특성을 이해해서 직접 아버지께 기도하라고 가르치셨지만 사실 모든 기도는 그리스도를 통해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성부께 올려지게 되었다는 것을 말하고 있군요. 그리스도의 대제사장으로서의 대속의 죽으심으로 지성소로의 문이 열렸으니까요. 지금도 우리는 성부께 기도하면서 예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를 꼭 넣고 있는 것이 이런 맥락이겠죠.
    짧지만 중요한 가르침입니다.

  • 25.01.14 10:29

    풍성한 댓글에 공감합니다.

  • 25.01.14 10:29

    아버지와 아들의 존재론적(存在論的)인 관계, 성부와 성자의 관계

    <호크마 주석>
    눅10:22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 여기서 '모든 것'(* , 판타)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가리키는지에 대해서는 다양한 견해가 있다. (1)하나님이 주신 완전한 계시(Jeremias), (2)(본문이 단 7:13,14;마 28:18과 평행을 이룬다고 보았을 때)
    예수께서위임(委任)받은 하나님의 권한(Lagrange, Schniewind), (3)보이는것과 보이지 않는 것(Weiss), (4)모든 사람(Bengel), (5)하나님 나라의 실현에 필요한 모든것(Holtzmann),(6)그 하나님의 뜻(Plummer), (7)모든 교리(Harnack) 등.
    그런데 본문에서 '모든 것'에대한 정확한 해석을 얻어내기 위해서는 '주셨다'(* , 파라디도미)의 의미와 연결시켜 보아야 한다. '주셨다'는 동사는 스승이 제자에게 지식, 교리, 전통과 같은 것을 물려주는 것을 표현할 때 사용되기도 하며(막 7:13;고전 11:2,23), 권력이나 권위를 위임하는 데도 사용된다(4:6). 이렇게 볼 때 앞에 열거한 제 견해들은 어느 것이 틀리거나 어느 것이 정확하게 맞다기 보다는

  • 25.01.14 10:29

    종합적으로 취해질 세상의 것이라 하겠다. 결국 본문에서 중요한 것은 예수의 권위가 하나님의 권위와 동일하다는 사실이다.
    아버지 외에는...아는 자가 없나이다 - 여기서는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만 존재하는 상호 인식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다. 또한 본절은 아버지와 아들의 존재론적(存在論的)인 관계 즉 복음서들이 한 결 같이 증거해 주는바 성부와 성자의 관계를 증거한다. 물론 성도들도 하나님을 안다. 그러나 그들이 자신의 능력에 의해 아버지를 안 것이 아니라 아들이신 예수의 중재에 의한 것이라는 점에서, 그리고 그 지식이 너무도 부분적이라는 점에서 예수가 하나님을 아는 것과는 다르다.

  • 25.01.14 11:12

    @장코뱅 예수의 중재에 의한 것이므로 예수님을 중보자로 보는 것 같습니다.

    요14: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 25.01.14 10:56

    두번째 글은 성경의 책마다 시대적 상황이 다른 만큼 메시지가 일시적으로 달라져 보일 수 있지만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과 열심은 변함이 없는 것이므로 결국 하나의 메시지라는 걸 읽어내야겠죠. 부모가 자식이 잘할 때는 칭찬하고, 잘못을 저질렀을 땐 징계를 가하지만 모두 사랑의 행위라는 것을요.
    구약과 신약이 모순되고, 모두 멸하시겠다고 했다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고 다 구원하시겠다고 하는 등, 성경을 단편적으로만 보면 이렇게 모순적이라고 하겠지만, 어떤 것이든 단편적으로만 보면 안 되죠. 종합적으로 보면 다 이해가 되는 것들이죠.

  • 25.01.14 11:15

    네, 균형 잡힌 분별에 매우 공감합니다.

  • 25.01.14 11:18

    이 카페에 여러 번 주기도문이 십계명을 요약한 것이라고 나온 바 있습니다. 성경은 한 구절이나 표현만 보면 모순돼 보이지만 종합적으로 보면 통일성과 논리성이 맞는 것 같습니다.

    공감이 되는 루터의 글입니다.

  • 25.01.14 17:15

    공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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